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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완두콩 |2010.09.02 00:22
조회 217 |추천 0

Chapter 1.

 

"충성! 이병 김우현. 2007년 9월 3일부로 제1군사령부 xx대 3중대 1소대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 합니다!"

 

...

 

어느 고요한 빈 공터에 크게 소리가 울린다.

피를 토해내듯 무언가 끓어오르는 열정을 이기지 못하고 입밖으로 나지막히 나오듯, 그렇게 퍼지고 퍼져 메아리가 들려온다.

 

"어디서 살다가 왔냐"

"이병 김우현! 경남 진해 출신입니다 !"

"..."

"..."

"엎드려라"

"잘 못들었습니다?"

"..."

"..."

타작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근 6개월간 계속되는 구타와 시련들.

죽을 힘으로 버티면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던가.

처음으로 느꼈다. 죽을수도 있겠다고.

 

 

 

Chapter 2.

 

"디스 한갑만 주세요."

"2천원이요"

 

늘어나는건 담배밖에 없다고 했던가.

열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건 잊혀져가는 정체성 뿐.

담배연기에 모든걸 싫어보내려 애써보았지만, 비가 오면 다시 되돌아올 뿐이였고,

정체성의 모호함은 어느덧 자괴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누구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헛된 세월을 보내며 배우는건 무엇인가. 어디를 때려야 아프게 때리고, 어디를 막아야 살 수 있다 라는 것들?'

하루에 한 번씩, 빼놓지 않고 빼곡히 써내려간 편지에 대한 답장은

어느덧 나를 괴롭히는 커다란 무기가 되었고,

소유욕, 질투심만이 앞서는 형편없는 '한국인'이 되어갈때쯤,

스스로에 대한 재정의가 뚜렷해진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구나' 라고.

 

 

 

Chapter 3.

 

"패스 패스"

"마이볼 마이볼"

"아 신발놈아, 패스를 해야지 병신이"

 

하루에 한 번씩, 축구는 우리의 일과였다.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은 1년에 두어번.

대부분은 간부들의 욕심으로,

그보다는 지휘관의 욕심으로 이루어진

일명 '전투축구'

반칙도 없으며,

심판도 없으며,

모든 룰은 간부들의 법칙.

특이나 지휘관의 룰로 이루어지는 축구 경기.

하루 한시간 반.

미친듯이 뛰고, 차고, 구르고, 넘어지고, 까지고.

지금 무릎에 난 상처 또한 그때 생긴 상처이나,

치료도 하지 못한채, 또다시 필드에 뛰어야하는 존재였기에

흉터가 생겨버렸다.

식사시간은 늦기 일쑤였고,

어느때엔 식사를 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저 새끼를 전역하기전에 죽이던지 영창에 넣던지, 조져버려야지"

라고 혼자 되뇌였던게 꼬박 1년이였는데,

결국은 그러지 못하였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어지고, 또다시 운동.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철저한 '스스로를 위한' 운동들.

하루 꼬박 한시간 반씩.

나는 나 스스로를 위해 연변장을 뛰고,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벤치 프레스와 덤벨프레스를 병행하며,

몸을 만들었다.

 

상체운동만 지독히 고집했던 이유는,

첫째로 매일마다의 일과가 되어버린 축구로 인해

이미 하체는 말이 되어 있었고,

둘째로 젊은 패기에 당연스레 관심사가된 섹스에 대한 이유로

더 좋은 쾌감을 느끼고자

혹은 더 좋은 쾌감을 주고자

미친듯이 운동을 하였고,

세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로,

모든걸 잊기 위해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말없이 풀기에 제격이였고,

생애 처음으로 '살인'에 대한 충동 또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였고,

욕정을 이겨내기 위한 행위로써의 하나였고,

과거의 상처를 지우기 위한 행동이였고,

미래에 받게될 상처를 미리 경험하고자 이루어진 것들이였다.

 

그렇게 심한 운동으로 인해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고

얼음장 같은 샤워실에서 온몸의 묶은 한을 벗겨내고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에 자화자찬하고

그렇게 1년이란 허송세월을 보냈었다.

 

 

 

Chapter 4.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이지"

"왜요?"

"사람만큼 중요한 자산이 없는 것 같다."

"공부 잘하고, 돈 잘벌고, 와이프 잘 만나고, 그런게 최고 아닙니까?"

"최고지. 근데 그게 '최고'는 아니야"

"왜 사람이 최곱니까?"

"배울 수 있거든."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게 더 많지 않습니까? 시간에 비례해서 기회비용으로 생각하자면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왜 사람이 최곱니까?"

"책에서 배우지 못하는걸 배울 수 있거든"

"그게 뭔데요?"

"그게 사람이지"

 

이날의 대화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의 나를 있게까지한 단 한시간의 투자.

이 한시간으로 모든게 변화되었다면, 누가 믿을까 싶지만.

맞다. 모든게 바뀌었다.

 

이날 이후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담배와 라이타를 챙기고,

건물 밖 벤치에서 담배를 모조리 피울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해답은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소심한 성격에, 누구에게 절대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여자 앞에선 벙어리가 되어버리기 일쑤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단, 행동하고 생각하는 내가.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한다.

언제 한번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담배 한대 피실래요?"

미친놈 보듯 쳐다본다.

얼굴이 빨개진다.

이런 경우 대답은 두가지.

예스 or 노.

노 라는 대답이 되돌아 온다면,

어쩔 수 없다. 빨리 포기한다.

예스 라는 대답이 되돌아 온다면,

그때부터 시작한다.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저런 사소한 얘기들을 나눈다.

어쩌면 당신에겐 사소할지도 모르나,

나에게는 큰 의미를 지닌 이야기들.

이야기가 끝나면 서로 웃으며 헤어진다.

그리고 자기전, 그와 했던 이야기를 빼곡히 적는다.

무언가 배울 점이 있는가 싶다.

없다면 어쩔 수 없다. 사람을 알게 된 것만으로 감사하다.

있다면 대박이다. 습득하기 위해, 변화되기 위해 노력한다.

테스트로 후임들에게 써먹어본다.

먹히지 않는다. 그럼 애써 잊는다.

먹히는 것 같다. 이때부터 이것은 내것이 된다.

이렇게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한명이 두명이 되고, 두명이 네명이 되고,

어느덧 수백명의 친구가 생긴다.

지역, 나이 상관없이 모두가 나의 '친구'들이 된다.

의사, 변호사, 선생을 하다온 친구가 있는가하면,

깡패, 삐끼, 조폭을 하다온 친구가 있다.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내면이다.

 

군대에서 사귄 친구 중, 어느 형님과의 대화 중

"형은 밖에서 조폭하고 그러면 좀 그렇지 않아요?"

"어떤게?"

"솔직히 사람들 인식도 있고, 가족들도 걱정하고, 그런거요."

"그렇겠지."

"그럼 좀 그렇지 않아요?"

"그럴수도 있겠네"

"직업을 바꿔볼 생각은 안해보셨어요?"

"해봤지"

"그런데 왜 계속 그걸 고집하세요?"

"고집하는건 아니다"

"그럼요?"

"못하는거지"

"왜요?"

"무식하거든"

"에이. 그건 핑계 아니예요?"

"머리도 나쁘고, 초졸에 아는건 사시미질밖에 없다."

"그럼 칼쓰는 재주를 다른쪽으로 연결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수도 있지. 근데 난 지금 조폭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요?"

"부끄럽지 않으니까"

"진짜요?"

"내가 못배우고 내가 무식한건 부모탓도 아니고 오로지 내 잘못이고,

지금의 내가 된 것도 내가 원해서 된거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해도 난 전혀 창피하지 않다.

무식하다고 창피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창피하다고 느끼는게 진짜 창피한거다.

근데 가족들한테 손가락질하는 또라이새끼들이 꼭 있다."

"그때는 좀 창피해요?"

"아니. 그새끼들이 불쌍하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신선한 충격이 오간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나는 정말 부끄럽다'와

'별이 될 사람을 찾았다' 라는 이 두가지.

오랫동안 이 생각은 지속되었고,

나 자신에게 가장 큰 변화가 되었다.

 

 

 

 

Chapter 5.

 

어느덧 전역날이 다가온다.

평생 옆에 있을 것만 같았던 친구는

끝내 내 옆을 떠났다.

상실감은 엄청났다.

언제나 평생 함께할 것만 같았던,

결혼하게 될꺼라 믿었던 친구는

그렇게 내 옆을 떠났다.

죽을까 싶었다.

시도를 한적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모두 이루지 못했다.

친구들이 떠오른다.

부모님이 떠오른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다.

스스로를 이겨내려 온갖 노력을 했다.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이야기를 하고,

혼자 있지 않으려 온갖 핑계로 이리저리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렇게 차차 이겨나갔다.

그렇게 차차 잊혀나갔다.

 

전역날이다.

기분이 좋지 않다.

더 있고는 싶으나 더 이상 이곳이 싫다.

친구들 때문에 더 남고 싶어진다.

그러나 더 이상 이곳이 싫다.

국방부 시계는 결국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날은 결국 나에게 왔다.

인사를 한다.

모두가 반긴다.

잘가라 손을 흔든다.

연락하겠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후임들에게 나눠준다.

좋아라 한다.

안타깝다.

그렇게 발을 돌린다.

머리를 돌린다.

10여분쯤 계속 걷는다.

정문이 보인다.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 군복을 입고 있다.

나를 쳐다본다.

몇몇은 울고 몇몇은 웃는다.

잘가라 말한다.

한명 한명 손을 붙잡고 인사를 한다.

한명이 두명이 되고, 두명이 네명이 되고,

수백명의 손을 붙잡고 흔들며 인사한다.

연락하겠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한다.

몇몇은 울고 몇몇은 웃는다.

몇몇은 '잘가요' 몇몇은 '좋겠다 강아지야' 한다.

기분이 좋다.

씁쓸하다.

더 있고는 싶으나 더 이상 이곳이 싫다.

정문에서 한 발 밖으로 나간다.

더 이상 뒤로 한걸음을 되돌릴 순 없다.

모두가 잘가라 외친다.

뒤돌아본다.

나에게 '충성' 이라 한다.

다시 뒤돌아본다.

택시가 내 앞에 선다.

눈물이 흐른다.

 

- 2010. 08.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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