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여행 세번째 날, 순천에서 야간열차로 익산을 경유하여 광주역으로 갔어.
따로 잠을 잘 수는 없었지만 기차에서 살짝 살짝 눈을 부쳤기에 피곤하지는 않더라고.
순천에서 광주로 오면서 만났던 한 아주머니,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익산역에서 환승열차를 기다릴때 덜 심심했어^^
정읍이 원래 집인데 동창회 때문에 순천까지 왔다가 버스 막차시간을 놓쳐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올라가신다고 하던 아주머니.
정읍도 괜찮은 데 많다며 왜 정읍은 안 오냐고 하셔서 난 그저 웃을수밖에 없었어 :)
논산이랑 가까운 익산. 어렸을 때 아버지 옆에 타고 종종 드라이브 했던 곳이 바로 익산이었어.
익산과 또 가까운 곳이 정읍인지라 아주머니와 전라도와 충청도에 이르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재미는 이렇게 곳곳마다 새로 마주하는 인연들에 대한 기대감이야.
예상치못하는 사람과의 만남, 그 짧은 순간의 몇 마디가 가끔은 소중한 정보를 얻게 될때도 있고
하루종일 걷느라 피곤한 내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달콤한 보충제가 되기도 하거든.
새벽에 광주역에 도착해서 일단 찜질방을 이용하여 깨끗하게 씻고 나왔어.
그래도 소쇄원을 갈껀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 가야하지 않겠어? ^^:
소쇄원으로 향하는 첫 버스가 6시에 있다고 들었기에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빈 시간에 잠시 편의점에 들렀어.
근데 거기서 수녀님의 책을 딱 발견한 거 있지. 한 편의점에서 발견한 수녀님의 책이 너무나 반가웠어.^^
소쇄원까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광주역 역무원실 아저씨께 살짝 부탁을 드려보았어.
처음에는 분실 우려때문에 곤란하다던 그 아저씨는 내가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니까 못이기는척 하시면서 짐을 보관해 주셨어.
따로 짐을 맡길 비용을 부담할 필요없이 이렇게 새벽에 이루어진 나의 미션은 성공했지 하하.
동생같다고, 자신이 형인 것 같으니 편하게 생각하라고, 잘 다녀오라고 하며 안보이는 곳에 꼼꼼하게 짐을 보관해주시는 배려까지.
9시에 근무교대라서 자신이 없을테니 다음 근무자에게 이야기하라며 웃어보이는 아저씨? 역무원 형님이 너무나 감사해서
떠나면서 꾸벅 감사의 인사를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어.
광주역에서, 그리고 편의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첫차를 타고 중간환승지에 내렸어.
근데 소쇄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정류장이 헷갈리는 거야.
날이 밝기도 전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 두리번거리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한 모녀를 만났어.
"아줌마, 여기 소쇄원 가는 버스정류장이 이 근처라고 알고 있는데 혹시 아세요? 충효 187번이라고...."
"글쎄, 내 딸이 담양으로 학교 다니는데 바로 가는 버스가 여기서는 없을 것 같은데..."
이런. 내가 조사한 정보가 틀린건가 싶어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줌마께서는 한번 찾아보자며 같이 동행해 주셨어.
이른 아침에 길을 가는 사람들 여럿에게 물어본 끝에 정류장의 위치를 찾아서 그리로 같이 향했지.
조금 걷다보니까 정류장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거기에서 조금 기다리니까 버스가 와서 얼른 올라탔단다.
한 20여분을 나때문에 추운 바깥에서 고생하셨는데 그 정도쯤이야 괜찮다면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시는 아주머니.
길을 몰라 해매는 내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시고 정류장까지 같이 가주신 두 분께 너무나 고맙더라고 ^^
이른 아침 딸의 손을 잡고 목욕탕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어 :)
그런데 아뿔싸. 한 40여분 걸린다는 그 버스에서 자다가 두 세 정거장을 지나치는 바람에 종점까지 와버렸지 뭐야.
종점에 내려서 한 작은 마을에 도착해서 잠을 깨며 아침을 맞는데 너무 상쾌해서 좋았어!
그래도 다행인 건 이 버스가 다시 돌아가는 거라서 되돌아가면 된다는 거였어^^;
잠시 후에 다시 되돌아와서 이번에는 소쇄원에 잘 내려서 안쪽으로 향했어.
소쇄원 입장시간은 9시. 그러나 내가 도착한 시간은 7시 40분.
입구에는 9시전에는 입장 불가라고 씌여 있었으나 난 살며시 소쇄원으로 들어왔어.
나 혼자 무슨 모의나 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웠지만 소쇄원에 일찍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터라
여긴 늘 문을 열어놓고 개방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마을도 있고 해서.
다만 마을 사람들을 배려해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방해되는 행동은 삼가해 달라는 주의사항은 기억해두고 있었거든^^
대숲에서 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건너면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정원이 나와.
자연을 편리한대로 뜯어고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다리며 집들을 가만히 올려놨어.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존중하고 교감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애.
단풍이 이 계곡에 비춰들때면 우리는 부부가 돼 있을까?
우리도 긴 시간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됐음 좋겠어.
이 아름다운 정원은 이름은 소쇄원인데
어때? 왜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하겠지?
이름이 좀 어렵나? 하지만 소쇄-하고 입소리 한번 내면 쉽게 익혀지는 것 같아.
혹시 '가을로'라는 영화 아니? 몇 년 전에 유지태와 김지수가 주연한 예쁜 영화야.
거기에서 김지수의 내레이션으로 소쇄원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이 몇 문장만 봐도 소쇄원이 그려지지 않니? :)
우리나라 곳곳의 아름다움이 영상에 담겨져있어 여행 떠나고픈 마음이 들게끔 하는 그런 영화.
어쩌면 내가 소쇄원을 꼭 가보고 싶었던 것도 그러한 연유일지도 모르겠다 ^^
여행 PD인 김지수가 걸었던 소쇄원, 죽은 약혼자가 남겨놓은 여행노트를 따라 걷는 유지태와 엄지원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소쇄원의 여러 곳을 내 눈에 담아보려고 열심히 애썼어.
소쇄원. 어릴적 국어교과서에서 그런 글을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떠올라.
소쇄, 소쇄하고 발음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깨끗해지는 것만 같다고. 그렇게 적어놓은 저자의 마음을 따라가 보았어.
소쇄원을 들어가는 길은 빽빽한 대숲길인데 겨울임에도 푸르러서 내 마음을 상큼하게 해주는 것 같았어.
소쇄원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것도 역시 대숲인데 정자 앞을 흐르는 계곡물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이 되더라.
어렸을 때 우리 집 뒤를 감싸던 것도 대나무숲이었는데...지금도 가끔 집에 가면 보는데 예전처럼 울창하지는 않지만 말야^^
이 길 앞에 서게되면 과연 안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내심 궁금해져. 그 궁금증을 안고 안으로 향했단다.
이 다리를 건너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나오는데 바로 여기가 소쇄원이야.
소쇄원은 조선 중기의 전통적인 정원양식을 보여준다고 해. 3대에 70년에 걸쳐서 완공한 곳이라 하더라고.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하자 정치를 접고 고향에서 은둔하며 살아간 학자 양산보가 조성한 곳이라고 되어 있더라.
여기에서 많은 가사작품들도 탄생했다고 하던데 과연 소쇄원만의 담백한 분위기가 담겨져 있는 것 같아.
여기 담벼락은 흙과 돌로 이루어진 흙돌담인데 은은한 맛이 있어.
여긴 제월당이란 정자인데 아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지붕선과 기둥의 조화가 완벽하게 되어 있는게 느껴져? :)
제월당은 '갠 날의 달의 집'이란 뜻을 갖고 있어.
여기는 광풍각이란 곳인데 '빛과 바람의 집'이란 뜻을 갖고 있어.
세 면 모두 걸어서 위로 올리도록 문이 이루어져 있어서 신기하더라고.
여름에 이 정자에 오르면 정말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
휴식처이자 사람이 모이는 공간,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께서 모여서 장기 두고 바둑 두던 그런 곳
한가할 때 홀로 휴식을 취하거나 마음을 정리하러 올라도 좋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무더위를 이겨내면서 밤하늘의 별의 개수를 헤아리다 잠들기도 하고
사회 이야기를 가지고 동네 아저씨들과 열띤 논쟁을 하기도 하는 추억의 정자.
정자에 대한 나의 작은 추억은 그래 :)
여긴 돌다리 담장인데 소쇄원에서도 꽤 유명해.
외부와 소쇄원을 경계짓는 이 담벼락이 돌다리에 의해 떠받치게 되어 있는 구조야.
흙돌담 밑으로 개울이 흘러가도록 설계해 놓아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인공미를 연출해 놓았어.
미술시간에 배웠던 자연미와 인공미의 조화, 교과서를 외우는 것보다 바로 이런게 참 공부가 아닐까?
여긴 대봉대라고 불러. 초가 정자로 된 이곳은 봉황을 기다린다는 뜻을 담고 있대.
봉황을 기다린다고...무슨 의미일지 맞춰볼래? 봉황을 맞이하는, 그러니까 귀한 손님을 처음으로 맞이하던 곳이래.
대봉대 아래를 유심히 살펴보면 크고 작은 연못 두 개가 있어.
위쪽 계곡을 타고 내려온 물이 나무 속을 파낸 홈통을 통해 먼저 작은 연못을 채우고
그 물이 넘치면 다시 도랑을 따라 내려가 큰 연못을 채우게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나무 홈을 따라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
김지수가 단풍잎을 이 물길위에 살짝 올려놓았던 곳이고, 유지태가 물길을 따라오는 단풍잎을 무심코 받던 곳이 바로 여기야.
여긴 오곡문이라고 불리는 곳이야. 오곡문은 위에서 내려온 물이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해서 그 이름을 붙였다고 해.
담 밑으로 터진 구멍을 통해 자연스럽게 계곡물이 흐르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야.
그렇게 소쇄원에서 두시간을 거닐었던 것 같아. 이것저것 세심하게 살펴보기도 하고 정자에 올라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고
노트에다가 끼적거려보기도 하고, 가을로의 흔적도 찾아보면서 말이야.
소쇄원을 나오려니 해가 떠서 어느새 주변이 환해졌더라고. 소쇄원을 찾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
배고파서 챙겨간 간식에 용케 냄새를 맡고 달려온 강아지 한 마리 :) 미안해^^
덕분에 잠시동안 나의 모델이 되어 주었단다. 상냥하고 귀여웠던 :)
내 곁을 오랫동안 맴돌던 귀여운 친구!
내일로여행 3일차
20091213 담양 소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