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지난 반년동안에 힘든 수감(징역)생활..

저는 2009년 11월18일 오전 9시 인천 광역시 연수구 집에서 있던중 들이닥친 형사들에

의해 긴급체포 되어 3일 동안 유치장 에 수감된뒤.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발부 되어 구치소에 수감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살면서 폭력으로 2건 벌금을 낸 이외에는 별다른 전과가 없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감옥 이란곳에 들어가니. 별생각들이 다 스쳐지나가더군요..

지금생각해보면 내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아무도 내말을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없었고. 교도소 구치소에 있는사람들 전부 잡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억울하다고 하소연 할꺼라고 생각 하네요..

저는 지난해 2009년 11월18일 오전 9시 이후로 사회와 격리되어 아웃사이더 의 인생을

반년동안 살아왔습니다..

징역 7년 이라는 엄청나게 긴세월에 형을 구형 받고. 앞이 깜깜했습니다..

저는 모든게 끝난줄 알았고. 시한부를 선고 받은것보다 더 큰 충격 이었습니다.

내 나이 21살. 젊은 청춘 감옥안에서 썩기엔 제게 너무 가혹한 형벌 이었습니다.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 어떤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 될수 없다는걸 누구보다 빨리

깨닫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는 힘없는 여자를 상대로 폭력을 휘둘러

사회와 격리되어. 처참한 모습으로 법의 심판 앞에 처참하게 무너졌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며 . 하루하루를 반성하며 지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정말 많은걸 깨달았습니다.. 가족이라는게 얼마나 소중한지...

정말 태어나 한번도 부모님에게 해주고싶었지만 솔직하지못해 해주지 못했던말들도.

편지로는 모두 말할수있었습니다.. 처음 제가 감옥에 갇혔을때. 극심한 몸살로.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편해졌다지만. 감옥은 감옥이더군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규정한 5대 강력범죄에 해당 하는 강력범이었습니다..

본방을 배정받아. 강력초범방 이라는. 문구를 보자. 정말 놀랐습니다..

그곳에는..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뉴스와 신문에 보도 되었던 끔찍한 살인을 저질른

사람들부터.. 각종 엄청난 형을 선고 받은 범죄자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몇년을 살아야할지 모른단 생각에. 앞이 보이질않았습니다..

매일 면회를 오던 아버지가 어느날 면회가 없으면. 눈물부터 나왔고.. 그 좁은방안에

갇혀.. 정말 힘든나날을 보냈습니다.

처음 내 두손에 차디찬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이 꽁꽁 묶인체

호송차에 몸을 실고 구치소에 입소하였을때.

내 모든게 송두리째 끝난것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내게 지급해준 물건은

검정색 고무신과 수의 였습니다

내 옷가지들과 가진 돈들은 전부 영치가 되어 깊은 자루속에 담겼습니다..

그것이 내가 본 내 물건들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삶의 밑바닥 까지 추락 해버린 내 모습이 정말 한심했습니다.

잘못된 길을 걸어온것이 배움이 부족 하고 아둔한 탓 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한가지 시 가 떠 오릅니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고

말씀 하신 어머니.

그때 나는 몰랐었네.

철저히 청개구리로 살다가.

수인이된 지금 풍수지탄을 깨닫는다.

이제야 생을 위한 담금질을 해보지만.

금보다 귀한 시간 안타까이 흘러 가고.

나는 늙어가네.

 

구속될 당시만 해도 내손에 차디찬 수갑이 채워졌을때

나의 모든 삶이 송두리째 끝장난것 같았고

하루에도 몇번씩 망연자실 하면서 정신이 혼란스러워

지고 온갖 역경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우울증이 밀려오는 밤이면 한숨과 걱정으로 한잠도

제대로 자지못하고 뜬눈으로 밤새우기 일쑤였고

나 자신의 현실을 망각한체 주제넘고 무분별한 행동을 자제 하지못했다.

그러한 나날과 시간속에 나의 잘못된 과오와 지난날을 뒤돌아 볼때

나의 허물을 감싸주고 용서해준건 가족.

 

정말 그리워했습니다.. 처음으로 어머니 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한번도 말하지못한

말들을 적어 정성껏 보냈습니다..

매일 저녁 동료들이 잠든 밤이면.. 전 혼자 편지와 일기로 하루를 기록 해나갔습니다..

매일 저녁이면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 생각에 잠을 들수없을때도 많았습니다..

처음 어머니와 아버지가 면회를 오셧을때. 어머니 이마에 쏭알쏭알 맺힌 땀방울이 기억 나요. 지금 생각하니.. 그 땀방울은 아들의 죄를 대신한 어머니의 눈물이었던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일 들어오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편지는. 정말 제게 큰충격을 안겨주었고.

지금까지 방황하며 살아온 제자신을 정말 원망했습니다..

매일밤 동료들이 잠든밤이면 혼자 화장실에서 소리 내지못하여 울던게 생각 납니다.

남자가 태어나 눈물 흘리는건 세번 이라고 하였지만...

정말 저는 참을수없었습니다. 어머니 와 아버지 가 저때문에 마음 졸이고. 저를 그렇게

걱정하는지 사회에선 절대 알수없었습니다... 매일 같이 왕복 80키로가 넘는 거리를

왓다갓다하시며.. 7분동안 이 못난 아들 보시겠다고 찾아오던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어머니가 처음 면회를 와 어떻게 된 일이냐며 저에게 묻자. 저는 미안하다라고 밖에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크릴판 너머에서 저는 아크릴판 안에서 울며 7분 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징역 7년 을 구형 받은후에 저희 부모님도 제가 다신 이렇게 바깥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수없었을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간절한 탄원서와 법정에서 아들의 죄를 대신하여 선처를 호소를 하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봐서 용서해주신건지..

저는 올해 2010년4월15일 오후 5시 징역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보호관찰5년을 선고 받고

출소하였습니다..

앞으로는. 모든일에 절제를 할줄 아는사람으로 거듭나서. 보다 성숙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사회에 일꾼이 되겠습니다.

두서없는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모든걸 쓰기엔.. 너무 오랜시간이 필요할것같아.. 여기까지만 올렸습니다..

앞으로는 사회에 봉사하며. 열심히 살아갈것입니다...

그리고 저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 에게 정말 미안한마음뿐 입니다.

다음에 글을 쓸때는.. 모든걸 정리하여 다시 쓸생각입니다..

그곳에서에 일기장과. 여러가지들을 종합하여 쓰긴 하였지만..

몇백장이 되는 문서들을 다 옮기기엔 문제가있었습니다...

다음에 총정리 하여 올리겠습니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