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툽 - 프롤로그.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붉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한손에는 두툼한 책을 다른 한손에는 단검을 들고 거대한 계곡 구석구석을 날아다니고 있다. 계곡사이사이마다 작은 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간혹 번쩍이는 무언가가 비치기도 한다. 문득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니 태양은 보이지 않고 구름 또한 단 한 점도 보이지가 않는다. 이곳은 어떤 세상일까? 저들은 또 누구일까?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 손에 있는 이 책은 또한 무엇인가? 호기심에 책을 살며시 넘겨본다. 그리고 책장이 넘어가기 직전 꿈에서 깨어난다.
어느 때와 별다를 바 없는 아침이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알람시계를 손으로 툭툭 친 뒤 꺼버린다. 머리맡에 쌓여 있는 신화서적들을 정리한 뒤 리모컨을 찾아 아침 뉴스를 틀고 화장실을 향한다. 기계처럼 양치질을 하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한다. 거울을 바라보니 잠이 덜 깬 30대 초반의 녀석이 나를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제거하고 거실에 나온다. 뉴스에서는 연신 안 좋은 기사들만 보도되고 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좋은 기사들이 안 좋은 기사들 보다 더 많이 나올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도 품어 본다. 서둘러 옷을 대충 챙겨 입고 가방을 둘러매고 집을 나서며 시계를 본다. 정각 오전 8시. 지하철을 향하는 발걸음이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쉽게 떼어지지가 않는다.
맞은 편 방향으로 수십 아니,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비슷한 복장으로, 비슷한 눈빛으로 걸어오고 있다. 마치 매트릭스 속 복제 된 스미스 요원들 같다. 매일 같은 업무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판 노예들. 수십 년 동안 노동에 임해야 겨우 맘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을 얻을 수 있는 그러한 삶. 우리는 과연 행복한 것인가? 생각하며 지하철에 오른다. 여기저기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 화장을 하는 아가씨들과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열심히 영어단어를 외우는 학생들. 그리고 가방을 가슴에 품고 있는 전형적인 샐러리맨들. 저들은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이 기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서서히 사색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귓가에 익숙한 아가씨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에 떠밀리듯 지하철을 내린다.
역전 입구에서는 성경책을 든 머리가 반쯤은 벗겨진 대머리 아저씨가 연신 무언가를 외치며 혼자만의 감동에 젖어 있다. 마치 아주 큰 막중한 임무를 띠고 태어나 그것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자기만족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심판의 날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며, 지금이라도 믿는 자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는 천국에 안배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물론 나또한 마찬가지. 간혹 몇몇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도 있고 잠깐 멈추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치는 사람들 또한 보인다.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되면 가정 먼저 하시는 일이 바로 당신 같은 사람들을 올바르게 깨우치게끔 만드시는 일일 것이라고. 자유의지를 주신 아버지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크게 어기고 있는 그들의 안방에 유황불을 떨어뜨리실 것이라고.’ 곱씹으며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을 마무리 한다. 그리고 기계와 같이 매일 똑같은 업무를 보며 동료들과의 형식적인 대화를 나눈다. 이러한 일상을 평생 동안 반복한다. 늙어서 행동에 제약이 따를 때까지 해야만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앉아 매일 반복되는 이 작업을 해야만 하는가.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인류를 위한 일인가? 아니다. 이것은 개인을 위한 것이며 한 가정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인류를 위한 일이란 매일 반복되는 이런 기계노동 따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를 위한 노동이란 어떤 것인가. 과학자? 성직자? 정치가? 기업인? 전부다 틀렸다. 저들 또한 개인의 사욕을 위해 일하며, 단지 인류를 위해 일하는 척 하는 허울 좋은 직책을 맡고 있을 뿐이다. 돈에 의해 변질된 가식적인 직업들. 그들은 우리처럼 조금 상대적으로 열등한 자들을 노예로 부리며 개인의 부를 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피라미드 최상층에서 우리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어떡하면 조금 더 대중을 쉽게 부리며 영원토록 이 상태를 유지할 만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할까. 그들은 평생을 바쳐 그런 프로그램을 짜기에 바쁘다. 마치 자신들이 신이나 된 듯 마냥. 허나, 이것은 틀렸다. 누가 봐도 공평하지가 않다. 모든 걸 새로 뒤 엎을 만한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신화 속 대홍수처럼 모든 것을 다 깨끗하게 쓸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러한 현 시점. 나는 삶이 점점 지겨워져 간다. 그리고 점점 지쳐만 간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런 시스템 안에서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지 가장 원초적인 질문들이 생겨난다.
도대체 우리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책을 통해서도 이 호기심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철학, 종교, 천문학, 물리학, 심리학. 그 어디를 뒤져보아도 그 것에 대한 답을 찾기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인다. 우리 세대의 가장 유능한 과학자도 그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 그리고 가장 신에 가까이에 있는 자라 불리는 교황마저도 그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 겉으로는 안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도 모를 것이다. 절대적인 진리란 무엇인지. 아니면 도대체 신이 있기는 한 것일까? 그리고 만약 있다면 우리는 그가 만든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정말 잘 짜여 진 프로그래밍대로 흘러가는 한낱 숫자에 불과 한 존재들일까? 그래서 피타고라스학파가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인가? 별 생각이 다 든다.
지독한 무신론자인 나이지만 이런 사색이 잦아짐에 따라 신을, 혹은 신들을 만나고 싶어지기 시작한다. 인류는 절대로 풀지 못할 3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