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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너무 힘드네요...

인생이너무... |2010.10.05 20:43
조회 892 |추천 2

정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집안 얘기 안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혼자 술마시면서

글 써봅니다...

 

 

아버지로 인해 제 인생이 모든게 뒤틀어져버렸고

24년을 살면서 단한번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던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지만

그저 하고 싶은말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아왔습니다

 

달라지겠지... 지금과는 다른사람이 되겠지...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자신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제가 장가가야 눈을 편하게 감을것 같다고 하시네요...

 

 

제가 태어날 당시 저희 아버지는 부사관으로 직업군인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도박과 술과 여자를 좋아하셨습니다

참 안좋은것들을 3박자 두루 갖춰서 좋아하셨죠

처자식은 안중에도 없고 위의 세가지에 미쳐서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밥은 잘먹는지 잠은 잘자는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게 되셨죠 쉽게 말해서 미쳐버렸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전 얼굴 한번 본적이 없습니다

제 기억은 5살 이후부터 남아있어서 그 이전엔 제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어머니 얼굴은 어떻게 생겼었는지 아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아버지는 어머니 병원비를 부담하기 위해

외할머니,외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퇴직금으로 나마 병원비를 대기 위해서 였다는군요

 

결국 외가에서 먼저 제안해서 외할머니가 도장찍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기보다 보기 싫어했다고 하네요...

 

외할머니가 저를 돌보시다가 힘에 부치셔서 아버지는 저를

친가에 맡기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였는지 친할머니께서는

저를 거부하셨다네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친할머니께서는 자신이

벌어다드리는 돈만 원했기에 손자는 그저 귀찮은 존재로 여겼다고

하시지만 어느게 진실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결국 저는 고아원 시설에 맡겨졌고

일곱살이 되던해에 아버지께서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군무원으로 다시 군에 들어가서

미군부대에서 근무하셨습니다

관사에 살며 그때까지는 평범하게 살았기에

전 어린마음에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시절에

아버지의 둘째형, 저에겐 큰아버지께서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하셔서 살던곳을 떠나 원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큰아버지는 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계셨고

동네에 큰 길을 뚫는 일을 따내서 일을 진행중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아버지가 군생활만해서 신용이 깨끗하였기에

굴삭기를 구입하기 위해 아버지 이름으로 2천만원의 대출을

요구하였습니다 (이 얘기도 아버지에게 들은것이지만 지금 제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진실인지 아닌지 믿을수 없는 상황이네요)

 

저와 아버지는 큰아버지가 전에 살던 집으로 이사온 상태였고

(큰 아버지는 집을 새로 지어서 살고 있던 상태)

아버지는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원해서 동네에 새로지어진

빌라로 이사를 했습니다. 굴삭기를 위해 대출을 받았기때문에

돈은 형에게 받으라고 하고요...

 

하지만 큰 아버지는 그 돈을 내가 왜 줘야 하나며 지불하지 않았고

그 때부터 형제는 갈등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저는 단칸방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바로앞에서 말이죠

 

그 당시가 초등학교 5,6학년 때였는데

그때야 어릴때라 크게는 못 느꼇지만 조금은 창피했습니다

 

엄마도 없는 놈이 단칸방에 사니까

모난 성격의 친구들에겐 놀림도 받았었구요...

그 당시 아버지는 경마에 미쳐있었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동네의 어떤 식당에가서 얘기해놨으니까

밥을 먹으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식당에선 불청객이 되어 밥도 먹지 못하고

너무 배가고파서 정말 자존심이고 뭐고 다버리고

친구에게 라면사먹게 500원만 달라고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 제가 남의 눈치안보고 편하게 즐기고 놀수있는건

게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 부터 항상 오락실, pc방에서

돈도 없으면서 맨날 살다시피했고 다른 사람들 눈엔

측은하게 보였는지 게임하라고 동전을 몇개 주던 사람도 있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방세도 내지 않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가끔 왔다갈때면 주인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저를 찾아와

온갖 욕을하시며 아버지 왔다간거 다 알고 있으니 돈을 내놓으라며

저를 힘들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당시엔 억울하면서도

아무말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지요...

 

그러다 그런 저와 아버지의 처지를 알게된 큰아버지가

사무실 옆의 컨테이너 박스 남는게 있으니 그리 와서 살아라고해서

다시 큰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됬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지요

이유는 아버지의 잦은 도박때문에 큰아버지께서

같이 일을 할수없다며 나가라고 한걸로 알고있네요...

 

결국 다시 단칸방 생활을 시작하게되었고

그곳에서 저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단칸방 생활을 시작하고서 부터는

집에 친구나 누군가를 데려오지도 못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경마에 빠져있었고 그 증세는

더욱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중학교때 어려서부터 친하던 친구들과 맛있는거 해먹자고

저희집에 데려왔다가 오후 4시인데 컴퓨터로 경마보고 있던 아버지를 보고

창피해서 나가자고 다시 끌고 나온적도 있었습니다

 

단칸방 생활이 계속되다가 학교에 육성회비를

내야하는데 당시 분기에 5만원 정도하던 그것 조차도

아버지가 주지 않으셔서 저는 행정실에 끌려가 젊은 여직원들에게

욕도 먹어봤구요 제 사정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이

회비 내라고 장학금을 신청해서 지원해 주었지만

당장 배곯지 않는게 더 중요했던 저는 그돈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용돈같은것도 없었던터라 동네에 있는 부페에서

하루 12시간 가량 서빙일을 일하고 2만원씩 주는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제 끼니해결하고 제대로 씻을수도 없는 환경에 살았기에 목욕탕가다보면

남는 돈도 없어서 뭘 어쩌지도 못하는 상태였지요

(그때는 부페음식 먹을 수 있다는게 그저 좋아서 열심히 일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부페 주인도 완전 어이없음... 12시간 일시키고 2만원이라니)

 

결국 졸업하던해까지 저는 행정실에 끌려가 욕을 먹었고

그때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아버지가 야간에 물류창고에

나가서 일해서 번돈을 모아 1톤짜리 화물차를 사서 돈을벌어둔덕에

다행히 졸업하던 날에야 3년치 육성회비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도 사실 시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그 당시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수 있을거란 생각에 가졌던

요리사라는 꿈때문에 멀리 타지에 있는 식품관련과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기숙사도 무료제공에 밥값도 1년에 20만원이 조금넘고 책값만 대면

다닐수 있는 학교라 부담도 없을것 같아 그길을 주저 없이 선택했습니다

 

물론 그로인해 어렸을적 부터 지내왔던 동네 친구들과의 관계는 많이 소원해져서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계속해서 남아 있는 상태구요...

 

군대와 다름없는 기숙사 생활에 학교 특성상 좀 놀던 형들이 많아서

그 생활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배곯고 살지는 않았기에

견딜만했고 지금도 그때의 생활은 좋은 추억이 되었죠 덕분에 좋은친구들도 만났구요

 

당시 아버지가 1톤차로 시작했던 화물차를 팔고

용역같은 중개업으로 전환해서 화물 사무실을 차렸고

그나마 좀 벌이가 되었던터라 저는 1주일에 3만원씩 용돈을 받을수

있었고 거기다 친구의 소개로 먼 타지까지가서 부페에 가서 아르바이트를해서

용돈이 생겼기에 여자친구도 사귈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을 갈때가 되었고 그 당시 처음 사귄 여자친구에게

쑥맥이라 채이고;; 두번째 여자친구를 사귀어서 알바하랴 여자친구랑

놀으랴 해서 열심히 공부를 안한탓에 지방에 있는 전문대를 갈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등록금이라는 벽에 부딪혀 무산될뻔했지만 간신히 해결했지요

당시 등록금때문에 하향지원했던 전문대와 상향지원해서 국립 4년제에 수시 원서를 넣었지만 국립 4년제에 합격을 못해서 돈이 더들지만 전문대를 갈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하향지원해서 간 전문대라 과수석을 해서 등록금과 입학금 전체를

돌려받고 2학년때는 학회장을해서 학기당100만원씩 장학금을 받고 다닌 덕분에

가계에 큰 부담은 되지 않았습니다

 

2학년이 되던해에 잘못 만난 두번째여자친구가

항상 저에게 바라기만 했던 터에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저 퍼주는 성격이라 매번 퍼주기만 하다가

몇백만원을 날리고서야 얘가 내가 좋은게 아니라 내가 쓰는 돈이 좋은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들던 때였음)

그렇게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좋은 형편이 아니었기에 안정적인 삶을 얻고 싶어서

어려서 부터 꿈꾸던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기위해 졸업후에

공군 부사관에 지원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려서 산수익힘책때부터 포기한 수학이

발목을 잡아 두번의 필기시험에서 모두 낙방을 하게되었죠...

 

결국 저는 그때까지도 도박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얼떨결에 바다이야기 게임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팁도 받고 내가 원하던것, 사고싶은것을 쉽게번돈으로 얻을수 있었기에

마냥 좋아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군에 입대를 하게되었고

그제서 부터야 머리가 정상적으로 회전을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나는 이 나이먹도록 통장에 돈10만원도 모아놓지 않고 뭐한걸까

아버지에게 뭔가 바랄수 조차 없는 삶이면서 왜 스스로 내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걸까하고

막심한 후회를 군에 있는동안 했습니다

 

그저 돈있으면 친구들과 술마시고 먹고싶은거 먹고, 사고싶은거 사고

하다보니 수중엔 돈이라곤 한푼도 없었고, 그 상태에서 군에 입대했구요

 

군에가서 만난 사람들 중에 후임들은 펀드해서 돈모았다

저축해서 돈모았다 하는 얘기를 들으며 저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데 나는 뭐한걸까 하며 진짜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군입대전에 택배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다 허리를 다친덕에

디스크가 발병해서 군대를 안갈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제가 디스크인 사실을 숨기고 군에 현역으로 입대했지요

정말 그것마저 떳떳하게 마무리 짓지않으면 더욱 제 자신이 부끄러울 것만 같았거든요...

다행히 아버지가 보험을 들어놓은 덕에 병원비 걱정안하고 나와서 수술하고

군병원에 두달간 입원해있었지만 남은 군생활은 열심히해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렇게 군생활동안 못한 공부도하고 책도 읽고 재활운동도 열심히하며

올해 6월에 제대했습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에게 의지하는게 어려서부터 너무 싫었기에

공장에 나가서라도 일해서 제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살 생각이었죠

 

그런데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저에게 물려줄테니 이어받아서 하라고 하신말씀에

처음엔 제가 원하는대로 살겠다며 거절했지만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군에서 행정일을 했기에 지금하는일도 사무실일이라 익숙하지않거나

생소한 단어들때문에 많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다 적응해서 이제 아버지께서

거의 손떼시고 저 혼자 사무실을 맡아서 일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처음엔 돈을 어느정도 버는것 같아 좋아했고 주위사람들에게도 자랑하듯이

내세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빛좋은 개살구라고 허울만 좋았지 속은 당장이라도 썩어 들어만 갈것같은

상태인 사업이더라구요......

 

돈벌이도 그렇게 시원치 않은 사업인데

작년에 어떻게 좋은거래처가 생겨서 벌이가 괜찮다고 차도 바꾸시고 면회오시길래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연말에 아버지가 재혼하기로 한분과 차를 타고 가시다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서 같이 타신분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완전히 마이너스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큰 돈이 되는것도 아닌데다가 음주사고로 보험혜택마저도 못받은덕에

점점 더 빛만 늘어갔고 그 상태에서 그돈을 아버지와 제가 나눠가지려니

택도 없겠더라구요... 저는 미래를 위해 투자한답시고 연금보험과

환급되는 종신보험에 제대하자마자 가입했지만 이젠 이것마저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구요..................

 

하루하루 지쳐가던게 몇달이 지나고 군에 입대하기전부터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었지만 제 상황이 여자친구를 사귈만한 여유가 있는것도 아니고

원하는걸 해주지도 못할것 같아. 마냥 저만 좋아해줄수 있는 사람이아니면

만나기도 어려울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좋아한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내고 있는데 며칠전, 제가 군대에서 휴가나온 친구와 군대사람들을 만나기위해

주말에 외박을했는데 얼마못살것 같으니 어서 장가가라. 그래야 내가 눈을

편하게 감을수 있다고 문자를 보내시더군요...

 

참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 저는

그동안 아버지에게 서운했던 말들을 문자로 모조리 해버렸습니다

사실 마음속에 두고두고 쌓아두었던 말이 너무 많아 다 하지도 못했지요

 

아버지가 제 인생을 망쳐놓았으니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얻을수 있게

만들어 주시기 전까진 꿈도 꾸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 인생은 제가 만들어 나가야하는건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저 아버지때문에 어렵게 살아온 날들이 북바쳐서 그렇게 말했지요

 

저라고 뭐 여자친구 만나기 싫고 장가가기 싫겠습니까...

제 미래를 위해 준비하지 못한 제 문제가 크지만

그저 남들처럼 결혼하면 부모님이 자식 결혼한다고 하면

도와주시고 그러던데 저는 그럴수가 없으니 제 입장에선

단지 그 현실이 너무 싫은거죠...

요즘세상에 남자 스펙안보고 만나줄 여자 찾기도 힘들꺼란 생각에

더욱 비참해지는게 현실이구요........

 

물론 저보다도 어렵고 힘든 환경에 사시는분들도 있는거 압니다

그런분들에 비해서 저는 참으로 복받은 사람인데 배부른 소리하는거겠구요

근데 차라리 무언가를 바랄수도 없는 상황이면 이런 얘기도 끄적거리지 않겠는데

제 입장에서 나름대로 3류 드라마같은 말도 안되는 막장 스토리 인생을 살아오면서

난 왜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삶을 살아야하나 참 슬퍼서 글을 써봅니다

 

어려분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세요

금전적인 준비만이 모든건 아니라고 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인해질수 있는 준비.

자신앞에 주어진 현실이 맞서 싸워나갈 용기

 

이런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저는 생각이 드네요...

부디 이 글을 읽어주실 여러분들은 저처럼

이렇게 약한소리나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이 아닌

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된 가장 큰 계기는

얼마전에 찾아뵈었던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하셨던 말씀 때문입니다

 

"엄마, 나 이제 멀쩡하니까 아들보고 싶어..."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진짜 눈물이 튀어나오려는거

억지로참고 견뎌오다가 결국 못버티고 글을 남깁니다...

추천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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