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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사망

삶의따뜻함 |2010.10.10 11:25
조회 816 |추천 0

황장엽(黃長燁, 1923년 2월 17일 ~ 2010년 10월 10일[1])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주체사상의 이론가로 활동하였다가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이후 반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평양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가서 주오 대학 야간 전문부 법과에서 공부하였으나 일본 제국 패망으로 강제소환되어 졸업을 하지는 못했다. 
약 1년 6개월동안 강원도 삼척탄광에서 징용을 하던 중 해방을 맞이하였으며 그 후 서울을 거쳐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갔다.



해방 이후 평양공립상업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김일성대학 재학중 모스크바 대학교로 유학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하였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1965년에는 총장에 취임하였다.


1970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된 이후 로동당 국제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 의장(1972년 ~ 1983년) 등 여러 요직을 겸임하게 된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중국이 황장엽에게 30년 동안 개혁 개방을 같이 하자며 "너희 그러다가 진짜 망한다.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김정일을 중국에 보내 달라!"고 했고, 
이에 황장엽은 김정일에게 중국에서 오라고 하는데 한번 가보라고 했다가 
"에~ 그 나쁜 개XX들! 무엇때문에 중국에 가겠는가?"라며 욕하던 김정일에 의해 당내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1997년 주체사상에 관한 강연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직후에, 베이징에서 김덕홍과 함께 대한민국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하였다.
그의 수기에는 망명 이유를 조국(북한)의 체제에 의분(義憤)을 느껴 그 변혁을 도모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황장엽 정도의 고위 관리가 망명하는 것은 김정일 체제가 지극히 불안정하다라는 인상을 주었다. 
일본에서는 현대 코리아 연구소의 관계자를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정권 붕괴 직전의 억측을 날리는 사람이 있었다.[출처 필요]
망명 후에는, 각종 강연을 통해 김정일 정권의 타도를 주장하였으나 이후 김대중 대통령시절에 진행된 햇볕정책의 영향으로 그의 주장은 정부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는 미국의 보수인사들과 함께 김정일 정권 타도와 북한의 인권상황을 폭로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황장엽이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직후 당 간부들을 상대로 한 비밀연설에서 황장엽을 “개만도 못하다”고 격렬하게 매도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2010년 4월 4일 보도했다.




2004년 2월에는 서울에 있는 지원자의 사무소에 빨간 페인트로 더럽혀진 그의 사진이 협박문과 함께 놓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출처 필요]
2006년 12월 21일에 김모씨가 황장엽과 관련된 자유북한방송의 사무소에 「황장엽은 쓰레기 같은 그 입을 다물라, 배신자는 대가를 치른다」라고 하는 내용의 협박문과 붉은 그림도구가 칠해진 황장엽의 사진, 도끼등이 들어간 소포를 보낸 사건이 일어났다.[3]
2007년 4월에 경찰이 남북 공동선언 실천 연대에 대한 가택 수색에서는 황장엽에 대한 협박 메모가 발견되었다.[출처 필요]
2006년 12월 21일에 황장엽에게 협박문과 소포를 보낸 김모씨는 2008년 9월 27일 경찰에 체포되었다.[4]
2009년 6월 1일 황장엽은 김현희를 12년 만에 만났으며, 함께 투쟁하자고도 말했다.[5]
2009년 6월 23일에는, 황장엽의 일가족 3명이 북한을 탈출하여 제3국에 체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출처 필요]
2010년 3월 31일에 황장엽은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였다.
2010년 4월 4일에 황장엽은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인 납북자들에 관한 논의를 한다.[6]
2010년 4월 20일에 황장엽을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남파된 간첩 2명이 검거됐다.[7]
2010년 10월 10일에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



암살 미수 [편집]
신원을 알 수 없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군 상장은 대청해전에서의 패배로 북한이 뒤숭숭해지자 황장엽을 암살하도록 공작원 김 모씨와 동 모씨 등 2명에게 지시했다. 이 공작원들은 탈북자들 틈에 섞여 대한민국에 유입되었으며 대한민국에 도착하긴했으나 탈북자 심사당시 남파된 목적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현재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위키백과사전

 

 

 

 

 

 

 

 

 

북한을 이끌어가고 힘이라는

 

주체사상을 완성한 장본인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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