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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3. 별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벤쿠버)

쾌락여행마... |2010.10.12 10:23
조회 196 |추천 0

 

그녀가 집을 나서는 길에 등 뒤로 4시의 햇살이 쏟아진다.

햇살은 아주 날카로워서 겨울을 이제 녹여버릴 것 같다.

겨울 내내 오던 비가 그쳤다.

그러나 무지개가 뜨지는 않았다.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이민가방을 질질 끌며 그녀는

여행은 참 사소하고 실낱같다, 고 생각했다.

 

어젯밤에는 친구의 차를 타고 잉글리시베이를 지나 개스타운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거리가 텅 비었다.

오렌지 외등들만 남아서 도로에 둥둥 떠 다닌다.

그녀는 저것들이 달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달은 자전을 하는 물건이니까,

이제 얼마간은 저 모양 저 색; 저 풍경의 달을 볼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슬퍼졌다.

그러나 조금 더 똑똑한 그녀의 친구는

달은 공전도 하니까, 라고 말해준다.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느 날 다시 달을 만날 지도 모른다.

 

그녀의 친구는 이제 너의 두 번째 집이 어딘지 너는 알고 있어, 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그 말을 곰곰히 떠올려 본다.

그러며, 이거야 말로 작별을 앞두고 누구에게 건낼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안도감을 느낀다.

두 번째 집이 생겼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때

어쩌면 이 한마디가 그녀를 용감하게 할 것이다.

 

짐을 선반 위에 올린다.

비행기가 출발한다.

벤쿠버의 빛 들이 창 밖에 점점거린다.

모기 눈알처럼 작아졌다가 사라진다.

그녀는 담요를 목 위까지 잔뜩 올려 덮는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다.

누군가는 옛 친구들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는 하얗게 새 쌀로 지은 밥이 먹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는 TV를 켜면 쉬지 않고 나오는 한국말이 듣고 싶을 것이다.

또, 누구는 한강대교 아래를 예전처럼 뛰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번 챕터의 첫 페이지로 돌아간다.

무엇이 되어있을까, 몹시 궁금했던 때

사실은 새로운 기적이 일어나서 그녀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다주지 않을까, 기대하던 때

여행 끝에는 마법같은 게 있어서 이제 그녀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설레기도 했던 때

그러나 소소하고 가볍고 실낱같은 모험 끝에 있는 것은

무지개나 별처럼 찬란한 것이 아니었다.

비행동체에 불들이 꺼지고 어둠이 깔린다.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가 몰라보게 늙었다고도 할 것이고,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도 할 것이고,

어쩌면 그마저도 잘 모르겠다고 할 것이다.

 

잠이 온다.

눈을 감고 모두 아련해졌다.

 

Vancou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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