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동화 <엄지 공주>,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케 하는 몇가지 소스들을 이 영화에서 발견한 것은 메우 기분 좋은일이다.
심장 수술을 위해 잠시 요양을 온 쇼우에게 있어 우연히 발견한 10cm 소녀 아리에티는 <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하나의 벽화와도 같은 존재였다.
늘 외로웠고 열정마저 거세된 듯 보이는 쇼우는 아리에티를 위해 가쁜 숨을 참으면서까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녀의 집을 보호한다.
첩보영화를 불방케 하는 아리에티의 엄마 구출 작전은 놀랍기까지 하다.
가정부의 시선으로 아리에티의 엄마가 있는 것을 눈치챈 쇼우가 아리에티에게 손가락으로 그녀의 엄마가 있는 것을 제시해주는 한 편 자신은 우유를 끓여달라는 요구로 가정부의 시선을 돌리는 수법은 단연 으뜸이다.
이렇듯 쇼우가 직진으로 달리거나 혹은 직설적으로 말을 하며 아리에티는 다가갔다면 아리에티는 다소 소극적이다. 얼굴만 보여 달라는 쇼우의 애원에도 그림자로 답을 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녀가 그를 대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섣부르다.
종족을 위한 아리에티의 희생이라고 하면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지만 각설탕과 휴지를 빌리기 위해 쇼우의 방에 들어섰다가 쇼우의 얼굴을 보게 된 아리에티의 뺨을 물들이는 홍조를 목격한 관객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쇼우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 또한 엿보이니깐 말이다.
각설탕으로 시작된 아리에티와 쇼우의 관계는 늘 아련하고도 은은하다.
그것은 애초부터 인간에게 들키면 떠나야만 하는 소인들의 운명임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물건이란 이름표를 단 각설탕을 마루에티의 집 앞에 놓고 간 쇼우는 섬세하며 진중하다.
말을 하지 않고도 벗의 마음을 헤아리다라는 말은 여기에서 써먹을 수 있을 정도이다.
아리에티의 가족들이 이사갈 때 고양이의 도움으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던 쇼우에게 아리에티는 그저 늘 자기의 머리카락을 고정시켰던 집게를 선물하고
그저 쇼우의 긴 손가락 하나를 잡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집게를 손에 쥔 채 손을 접을 때 순식간에 새벽을 맞이하는 장면은 가슴까지 아릴 정도이다.
인간들의 물건을 몰래 빌려 쓰며 살아가는 소인들로서 그들에게도 철칙은 있었으니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면 그 집을 당장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철칙은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그들은 묵묵히 수행한다. 소유에게 들킨 아리에티의 가족들로서는 떠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정부가 소인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소품들은 정말 정교하다는 점이다.
'소녀시대'를 거쳐 온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인형의 집'의 등장은 절묘하다.
어디선가 살 소인들을 위해 하나하나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인형의 집' 속에 아리에티의 가족들이 살 것을 상상해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푼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귀여운 아리에티의 엄마가 갑작스레 쇼우가 투막한 손으로 그들의 가족에게 인형의 집 중 가장 아름다운 부엌을 툭 떼어 선물할 때 놀라 기절한 장면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마지막까지 가슴을 후벼파듯이 흘려나오는 '행복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는 대사처럼 알고 보면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를 바 없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