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2010-10-25]
아직도 적잖은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보며 ‘신애리’를 떠올린다. 그 정도로 연기자 김서형(37)이 SBS ‘아내의 유혹’에서 뿜어낸 힘은 강했다. 현재는 SBS 월화드라마 ‘자이언트’에서 조직의 보스 ‘유경옥’으로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 속 위풍당당함은 연기일 뿐이다. 두 드라마에서 연이어 강한 캐릭터를 소화해야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김서형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람들이 제게 원하는 모습이라면 해야죠”라며 여린 속을 애써 감추려 했지만. 붉게 물든 눈시울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숨기지 못했다.
◇“‘아내의 유혹’으로 인생공부 많이 했어요.”
‘자이언트’의 ‘유경옥’은 한국의 개발경제시절 사채업자로 지하 조직의 수장인 ‘백파’(임혁)를 만나면서 인생이 탈바꿈했다. 술집 작부에서 사교클럽 사장으로 성장했고. 밀실정치의 장을 마련하는가 하면 얼마전 ‘백파’가 죽으면서 그 유지를 받아 조직의 보스로 올라섰다. ‘유경옥’에게 ‘백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드라마 속이 아니라 김서형 개인에게도 그런 인연이 있을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아내의 유혹’을 만난 것”이라고 답하며 이야기를 쏟아냈다.
“외적으로는 연기자 김서형을. 내적으로는 인간 김서형을 성숙하게 한 것 같아요. 연기자는 연기를 하지만. 자기를 담을 때도 있잖아요. 저도 여자니까 예쁘게 보이고 싶고. 멜로도 하고 싶지만 그런 역이 잘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아쉬운 마음이 적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몇날며칠을 만나도 주변에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 모르는데. 그냥 얼굴만 보고 캐스팅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저를 알겠어요. 그래서 ‘나도 여자인데’하는 속마음을 접고. ‘나는 배우니까’하며 강한 것도 마다하지 않게 됐어요.”
그러나 ‘신애리’로 사는 동안도 이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연결되는 장면과 상관없이 한사람씩 몰아서 촬영하니까 하루종일 소리질러야하는 때가 많았어요. 너무 힘들었죠. 나한테도 없는 나를 다 빼먹는 심정이랄까. 그런 시간이 7개월이었어요. 정말 제가 생각해도 미쳐있었어요. ‘너 어디까지 있니. 김서형?’하면서 스스로에게 한계를 자문하며 찍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신애리’ 캐릭터가 너무 강하니까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부터 다른 제작진들이 저를 다른 드라마에 바로 쓰기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저는 연기를 했을뿐인데. 이를 어떡하나 했어요.”
게다가 드라마 종영과 함께 부친상이 겹치면서 ‘신애리’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더욱 힘들어졌다. 자신의 밑바닥까지 드러냈으니 다시 채워넣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이제 ‘자이언트’를 하면서 아픔을 다소 털어낸 김서형은 “이겨내는 걸 배운 것 같아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파란만장 ‘유경옥’에 충실하다보면 또다른 길이 열리겠죠.”
아픈 시간을 겪어서일까. ‘유경옥’을 맡는 데에도 부담이 컸다. “이제와서 처음에 캐스팅 제의받고 고사했다고 말씀드리기도 죄송한데. 당시에는 정말 못할 것 같았어요.”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는 것도 그렇고. 극중 ‘황태섭’(이덕화)과의 사이에 낳은 딸 정연(박진희)과의 호흡도 걱정이 됐다. 그는 “팔색조잖아요. 아직 제가 그런 연기를 할 구력이 안되는 것 같았어요. 제가 그렇게 큰 딸을 뒀다고 할 나이도 아니잖아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까 김수미 선생님이‘전원일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도전했다. “어려운 역할이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니까 저에게 주셨겠죠.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내의 유혹’ 때보다는 한결 여유가 생겼다. “항상 저는 스스로에게 혹독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 열심히 해야하고. 앞만 보고 달리기 바빴어요. 그런데 요즘 조금 달라졌어요. ‘자이언트’를 하면서 한결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연기가 이런 거구나’하고 느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요즘은 ‘느끼는거야. 김서형?’하며 연기해요.” 스스로의 연기를 조근조근 씹는 덕에 캐릭터가 더욱 살아나는 모양이었다.
요즘은 조직내 싸움으로 벼랑끝까지 내몰리고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김서형은 “조직이 위기이기는 하지만 떨고 있는 속마음을 너무 비치는건 아닐까 고민돼요. 소리를 지를 때는 ‘신애리’처럼 보일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조금씩 연기변신하고 있는 김서형의 다음 행보도 궁금하다. 그는 “‘유경옥’에 충실히 해서 잘 살고 나면 그다음 김서형의 길이 있겠지 생각해요. 또 어려운 역이 주어지면 나는 왜 또 어려운 선택을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일이에요.”
〔스포츠서울 조성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