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참 고집스럽게 한 길만 선택한 사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을 유지하면서 시대의 트렌드에 색을 담아낼 줄 아는 사람. 20년이라는 세월을 한결같이 음악만 고집해온 사람. 그래서 더 대중들에게 신뢰 받고 사랑 받는 사람.
그의 음악은 1990.11.01 처음 시작 되었다. 직선적인 멜로디와 직선적인 가사. 전체적인 앨범 분위기 또한 뚜렷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 이후 여러장의 앨범을 발매 했고 5집까지는 그의 전형적인 트렌드인 발라드를 메인에 소개 했다.
그러던 중 6집부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며 서서히 터닝 포인트를 준비한다. 기본의 타이틀은 발라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앨범을 들어본 평론가들의 평론은 극과 극을 달렸다. 다양한 장르의 시도를 극찬하던 평론이 있던 반면 시도했던 다양한 장르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시니컬한 평론도 쏟아졌다. 어찌되었건 어느 곳에도 억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음악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때까지만하더라도 음반 시장은 황금기였고 밀리언 셀러라는 단어는 당연하게 여겨졌었다. 그도 그에 순응하듯 이전 앨범처럼 가볍게 밀리언 셀러를 차지 했다.
그러던 그에게도 좋은 상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탈세 혐의다.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그의 음악 인생이 송두리채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신승훈은 알고 있었다. 대중들은 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했던 처신을 비판한다는 것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는 활동을 중단하고 오랜 공백기를 가진다. 자숙이라는 공백기. 그리고 음악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말이다.
탈세라는 무거운 굴레 속에서도 새로운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와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제기해 보이겠다는 의지는 여전했다. 끝없는 고독을 견디면서 꾸준히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고 발라드를 타이틀로 하고 그외의 곡들에 변화를 준 7집을 선보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시대의 흐름은 발라드 침체라는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발라드를 타이틀로 앨범을 발매하던 가수들의 잇단 부진과 실패로 인해 그도 더이상 기존의 트렌드를 유지하며 발라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살기 위한 선택. 앞으로도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절실했다. 해야만 했고 할 수 밖에 없던 선택.그렇게 만들어진 돌파구가 제3세계 음악이었다. 당시 그의 선택은 음반 관계자들이 뜯어 말릴만큼 무리수였다. 평론가들조차 신승훈의 선택에 의아함을 표시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신선하다와 '신승훈도 이런 음악을 할 수 있었구나' 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기대치는 앨범의 수요에도 긍적적으로 적용했다.
그의 첫번째 터닝 포인트였다. 방송 매체에서 그의 인터뷰는 새로운 시도를 위한 갈망이었다지만 실질적으로는 발라드 침체와 부진 속에서 지속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한 일종의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가 시대에 흐름에 따라 똑같이 발라드 위주의 앨범을 발매했다면 우리는 두 번 다시 신승훈이라는 음악을 만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때론 무모함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비상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신승훈을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무모함만으로 위기를 극복한 건 아니다. 끝없이 노력했고 끝없이 새로운 음악을 듣고 연구하고 고민했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음악에 대한 슬럼프를 겪게 된다. 10년동안 정말 각종 타이틀로 그의 이름은 충분히 브랜드화 되었다. 하지만 정작 신승훈 자신은 음악에 대한 색을 정의하기엔 한참 부족하다고 느꼈다. 남들이 말하는 색이 아닌 자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색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가장 신승훈스러운 앨범이었다. 거기에 신승훈이 가장 신승훈스러운 앨범을 내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시대적 흐름에 있기도 했다. 보여주기식의 비주얼을 중시하는 비디오형 가수들이 속속 등장함에 따라 앨범을 내고 싶었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잘 부르고 싶었던 데뷔 시절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새로운 것과 비쥬얼만 우선시하는 가요계. 자신만의 색을 잃어버린 가요계. 그저 유행처럼 흘러가버리는 가요들. 이 현실 앞에서 그의 선택은 기존의 유행을 따라가기 보다 가장 신승훈스러운 앨범을 선보이는 것으로 답한 것이다. 가수들이 자신의 색을 찾기를 바라며 또한 자신 또한 가장 신승훈스러운 색을 찾으면서도 그 속에 안주하지 않는 가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앨범에도 나름의 투쟁은 있다. 1집부터 7집까지와는 달리 유독 기계음이 많이 섞인 곡들이 실려 있다다. 시대를 반영하는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더이상 아날로그형 음악을 할 수 없는 현실 비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혹자는 생각한다.
그 즈음 자신의 음악밖에 모르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ost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엽기적인 그녀 ost.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ost도 흥행이 되어 얘기치 못한 해외 진출로 신승훈이라는 이름을 국외에 있는 대중들에게좀더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 그는 정식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하게 된다.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주둔한 발라드 분야에서 해외 진출이 전무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룹 단위나 밴드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한국 고유의 색이 아닌 유행에 따라 해외팝을 부르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색보다는 해외팝을 선보이는 우리 나라 트렌드에 아쉬움을 느끼고 한국적인 색을 국외로 알리기 위해 우리 나라 고유의 정서인 '애이불비'에서 한국적인 색을 찾기로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사상에도 벗어나지 않고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인 슬프지만 울지 않는다는 '애이불비'로 말이다.
원래 9집의 색은 한국적인 음악이 아닌 아일랜드풍의 아이리쉬 음악에 중점을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음악보다 한국 가수로서 한국적인 음악을 국외로 알리기로 마음을 굳혔기에 보다 한국적인 음악을 가지고 본격적인 일본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 방송 프로그램 활동보다 콘서트에 주력하여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 나간다. 이제껏 K-pop은 그룹이나 밴드만을 보아오던 일본 관계자들도 신승훈의 행보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신승훈의 풀어 놓았던 한국의 다채로운 색감. 그리고 그의 음악 스타일은 그 무엇하나 놓칠 것 없이 한국 대중 음악의 행보를 긍적적으로 보게 하는 역할을 했다.
자신의 음악적 고집은 지켜가되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트렌드를 항상 예의 주시했다. 현재의 것을 그대로 따라가기 보다 현재의 트렌드보다 조금 더 앞선 음악을 선보임으로서 대중들 또한 음악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음악에 스며들도록 노력했다.
10집 발매 즈음 디지털 싱글 앨범이 붐을 이루게 된다. 음반 시장이 좋지 않은 여파도 있었지만 원하는 음원을 선택하여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고 mp3나 pmp에 듣는 문화도 한 몫 했다. 그에 맞춰 신승훈 또한 DD를 발매 한다. 이름하여 디지털 디스크. 물론 기존 가수들이 디지털 디스크를 발매하는 일은 있었지만 음질에 문제가 있어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신승훈은 역시 신승훈이라는 브랜드답게 음질을 개선하여 대중들에게 선보임으로서 CD와 함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이 나아갈 방향과 하고 싶은 음악 해야만 하는 음악에 대한 욕구. 그리고 현실적인 고민들이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 더이상 음반 시장은 황금기가 아니었고 밀리언 셀러는 과거의 영광이었다.
더이상 앨범 발매만으로는 수익 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가수들 또한 노래 보다 다른 분야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신승훈도 촘촘하게 앨범을 내는 대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진다. 쉬어가는 앨범. 즉 3장짜리 미니 앨범은 이렇게 탄생 하었다. 그의 두번째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준 앨범. 꼬이지 않은 음악적 뒤틀림. 해보고 싶었으나 자신의 이미지상 시도하지 못했던 노래들을 조금씩 그리고 잔잔하게 풀어 놓았다. 물론 오랜 공백기를 두어 11집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자신이 이제껏 촘촘한 행보를 가고 있었다는 것을 잘고 알있다. 그렇기에 자신과 대중들이 함께 쉬어 가면서 잔잔하게 들을 수있는 곡들로 담아 내며 쉬어가되 멈추지 않는 그의 행보를 말해 주었다.
첫번째 미니 앨범. 라디오 웨이브. 쉬어가는 쉼표처럼 그의 음악을 가볍지만 그 속에 담긴 내면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두번째 미니 앨범인 러브어 클락 앨범을 발매했으며 그 이후 20주년 앨범을 준비 하고 있다. 20년이 세월을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1이라는 방향을 생각하기에 그만큼 중요하고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발매될지 모르겠지만 11집이 그에게는 중요한 세번째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음악...그리고 대중들이 원하는 음악 사이에서 고민하는 가수. 그렇기에 그가 하는 음악은 듣지 않아도 신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ing형 가수 신승훈. 그의 음악은 계속 될 것이다. 그의 음악을 믿기에.... 그를 믿기에.... 오늘도 우리는 그의 음악을 설레이게 기다려 본다.
from had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