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모임에서 지인 한 분이 추천해 주셨다. 광화문에서 박노해 사진전이 있으니 꼭 한 번 가보라고.
시험끝나고 다녀와도 될 것 같아서 체크해 두고 있었다가 마지막날에 다녀왔다.
박노해 씨는 시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진전을 연다고 해서 의아하기도 했고, 솔직히 어떤 사진이길래 사진전까지 여는 걸까.
내심 호기심도 일었고, 궁금해서 수업 끝나고 다녀온 사진전.
시인과 사진. 사진은 사진작가나 대단한 사람만이 해야 한다는 것이라거나 무슨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사진이라는 그 커다란 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디카의 대중화와 DSLR 장비들이 보급화되어가면서 일반 사람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보내는 순간순간이 카메라를 통해 기록이 되고, 대중들은 SNS를 통해 정보들을 다양하게 공유한다.
언젠가 이병률 시인의 책 '끌림'을 읽으면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시인과 사진, 그리고 몇 년간을 이국의 땅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포착하고 경험하고 그 느낌들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낸다는 것.
시인들의 감수성과 사진이 결합되었을때, 사진 또한 하나의 예술인지라
시인의 시선과 합쳐지면 어떤 느낌이 날까 하는 생각을 갖고 이병률 시인의 책을 집어들었던 적이 있다.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의 시인, 그리고 그의 사진이었다.
다들 알듯이 박노해 시인은 민주화의 투쟁의 현장에 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혁명가라고 이야기한다.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평범하면서도 순간의 스쳐가는 감정을 담은 책이 이병률 시인의 책이라면
이번에 12년만에 나온 박노해 시인의 시집은 그의 고뇌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시인이면서 노동자이기도 하고 혁명가로 살아온 그의 삶, 그리고 10여년동안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이번 신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라는 시집이다.
10여년간을 세계 각지에서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리고 사진기를 빼앗길 위기를 숱하게 겪으면서
세상밖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가 담아온 사진들이 이렇게 전시되었다.
한 120여점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 중에서 코너별로 인상깊었던 사진들을 담아 보았다.
Part 1. 아프리카
이 작품은 '노을녙에 종려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작품이다.
아프리카 수단의 누비아 사막의 석양이 물드는 장면인데 수단 사람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나서 종려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뜨거운 사막에서 모래바람이 치면 심은 나무는 말라 죽고, 다시 심으면 또 말라 죽어도
그들은 그런 것을 알면서도 날마다 모래둑을 북돋고 나일 강물을 길어서 종려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일같아 보이지만 그들은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 희망을 갖고 또 다른 내일을 향해 나무를 심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스피노자처럼
수단 사람들도 어쩌면 스피노자의 마음처럼 지금 당장 종려나무가 자라서 그늘을 선사해 줄 수는 없지만
이 황폐한 사막 위에서 생존을 위해 갖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결국은 이겨내서 큰 종려나무가 될 것을 바라면서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은 매일 종려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서 한참을 이 그림앞에 서서 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늘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결과에만 관심을 두는 우리의 삶에서
느리고 미련하고 바보같아 보이는 저 수단인의 행위는 가장 기본적인 것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에티오피아의 아침을 여는 '분나 세레모니'
에티오피아는 아침마다 분나 세레모니로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의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첫 번째 잔은 우애의 잔, 두 번째 잔은 평화의 잔, 세 번째 잔은 축복의 잔이라고 한다.
가족들은 일터로 떠나기 전에 이렇게 세 잔의 분나를 마시고 포옹을 나눈다.
이 그림을 보면서 그들의 세레모니가 그려졌다.
엄마가 흔들어 깨우자 눈 비비며 일어났지만 여전히 졸린 아이들과
그 와중에서도 엄마의 분나 세레모니가 신기한 듯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다.
과거와 달리 핵가족화된 우리나라에서 이른 아침 가족들이 다같이 모여서 커피 한 잔 하기도 어렵다.
굳이 커피가 아니더라도 차 한 잔 나누고 서로의 하루를 격려하고 집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려나.
다르푸르 난민들의 저녁 준비
수단의 다르푸르 난민들을 아는가?
솔직히 나도 이전까지는 다루푸르 난민들에서 잘 알지 못했으나 이번 기회를 계기로 다르푸르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국제법을 배우면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분쟁들이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흘러간다는 것에 분노하기도 했는데.
수단에서는 2003년부터 30만명이 학살되고 지금도 270만 명이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고 한다.
수단 남부 다르푸르 토착민들과 중앙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북부 아랍인들...
차별과 수자원 강탈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으나 여전히 독립의 길은 요원하기만 한데
내년에 남부의 분리독립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라는데 과연 그들의 갈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떠돌이 삶에서 저녁을 맞아 저녁 식사를 하는 그들의 모습이 유독 애처로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행복하고 아름답고 따뜻해야 할 저녁식사가 그렇지 않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적 문제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Part 2. 중동
최근에 중동이 뜨고 있다. 다양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고 테러리스트 지원 세력에 대한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긴 하지만
자원도 풍부하고 많은 개발과 투자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각국에서 앞다투어 중동에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동이 더 매력적인 이유는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 문명과 다양한 삶의 흔적들이 담겨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시리아 사막 길에서 저녁 기도를 바치는 이라크인들
이들은 차를 이용해 국경을 넘어 생필품을 구하러 가는 이라크인들이다.
붉은 석양이 물들어가는 시리아 사막 길에서 이라크인들은
하루 다섯 번의 기도인 '살라' 중 해질녘에 드리는 네 번째 기도인 마그립을 바치는 모습이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올 때까지 그들은 기도에 열중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힘을 내기 위해서 그들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바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신에 대해 기도하는 모습.
자신을 지켜준다는 든든한 믿음과 그 간절함을 전하는 기도 덕분에 그들의 삶은 힘들어도 행복할 것이다.
힘들어도 신나게 웃고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들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
한밤중, 번득이는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서 흐린 불빛 속에서의 쿠르드 아이들의 전통공연의 모습이다.
쿠르드 지역에서는 모국어 사용이 금지되어 있기에 엄연하게 불법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박노해 시인을 앞에 두고 그들만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속에 쿠르드 인들의 당하고 있는 이 힘겨운 현실들을 알려달라는 듯이 말이다.
언젠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페쉬메르가의 연인'이라는 책이 있다.
문득 그 때의 감정들이 떠올라 내 빛바랜 독서노트를 펼쳐 그 때 써봤던 한 구절을 이렇게 적어본다.
쿠르드인으로 태어나 전쟁과 억압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온갖 고통과 힘든 나날들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고,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겨가며 마침내 완전한 자유를 얻어내는 한 여인의 기구하고도 눈물겨운 삶의 드라마.
이 책에서 여주인공은 이렇게 반문한다.
"가끔 저는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세계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쿠르드인에게 어떤 일이 자행되는지 그들은 아는가?
바그다드 정권이 선량한 쿠르드인을 무고하게 수십년동안 잡아 죽이고 있는 일을 아는가?
관심이라도 있는가?
바그다드의 핍박이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는 것을 하는가?
......
세계인들이 알고 있다면, 그들이 관심을 갖고 우리를 도울건가."
Part 3. 아시아
인도의 할머니와 소녀
이 할머니는 난생 처음으로 수도 뉴델리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
수확을 마치고 마을 사람들과 버스를 세내서 고향에서 열흘만에 뉴델리에 도착했다는 할머니.
그녀는 인도에서 가난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카스트 위에 또 하나의 카스트를 이고 사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손녀에게만은 그녀가 물려 받았던 굴레들을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 할머니.
이 사진 한 장으로도 저 할머니의 눈빛에서 뭔가 강렬한 의지가 엿보인다.
한 때 인도에 많은 관심을 두었던 나로서는 인도에 대한 나의 환상이 그 겉모습에만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같은 인도의 주변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영화들과
신도 버린 사람들 같은 인도인들의 뼛속 깊이 뿌리 내린 카스트제도를 알게 되면서
인도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지금도 인도를 동경한다.
그들의 삶에 대한 뭔지 모를듯한 인도만의 매력을 난 느낀다.
Part 4. 중남미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안데스 고원에서 감자 농사를 하느라 힘겨운 이들이지만 두레 노동을 하면서 그 힘겨움을 조금 덜어보고자 애쓴다.
우리나라의 옛날 집집마다 일손을 도와주던 그 두레의 풍속처럼 이 먼 곳, 시대를 뛰어넘어 그 두레의 풍속이 자리잡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밀레의 만종과 흡사한 느낌을 받아서 잠시 이 곳에 멈춰섰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낼 수 있을까.
일하다가 잠시 멈춰서서 옥수수 막걸리 치차를 돌려 마시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들의 삶,
저 멀리 안데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차를 마셨을 두 사람의 모습이 상상된다.
힘들지만 서로에게 먼저 권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땀방울을 식히며 먼 풍경을 바라보았을 그들의 모습,
저 멀리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기 와서 쉬면서 치차 한 잔 하라고 권하는 모습,
잠시 쉬면서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댈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이
이 한 장의 사진으로 그 때의 분위기를 짐작해 본다.
노동가를 지어 부르며 노동의 힘듦을 이겨내고자 했던 수백전 년 우리 선조들처럼
이들도 휘파람을 불며, 콧노래를 불며 노동 자체를 즐기고 있었을 것만 같다.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내 삶에 감사합니다"
게바라에게 최후의 식사를 드린 여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완수하고 모든 영예를 버리고
중남미 민중의 해방을 위해 볼리비아로 떠나지만 CIA에 체포되어 죽음을 맞는다.
당시 이 마을의 하녀였던 이르마(60세)는 게바라가 죽기 전에 땅콩죽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피기침을 쏟으면서도 고맙다고 마지막 한 마디를 전했다는 일화.
혁명가의 최후는 쓸쓸했지만 그가 먹은 땅콩죽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함이 담겨진 최후의 만찬이 아니었을까.
전시회 마지막 날이기에 박노해 시인님께서도 직접 사진전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 주셨다.
박노해 시인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여타 사인회와는 달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여러가지 이야기도 해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때문에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시인 자신도, 그리고 전시회를 찾은 이들에게도 더한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사진전의 소감을 묻는 박노해 시인의 물음에 난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시인이 사진전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호기심이 있었다고. 그리고 사진작가가 아닌 시인의 시선은 어떤지 궁금했다고.
솔직히 어떤 내용의 사진들이 전시되는 지 모르고 그냥 시인님의 사진전이라서 왔다고.
근데 난 그 곳에서 삶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고, 네 파트를 다 돌고 나니 하나의 역사책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이다.
그의 사진들을 보면 화려하고 멋진, 기교있고 빼어난 그러한 사진들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 한 장 한 장에 그가 굳이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흑백필름카메라로 담고자 했던 그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이 기록하는 시대의 역사성을 그의 사진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셔터만 눌러대면 쉽게 주변을 담을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 순간을 단 한 번의 셔터만 용인되는 필름카메라로 찍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온몸으로 기억할 수 있었고 진정한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랬기에 그의 사진들이 각 나라들의 가장 낮은 이들의 눈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담고 있는 것이 것이구나 싶었다.
박노해 시인이 아름다운 이유는 끊임없이 세상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그것을 단지 시인으로서 던지는 한 마디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그러한 삶을 실천하고자 애쓴다는 것이다.
대도록이나 소도록만 팔고 있었을 뿐 따로 엽서는 제작하지 않았다는 안내데스크의 설명에 나름의 소심한 항의도 해 보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을.
난 전시회나 미술관을 갈 때면 늘 전시를 다 보고 나올 때 엽서를 한 장씩 구입하곤 한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가끔 다른 것들을 사기도 하지만 쓸데없이 비쌀뿐만 아니라
그 때의 감정에 혹해서 몇백페이지나 되는 그 거대한 도록을 산다고 해도 다시 볼 일도 없거니와
소도록조차도 그냥 책장 속 전시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다시 그 책을 펼쳐보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볼게 얼마나 많은데 다시 똑같은 걸 되풀이해서 읽을 시간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난 그 날의 전시회의 느낌, 그 순간의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엽서는 가장 인상깊은 거 한 장,
가끔은 두 세장까지도 구입하는 나만의 버릇이 있는데 어쩌면 매 전시가 끝날때마다 사와서 집에 그렇게 모아둔 엽서들만해도 꽤나 많을 거다.
부치지 않는, 부칠 필요가 없는 나에게 쓰는 하나뿐인 엽서이니까 더 소중하고
그리고 가끔 그 전시가 기억에 나고, 생각이 날 때면 그림엽서를 보고 그 뒤에 빼곡히 적어간 나의 느낌들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엽서가 없는대신 안내 팜플렛을 활용하기로 했다. 뒷면에는 포스트잇을 활용해서 말이다 :)
내가 이 날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그림. '노을녙에 종려나무를 심는 사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탓에 유난히도 쌀쌀했던 광화문의 밤거리.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교보빌딩 현판의 구절 하나 & 의미있는 사진전.
그의 시를 한번 더 되뇌어본다.
나 거기에 그들처럼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인도에서는 인도인처럼
에티오피아에서는 에티오피아인처럼
이라크에서는 이라크인처럼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가난의 땅에서는 굶주린 아이처럼
분쟁의 땅에서는 죽어가는 소녀처럼
재난의 땅에서는 떠다니는 난민처럼
억압의 땅에서는 총을 든 청년처럼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나 거기에 그들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