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블로그 주인장 '은퇴명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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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경로가 있겟지만 여기까지 놀러와주신 모든 분들께 일단 감사의 인사올립니다!
'쌩유~^^'
내 얘길 한번 들어볼래?(시작)
2002년 겨울, 부산 광안대교 아래 꿈을 찾기 위해 술잔을 기울이던 어리버리 경영학도 '제'가 있었습니다.
아마 중학시절 IMF의 여파로 가세가 기울어져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 후 장래희망을 써내는 칸에 언제나 '부자'라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에 올라와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고 목표를 잡던 시기, 네이버 검색창에 '연봉 높은 회사'라고 치니 여러 네티즌들이 '증권맨이 되거라'고 추천해줬어요. 전 추호의 의심도 없이 증권맨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심하고 다시 네티즌들께 세부사항을 물어봤습니다.
질문: '연봉높은 증권맨은 어떻게 되는거죠?'
답: '4년제 대학 경제학과 나와서 증권회사에 취업하고 펀드매니져가 되세요. 그럼 연봉걱정따위 안합니다.'
명쾌한 답변에 감명받은 저는 경제학과가 아닌 경영학과를 선택했던 제 자신에게 약간 실망을 했지만, 뭐 비슷하니까 하고 So cool하게 인정; 증권회사를 가기위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이당시 제 펀드매니져의 롤모델은 거 유명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 나오는 '이성재'씨 였습니다. 수익률을 앞에 비정한 '차가운 도시남자' 거기에다 "넌 타이밍을 몰라~"라고 한방 쏴주는 멋진 펀드매니져가 되고 싶었죠. (물론, 그뒤에 나오는 살인 및 반인륜적 패륜행위는 제외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연봉을 꿈꾸기 위해 방대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한다는 사실을 뼛속에 새겼지요. 그리고 술 한잔 약속에 금방 무너지는 약한 심지와 도서관 문열리는 소리만 나도 바짝 고개를 들어버리는 미어캣과 같은 집중력을 가진 당시의 저로서는, 그 어려운 공부를 감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순식간에 좌절모드에 빠진 저는 그렇게 휘리릭 대학에 졸업하게 되고 낙동강 오리알처럼 사회에 방치됩니다.
그리고 취업전쟁 돌입, 몇번의 좌절 후에 내가 취업에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해외 유학파'들이 모두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이다.]라고 다시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저또한 스스로 해외 유학파가 되기 위해 2009년 초,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떠납니다.
(많은 분들이 당시 상황에서 왜 유학파가 되기위해 미국 아이비리그나 영국 옥스포드 등이 아닌 캥거루의 나라'호주'에 학생비자도 아닌 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고 떠냤냐고 따지시고 있지만, 제 기준으로 '호주'는 금발과 영어가 난무하는 엄연한 외국이기에 선택했고, 워킹비자가 학생비자보다 체류기간이 더 길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비자는 소속이 없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하죠.)
훗. 한 80%정도는 약간의 도피성 출국이었음을 인정합니다.
부모, 형제, 여자친구 기타 등등의 규제가 없는 상황의 호주생활은 문란했다고 상상하지만, 저는 세계 3대미항 '시드니'에서 철저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꿈도 없고, 펍에서 배운 영어는 밤에 취중 상태로만 사용이 가능했기에, 상당히 찌질한 상태였지만, 이대로 살다가는 정말 잉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운동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살았던 아파트에는 헬스장이 붙어있었거든요~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공사장 막일을 시작하기위해 체력은 필수잖아요.
아침 9시와 저녁 9시, 하루에 2번 정말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저녁타임에는 주로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네요.
헬스장을 아침에 가면 한산할줄 알았는데, 간 첫날부터 어떤 외국인 친구가 앉아서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까딱 목례를 하고, 저도 운동을 했죠. 한 보름정도 꾸준히 항상 아침 9시는 매일 이 친구와 운동을 했습니다. 고개만 까딱 목례하는 이 미묘한 거리는 둘다 과묵했기에 전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남자끼리 운동을 하면 이상한 기류가 흐릅니다. 서로 말은 안해도 굉장히 의식하죠. 특히 사설 헬스장에서 웃통벗고 둘이서 운동하게 되면 서로 운동하는 모습을 엄청 훔쳐봅니다. 뭔가 부끄부끄한 분위기 같지만, 사실 '동물의 왕국'에 가까운 이야기지요. 내가 턱걸이를 10개 하고 내려오면 나중에 이 친구는 12개 하고, 내가 윗몸일으키기를 50개하면 이 친구는 60개하고 뭔가 지는게 싫었던 저는 그럼 좀 더 오버해서 하고, 하지만 둘이서 서로 말은 없고...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한번에 불식시키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날따라 벤치를 많이 든다싶던 이 친구가 결국 벤치머신에 깔려버린거죠. 안전장치와 안전장치의 미묘한 공간에 벤치가 걸려 정말 이 친구 죽을뻔했습니다. 옆에서 운동하던 제가 당연히 후딱 달려가 구해주고 생명의 은인인 저에게 악수를 청하며 통성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바로 아파트 옆 펍에서 한잔한 뒤 다음날부터 베스트프랜드가 되었죠.
이 친구의 이름은 "JEAN"
청바지?라고 반문했었지만, 프랑스계라 이름이 저따위였고 호주 st.george bank에서 FM(Financial Manager)를 하고있었습니다.
제 인생에 처음 생긴 고학력자, 우수한 금융회사의 차가운 도시남자, 그것도 은행권 친구!
바로 다짐했습니다.
"남은 호주생활, 이 녀석에게 빌붙어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