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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반품,,,^^

빛나는쇠 |2007.11.01 00:17
조회 231 |추천 0

선물에 하자가 많군요,,,

이런 건 주고도 욕 먹습니다^^

 

 

참 나 ,,,

두 책의 견해가 같다고요? ㅋㅋ

잘 보세요

신의지문은 초 고대문명 즉 스핑크스의 연대 1만전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핑크스의 연대가 이러니 그것을 만든 문명은 더 오래됐겠죠?

 

그리고 수메르는 홍수 이후의 문명으로 기껏해야 6000년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님이 올린 글 내용

 

---------그러나, 책의 뒷부분은 어쩌면 SF적인 높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픽션으로 이어졌던것 같다-------------

 

즉,,, 그들의 문명은 12번째 행성 책에도 있듯이 우주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전에 내가 물어봤죠 3번째 행성에 대해,,,뭐 당연히 기억 못하겟지만 ㅎㅎ

어쨌거나 자신들이 쓴 신화대로라면 그들의 문명 수메르지역은 인류 최초의 시발점인 동시에

사람의 탄생은 외계인들의 유전자 조작에 의한것이라 적고 있습니다 ㅎㅎ

 


자,,,

우리나라 한단고기에 의하면 우리나라 시초에 한국(桓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하였고

이 한국은 기원전 7197년에 한인(桓因)이 시베리아에서 건국하였다고 하였죠,,,

즉 9000년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나오기도 전에 이집트에선 스핑크스가 세워졌습니다,,,

이상하죠?

 

그리고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는 6000천년된 수메르 문명은 뭔가요?

 

좀 문제가 있죠?^^

 

님은 어느 문명에 서 있습니까?^^

당연히 우리나라 겠죠?

 

그렇담 수메르 창세신화는 뭘까요?

님의 주장대로라면 ---수밀이국--- 아시죠?

우리의 민족이 기껏 수메르에 가서 우리나라 고유의 창세신화를 저버리고 새로운 창세신화를 만들어 냈다는 거죠?

 

즉,,,--------- 수메르 신화는 날조되었다,,,^^-------------

 

맞나요? 맞다면 한마디로 시친은 헛고생 한거죠,,,

 


만약 수메르신화가 맞다면 우리나라 신화는?


설마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라고는 안하겠죠?^^


님의 생각이 궁금하군요 ㅎㅎ

 

 

솔직히 스핑크스도 고대 문명이지 초고대 문명은 아닙니다,,,


그리고 현갑님 24살이라고 하던데,,, 넘 예의가 없군요^^


님과는 이제 글 섞을 생각이 없어요 ㅎㅎㅎ


혼자 잘 노시길,,,,

 

 

 

 

 

그리고 스핑크스의 이야기를 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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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가 언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은 요즘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는거 같다. 왜냐하면 이집트학적 방향말고 과학적 연대를 따져서 살펴본 결과 너무나도 의아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이집트학자 존 엔소니 웨스트는 다음과 같이 그래이엄 핸콕씨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스핑크스는 지금까지 기원전 2500년경에 카프레 왕이 건립했다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기원전3000년경에 왕조가 시작되고부터 기자에는 별로 비가 내리지 않았죠. 그러나 스핑크스 몸에는 다량의 비에 의한 침식의 흔적이 남아있지요. 그 정도의 침식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강우량을 필요로 하는데 이집트에 그와 같은 기후가 있었던 것은 기원전 1만년전입니다. 따라서 스핑크스의 기원은 기원전 1만년전에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어요. 또한 그 장엄하고 세련된 예술작품들을 보면 고도의문명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건립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스핑크스는 한동안 모래에 많이 묻혀있었다. 스핑크스의 발 사이에 있는 화강암판에는 투트모세 4세가 통치했을 때 스핑크스는 머리까지 모래속에 묻혀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투트모세 4세는 모래를 모두 제거하고 그 일을 마친 기념으로 비석을 세웠다. 이말은 앞에서도 언급됐다. 여기서 투트모세 4세의 비석을 연구한 이집트 학자 가스통 마스페로는 자기책인 '과거의 제국'에 - 스핑크스 비석 가운데 13번째 공란에 카프레 왕의 카르투슈가 나온다. 이것은 카프레 왕의 시대에도 스핑크스모래가 제거(그리고 복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스핑크스는 쿠푸왕 시대와그 전임왕 시대에 이미 모래에 묻혀있었던 것이다 - 라고 썼다. 그리고 1818년 카비글리아 대령이, 1886년에는 가스통 마스페로가 유적을 파내기 위해서다시 모래를 제거했다. 또 39년후인 1929년까지 모래가 다시 불어닥쳐 스피크스는 목까지 잠겼다고한다. 1929년에 이집트 고고학청이 모래를 제거 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시켰다. 왜? 왜 당연히 모래가 이렇게 쌓일줄 알면서 스핑크스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만약 스핑크스를 만든이들도 모래바람에 쌓여가는 모래를 일부러 치워가며 만들었을까? 의문스러운점이다. 현대의 건축가들도 이런곳에 건물을 쉽게 짓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연대를 1만년전으로 돌아가면 이 지역의 기후는 영틀려진다. 지금보다 습기가 많고 비교적 풍요로운 땅이었다고 한다. 이곳이 풀과 나무가 있었던 기후였다면 그렇게 성가시게 모래를 치우는일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만약 1만년전이었다면 피라미드가 모래에 덮히고 그런일은 없었을 것이다.

 

스핑크스의 방위

고대 이집트인들은 스핑크스를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으로 믿었고, "모든 종교를 초월하는 불가사의한 힘의 총체"로서 숭배했다. 이런 말은 스핑크스가 정동을 향하고 정동에서 뜨는해를 볼수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생각엔 하루가 시작되는 모든 것은 해가떠야 가능했고 모든 생물을 통틀어서 태양에너지 즉 태양의 힘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기에 그럴 것이다. 스핑크스는 춘분과 추분을 알려주는 일종의 기계적 장치같은 것으로 생각하는게 요즘 학자들의 생각이다. 근데 왜? 꼭 동쪽을 바라보고 있을까? 여기서 현재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피라미드와 같이 하늘로 눈을 돌려 황도의 별자리를 살펴보자. 황도의 별자리는 총 12개이다. 이것은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주기적으로 해의 일출의 뒷배경을 장식한다. 그러니까 춘분날에 물병자리라던지, 처녀자리라던지 꼭 황도12궁의 별자리를 배경으로 해가 뜨게 된다는 것이다. 세월이 변해감에 따라 별자리도 같이 변한다. 이까지 이야기를 하고 무엇인가를 느끼는사람들도 분명 있을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추측한 대로 황도12궁엔 사자자리가 있다. 뭔가 미심쩍지 않는지. . . 아마도 이러한 스핑크스 배치 또한 황도 12궁의 사자자리별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하지 않은지. . . 그럼 사자자리가 춘점으로 한 시대는 언제였는가? 그것은 기원전 1만970년에서 기원전8810년까지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스핑크스주변에 난 강우에 침식의 연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가된다. 기원전 1만년전이라는 시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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