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양준혁이 21일 밤 MBC TV ‘황금어장’ 중 ‘무릎팍 도사’ 코너에 출연해 ‘만년 2인자’의 설움을 털어놨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2,000안타를 넘긴 선수가 ‘2인자’라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적어도 시즌 단위로 끊어볼 때는 그가 1인자 자리에 올라보지 못한 게 맞다. 시즌 MVP를 수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경력을 쌓으면서도 정작 시즌 MVP는 한 번도 수상해 보지 못한 선수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에도 많다. 현역 선수 가운데 MVP를 수상해 보지 못한 최고의 선수들을 3명씩 꼽아보자. 사이영상이 있는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자로 범위를 한정했다.
▲한국
1.양준혁 (삼성)
통산 최다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는 양준혁은 한국의 피트 로즈라고 할 만하지만, 로즈보다 훨씬 질적으로 우수하다. 로즈는 매우 오랫동안 꾸준한 성적을 올려 최다 안타 기록을 쌓았지만 통산 타율(.303)은 비교적 낮았다.
그리고 시즌 최다 홈런이 16개일 정도로 장타력이 빈약했다. 81타점이 개인 최다 기록이었다. 반면 양준혁은 통산 타율이 3할2푼이고 30홈런 이상을 3번, 20홈런 이상은 6번 기록했다. 90타점을 넘긴 적이 7차례나 된다.
양준혁은 자기 얘기대로 홈런왕을 차지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MVP에도 오르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타이틀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현역 최고의 ‘non-MVP’일 뿐 아니라, 조계현 이강철(전 해태), 김용수(전 LG), 김시진(전 삼성) 윤학길(전 롯데) 등을 넘어 ‘역사상 가장 훌륭한 MVP 못 받은 선수’로 남을 것이다.
2.송진우 (한화)
송진우는 한국 프로야구 유일의 200승 투수다. 양준혁만큼 선수 생활 내내 으뜸의 위치에 있지는 못했지만, 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거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만 39세인 2005년에까지 10승 이상(11승)을 올릴 만큼 극히 꾸준했다.
송진우가 양준혁보다 더 피트 로즈와 비슷한 모습의 커리어를 쌓았는지도 모른다. 송진우는 승리뿐 아니라 패전, 탈삼진, 투구이닝, 피홈런, 피안타, 실점 등의 부문에서도 골고루 통산 최다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상 경력은 양준혁에 비해 단촐하다. 92년에 다승과 구원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한 것과 2002년에 승률 타이틀을 얻은 것이 개인 타이틀의 전부였다.
3.심정수 (삼성)
2000년대 초반의 심정수는 앨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와 같았다. 이 둘은 MVP를 따내기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으나 각각 이승엽과 배리 본즈 때문에 아예 수상의 길이 봉쇄되었다. 이제 둘에게 길이 열렸다.
푸홀스는 2005년에 MVP가 되었지만, 심정수는 이후도 감감 무소식이다. 푸홀스는 여전히 잘하지만, 심정수는 예전의 심정수가 아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심정수는 최근 몇 해 부진하긴 했지만 상당히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두고 있다. 심정수는 올해까지 325홈런을 날려 이승엽의 기록(324개)을 넘어섰다. 장종훈(340개)-양준혁(331개)의 뒤를 잇고 있다. 양준혁보다 빨리 장종훈의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으며, 어쨌든 언젠가는 양준혁보다 많은 홈런을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은 당분간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심정수는 통산 타점(1022개)도 3위에 올라있다. 역시 언젠가 통산 최고에 오를 것이다.
4.그 외에는?
박재홍(SK), 마해영(전 LG), 정민철(한화), 전준호(현대) 등이 매우 좋은 성적을 쌓았다. 이들도 모두 MVP 타이틀 없이 선수 생활을 마칠 가능성이 높다. 박재홍은 신인이던 96년에 상을 못 받은 게 두고두고 억울할 것이다.
▲메이저리그
1.매니 라미레스(보스턴)
라미레스는 순수한 타격 능력 면에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보다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통산 OPS가 10할을 넘겨(1.0023) 로드리게스(.9672)를 꽤 앞선다. 볼넷을 매우 잘 고르며 홈런도 많이 친다.
찬스에 강한 타점머신이기도 하다. 외견상 우둔해 보이고 수비를 못하며 발이 느리기 때문에 로드리게스보다 높은 명성을 누리지 못할 뿐이다.
라미레스는 99년에 타율 3할3푼3리 44홈런 165타점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고도 MVP 투표 3위에 그쳤다. 이 때 상을 받은 이반 로드리게스(당시 텍사스)는 타율 3할3푼2리 35홈런 113타점을 올렸을 뿐이다. 이 때가 가장 수상에 근접했던 해다. 라미레스는 2004년에 월드시리즈 MVP를 얻어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2.토드 헬튼(콜로라도)
헬튼의 통산 OPS는 1.0138로 라미레스보다 더 높다. 현역 선수 중 통산 OPS가 헬튼보다 높은 사람은 배리 본즈(1.0512)와 푸홀스(1.0402) 뿐이다. 본즈와 푸홀스는 모두 MVP 수상 경력이 있다. 헬튼은 라미레스보다 더 MVP와 거리가 멀었다. 2000년에 MVP 투표에서 5위를 한 것이 가장 좋은 결과였다.
그가 투수들의 무덤에서 산다는 것과, 그가 속한 콜로라도가 만년 하위팀이라는 사실 때문에 헬튼의 경력은 상당히 과소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풀 시즌 첫 해인 98년부터 10년간 매년 3할 타율 이상을 기록했으며, 통산 타율이 무려 3할3푼2리다. 통산 OPS에서 볼 수 있듯이 생산성이 만점이다. 그리고 헬튼은 라미레스와 달리 골드글러브를 3회 수상한 훌륭한 수비수이기도 하다.
3.짐 토미(시카고 화이트삭스)
50홈런 이상 1번, 40홈런 이상 5번, 통산 507홈런. 토미는 파괴력 면에서 라미레스나 헬튼보다 위에 있다. 힘만 센 게 아니라 공도 잘 골라 통산 출루율이 4할9리다. 그의 통산 OPS는 0.9736으로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이슨 지암비, 데이빗 오티스 같은 선수들보다 더 높다.
토미는 성적만큼의 명성을 누리지는 못했다. 클리블랜드 시절에는 라미레스, 데이빗 저스티스, 맷 윌리엄스 같은 선수들에게 가렸고, 필라델피아로 옮긴 뒤로는 라이언 하워드에게, 화이트삭스에서는 매글리오 오도네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내줬다. MVP 투표에서도 2003년 4위를 한 것이 최고였다. 내년에 37세가 되는 토미는 MVP 트로피 없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4.그 외에는
데이빗 오티스(보스턴), 카를로스 델가도(뉴욕 메츠), 개리 셰필드(디트로이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전성기가 완전히 지난 선수 중에는 마이크 피아자(오클랜드), 새미 소사(텍사스)가 으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