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두 번으로 나눠서 제 일기를 쓸 생각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재혼을 기준으로 말이죠.
우선 저희 어머니에 관해서입니다.
어머니는 그 남자와 결혼하실 때
외할아버지의 엄청난 반대가 있었답니다.
같은 '박'씨라서 좀 거리끼는 것도 있었고
친가쪽에서는 아예 연을 끊겠다고 했었나봐요.
어머니가 장녀인데 결혼식에 신랑부모가 참석 안 하는 일이
외할아버지는 부끄러우셨고 그 남자가 맘에 안 차셨던 모양이에요.
근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2년만에
결혼 허락을 받고 결혼하셨습니다.
물론 친가쪽에서는 아무도 안 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는 저를 30살 때 좀 늦게 낳으셨구요.
제가 5-6살이었나...그 남자가 뇌졸증에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친구들한테 돈까지 꿔가면서 그 남자 수술시켰습니다.
친가서는 한 푼도 보태주지 않았고 투병생활내내 찾아온 적도 없었습니다.
병원이 서울에 있는 무슨 성모병원이었는데...
지금 제 기억으론 주변에 버스터미널이 하나 있었던 거 밖에 기억이 안 나네요.
어머니는 그 남자 병원때문에 온갖 고생 다하시고 전 친척집에서 지냈습니다.
[이 기억은 저에겐 없는데 어머니가 말씀해주신거랍니다.
한 번은 작은고모할머니댁에 맡기고 나왔는데 막 제가 울고 불고해서
몇 시간 붙잡는 바람에 병원 가는 차도 놓치시고 제가 울다 지쳐서 자는거까지
보고 가셨다고 하시더라구요. 물론 다음에 깨어난 저는 엄마가 없는 걸 보고
작은고모할머니를 붙잡고 다시 울어댔다고...작은고모할머니가 엄마한테 그 얘기를 하자
엄마가 많이 우셨다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렇게 해서 투병생활을 끝내고 통원치료가 가능할 즈음 7살때 아파트로 이사를 왔어요.
'생활보호대상자'들이 모여사는 아파트라 소위 말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죠.
노인들도 많고, 먹고 살 능력없어서 맨날 술 끼고 사는 사람들...그리고 주정하는 사람들
그 때부터 어머니가 떡볶이 장사를 시작하시고 그 남자는 잡일을 돕고...
그 남자와 이상한 중이 친해졌어요. 어머니는 땡중이라고 어울리지 말라고 했고
땡중이 그 남자 머리를 홀리게 한다고 하셨죠.
그게 불행의 시작이면 시작일까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던 때부터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지겹게...
하루는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제 방에서 놀고 있는데 안 방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나더니
또 싸움이 났어요...그 남자가 베란다에 있던 쇠파이프를 들고 난리치는데...친구는 놀라서
굳어서 서있고 전 친구더러 빨리 도와달라고 하고......그 남자가 친구더러 가라고 소리를
꽥 지르는 바람에 친구는 도망치듯 현관문으로 나가고...또 싸우고...역시 힘에서는
여자가 밀려서 엄마가 쓰러졌지만 그 남자도 차마 엄마를 못 때리더라구요.
욕하면서 집에서 나가면 엄마는 아무일도 없었단 듯 일어서면서
"또 땡중만나러가지. 미친 놈들끼리 모여서.."
그렇게 지겹게 싸우고 전에 올렸던 글처럼 5학년쯤이 되서야 얼굴 안 보고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그 남자 주민등록말소시키고 실종신고를 하고 법적으로 이혼하고...
엄마가 떡볶이 장사를 하시면서 주위에 시끌벅적한 아주머니분들을 많이 알게 되셨나봐요.
엄마에게 만나는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되었죠.
엄마는 맨날 12시 넘게 들어오셔서 그때까지 집에 혼자 있는 저는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엄마가 오는 소리가 나면 자는척을 하고 엄마가 들어온 걸 확인한 다음에 그제서야 잠을 자는게 일쑤였어요.
하루는 엄마가 들어와서 평소대로 씻는 소리가 안 들려서 뭔일있나 하고 안방에 가는데
전화통화가 들리더라구요.
당신이라는둥, 일요일날 만나자는둥, 잘자라는둥...
애인한테 하는 행동 그대로...누가봐도 알수 있을만큼
누군지 궁금해서 문을 열었더니 엄마는 엄마친구라면서 잠깐 문을 닫으라고했는데 그게 얼마나 비참하던지...
얼굴도 모르는 외간남자한테 진 기분이랄까.
알게된 후로 몇 일은 엄마가 나에 대한 의무감을 저버렸구나, 엄마에겐 내가 소중한 게 아니였나보다
그 다음 몇 일은 엄마도 엄마 사는 게 있지, 난 짐인가보다, 엄마가 새시작하면 난 그 남자랑 같이 살게되는건가?
그것때문에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잠도 못 자고, 꿈에서는 엄마는 다른 남자와 저 쪽으로 가고
난 그 남자손에 이끌려서 아저씨들 도박장으로 가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그렇게 지내면서 결국은 , 밤에 막 토하고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신경성이라고도 하고
CT찍었을때는 아무 이상 없었지만 뇌수막염일지도 모르니 검사 받아보자고도 하고...
그 남자가 뇌졸증때문에 투병도 오래했으니 어머니는 혹시 제가 유전받았을까봐
MRI를 찍자고 해서 그 MRI 검사실에 들어갔는데...정말 15분도 못 버텼습니다.
나 혼자 이상한 침대에 눕고 이상한 막대같은 통안에 들어갔는데 뭐가 빙빙감싸고 도는 느낌...
죽는 게 이런거 란 느낌이 들고 울음이 막 터져서 15분만에 바로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검사란 걸 했는지 별 이상없다고 나와서 엄마는 한숨을 돌이키고...
병원에서 돌아온 날, 엄마가 저에게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걸 말해주셨는데 막상 직접들으니 그저 그렇드라구요.
엄마는 그 남자도 이혼했는데 뭐, 결혼하는 거 아니라고 난 오직 너뿐이라고 하는데...
거기다 뭐라고 하겠어요...그냥 알겠다고만했지...
거기다 난 어린마음에 그 새로운 아저씨에게 엄마를 뺏기는 기분이 들어서 그 때부터 엄마한테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아저씨가 좋아, 내가 좋아?"
.
.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아마 그 때부터 재혼에 대해 깊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난 그냥 저 질문을 어머니가 나에 대한 변치없는 사랑,
그 새로운 아저씨에 대해 내가 우위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려던 것 뿐이지
그게 재혼을 재촉할줄은 몰랐으니까요.
.
.
.
초등학교 6학년, 12월 24일. 눈 오던 날, 지금의 아버지신 어머니의 새로운 분을 만났어요
악수하고 5분 정도 얘기하다가 인사만 꾸벅하고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내가 헤어지라고 소리지를 권한도 없고, 그렇게 소리 질렀다면
왠지 엄마한테 뺨따귀 한 대 맞고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고...
잘못하면 꿈속에서처럼 그 남자랑 같이 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고...
그렇게 해서 첫 대면은 이루어졌고 가끔씩 집으로 전화가 오면
내가 받기도 하고 간단한 안부인사정도만 하고 수화기를 어머니께 넘겨드리고...
또, 어머니가 재혼을 아예 결심하게 된 계기도 있었답니다.
사실 그 남자가 나가고서도 집안 형편은 어려웠죠.
피아노를 그만두었지만 대신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있고
중학교도 입학하니 돈이 더 들기시작했어요.
돈 문제는 그렇다 치고...어머니가 하시는 떡볶이 장사였어요.
제가 부끄러움이 생긴거죠. 어머니가 떡볶이 장사를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서 하셨는데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는 어려서 직업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애들이 놀려도 그냥 넘겼는데 중학교 들어가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는 떡볶이 장사, 사는 곳은 생활보호대상자세대...어린 전 내세울 게 없었죠...
살던 곳이 아시다시피 가난한 곳이라서 여기사는 애들은 잘못하면 빗나가기 쉬웠어요.
[초등학교 때 친하던 동네 애들이 모두 중학교때는 논다는애식으로 걸레로 나간애들이 좀 많아요]
그래서 공부라도 열심히하고, 선생님들한테 이쁨받고, 저런 못 사는 동네에서도
모범생 하나 있구나라는 소리 듣는 게 중1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을꺼예요.
어머니는 주위 애 들이 나빠진 걸 보고 내가 그래도 착한 딸 모습 보여준다고 자랑스러워 하는데
난 떡볶이 장사하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던거죠...
어머니도 그런 걸 눈치채셨는지 자식 기 죽이는 것 같다고 미안해하셨죠.
근데도 난,
"괜찮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라면서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고, 애들이 떡볶이 집 딸이라고 놀리면
"근데? 우리 집 떡볶이 하는데 네가 보태준 거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받아쳤죠...
속으론 나도 평범한 회사원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가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어머니도 이런 내 맘을 알고 또, 일하시면서 내내 집에서 혼자있을 나에게
저녁 한 끼 못 챙겨준 게 미안해서 재혼하면 이것보단 낫겠지, 라는 마음도 계신 것 같았으니까요
또, 어머니는 아침 9시부터 떡볶이, 튀김, 순대, 오뎅 팔 재료 준비하시고
제가 학교 끝날쯤해서 장사를 시작하셔서 12시 넘어서 들어오시는 그런터라
겨우 40초반이신데도 벌써 폐경기가 오셔서 산부인과 다니시면서 생리 안 끊기게 하는 약도 드셨어요.
그 때부터, 저도 재혼하는 게 엄마한테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오면 최대한 즐겁게 받아주고 그랬죠.
물론, 엄마도 저에게
"엄마, 재혼해도 괜찮아?"
라고 진지하게 물어보면
"어, 해."
전 그냥 덤덤한 척 했죠.
언젠가 올 줄 알면서도, 나도 속으로 바라면서도 대답하기 싫었어요.
엄마가 오랜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편안하게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으로 사는 평범한 주부가 되는구나,
혼자 떡볶이 파는 가장역할을 이제는 벗을 수 있구나...그런 생각보다도
한 남자한테 엄마를 빼앗긴다는 생각이 먼저 앞설때가 많았어요.
결국, 2학기 초가 되서 결국 어머니는 재혼을 결심하시고 제가 겨울방학을
하는 동시에 바로 이사 및 전학수속을 밟기로 했습니다.
우선, 외할아버지 허락을 받는 게 중요했죠. 외할아버지는 듣자마자
호통부터 치시고 이번에도 또 망칠꺼라고, 집안망신이라고 쐐기를 박으셨지만
외할아버지도 어머니가 힘들게 장사하신 걸 알고, 또 외손녀인 절 생각해서
결국 허락하셨습니다.
....12월 30일자로 전학수속을 밟고 이삿짐을 다 실어서
7살때부터 살던 집을 떠나서 지금 현재 이 집에서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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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전보다 피부도 많이 고와지셨고, 멋도 부릴줄도 아세요.
아버지와 자주 다투시기도 하지만, 요즘은 애교도 부쩍 늘어서 아버지 화는 금방 푼답니다.
죄송한 건, 지금 이 집으로 오면서 호적만 합치고 결혼식을 못 올리셨어요.
외할아버지가 집안 망신이라고 하신것도 있고, 또 지금 아버지께서도 50이 넘으셔서
어머니랑 10살 차이가 나세요. 그래서 어머닌 웨딩드레스도 못 입으셨어요.
제가 돈 모으면 정말로 어머니와 아버지 호화찬란하게 결혼식 해드릴껍니다.
그리고 어떤분이 말씀하시길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바라보라고 하셨는데...
저도 예전에는 저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어요...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전 어린 척도 아니고 지금 이렇게 쓰는 그대로가 편해요.
ps. 너, 참 밝게 자랐구나...#1에 대한 변명
호칭에 대해 짐승만도 못 하다 그런 말들이 많았던 건 아랫글에서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뇌졸증'이란 병에 대해 잘못 이해하신 것 같아요.
간신히 살아난 건 맞습니다. 수술비 구하느라 수술시기가 자꾸 연기되었으니까요.
어러분들이 생각하시는 親아버지는 벽에 똥칠하고, 먹여살릴 능력없는 가장,
굉장한 중풍환자로 생각하시는데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의처증 증세[이게 가장 심했죠.],
맘에 안 드는 일 있으면 바로 집나갔다
몇 일후에 다시 들어오는 그런 분이셨습니다..제가 MRI 찍을려고 신경외과로 상담 갔을 때, 어머니가 親아버지의 의처증 증세에 대해 의사분께 말씀드린 게 있었는데 의사분은
신경이 상해서 그랬을 가망이 높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사회복지, 요양원...그런 말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제대로 쓰질 못 한 제 잘못이 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