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기독교도들이 불매운동벌였던 그책입니다

바꿀까 |2007.12.02 09:13
조회 1,853 |추천 0

인터넷버전을 만들며...

 

 

책의 내용에 대한 평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각자 느끼는 감정은 서로 다를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이 책의 히스토리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책은 (Harmony Books, NY, 1999.)를 승영조씨가 번역하고 동아일보사에서 2002년 6월에 출판한 책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반기독교적이라 하여 기독교측에서 출판을 못하도록 동아일보사에 압력을 가했고(신문 불매운동 등), 동아일보사가 이에 굴복 출판을 취소했다. 그래서 지금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독자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이책을 읽어보는 것은 서양문화를 이해하고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인터넷 버전을 만들기로 결심했고, 두달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이책을 만들었다. 원본책과 똑같이 만들려고 노력하였으나, 약간의 부주의와 실수로 더러는 오자가 있을수 있다. 이점 양해를 구하며, 원본에 있는 어느 목사님의 추천의 글과, 찾아보기는 생략했다. 조금이라도 읽는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책의 판권 소유주인 동아일보사와 승용조씨께 무단복제에 대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사장되는것 보다는 이렇게라도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낫다고 자위해본다.

- 川龍 -

 

 

 

소개글

 

그리스도교가 이교도의 신화를 조합한 종교임을 증명한 책. 지은이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신비주의 연구의 권위자로 고대 이교도 신앙에 해박하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로마 제국이 유포한 체제 유지 이데올로기였다고 한다.

실제 로마인들이 믿었던 것은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Mysteria).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불렸던 신의 이름이다. 그는 12월 25일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결혼식 때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 냈으며, 영성체 의식으로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눈 이다.

4 복음서가 증거하는 예수의 행적과 정확히 일치한다. 곧, 기독교는 이교도의 신화를 차용한 종교로 유대인들의 종교와 로마인들의 종교가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누가 들어도 황당한 이 주장은 인용문의 출처, 참고 서적, 기타 보충 내용에 대한 풍부한 각주에 의해 지탱된다.

영국에선 이 책의 출간으로 학계와 종교계에 광범위한 토론이 이루어졌을 정도. '데일리 텔레그라프'지가 선정한 '올해의 책'(1999)이란 타이틀은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었다. 존 셀비 스퐁 주교가 이들의 주장을 지지한다는 점에서도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책이다.

저자소개

티모시 프리크 (Timothy Freke) - 철학박사이며 세계 신비주의의 권위자이다. 그가 지은 20여 권의 책은 세계적으로 번역.출판되었다. 피터 갠디와 함께 <세계의 신비주의, 연금술에 대한 완벽한 입문서The Complete Guide to World Mysticism, Hermetica>, <잃어버린 파라오의 지혜The Lost Wisdom of the Pharaohs>, <이교도 철학자들의 지혜The Wisdom of the Pagan Philosophers> 등의 책을 썼다.

피터 갠디 (Peter Gandy) - 고대 문명을 전공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대 이교 신앙에 대한 전문가이다. 지은책에 티모시 프리크와 같이 쓴 <세계의 신비주의, 연금술에 대한 완벽한 입문서The Complete Guide to World Mysticism, Hermetica>, <잃어버린 파라오의 지혜The Lost Wisdom of the Pharaohs>, <이교도 철학자들의 지혜The Wisdom of the Pagan Philosophers> 등이 있다.

승영조 - 199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된 후, 번역과 문학평론을 하고 있다. 옮긴책으로 <전쟁의 역사>, <종꾸어(中國)>, <7호법정>, <사랑의 신드롬> 등이 있으며 지은책으로 <창의력 느끼기> 등이 있다.

 

 

 

해외 언론평

 

<예수는 신화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복음주의자들은 혐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분명히 이 책을 사악한 것으로 돌릴 것이다.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의식들은 상당 부분 이교도 전통에 기인한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논쟁적인 명제는 많은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거부당할 수 있겠지만 고대와 현대 문헌을 두루 망라한 꼼꼼한 주석 등을 보면 요즘의 새로 쓰는 역사서들보다 훨씬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 영국 아마존

 

치밀한 역사 탐구 명료한 사고, 탐정소설 식 스타일이 탁월하게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 책은 수세기 동안 학자들이 밝혀낸 것들을 집대성해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풀이한 역작이다. 그리스도교의 은밀한 비밀이 상아탑을 벗어나 우리에게 환히 드러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비밀을 이 책은 용감하게 웅변적으로 밝혀낸다.

-로저 휴스든 (<근대세계에서의 신성한 아메리카와 신성한 여행>의 저자)

 

이 책의 명제가 더욱 널리 알려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수용되기 시작하면 분명 혁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 책의 명제는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종교적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세실리 테일러 (<월간 퀘이커교도>지)

 

생생하고 열정적인 문체로 쓰여진 이 책은 소위 '고대의 뉴 에이지' 라 불리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모호한 기원에 대한 진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학자들은 수백 개의 각주와 철저한 문헌고증 동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 앨바 엘리거드 교수 (<예수 : 그리스도 이전의 100년>의 저자)

 

 

 

일러두기

 

미스테리아 Mysteries: 영어 Mysteries, 그리스어 Mysteria 는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11세기 이상 성행한 신비한 의식이나 비밀가르침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우리말로는 보통 '신비의식'으로 번역 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렇게 번역하면 문맥이 통하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다. 의식 이상의 한 종교, 혹은 교리를 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이 명사에는 기본적으로 '신성한 비밀' 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미스테리아'로 음역했다.---좀더 정확히 음역하면 '미스터리야' 지만. 그리고 경우에 따라 문맥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의식' 이나 '종교', 혹은 '신앙'이라는 말을 '미스테리아' 뒤에 덧붙였다.---영문 원서에서도 그런 경우가 꽤있다. 한편, <성서>에서는 'mysteria' 가 신성한 '비밀' 의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신약 복음서에는 이 말이 세 번 나온다.(마태복음13:11, 마가복음 4:11, 누가복음 8:10)

그리스도교 Christianity, 그리스도교인 Christian : 대중적으로는 '그리스도교' 보다 '기독교' 라는 말이 우리에게 더 친근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리스도'를 '기독' 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독' 이라는 말이 죽었는데도 기독교 라는 말을 쓰는 것은 다소 얄궂다. 번역어로 채택한 '그리스도교', 혹은 '그리스도교인Christian' 이라는 용어가 발음하기엔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스도 Christ' 는 그리스어 'Christos(크리스토스)'를 음역한 말로, 메시아 곧 구세주를 뜻한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호칭에 있어 '하느님'과 '하나님'이라는 두 가지 표현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개신교에서 쓰는 '하나님'으로 표기 했다.

<성서> 인용문은 대부분 우리말 개역 <성서>대로 옮겼지만, 명료한 의미 전달을 위해 다소 번역을 바꾼 곳도 있다. 이때, 저자가 인용한 <성서>와 번역이 다른 을 참고 했다.

중요 용어와 인명, 도서명에 대한 영문자는 '찾아보기'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영문 원서 : (Harmony Books, NY, 1999.)

 

 

 

 

역자서문

 

인식의 전환을 위하여

 

지구상에서 한반도만큼 온갖 이질적 종교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 샤머니즘, 명리학(사주팔자 등)은 물론이고 원불교, 동학에서 파생한 종교, 단군 신화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적 신앙 등 온갖 종교가 모두 활성화되어 있다.-이슬람교의 교세가 비교적 약할 뿐이다.

단일 교회로는 그 규모와 신도 수가 세계 최대인 순복음교회가 한반도에 있다. 한반도는 통일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는다는 사람이 꽤 있다. 게다가 고대 그리스-로마신화도 여간 인기가 높은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종교적으로 그만큼 성숙해 있을까?

이 책은 현대에 밝혀진 결정적인 여러 증거를 기초로 해서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추적하여 여러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일단 가벼운 충격부터 짚어 보자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그리스-로마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물론 이것은 옮긴이의 과장 어법이다). 올림포스의 제신 숭배는 권력자들의 국가 체제 유지용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로마 민중들은 과연 어떤 신을 믿었는가?

오늘날 그리스-로마 신화를 유포하는 신화학자라는 사람들 가운데 그것을 아는 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열렬히 믿은 신화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그 신화를 얘기해 주는 그리스-로마 신화 서적을 역자는 본 적이 없다(과문한 탓이겠지만).

이 책의 두 저자는 증거에 입각해서 이렇게 주장한다. 4세기에 로마 제국의 권력을 등에 업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이교 신앙을 철저히 말살하고 중상 모략했다고. 현대의 대다수 신화학자들조차 진상을 모를 정도로!

어쨌거나 그리스-로마 신화는 문학적으로 탁월한 데가 있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로마의지식인들은 올림포스의 온갖 신들 이야기를 경멸했다. 그런 사실도 모르면서 그 신화를 유포하는 것은 당시의 참된 종교상을 말살하는데 은연중 동참하는 행위일 수 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너무나 유치하다. 변덕스럽고 끼리끼리 파벌을 만들고, 걸핏하면 인간을 강간한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고대 그리스인들이 고작 그런 신들을 믿었다고 보는 것은 우리 인류의 정신사를 자기 비하하는 것일 수 있다.

이교 신앙은 원시적이고, 미신적이며, 비도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신앙에 비하면 그리스도교가 더 뛰어난 종교이므로, 로마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시사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이교 신앙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문자주의)보다 영적, 도덕적으로 훨씬 더 뛰어난 신앙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민중들은 과연 어떤 신을 믿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가?

그들이 믿은 신의 이름은 사실 중요치 않다. 그들은 여러 신이 아니라 하나인 신을 믿었고 그 신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 신의 화신인 신인(神人)의 이름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우시르),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 로마 시대에는 바쿠스나 미트라스등으로 불렸다.

저자는 이 모든 이름을 오시리스-디오니소스로 묶어서 얘기한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12월 25일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결혼식 때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 냈으며, 영성체 의식으로써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혹은 나무에 매달려) 죽었으며 죽은 후 사흘 만에 부활했다! - 예수 이야기와 똑같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런 신인(神人)을 믿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세기부터였다! 이 신앙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미스테리아 Mysteria(영어로 Mysteries)이다. 이 미스테리아에 대한 언급은 역사의 아버지로 통하는 기원전 5세기의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플라톤의 저술 등 여러 곳에 나온다. 문자주의자들이 미스테리아를 말살했지만 100퍼센트 말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미스테리아는 조지프 캠벨(1904~1987) 등의 연구를 통해 비로소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다.

두 저자는 주장한다 - 그리스도교는 고대 미스테리아에서 기원한 것이다! 역사에 느닷없는 단절이란 없다. 변화의 연속이 있을 뿐이다.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인 유대인들은 예수 미스테리아를 만들었다. 이 예수 미스테리아를 그리스도교로 발전시킨 핵심 인물은 바울이다. 그런데 바울은 사실상 영지주의자였다. 바울은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울에게 예수는 디오니소스와 동일한 신화적 인물이었다!

저자가 제시한 증거에 따르면, 문자주의자들은 바울의 편지를 위조하고 첨삭해서 바울을 문자주의자로 날조했다. 저자는 정동 혹은 가톨릭(보편적) 그리스도교라는 말 대신 문자주의 Literalism, 그리스도교라는 말을 사용한다. 정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했다 하더라도 예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문자주의가 적절하기 때문이다.

이들 문자주의자들은 예수의 탄생과 부활의 신화를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믿으라고 강요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편협하게 변질시켰다. 또한 광범위하게 <성서>를 위조하고 변조했으며, 이교 신앙과 영지주의를 철저하게 말살했고 중상 모략했다. 이 책에는 그것에 대한 증거가 폭넓고 깊이 있게 제시되어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이단으로 치부되는 그노시스파, 곧 영지주의자들의 그리스도교가 원래의 그리스도교이다! 그렇다면 과연 영지주의 그리스도교는 어떤 종교였는가?

두 저자는 다음에 펴낼 책에서 깊이 있게 다루겠다고 했지만, 이 책에도 영지주의의 핵심이 충분히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영지주의의 가르침이 고대 그리스-로마 민중이 믿은 이교 신앙의 가르침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진짜 종교는 미신적이고 원시적인 게 아니라,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고등 종교였다.

이교 신앙에서 발전한 영지주의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본문을 잠깐 인용해 보겠다.

 

이미 너는 부활했다 너 자신이 이미 부활했음을 깨닫도록 하라. 너-참된 너-는 타락한 것으로 보이는가? 너 자신을 살펴보라, 그러면 너는 이미 부횔 했음을 알리라(이미 부활을 했다는 생각은 나그 함마디의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 저자 주. 이런 생각을 비롯해서 영지주의의 여러 핵심 사상은 선(禪) 사상과 놀랍도록 흡사한 데가 있는 것 같다. 너는 이미 부처다! 육조 혜능이 이런 깨달음을 얻은 것은 7세기 중반이었다. 그런데 나그 함마디 문서의 집필 시점은 줄잡아 3~4세기니까 몇 백 년 앞서 있다 : 옮긴이 주)

 

선불교에서 육조 혜능과 신수화상의 이야기는 꽤 유명하다. 혜능의 동문 사형인 신수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썼다.

 

몸은 곧 깨달음이 자라는 나무이며, 마음은 깨달음이 비치는 밝은 거울이다. 때마다 부지런히 마음거울을 털고 닦아, 먼지가 앉는 일이 없게 하라

 

이 게송은 몸과 마음을 열심히 닦아야 한다는 인간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게송을 반박한 혜능의 게송을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깨달음이 자라는 나무가 따로 없으며, 깨달음이 비치는 마음도 따로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本來無一物), 어디에 먼지가 앉겠는가.

 

이 게송은 몸과 마음을 닦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이 곧 불성 자체, 부처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미 깨달은 부처, 이미 부활한 그리스도라는 인식의 전환만이 필요할 뿐이다.

혜능이 본래무일물을 말하듯이, 영지주의자들은 오직 하나님만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나의 참된 정체성은 '육체적인 나'가 아닌 불멸의 영혼 이라는 것을 깨달은 영지주의 입문자들은, 나는 곧 하나님 God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나님 혹은 부처만 존재할 뿐 본래무일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영지주의와 선 사상의 경지는 너무나 흡사한 데가 있다.

이러한 영지주의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이교 신앙의 가르침과 흡사한 것이었다. 이교 신앙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 물론 고대 그리스-로마의 주류 철학은 동양사상과 큰 차이가 있다. 동양사상이 땅과 하늘의 조화 곧 음양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서구 주류 철학은 땅, 곧 육체를 경시했다. 그래서 서구사상이 이성적 진리를 추구했다면 동양사상은 심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차이 등이 발생한다.

아무튼 원래의 그리스도교, 곧 영지주의는 지극히 합리적이며 개방적인 종교였다. 참된 진리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가르쳤으며,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입문자에게 불합리하게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무조건 믿기만 하면 천국이 보장된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역자에게는 항상 궁금했던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예수를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 치고, 예수는 왜 다른 성자들보다 500년이나 뒤늦게 출현했을까 하는 것이다. 기원전 5, 6세기는 경이로운 시대였다. 이때에 공자와 노자, 인도의 석가와 마하비라(자이나교의 시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 등의 성자, 혹은 현자들이 대거 출현했다.

역사상 위대한 천재가 출현할 때에는 항상 집단으로 대거 출현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예수만이 5, 6세기 늦게 홀로 출현했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명쾌히 설명한다. 예수 이야기는 기원전 5, 6세기신화의 연장 선상에 있다. 이 책을 이해하면 서구 종교사의 문맥이 제대로 보인다. 이 문맥을 끊어 놓은 것이 문자주의자들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두 저자는 그리스도교를 해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교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

아마도 저자의 주장이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견강부회한 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으며, 예수가 다만 신화적 인물일 뿐이라는 증거는 압도적이라고 말하며 증거를 제시할 뿐,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큰 맥락에서 저자는 오로지 인류의 영적 진화를 돕고 싶다는 일념에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그리스도교가 편협성을 버리고 영지주의의 열린 자세를 회복함으로써 종교적 진화의 흐름을 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저자는 바울의 잊혀진 가르침을 회복하고자 한다.

바울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보편적 영혼, 곧 하나님의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고 가르쳤다. 바울이 가르친 그리스도교의 핵심 비밀은 다음과 같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다!(골로새서 1 :27)

 

그리스도는 우리의 바깥에 있지 않다. 우리 모두가 곧 그리스도(구원자)이며, 우리 모두가 곧 부처이다. 다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승영조(문학평론가)

 

 

 

1장 생각할 수 없는 생각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내 비밀 Mysteres을 들을 만한 자에게만 들려준다'

-도마의 복음서

 

오늘날 로마 교황청이 있는 자리에는 한때 이교도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거기서 이교도 사제들은 신성한 의식을 거행했다. 이 의식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너무나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의식이 거행되어 왔다는 증거를 모두 지워 버리려고 했다.

그처럼 충격적이었던 이교도 의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소름 끼치는 희생 제물 바치기였을까? 아니면 외설적인 술판 벌이기였을까? 그런 허구를 믿도록 우리는 설득 당해 왔다. 그러나 진실은 그런 허구와는 사뭇 다르다.

오늘날 독실한 신도들이 그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그곳에서 고대인들은 다른 구세주 신인(神人)을 숭배하고 찬양했다. 놀랍게도 이 구세주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12월 25일에 태어났다. 또, 예수와 마찬가지로 하늘로 올라갔으며, 종말의 날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지상에 내려오기로 약속된 존재였다.

오늘날 교황이 성찬 미사를 드리는 그곳에서, 고대의 이교도 사제들 역시 그들의 구세주를 기념하여 빵과 포도주 의식을 치렀다. 뿐만 아니라 이 구세주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고, 나 또한 너와 더불어 하나가 되도록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그러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 이야기와 이교도 신화가 이토록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경악했다. 우리 두 사람은 이교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관점이 전적으로 대립된다고 믿는 문화 속에서 자라 왔다. 그렇다면 이토록 놀라운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는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더 깊이 파고들수록 더욱 많은 유사성이 드러났다. 우리는 수많은 증거를 발굴해 냈다. 그 많은 증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에 빠진 우리는 그리스도교와 이교 신앙의 관계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며,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여러 가능성을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단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 축적해 온 수많은 증거를 더없이 간단하게, 그리고 더없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예수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메시아의 전기가 아니라, 이교도의 유서 깊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 하나의 '신화'라고 우리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새롭고 유일무이한 계시 종교였던 게 아니다. 유대인 방식으로 각색된 고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우리는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진짜' 예수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을 늘어놓는 책이 허다한 마당에 이런 주장은 처음부터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렇지만 혁명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마땅히 건전한 의심의 눈길을 던져야 한다.

이 책도 물론 아주 예외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그저 여흥을 위한 공상이 아니고, 물의를 일으키기 위한 억측도 아니다. 우리는 이용 가능한 역사적 자료와 가장 최근의 학구적 탐구를 토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우리의 주장을 아주 철저히 분석하고 싶어하는 독자를 위해 인용문의 출처, 참고 서적, 기타 보충 내용에 대해 풍부한 각주를 달아 놓았다(각주 분량이 이 책 원서의 3분의 1에 달하고 전문가를 위한 내용이 많아 이 역서에는 '저자주'로 일부만 옮겨 놓았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우리가 밝힌 수많은 아이디어는 아주 급진적이고 도전적이지만, 사실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 르네상스 시대에도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찾았다. 19세기 접어들어서도 몽상적인 학자들은 우리의 결론에 비견되는 추측을 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현대의 고전학자들도 우리가 생각한 가능성들을 되풀이해서 지적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끌어낸 것과 같은 명백한 결론을 과감히 진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금기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신성하고 유일무이하며, 이교 신앙은 원시적이고 악마적인 활동이라는 믿음은 지난 2천여 년 동안 서구 세계를 지배해 왔다. 때문에 이교 신앙이 부분적으로 그리스도교와 동일한 전통을 지녔다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진실이 처음부터 명백해 보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을 직시하려면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완전히 등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헌한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며 메마른 학구 서적이 아닌 대중 서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 복잡한 주제에 대한 최후의 결론이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의 결론이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완벽한 재검토를 요청하는 값진 결론일 수 있기를 바란다.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울려 퍼지는 합창은 주인공의 운명을 예고한다. 이처럼 우리가 가야 할 험난한 길과 목적지를 미리 안다면 그 여정은 한결 쉬워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더 섬세한 얘기로 접어들기 전에 우리의 발견 과정을 되짚어 보고 이 책의 간략한 조감도를 먼저 보여 드리고 싶다.

우리 두 사람은 일평생을 온 세계의 신비주의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닌 채 살아왔고, 최근 들어서는 고대세계의 영적 신앙까지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예리한 학구적 탐구의 결과가 대중에게 널리 이해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우리도 처음에는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이교 신앙에 대해 부정확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사실 이교 신앙을 원시적인 미신으로 치부하도록 배워 왔다. 이교도들은 우상 숭배와 피의 제사에 사로잡혀 있었고 토가(로마 시민의 외투)를 걸친 삭막한 철학자들은 우리가 오늘날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향해 장님처럼 비틀거리며 걸어왔다고 배웠다. 우리는 올림포스의 남신과 여신들이 변덕스럽고 파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여러 고대 그리스 신화를 늘 들이 왔다. 대체로 이교 신앙은 원시적이며 근본적으로는 황당해 보였다. 그러나 수년 동안 연구한 후 우리는 전혀 달리 이해하게 되었다.

이교도의 영적 신앙은 사실상 고도로 발전한 문화의 세련된 산물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올림포스 신들을 숭배한 것은 국가적 권장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국교라 할 만한 이 같은 숭배는 화려한 겉치장과 축제 의식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들의 참된 영적 신앙은 신비하고 역동적인 '여러 미스테리아종교 Mystery religions'를 통해 표출되었다. 미스테리아는 처음에 이단적인 지하 운동을 통해 고대 지중해 전역에 퍼져 번성해 갔고, 이교도 세계의 영적 지도자들을 고무시켰다. 영적 지도자들은 미스테리아를 문명의 원천으로 간주했다.

전통적으로 각각의 미스테리아는 공개적인(외적) 미스테리아나 은밀한(내적) 미스테리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공개적인 미스테리아는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는 의식과 상식적인 신화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편 은밀한 미스테리아는 강렬한 입문 절차를 거친 자에게만 전해지는 신성한 비밀이었다.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입문자들은 의식의 신비한 의미를 알게 되면서 미스테리아 신화의 비밀을 전수 받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개인적으로 탈바꿈해서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

고대세계의 철학자들은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영적 스승들이었다. 그들은 신비주의자였고, 기적을 행하는 자였으며, 케케묵은 학자라기보다는 힌두교의 구루(영적 지도자) 같은 인물이었다. 예컨대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오늘날 수학 정리를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불꽃 같은 신비주의 현자였다. 기적적으로 바람을 잠재우는가 하면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로 신봉되었던 것이다.

미스테리아의 핵심에는, 죽어서 부활한 신인(神人)과 관련된 신화가 놓여 있다. 그런데 이 신인은 여러 이름으로 알려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이집트어로는 우시르),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쿠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로 불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 신인은 모두 동일한 신화적 존재이다.

이 책에서는 일찍이 기원전(BCE) 3세기에 통용된 이름들을 합성해서 오시리스-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 신인의 세계적이며 혼성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개별적인 미스테리아 전통을 언급할 때는 개별적인 이름을 사용할 것이다(저자는 기원전을 나타내는 'BC' 대신 'BCE[Before the Common Era]' 를 사용했고 또 AD 대신 CE를 사용하면서 이 용어들의 종교적 중립성을 주목해 달라는 각주를 달았다. 'BCE'는 '예수 이전' 이 아니라 '공동 시대 이전'을 뜻한다. 그러나 역서에서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BC, AD를 사용키로 했다 : 옮긴이 주).

BC 5세기부터 크세노파네스와 엠페도클레스 등의 철학자들은 남신과 여신들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비웃었다. 그들은 그리스 신화를 인간의 영적 경험의 비유로 보았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 상징적 언어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상징적 언어로 이루어진 신화는 은밀한 미스테리아의 가르침이 암호화된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신화는 문화가 다른 곳에서는 다소 다르게 채택되어 발전해 나갔지만, 그 핵심만큼은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미스테리아의 여러 신인들 신화는, 세기적인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동일한 해부 구조'라고 부른 것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모든 인간이 신체적으로 유일무이한 존재이지만 인체의 일반 해부구조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이들 여러 신화도 유일무이하면서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사이의 관계와 같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전자는 부유한 이탈리아의 가문에 대해 쓴 16세기 영국의 비극작품이고, 후자는 거리의 갱들에 대해 쓴 20세기 미국의 뮤지컬 작품이다. 겉보기에는 아주 달라 보인다. 그러나 두 작품은 근본적으로 같은 이야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신인들 신화는 형태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야기이다.

우리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의 다양한 변형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의 이야기 역시 그 변형들이 지닌 온갖 특성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우리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의 골자를 추려내면 예수의 전기를 사사건건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God의 아들 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처녀(동정녀)이다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이 하늘로 올라간다.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 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이것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야기와 예수의 전기에 똑같이 나타나는 것들 가운데 핵심만 추린 것이다. 이처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전혀 몰랐던 것일까? 나중에 우리는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이 계획은 너무도 완벽하게 수행되어 오늘날 이교 신앙은 '죽은' 종교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AD 첫 몇 세기 동안의 작가들에게 있어 새로운 그리스도교와 고대 미스테리아 신앙 사이의 유사성은 명백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비판한 풍자가 켈수스 Celsus(AD 약 170) 같은 이교도는 새롭게 나타난 종교가 자신들의 옛 가르침을 엷게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AD 100-165), 테르툴리아누스(AD 160-220), 이레나이우스(AD 130-202) 등 초기 '교회의 아버지(교부(敎父))'들도 분명 너무나 곤혹스러운 나머지, 그 유사성이 악마의 모방 탓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일찍이 제시된 불합리한 주장 가운데 하나였던 악마의 모방 이론을 채택한 그들은 악마가 '예상에 의한 표절'을 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즉 어수룩한 사람들을 오도할 목적으로, 예수의 진짜 이야기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악마가 미리 예상을 해서 사악하게 모방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보기에 이 교부들은 그들이 죄를 덮어씌운 악마들 못지않게 사악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그리스도교 주석가들은 여러 미스테리아 신화가 예수의 실제 도래에 '앞서 울린 메아리', 즉 예언이나 예견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악마의 모방 이론을 좀 누그러뜨린 것이지만, 여전히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수 이야기가 그보다 먼저 있었던 수많은 신화의 역사적 완성 판이라고 보는 것은 문화적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편견 없이 바라보면, 예수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똑같은 이야기의 또 다른 변형일 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이교도 신화에서 인기 있던 테마가 예수 전기에 접목되었다고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건 다수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일찍이 언급한 대로이다. 예컨대 동정녀의 성령 잉태는 후대에 외래신화를 추가한 것이어서 문자 그대로 이해되면 안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테마는 이교 신앙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그 같은 차용은 이교도 축제들을 그리스도교 성자들의 날로 삼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축적된 신화의 잔재에 깔려 숨겨진 '진짜' 예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이론을 받아들인다.

일견 매력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설명이 부적절한 것 같았다. 우리는 유사성 전체를 포괄적으로 대조해 보았다. 그 결과, 예수의 전기 가운데 이교 신앙에 미리 나타나지 않은 테마는 거의 찾아들 수 없었다. 나아가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조차도 독창적인 게 아니라, 이교도 현자들이 이미 앞서 말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모든 것의 배후 어딘가에 '진짜' 예수가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진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후대에 이교도 신화를 덧붙인 기록들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도 어쩐지 터무니없어 보였다. 이러한 수수께끼에 대해 좀더 우아한 해답이 분명 있지 않을까?

 

영지주의

앞서의 발견은 정말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우리는 초기 교회가 받아들인 것들에 하나하나 의문을 제기하면서 스스로 증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성자와 순교자들이 모두 한결같은 믿음을 지닌 것으로 배워 왔다. 그러나 그와는 전혀 달리, 성자와 순교자들은 사실상 여러 이질적인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큰 범주로 보면 이들은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문자주의자 Literalists 라고 부르는 집단이다. 이들은 예수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AD 4세기에 로마 제국이 받아들인 그리스도교가 바로 그것! 이는 로마 가톨릭 신앙이 되었으며, 훗날 여러 갈래로 분화되었다.

이와는 급진적으로 다른 그리스도교 집단이 있었는데, 영지주의자 Gnostics가 바로 그들이다(영지주의자Gnostics를 '정통' 교회 입장에서는 보통 '그노시스파' 라고 번역한다. '그노시스파'의 사전적 의미는 '그노시스[靈知] 개념으로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설명하려던 AD 2세기경의 이단 그리스도교인' 이다 : 옮긴이 주).

영지주의자들은 잊혀진 그리스도교인들이다. 훗날 로마 교회 문자주의자들의 박해를 받아 철저히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그들을 추적하는 사람들의 저술 외에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원래의 영지주의 문서가 한줌 남아 있을 뿐인데, 그것도 19세기 이전에는 출판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1945년에 이집트의 한 농부가 나그 함마디 근교의 한 동굴에 감춰져 있던 영지주의 장서를 우연히 발견했다(나그 함마디 Nag Hammadi는 나지 함마디 Naji Hammadi라고도 쓴다 : 옮긴이 주). 이 장서는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널리 배포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장서는 훗날 신약 <성서>에 포함되지 못했다. <도마의 복음서>, <빌립의 복음서>, 베드로와 12 사도의 행적을 기술한 텍스트, <바울의 계시록>과 <야고보의 계시록>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비롯한 초기 그리스도교 장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그런 문서가 존재한다는 것조차도 알고자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새로 발견된 말씀들을 읽어 보려고 안달을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신약 <성서>로 채택된 몇 개의 복음서에만 매달리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영지주의가 추방된 지 2천여 년 가까이 지났고, 그 동안 로마 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신교)가 갈라져 나갔으며, 수천의 개신교 집단이 생겼지만, 영지주의는 아직도 합법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영지주의 복음서를 탐구해 보면 그들에게 친숙한 종교와는 매우 이질적인 그리스도교의 한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집정관들의 본질>, <노레아의 생각>과 같은 낯선 제목의 문서를 연구하게 되었다. 마치 영화 <스타 트랙> 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지주의는 진정한 '정신의 우주 비행' 이었다.

영지주의는 생명의 기원과 의미를 탐색했고 내면 우주의 마지막 미개척지를 대담하게 탐구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신비가였으며, 창조적인 자유 사상가였다. 그들이 문자주의자 교회의 주교들에게 왜 그토록 미움을 받았는지는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문자주의자들에게 영지주의자는 이단자였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이단자! 반영지주의 저술들---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영지주의자들이 지녔던 힘과 영향력을 반증하는 자료들---을 보면, 영지주의자들은 '토착화된' 그리스도교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즉, 주위의 이교 신앙에 오염되어 참된 신앙의 순수성을 포기한 사람들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이야말로 전통을 지켜 가는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문자주의자 주교들을 '교회를 위조한 자'라고 생각했다. 또, 문자주의자들이 갖지 못한 은밀한 그리스도교의 미스테리아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영지주의의 믿음과 실천을 탐구하면서, 문자주의자들이 한가지만은 옳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교도와 별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교도의 미스테리아를 논한 철학자들처럼 그들은 다시 육체를 부여받음(환생)을 믿었고, 여신 소피아(지혜)를 찬양했으며, 고대 그리스의 신비한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다.

영지주의자Gnostics란 '아는 자' 라는 뜻이다. 이교도 미스테리아 입문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은밀한 가르침이 영지Gnosis. 곧 직접 경험에 의거한 '신에 대한 앎'을 전하는 힘을 지녔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교도 입문자가 하나의 신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자들이 보기에 그리스도교 입문자의 목표는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가 충격을 받은 것은, 영지주의자들이 예수의 역사성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예수 이야기가 지닌 의미는, 이교도 철학자들에게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지닌 의미와 동일했다. 주 예수 이야기는 은밀하고 신비한 가르침을 암호화한 하나의 비유였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에게 주목할 만한 가능성 하나를 보여 주었다. 이교도 신화와 예수 전기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은 사실 항상 있었지만, 우리는 그 설명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비로소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수의 미스테리아 명제

로마 교회 당국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역사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한 유대인 메시아의 가르침에서 발전했으며, 영지주의는 훗날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그림이 뒤집혀서,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영지주의야말로 참된 그리스도교라면 어쩔 것인가? 정통 가톨릭 신앙이 영지주의에서 갈라져 나온 훗날의 한 분파라면? 그리고 영지주의가 유대인과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합성한 것이라면? 이러한 생각이 바로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의 출발점이었다.

대담하게 말해서, 우리 앞에 출현한 그림은 다음과 같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는 더 먼 옛날의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여 민족적 취향에 따라 각색을 했으며, 죽은 후 부활한 신인 신화의 여러 버전을 만들었다. 그 중 일부 유대인들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여 우리가 오늘날 영지주의로 알고 있는 것을 만들어 냈으며, 유대인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의 유력한 상징들을 자신들의 신화로 각색했다. 그 신화의 주인공이 바로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 godman 예수이다.

만일 이 같은 대담한 말이 사실이라면 예수 이야기는 결코 전기가 아니라, 유대인 영지주의자들의 영적 가르침을 암호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교묘히 꾸며 낸 것이 된다. 이교도 미스테리아 종교에서처럼, 영지주의의 은밀한 미스테리아에 입문하면 신화의 우의(寓意)적 의미가 밝혀지게 된다. 그런데 어쩌다가 입문을 하지 못한 자가 실수로 예수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는 바람에 문자주의 그리스도교가 탄생했을 수도 있다.

영지주의자들이 가르쳤지만 문자주의자들은 부인해 온 그리스도교의 은밀한 미스테리아에 따르면, 예수 이야기는 하나님이 지구 행성을 유일하게 한 번 방문했다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예수 이야기는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꾸며 낸 신비한 가르침일 뿐이다.

예수 이야기는 신화로서의 속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어차피 새로 발견된 영지주의 복음서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들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일 사람도 없다. 그 복음서는 당연히 신화로 보인다. 그런데 신약 <성서>의 복음서들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보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문화적 편견의 소산일 뿐이다.

신약 <성서>의 복음서들 또한 우리가 잃어버렸다가 최근에 새로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대체 누가 그 복음서를 열렬히 읽을 것인가? 또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인간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며, 물 위를 걸었고, 죽은 후 부활했다는 것을 누가 사실로 믿겠는가? 오시리스 · 디오니소스 · 아도니스 · 아티스 · 미트라스, 기타 이교도 미스테리아 신앙의 구세주 이야기는 모두 비유라고 생각하면서, 근본적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유대인식(式)으로 각색한 베들레헴의 한 목수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믿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인으로 자라 온 우리 두 사람은 수년 동안 열린 마음으로 영적 탐구를 했으면서도 감히 그런 의문을 갖는다는 것조차 위험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교리를 주입하면 아주 깊이 침투한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우리는 예수가 이교도의 신이었으며, 그리스도교는 이교 신앙의 이단적 산물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런 발언은 위험천만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명제에 따르면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들 사이의 유사성이 간명하고 우아하게 설명되었다. 이들 이야기는 발전하고 있는 신화 체계의 일부인 것이다.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는 당혹스러운 많은 질문에 답한다. 하지만 새로운 딜레마를 낳기도 한다.

예수라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증거는 정말이지 전혀 없는가?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교인으로 알려진 바울이 반 영지주의를 그토록 크게 부르짖었다는데, 영지주의가 어떻게 원래의 그리스도교 신앙일 수 있는가? 유대인처럼 근성이 강한 반이교도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믿을 만한가? 의식적으로 꾸며 낸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믿었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영지주의가 진짜 그리스도교를 대표한다면, 문자주의자들의 그리스도교가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로 세계를 장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여러 질문에 모두 만족스럽게 답해야만 우리는 그처럼 급진적인 이론을 진심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거대한 은폐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설명이 터무니없는 말로 들린다면, 그 이유는 오직 기존의 견해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구를 더욱 밀어붙이자 전통적인 그림이 완전히 해체되기 시작했다. 종교적 분파와 권력 투쟁, 위조 문서와 허위 인물들, 편집되고 추가된 편지들, 역사적 증거의 대대적인 말살의 세계에서 우리는 허우적거렸다. 결국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에만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는 추리소설 속의 범인을 알아내기 직전에 있는 탐정과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배달 착오로 알려지지 못한 고대의 정의(justice)를 밝히기 직전에 있는 것 같았다. 남아 있는 진짜 증거가 무엇인지를 몇 번이고 거듭해서 엄밀히 검증하는 동안, 우리는 로마 교회가 우리에게 물려준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진실을 총체적으로 왜곡한 것임을 알아냈다. 실제 증거에 따르면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가 전적으로 옳았다. 우리는 기만을 당해 왔으며, 영지주의야말로 원래의 그리스도교였고, 그들의 무정부적인 신비주의는 제도권 당국자들에 의해 말살되었으며 이윽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은폐 행위가 잔혹하게 자행되었다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이토록 거대한 은폐 행위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은 유세비우스(AD 263-339)라는 인물이다. 그는 AD 4세기 초에 전설을 수집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이고 날조해서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그리스도교의 초기 역사를 집필했다. 이후의 모든 역사는 유세비우스의 의심스러운 주장을 토대로 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인용할 다른 정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죄다 이단자로 낙인 찍혀서 제거되었다. 이런 식으로 4세기에 편집된 거짓 문서가 우리에게 확고한 사실로 전해 내려왔다.

유세비우스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재위 306-337)에게 고용되었다. 이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았고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를 믿는 자에게 권력을 부여해서 이교도와 영지주의자들을 말살하게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주장인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 '하나의 신, 하나의 종교'를 원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신조인 니케아 신경(信經)을 만들게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이라는 이 신조에 동의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인은 제국에서 추방되거나 침묵해야 했다.

로마 제국의 재건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이 '그리스도교인' 황제는 니케아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아내를 목졸라 죽였고 아들을 살해했다. 그는 임종할 때까지 일부러 세례를 받지 않았다. 잔혹한 행위를 계속하다가 최후의 순간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를 용서 받고 천국의 자리를 보장 받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교회 박사'인 유세비우스로 하여금 아첨으로 가득한 자기 전기를 쓰게 해서 자신을 미화시켰지만, 사실상 그는 앞서의 로마 황제와 똑같은 괴물이었다.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역사'가 로마인 폭군에게 고용된 한 사람이 지어낸 것이고, 그것이 온통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정말이지 놀라운 일 아닌가?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학자 가운데 하나인 일레인 페이절스는 이렇게 썼다.

 

역사를 쓰는 자는 승리자들이다. 그들은 제멋대로 쓴다 그러니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 설명에서 자기들은 '정통'이고 적들은 '이단'이라고 정의했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가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다고-종교적 용어로 말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었다고-선전했다. 그들은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그 함마디에서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발견됨으로써 근본적인 의문이 다시 제기되었다.

 

역사는 철저히 승리자에 의해 씌어진다. 적절한 역사를 꾸며 낸다는 것은 항상 정치적 조작을 위한 병기를 제작하는 것과 같았다. 2천여 년 후 할리우드에서 '서구가 어떻게 졌는가'가 아니라 '서구가 어떻게 이겼는가'를 말하기 위해 '카우보이와 인디언' 이야기를 꾸며 내는 것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로마 교회는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승리의 역사를 꾸며 냈다.

역사는 단순히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너무도 빈번하게 역사는 단지 현상을 정당화하고 찬양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역사는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감추는 게 많다.

받아들여진 역사에 감히 의문을 단다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다.어렸을 때부터 사실이라고 들이 왔던 이야기가, 알고 보니 날조된 허구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친절한 '우리 아저씨' 스탈린 이야기를 들으며 커 온 러시아인들이, 사실은 스탈린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탈린 정권에 반대한 사람들은 스탈린이 러시아 혁명의 수많은 영웅들을 실제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런 주장도 전혀 믿기지 않았다. 스탈린이, 심지어는 정적들의 이미지를 아예 말살시켜 버렸고 역사적 사건들을 완전히 날조했다고 주장했을 때에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실 아닌가!.

다른 모든 사람이 믿는다면 그것은 진실임에 틀림없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진실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을 감히 의심함으로써만 밝혀 질 수 있다. 너무나 널리 믿어져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도 의심해 봐야 한다.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는 그처럼 열린 정신의 산물이다.

처음 우리에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것은 터무니없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명백하고 평범해 보인다. 로마 교황청은 고대 이교도의 성지에 세워졌다. ---새로운 것은 항상 옛 것 위에 세워지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자체도 앞서 존재한 이교도의 영적 신앙을 토대로 삼고 있다. 끊이지 않은 역사적 연속체의 형태로 그리스도교가 고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비롯함으로써, 영적 아이디어가 점진적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것보다 더 그럴듯한 가정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이단적이고 충격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를 오직 역사적으로 너무나 오래, 너무나 널리 믿어온 탓이다

 

신비한 그리스도교의 재발견

퍼즐의 마지막 조각들을 끼워 맞추고 있을 때, 우리는 우연히 한 고서(古書)의 부록에 삽입된 작은 그림을 보게 되었다. AD 3세기의 부적 그림이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인물 그림인데, 누구나 그걸 보면 예수 그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 밑에는 그리스어로 '오르페우스가 바쿠스가 되었다'고 적혀 있다. 우리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라고 표기해 온 바로 그 인물인 것이다. ---이 그림이 실린 책의 저자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부적에 그려진 자는 정말 누구였을까? 십자가에 못 박힌 이교도 신격이었을까? 아니면 이교 신앙과 영지주의 그리스도교의 합체였을까?

어느 쪽이든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적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뜻밖에도 이 부적은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가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것은 예수의 이미지일 수도 있고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미스테리아 입문자에게는 둘 다 근본적으로 같은 인물에 대한 두 가지 이름일 뿐이었다.

이 부적의 '우연한' 발견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 알아낸 것들을 세상에 널리 알리라고 우주가 우리를 격려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는 신비가와 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창해 왔지만, 결국에는 항상 무시당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인정 받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쓴다는 것이 정말 걱정스러웠다. 불가피하게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의 분노를 살 텐데, 그것은 우리가 전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거짓말과 불공정한 판단에 둘러싸여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영지주의에 대한부정적인 허위 진술에 대해 다소간 분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교도 문화가 얼마나 기름진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 문화가 무도하게 파괴당했다는 것에 대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 그리스도교를 부르짖을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의 다른 저서를 읽으신 분이라면 우리의 관심사가 분열을 조장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실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모든 영적 전통의 심장부에 놓인 통일성을 인식하는 데 있으며,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초기의 문자주의자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 이야기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이야기와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예수만이 신화적 인물이 아닌 역사적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이 다른 신앙과는 반대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계속 진화하고 있는 보편적 인간의 영적 신앙의 참된 기원을 이해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스스로 부과한 고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우리는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로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그러나 이 글이 참 그리스도교에 해를 미친다고는 보지 않는다. 역으로 이 글은 우리가 이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풍요로운 그리스도교를 제시하는 것일 수 있다. 예수 이야기는 구하는 자에게 영지를 전해주는 힘을 지닌 항구적인 신화이다. 이 신화는 우리 각자를 그리스도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예수 이야기는 약 2천여 년 전에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원래 예수 이야기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교라는 영적 신앙, 곧 공개적 미스테리아를 믿는 첫 단계였다. 구하는 자가 영적으로 성숙했을 때에는 계몽된 교사로부터 미스테리아의 의미를 전수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 은밀한 미스테리아는 교리에 대한 단순한 믿음 너머에 있는 신에 대한 신비한 앎을 깨우쳐 주었다.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그리스도교 신비가들은 직관적으로 심오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교 신앙의 공개적 미스테리아만을 하나의 문화로 물려받았다. 우리는 그 형식은 지켜 오면서 내적 의미는 잃어버리고만 것이다. 이 책이 참되고 신비한 그리스도교 유산을 회복하는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바랄 게 없다.

 

 

 

2장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저 행복한 자는 복이 있도다,

신들이 마련한 미스테리아를 알고,

자신의 삶을 신성케 하며,

신비한 합일 속에서 영혼과 영혼을 결합하고,

마땅히 순수해진 의식(儀式)으로

산상 고독의 황홀경에 드는 자여,

위대한 어머니가 이르신

신비한 관례를 지키는 자여,

머리에 담쟁이덩굴을 쓰고

디오니소스를 경배하여 지팡이를 흔드는 자여.

- 에우리피데스

 

이교 신앙은 '죽은' 종교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살된' 종교이다.그냥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억압당했고 학살되었으며, 그 신전과 성소는 능욕당하고 파괴 되었으며, 위대하고 신성한 책들은 화톳불에 던져졌다. 그 고대의 신앙을 설명하는 글 한 줄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래서 이교 신앙의 세계관은 외부 문헌들과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조각 그림 맞추기와도 같다.

이교도 Pagan란 원래 시골 거주자를 경멸해서 일컫는 말이었다.그리스도교인들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고대인의 영적 신앙이 원시적인 시골의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원시적인 게 아니었다. 이교 신앙은 기자(이집트 카이로부근의 도시)의 피라미드, 파르테논의 절묘한 건축물, 그리스 조각가 피디아스(BC 약 500-432)의 전설적인 작품, 에우리피데스와 소포클레스의 강렬한 희곡 작품,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웅대한 철학과는 또 다른 장엄함을 고취시키는 영적 신앙이었다.

이교도 문명은 거대한 도서관들을 세웠다. 그 도서관에는 문학과 과학의 천재성이 발휘된 수많은 작품이 담겨 있었다. 당시의 자연철학자들은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했다고 추론했다. 천문학자들은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다른 여러 행성과 더불어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지구 둘레의 근사치를 계산해내기까지 했다.

고대 이교도 세계의 인구 수는 18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유럽에 살고 있는 인구수 보다도 많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교도 문화는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합리적 철학, 공공 도서관, 극장, 올림픽 게임을 탄생시켜서 우리의 현대 세계를 위한 청사진을 창조해 냈다. 이토록 기념비적인 문화적 성취를 고취시킨 영적 신앙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교 신앙이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헤시오도스(BC 8세기)와 호메로스(영어식으로는 호머)가 기록한 올림포스 신들의 신화나 조악한 마법을 연상한다.

사실 이교도의 영적 신앙은 양자를 모두 포함한다. 시골 사람들은 전통적인 샤머니즘에 따라 자연을 숭배하며 대지가 계속 비옥하기를 기원했고 도시 당국자들은 공식적인 국교를 장려했다. 올림포스의 신들을 숭배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장려된 종교(국교)였는데,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정치권의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샤머니즘과 국교 외에 세 번째로 이교도의 좀더 신비한 정신을 표현하는 신앙이 있었다. 그것은 고대세계의 위대한 정신을 고취시켰다. 사상가, 예술가, 낡은 것의 혁신자 등은 미스테리아로 알려진 다양한 종교의 입문자들이었다.

주목할 만한 이 사람들은 미스테리아가 그들 문화의 심장이자 영혼이라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조시모스는 '신성한 미스테리아는 모든 인종을 포용했다'는 이유에서 미스테리아가 없으면 '그리스인들의 삶은 유지될 수 없을 것' 이라고 썼다. 또 유명한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했다.

 

이들 미스테리아는 조악한 야만성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서 세련되고 계발된 문명을 일구게 했다. 미스테리아의 여러 의식은 '입문식initiations' 이라고 불리며, 우리는 진실로 이를 통해 삶의 최초 원리를 배웠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더 나은 희망을 안고 죽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어 왔다.(조지프 캠벨의 <법에 관하여 0n the Laws>에서 재인용)

 

사회적 응집력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공식 국교의 전통 의식과 달리 미스테리아 신앙은 개인적 계몽과 신비한 비전을 제공하는 개인적 형태의 영적 신앙이었다. 입문자는 비밀 입문식 절차를 거쳤고, 이 절차는 의식의 상태를 심오하게 탈바꿈시켰다.

그리스의 서정 시인 핀다로스는 미스테리아 입문자가 '신이 부여한 삶의 시작과 끝을 안다'고 말했다. 로마의 시인 철학자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는 자신의 입문 경험이 영적 신생이었다면서, 그날을 생일로 삼았다. 그 경험에 대해 그는 '갚을 길이 없는 감사의 빗'을 졌다고 생각했다.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비전을 보며, 진정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테리아의 세계에 입문했다. 우리는 순결한 상태에서 의식을 거행했다. 고요하고, 행복하고, 단순하고, 영원한 비전, 순수한 빛을 내뿜는 찬란한 비전들을 보았다.(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파이드로스>)

 

위대한 이교도 철학자들은 계몽된 미스테리아의 스승들이었다. 오늘날에는 흔히 메마른 학구적 지성인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들은 사실상 수수께끼 같은 구루(영적 지도자)들이었다. 엠페도클레스는 피타고라스와 마찬가지로 기적을 일으키는 자였다. 소크라테스 또한 별난 신비가였다. 그는 홀연히 황홀경에 빠져서 몇 시간씩 허공을 물끄러미 응시하곤 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입법가가 되어 달라는 에페소스 시민들의 부탁을 받았지만 한마디로 거절해 버리고 계속 신전에서 아이들과 놀며 지냈다. 아낙사고라스는 '더욱 지고한 철학'에 평생을 바치기 위해 자신의 농장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보통의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디오게네스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신전 입구에 있는 항아리 안에서 살았다. 영감을 받은 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외딴 동굴에서 고독하게 살며 그의 최고 걸작을 집필했다.

이 모든 특이한 현자들은 미스테리아의 신비주의에 심취해 있었고, 철학을 통해 신비주의를 표현했다. 플라톤의 제자인 올림피오도루스의 말에 따르면 플라톤은 미스테리아를 항상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저술은 고대에도 너무나 난해하고 불가해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디오게네스는 그처럼 불가해한것이 미스테리아 입문자에게는 수정처럼 투명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헤라클레이토스를 연구한 그는 이렇게 썼다.

 

어둠으로 가득 찬 그의 길을 뒤따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입문자가 그대를 안내한다면, 그의 길은 태양 빛보다 더 밝아진다.

 

이교도 철학의 핵심에는 모든 것이 하나0ne라는 깨달음이 놓여있다. 미스테리아는 입문자의 내면에서 이 하나됨의 숭고한 체험이 일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로마의 역사가 살루스티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입문식은 우리가 그 미스테리아의 세계 그리고 신성과 하나됨을 목표로 한다'. 이집트 태생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는 개별 자아로서의 한계를 초월한 입문자가 신비하게 신과 합일하는 체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떤 신god에게 사로잡힌 듯, 혹은 신들린 듯한 상태에서 그는 결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의 존재에 집착함이 없고, 자아로 법석거림도 없는 고요 속에서 고독에 도달하며, 완전한 휴식 상태에 들어서서 휴식 자체가 된다. 그는 이미지가 아닌 신성 자체와 대화를 한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관조의 한 방식이다.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초월이고, 자아의 단순화와 자아의 항복이며, 하나됨의 열망이다. 이 고요와 명상은 탈바꿈을 지향한다. 누구라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보는 자는 신God과 닮은 상태에 도달했다. 그는 자아를 포기하고 여행의 목적을 발견한다.

 

'미스테리아 홀에서 나온 나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입문자 소파트로스가 시적으로 이렇게 노래한 것은 전혀 이상할 개 없다

 

엘레우시스에서의 신성한 장관

그와 같은 경외감과 진심 어린 감회를 고취시키는 고대 미스테리아는 정작 무엇이었을까? 미스테리아 신앙은 수천 년 동안 계속 이어져, 여러 형태로 고대세계 전역에 펴졌다. 더러는 광란적이었고, 더러는 명상적이었다. 더러는 동물 희생제 형태를 띠었고, 더러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지켰다.

역사상 어떤 순간에는 미스테리아 의식이 전체 인구가 참여한 공개적 의식이 되었고 국가 권력에 의해 장려되거나, 적어도 관용이 된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어떤 시대에는 비동조적인 권력자의 박해가 두려워 규모가 작아지고 은밀해졌다. 그러나 이런 모든 미스테리아의 핵심에는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의 신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엘레우시스에서 거행된 고대 그리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은 위대한 어머니 여신을 기렸는데, 모든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는 디오니소스 신인이었다. 성소인 엘레우시스는 AD 396년에 광신적인 그리스도교 수도사 무리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이런 잔혹한 행위가 있기까지 엘레우시스에서는 11세기 이상 미스테리아 의식을 치러 왔다. 절정기에는 당시 알려진 세게 모든 곳에서 입문식을 치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 노예와 황제, 심지어 인도의 브라만 사제들까지도 참여했다.

해마다 약 3만 명의 아테네 시민들은 디오니소스의 가을 미스테리아 의식을 치르기 위해, 해변에 있는 엘레우시스 성소까지 맨발로 30킬로미터에 이르는 순례 행진을 했다. 이 중요한 종교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그들은 며칠 동안 금식을 하고, 희생물을 바치고, 정화의식을 치렀을 것이다.

엘레우시스까지의 '신성한 길'에서는 열광적인 음악이 울려 퍼졌다. 입문하려는 자들이 춤을 추며 걸을 때,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그들을 욕하며 모욕을 주었고, 더러는 지팡이로 때리기까지 했다. 선두에서는 디오니소스상(像)을 실어 나르며 행렬을 이끌었다. 바다에서 나체 목욕 등의 정화 의식을 치른 후, 군중들은 거대한 입문식 홀인 텔레스테리온Telestrion의 대문 앞에 이르렀다. 이미 입문식을 치른 사람과 이제 비로소 은밀한 미스테리아에 입문하게 될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대문 뒤에서는 어떤 의식이 치러졌을까? 고대세계의 위대한 철학자, 예술가, 정치가, 과학자들을 그토록 깊이 감동시킨 경외로운 의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모든 입문자는 비밀 서약을 했다. 그들은 미스테리아가 너무나 신성해서 서약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많은 암시와 단서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극적이고 장엄한 광경을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현란한 빛을 보았고 놀라운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거대한 불길 속에서 목욕을 했고, 위력적인 종소리의 진동에 몸을 떨고 말았다. '히에로판테스Hierophantes(신성한 환상이라는 뜻, 미스테리아 의식의 진행자이자 비의[秘義]해설자 : 옮긴이 주)' 라고 불린 미스테리아의 제사장은 말 그대로 쇼를 연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성한 신화를 소름 끼치도록 극적으로 재연했다. 또한 그는 몸소 핵심 인물인 신인 디오니소스로 분장했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썼다.

 

따라서 미스테리아 의식은 곧 한 편의 신성한 드라마였다. 소수의 선택된 관객이 경외의 눈길로 지켜보는 동안 갈등과 고통, 수호신의 승리, 자연의 산고(産苦) 이야기가 전개되고, 결국에는 삶이 죽음을 이기고 고통 속에서 기쁨이 탄생한다. 미스테리아의 모든 의식은 특히 정서적 삶을 자극하고자 했다. 이 수난극에서는 자극을 주어 주의를 끌 목적으로 정서를 자극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러기 위해 먼저 강렬한 정신적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금욕 기간을 두고, 침묵을 지키게 하고, 행렬을 시키고, 공들여 장관을 연출하고, 크고 격렬하거나 부드럽고 황홀한 음악을 연주하고, 춤에 몰입하게 하고, 알코올 음료를 마시게 하고, 육체를 수척하게 하고, 짙은 어둠과 현란한 빛을 교차시키고, 휘황찬란한 복장들을 착용하고, 신성한 휘장을 다루고, 히에로판테스의 쇼를 연출함으로써 정신적 기대감은 고조되었다. 이 밖에도 은밀하게 정서를 고양시키는 수많은 방법이 사용됐다.

 

디오니소스 신화를 이런 드라마로 만든 것은 비극 작품과 극장의 시초가 되었다. 그러나 입문자들은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었다. 죽어서 부활한 신인이 입문자 각각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신인과 수난을 함께하는 참여자였다. 이 신화의 현대 권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디오니소스는 가장 복된 황홀경의 신이었고, 가장 황홀한 사랑의 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 박해 받은 신이었고, 고통을 당하다 죽은 신이었다. 그가 사랑한 모든자, 그를 섬긴 모든 자들은 비극적 운명을 그와 함께해야 했다.

 

경외로운 디오니소스 비극을 목격하면서, 엘레우시스에서의 입문자들은 상징적으로 디오니소스와 함께 수난을 당한 뒤 죽어서 부활했고, 그럼으로써 '카타르시스'라고 알려진 영적 정화를 체험했다.

이 미스테리아는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교리를 제시한 게 아니라 안으로 뛰어들어서 동참해야 할 신화를 제시했다. 입문식은 뭔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각성 상태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이교도 제사장이었던 플루타르코스는 입문자들이 자신이 획득한 믿음의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이렇게 주장했다. '입문자는 어떤 것도 배울 필요가 없다. 다만 강한 인상을 받고 어떤 정신의 기틀을 세우면 된다'. 철학자 프로클루스는 미스테리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입문자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방식으로 신적인 의식(의식)에 영혼이 공명함으로써, 더러는 신성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더러는 신성한 상징과 동화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신들과 어우러지며 신들림을 체험한다'.

그런데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연극으로 공연된 신화가 그토록 큰 효력을 지녔던 이유는 무엇일까?

 

암호화된 은밀한 가르침

고대에 신화mythos라는 말은 오늘날과 달리 '비사실적인' 어떤 것을 뜻하지 않았다. 피상적으로 보면 신화는 즐거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입문자에게 신화는 심오한 영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 신성한 암호였다. 플라톤은 이렇게 평했다. '우리를 위해 입문식을 설정한자들 또한 바보가 아니어서, 그들의 가르침에는 감춰진 의미가 있다'. 플라톤은 또 '참된 철학에 삶을 바친 자'야 말로 미스테리아 신화의 암호화된 '감춰진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신비한 깨달음의 체험을 통해 신인과 완전히 일체가 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고대 철학자들은 미스테리아 신화가 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철학자들은 충분히 현명해서, 미스테리아의 핵심에 자리잡은 심오하고 신비한 철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기 위한 것이 바로 신화라는 정도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살루스티우스는 이렇게 썼다.

 

모든 사람에게 신들의 진실을 가르치고자 하면 바보들은 배울 수가 없어서 철학을 싫어하게 되고, 잘 배우는 자는 게을러지게 된다. 반면에 신화 속에 진실을 숨겨 놓으면 바보는 철학을 싫어하지 않게 되고, 잘 배우는 자는 열심히 연구하게 된다.

 

미스테리아 신화 속에 감춰진 영적 의미의 심연을 파헤치는 것이 미스테리아 철학자와 사제들의 역할이었다. 사제였던 헬리오도루스는 이렇게 풀이했다.

 

철학자와 신학자는 이들 신화 속에 감춰진 의미를 보통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화의 형태로 초보적인 가르침을 줄 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미스테리아에 도달한 자들은 은밀한 성소에서, 강렬한 진리의 횃불에 투사된 빛 속에서 입문식을 거치며 명료한 앎을 얻게 된다.

 

입문식은 여러 수준으로 나뉘어 있어서, 입문자는 단계별로 점점 더 심화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다. 입문식은 여러 미스테리아 전통에 따라 수준이 다양했지만 어떤 입문자든 반드시 공개적 미스테리아에서 시작하여 은밀한 미스테리아로 넘어갔다.

공개적 미스테리아에서는 신화가 종교적인 이야기라고 피상적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은밀한 미스테리아를 거치면 신화가 영적 비유로 이해되었다. 먼저 입문자는 의식을 통해 정화되었다. 그런 다음 1 대 1로 은밀한 가르침을 배웠다. 입문자가 여러 가르침의 참 뜻을 이해하게 되면 최고 단계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스미르나(현재의 터키 서쪽 항구)의 테온(4세기 후반의 천문학자 겸 수학자)이 '신과의 우호와 내적 교섭' 이라고 부른 것을 체험하게 된다.

 

국제적인 미스테리아

미스테리아는 이교도 세계를 지배했다. 고대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유적에서 디오니소스만큼 많이 나타나는 신격은 없다. 그는 여러 이름을 가진 신격이었다. 이아코스, 바사레우스, 브로미오스, 에우이오스, 사바지우스, 자그레우스, 이히오네우스, 레나이오스, 엘레우테레우스 등 다른 수많은 이름이 모두 그를 가리킨다. ---고대 그리스에서만 쓰인 이름이 그렇게 많다! 디오니소스 신인은 고대 지중해 전역에 널리 알려진 신화적 인물이었지만,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예수가 탄생하기 5세기 전에, '역사의 아버지'로 알려진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고대 이집트를 여행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나일강 삼각주의 어느 신성한 모래톱에서 그는 대규모 축제를 목격했다. 해마다 열린 그 축제에서 이집트인들은 '수만 명의 남녀'가 보는 가운데,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을 재현하는 연극 공연을 했다.

헤로도토스는 고대 그리스 미스테리아의 입문자였다. 그래서 그는 '오시리스 수난극'이 엘레우시스에서의 입문자들이 지켜본 디오니소스 수난극과 똑같다는 것을 알아들 수 있었다(헤로도토스의 <역사> 제2권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 호수에서 이집트인들은 밤중에 그들이 미스테리아라고 부르는 누군가의 수난극을 공연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리스의 모든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처럼 헤로도토스는 그것을 비밀에 부치겠다고 엄숙히 맹세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집트에서 똑같은 의식이 공개적으로 공연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역사>에서 흔히 다른 입문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고의로 웅변적인 침묵을 유지한다. 그처럼 선택된 소수만을 위해 엄격히 비밀리에 공연된 드라마가 이집트에서 공공연히 공연되는 것을 보고 그는 놀랐음에 틀림없다. 그는 은밀한 어조로 이렇게 썼다.'그 공연의 모든 세부 내용을 나는 환히 알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 저자주).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는 미스테리아 신인에 대한 최초의 신화이며, 선사 시대까지 소급되는 것이다. 오시리스 이야기는 너무나 오래된 것이어서 4천500여 년 전에 기록된 피라미드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헤로도토스는 또 다른 위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선례를 따랐다. BC 670년 이전의 고대 이집트는 폐쇄적인 나라였다. 그러나 바로 그 해에 고대 이집트는 국경을 개방했다. 이때 고대의 지혜를 찾아 그곳으로 여행한 최초의 그리스인 가운데 1명이 바로 피타고라스였다. 역사적으로 피타고라스는 서구 최초의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고대 이집트에서 고대 그리스로 수많은 수학 이론을 수입해 온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당대인들에게 그는 현대적 의미의 과학자와는 사뭇 다른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희고 헐렁한 의상을 걸치고 황금 화관을 쓴 채 방랑하는 현자였던 피타고라스는 카리스마를 지닌 사제였으며 , 과학자였고, 마법사였다. 그는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 22년을 보내며, 고대 이집트의 미스테리아 입문자가 되었다. 그리스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자기가 배운 지혜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기적을 행했으며, 죽은 자를 일으켜 세웠고 예언을 했다.

피타고라스에게 감화된 제자들은 이집트의 미스테리아를 모델로 한 그리스의 미스테리아를 만들었다. 그들은 토착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를 선택했다. 디오니소스는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무시한 작은 신이었다. 그들은 디오니소스를 이집트의 막강한 오시리스에 필적하는 신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것은 아테네를 문명 세계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킨 종교 문화적 혁명의 시작이었다.

피타고라스 추종자들은 미덕과 배움의 모범을 보였고 이웃 사람들에게 금욕주의자로 간주되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던 그들은 모든 생물에 대한 비폭력을 가르쳤고, 동물을 죽여서 제사 지내는 신전 의식을 멀리했다. 그래서 그들은 올림포스의 신들을 받드는 아테네 전통 종교에 참여할 수 없었다.

도시 외곽에서만 살도록 강요된 그들은 공동체를 형성해서 모든 소유물을 공유했고 자유롭게 살면서 수학과 음악, 천문학, 철학에 대한 신비한 연구에 몸을 바쳤다. 그런데도 미스테리아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 급속히 전파되었고 몇 세대 지나지 않아서 이집트 오시리스의 미스테리아, 곧 디오니소스의 미스테리아는 아테네의 영광을 드높이게 되었다.

오시리스가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토착신인 디오니소스와 합성되어 그리스의 미스테리아가 태어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지중해 문화권에서도 미스테리아가 유입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토착신 가운데 하나를 탈바꿈시켜, 죽었다가 부활한 미스테리아 신인으로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오시리스로 알려진 이 신인은 고대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가 되었고,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쿠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 등등이 되었다.

이처럼 형태는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신인들은 동일한 존재였다('오시리스는 곧 디오니소스' 라고 헤로도토스는 기술했다. 디오도루스와 플루타르코스의 저술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 저자 주).

고대인들은 다양한 미스테리아 신인들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신화적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신화와 서로 다른 의식의 요소들이 끊임없이 넘나들며 결합하고 재결합해서 새로운 형태의 미스테리아가 만들어졌다. 예컨대 알렉산드리아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티모테오스라는 현자는 의식적으로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를 합성해서 세라피스라는 새로운 신인을 만들었다. 그는 또 미스테리아 신인인 아티스의 신화를 자세히 해설하기도 했다.

로마의 저술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는 페르시아의 신인 미트라스의 이름을 딴 한 사제를 통해 이집트 미스테리아 입문식을 치렀다. 로마의 동전에는 한 면에 디오니소스가 새겨졌고 다른 면에는 미트라스가 새겨졌다. 이 신화의 현대 권위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비밀 의식들에 대해 알게 된' 미스테리아 입문자는 '유행하는 다른 어떤 신앙에도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훗날 그리스도교가 그랬던 것처럼 미스테리아도 국경을 넘어 전파되어 인종과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적합한 영적 신앙으로 자리잡았다. 디오게네스와 소크라테스 등 BC 5세기의 철학자들은 스스로를 특정 국가나 특정 문화의 사람이 아닌 '세계인' --세계시민--이라고 일컬었다. 이러한 사실은 미스테리아의 국제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 준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여러 미스테리아 전통들의 합병과 결합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러한 현상은 민족이 다르면 신들도 다르다는 유치한 개념에서 탈피하여 모든 민족, 모든 지방의 신들은 다만 하나의 위대한 힘Power의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쪽으로 서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등의 종교가 일어남으로써, 그리스-로마의 모든 신들이 끊임없이 디오니소스로 합병되었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예수 그리스도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그처럼 세계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이 신인이 각 입문자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전인적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미스테리아 신인의 우의적 신화를 이해함으로써 입문자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처럼 그들 또한 '육체를 가진 신'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물질적 육체 안에 갇힌 불멸의 영혼이기도 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죽음을 공유함으로써 입문자들은 상징적으로 '죽었다' . 또한 부활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은 영적으로 재생했고 영원하고 신성한 실체를 체험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은밀한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을 위해 암호화 되었고, 입문자들은 그 진리를 스스로 직접 체험했던 것이다.

영국 박물관의 골동품들을 지키고 있는 월리스 버지 경은 고대 이집트의 미스테리아 신인 오시리스에 대해 쓴 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시기의 고대 이집트인들은 다음과 같이 믿었다. 오시리스는 신격을 지녔으며, 악의 수중에 사로잡혀서 수난을 당하다 죽었고, 악의 세력들과 위대한 투쟁을 벌인 후 다시 부활했으며, 그 후 지하세계의 왕이 되어 죽은 자를 심판하게 되었다. 그가 죽음을 정복했기 때문에 의로운 자 또한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오시리스는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었다. 모든 시기의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오시리스는 인간의 질병과 죽음을 동정할 수 있는 존재를 상징했다. ---한 인간으로서 수난을 당하고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시리스가 인격을 가졌다는 개념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열망을 만족시켰다. 부분적으로 신이지만, 인간과 많은 공통점을 지닌 존재와의 교섭을 열망했기 때문이다. 원래 고대 이집트인들은 오시리스를 한 인간으로 우러러보았다. 오시리스가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살고 먹고 마시고 죽음의 고통을 당한 인간이면서도, 어떤 신들의 도움으로 죽음을 이겨내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인간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시리스가 한 일은 그들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모든 미스테리아 신인들의 신화를 특징짓는 핵심 테마이다. 버지 경이 오시리스에 대해 말한 것은 디오니소스와 아티스, 아도니스, 미트라스 등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 신인들과 마찬가지로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마찬가지로 예수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부활의 신이다. 예수 또한 신성한 수난의 공유를 통한 영적 재생을 신도들에게 약속한다.

 

결론

미스테리아는 고대세계에서 분명 지극히 위력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발견한 것들을 정리해 보자.

 

이교도의 미스테리아는 고대세계의 위대한 정신을 고취시켰다.

고대 지중해 세계의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여러 형태의 미스테리아 의식이 거행되었다.

미스테리아는 공개적 미스테리아와 은밀한 미스테리아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개적 미스테리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었고, 은밀한 미스테리아는 강력하고 신비한 입문식을 치른 자에게만 알려졌다.

미스테리아의 핵심에는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신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은밀한 미스테리아 입문자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영적 가르침을 암호화한 영적 비유임을 깨달았다.

 

우리의 호기심을 강하게 끄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예수의 전기로 전해진 것은 정말 미스테리아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인가? 여러 이교도 미스테리아 신인들과 달리, 전통적으로 예수는 신화적 인물이 아닌 역사적 인물로 여겨졌다. 즉, 문자 그대로 신의 화신인 인간이었고, 수난을 당하다 죽은 후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부활한 역사적 존재로 여겨 겼다. 그러나 예수 이야기의 이런 요소들은 정말 이교도 미스테리아에서 물려받은 것일까?

우리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더욱 정밀히 연구해서, 예수이야기와 유사한 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설마 그토록 많은 유사점이 드러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3장 악마의 모방

 

 

그리스도가 도래할 것이며 인간에 속하는 죄인으로서 불의 처형을 당하리라는 것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미리 들었으므로, 사악한 악령들은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자들을 미리 만들어 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이, 시인들의 말과 마찬가지로 단지 경이로운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인간들에게 미리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순교자 유스티누스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예수 그리스도 전기 사이의 놀랄 만한 유사성이 오늘날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AD 첫 몇 세기 동안에는 그 유사성이 이교도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교도 철학자이자 풍자가인 켈수스는 예수 이야기가

사실은 이교도 신화의 저급한 모방일 뿐인데도 그리스도교인들이 그것을 새로운 계시인 양 유포시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그 특수한 사건들이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지상에서 유일무이한 사건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유일무이하단 말인가? 우리의 것은 왜 신화로 여겨져야 하고, 그들의 것은 왜 사실로 믿어져야 한단 말인가? 그리스도교인들은 무슨 근거로 자신들의 믿음에 특수성을 부여하는가? 사실 그리스도교인들이 믿는 것에는 특수한 것이 전혀 없다. ---그들에게 특수한 것이 있다면, 더욱 폭넓은 신에 대한 진리를 모두 배제해 버린 채 신을 믿는다는 점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이러한 비난이 너무나 통렬했다. 그리스도교보다 수백 년은 앞선 이교도 신화가 어떻게 하나이며 유일한 구원자 예수의 전기와 그토록 공통점이 많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을 필사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교부(敎父)들은 앞에서 말한 가장 터무니없는 이론들 가운데 하나에 호소했다.

AD 2세기의 순교자 유스티누스 시대부터 그들은 악마가 사람들을 호도하기 위해서 예언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표절했다고 선언했다! 하나님의 진짜 아들이 문자 그대로 도래해서 지상을 거닐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악마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그의 생애 이야기를 베껴서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미트라스 미스테리아를 만든 악마의 모방에 대해 이렇게 썼다.

 

진실을 곡해하는 것을 일삼는 악마는 성사(聖事)의 정확한 전말을 흉내 낸다. 악마는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고, 성수(聖水)로 인해 죄가 용서된다고 약속하며, 신도들을 미트라스 의식에 입문시킨다. 그래서 악마는 성찬 봉헌식을 행하며 부활의 상징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신성한 것들을 흉내 내는 악마의 간교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스테리아 신화를 연구해 보면, 이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이런 해명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이유가 여실히 드러난다. 예수의 이야기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이교도 신화는 하나도 없지만, 유대인 신인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신화적 주제들은 이미 수세기 전에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위대한 예언자들의 여러 이야기 속에 다 들어 있었다. 이제 예수의 전기를 훑어보고 너무나 닮은 점들을 일부 살펴보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God의 독생자'라는 그리스도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러 형태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찬양되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와 동격이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아들, 본질적으로 가장 무서우면서도 인간에게는 가장 자애로운 신'이다. 예수는 '참다운 신 중의 참다운 신Very God of Very God'이다.(니케아 신경) 디오니소스는 날 때부터 신중의 주인인 신'이다.

예수는 인간의 모습을 띤 신이다. 요한은 예수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썼다(요한복음 1:14). 바울의 말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냈다' (로마서8:3). 디오니소스는 바쿠스로도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인 <바카이Bacchae>의 주인공은 디오니소스인데, 이 희곡에서 디오니소스는 '죽어야 할 육체 속에' 자신의 '신격'을 감춘 것은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들에게 현시'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는 사도들에게 말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불멸의 형태를 변화시켜 인간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예수와 마찬가지로 여러 신화에서 이교도 신인은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 처녀(동정녀)에게서 태어난다. 소아시아에서 아티스의 어머니는 동정녀 키벨레이다. 시리아에서 아도니스의 동정녀 어머니는 미르Myrh(몰약)라고 불린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아이온은 동정녀 코레에게서 태어난다. 고대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는 동정녀 세멜레에게서 태어난다. 세멜레는 전성기 때의 모습을 한 제우스를 만나고자 했다가 불가사의하게 번갯불에 의해 임신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비 정통 문헌에 따르면 예수는 마리아의 자궁에서 오직 일곱 달만 보냈다. 이교도 역사가 디오도루스(BC 80-20)의 기록에 따르면,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 역시 오직 일곱 달만 수태를 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예수의 동정녀 잉태와 이교도 신화 사이의 유사성을 인정하며 이렇게 썼다.

 

우리를 위하여 말씀Word이 예수 그리스도로 태어나실 때, 성적 결함이 없었다는 얘기는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자들 또한 그러했다는 얘기와 전혀 다른 데가 없다

 

고대 미스테리아의 고향인 고대 이집트보다 '하나님의 아들' 신화가 발달한 곳은 없었다. 그리스도교인인 락탄티우스조차도 전설적인 고대 이집트의 현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그 아들에 대해 모든 것을 말했다는 점에서, 그는 어느 정도 진리에 도달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수천 년 동안 오시리스 신인의 화신으로 여겨졌고 하나님의 아들로 찬양되었다. 저명한 이집트 학자는 이렇게 썼다.

 

모든 파라오는 그의 나라와 백성들에게 신의 화신이자 다산의 수여자이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어머니여야 했다,

 

여러 전설에서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예언자들 또한 구세주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것으로 묘사되었다. 피타고라스는 아폴론의 아들이자 파르테니스Parthenis라는 여자로 일컬어졌다. 파르테니스는 '동정녀'를 뜻하는 파르테노스Parthenos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플라톤 또한 사후에 아폴론의 아들로 신봉되었다.

필로스트라투스는 아폴로니오스 전기에서 이렇게 기술했다.---이 위대한 이교도 현자는 제우스의 아들로 간주되었다고 엠페도클레스는 혼란에 빠진 인간들을 돕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온 신인이자 구세주로 여겨졌다. 그는 광인처럼 되어서 '사람들에게 이 속세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원래의 장엄하고 숭고한 세계로 돌아가라고 목청껏 외쳤다'.

로마 황제들조차도 정치적 이유에서 미스테리아의 신화적 주제를 차용했다. 황제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연관될 수 있도록, 황제가 신적인 본질을 지녔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개인의 불멸성을 믿지 않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조차도 '신의 화신이자 인간 생명의 공동 구원자`로 불렸다. 그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도 마찬가지로) '세계 인종의 구원자'로 불렸다. 폭군 네로조차도 제단에서는 '영원한 구원자 하나님'으로 불렸다.

BC 40년에 로마의 시인이자 입문자인 베르길리우스는 미스테리아 신화를 묘사하며, 동정녀가 하나님의 아이를 낳을 거라는 예언을 기술했다. AD 4세기에 문자주의자 그리스도교인들은 그것이 예수의 도래를 예언한 거라고 주장했지만, 당시에 이 신화는 아우구스투스를 언급한 것으로 해석 되었다. '아폴론의 아들'로 일컬어진 아우구스투스는 지상을 다스려서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도록 명해진 자였다. 아우구스투스 전기를 쓴 수에토니우스는 이 황제의 신적 본성을 가리키는 다수의 '징조signs' 를 제시했다. 현대의 한 신화의 권위자는 이렇게 썼다

 

이 징조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복음서의 이야기와 현저하게 닮은 점이 많다. 전혀 있음 직한 일이 아닌데도 로마의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가리키는 징조 때문에, 로마 원로원은 아우구스투스가 태어난 해에 로마에서 남자아이 양육을 금지하는 명을 내렸다. 무고한 이 학살의 정점에는 수태고지(受胎告知)라는 게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어머니 아티아는 아폴론 신전을 방문했을 때, 아폴론이 뱀의 모습으로 찾아온 꿈을 꾸었다. 그리고 아홉 달 후 아우구스투스가 태어났다.

 

예수가 살았던 것으로 간주되는 시대에 새겨진 한 비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날 대지는 전혀 새로운 모습을 띠었다. 그가 지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계는 이미 멸망했으리라. 이 탄생의 날에 생명의 시작을 인지한 자의 판단은 정녕 옳았도다. 이제 인간들이 탄생을 슬퍼하던 시대는 끝났다. 모두에게 축복 가득한 이 탄생의 날로부터 모든 개인과 사회가 축복을 받았으니, 다른 어느 날도 이날로부터의 축복을 능가하진 못하리라.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우리와 다음 세대들을 위한 구원자로 그를 임명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온갖 능력을 부여 하셨도다. 그는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며, 온갖 값진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의 도래와 더불어 우리 조상들의 소망은 성취되느니, 그의 선행은 과거 어느 때의 선행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훌륭한 자는 다시 도래할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탄생일에 온 세상은 기쁨의 물결로 넘실거렸느니, 이 기쁨의 물결은 그에게서 샘솟는 도다. 그의 탄생일로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도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그리스도교인이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말이 아니다. 미스테리아 신인을 찬미하는 말도 아니다. 바로 아우구스투스를 기리는 말인 것이다. BC 1세기 무렵에는 이러한 신화적 주제가 분명 너무나 흔한 것이어서, 살아 있는 황제의 전설을 날조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에도 이런 주제가 사용되었다.

켈수스는 신의 혈통과 기적적인 탄생 운운하는 유사한 전설적 인물들 다수를 열거한 후, 그리스도교인들이 '예수의 동정녀 잉태 이야기를 날조할 때' 분명 이러한 이교도 신화를 차용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해석한 그리스도교인들을 비아냥거리며 하나님이 인간 여자를, 말 그대로 잉태시켜 아들을 낳게 할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생각은 명백히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그는 단정했다.

 

탄생

그리스도교인들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스테리아 입문자들도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탄생을 축하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하나님의 경이적인 아기이며, 신성한 비밀Mystery'이었고, '기적적으로 탄생한 존재' 였다. 교부(敎父) 히폴리토스는 엘레우시스에서의 미스테리아 드라마 연출자인 히에로판테스처럼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로 신성한 탄생을 선언한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썼다.

 

엘레우시스의 신비한 아기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즉, 이들 고대인들은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신성한 교리를 스스로 만를었고, 밤중에 이렇게 외쳤다. '신성한 아기가 태어나 우리에게 온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온다.'

 

오시리스의 탄생에 대해 이렇게 선포되기도 했다. '온 땅의 주께서 태어나신다'. 고대 이집트의 찬송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 신성한 사람의 아기여, 지상의 왕이며, 지하 세계의 왕자여'. 고대 이집트 시 한 편 가운데 그리스도교 찬송가를 연상시키는 것이 있다.

 

그분이 태어나셨네! 그분이 나셨네! 어서 와서 찬미하라!

생명을 주시는 어머니들, 그분을 잉태한 어머니들이여,

새벽을 밝히는 하늘의 별들이여

아침의 별, 오, 그 조상들이여

여자들과 남자들이여, 어서 와서 찬미하라!

아기가 밤에 나셨네.

 

그분이 태어나셨네! 그분이 나셨네! 어서 와서 찬미하라!

다우트(지하세계)에 사는 자들이여, 기뻐하라

하늘의 신들이여, 가까이 와서 그분을 보라

지상의 인간들이여, 어서 와서 찬미하라!

그분 앞에서 절하고,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어라

왕이 밤에 나셨네.

 

그분이 태어나셨네! 그분이 나셨네! 어서 와서 찬미하라!

빛나며 변하는 달님처럼 어리네

하늘 위로 그분의 발자취가 퍼지네

별들은 쉬지 않고 별들은 지지 않네

 

하나님이 몸소 잉태시킨 아기를 경배하라!

하늘과 땅이여, 어서 와서 찬미하라!

그분 앞에서 절하고, 그분 앞에서 무릎을 끓어라!

그분을 경배하고 찬미하라 그분 앞에 엎드려라!

신God이 밤에 나셨네.

 

예수는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났다.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는 성스러운 아기를 낳게 될 신성한 결혼식이 보우콜리온boukolion, 곧 '황소 외양간'에서 치러졌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보통 '외양간stable' 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카탈렘나Katalemna인데, 이것은 원래 임시 움막이나 동굴을 뜻하는 말이다. 널리 퍼진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예수는 동굴에서 태어났다.

고대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즉, 동굴이란 어머니 대지의 자궁이다. 고대세계 도처에 퍼진 디오니소스의 또 다른 이름인 판pan신은 동굴을 신성시했다. 페르시아의 신인 미트라스도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제우(신화상[上]의 디오니소스의 아버지)도 크레타 섬의 한 동굴에서 태어났다. 오르페우스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 또한 동굴에서 태어났고, 그 동굴에서 곧바로 '세계의 왕'으로 옹립되었다.

아기 예수는 '동방박사 3명'과 양치기 3명의 방문을 받았다. 복음서의 '동방박사'는 실제로 마기Magi라고 불렸는데, 마기는 페르시아의 미트라스를 섬기는 사제였다. 미트라스의 탄생 축일은 12월 25일이다. ---예수의 성탄일과 정확히 똑같다. 미트라스 또한 3명의 양치기가 탄생을 목격했다고 한다!

마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가져왔다. 이교도 현자인 엠페도클레스는 신을 경배할 때 '순수한 몰약과 유향을 드리고, 황금빛 꿀 음료를 땅에 뿌렸다'고 말했다. 몰약은 아도니스 축제일에 신성한 방향제로 쓰였다. 일부 신화에서는 아도니스가 몰약나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또 아도니스의 어머니 이름이 몰약Myrrh이었다는 신화도 있다.

예수는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베들레헴Bethlehem이라는 말은 '빵집'이라는 뜻이다. AD 4세기경에 라틴어역 <성서>를 완성한 성 제롬은 흥미로운 사실을 언급했다. 미스테리아 신인 아도니스는 옥수수의 신으로 여겨졌고 아도니스를 상징하는 것이 빵이었는데, 아도니스가 신성시한 작은 숲 속에 '빵집'인 베들레헴이 감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 이야기에서, 3명의 현자는 하나의 별빛을 따라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를 발견한다. 고대 안디옥에서 아도니스 미스테리아 의식은 '구원의 별이 동녘에 나타났다'는 외침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구원의 별은 곧 금성Venus(베누스)이었다.

베누스는 일부 신화에서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배우자 여신의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 여신이 이시스로 불렸다. 수천 년 동안 이시스는 오시리스를 상징하는 오리온자리의 발치에 있는 밝은 별 시리우스와 관련이 있었다. 시리우스가 일출 직전에 떠오르면 그것은 해마다 일어나는 나일 강의 범람을 알리는 전조였다. 나일 강의 범람은 세상을 새롭게 하는 오시리스의 위력과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시리우스는 주의 출현을 예고하는 별이었다.

문자주의자 에피파니우스(AD 315-403)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알렉산드리아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곧 아이온의 탄생 축일은 1월 6일이었다. 전날 밤 신전은 악기 연주와 노랫소리로 떠들썩했고, 새벽 무렵 절정에 이르렀다. 미리 정해진 사람들이 새벽에 횃불을 들고 지하 성소로 내려가서, 나무로 새긴 신상을 가져왔다. 그 신상의 '두 손, 두 무릎, 그리고 머리에 십자표시'가 있었다. 이 미스테리아 의식은 다음과 같은 포고와 더불어 절정에 이르렀다.'오늘 이 시간에 동정녀 코레가 아이온을 낳았다'.

에피파니우스는 초기의 다른 많은 그리스도교인과 마찬가지로 1월6일에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아르메니아 교회에서는 오늘날에도 그날을 축하한다. 그는 이와 같은 우연의 일치가 무척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두 손, 두 무릎, 그리고 머리에 십자표시'를 했다니! 대체 그건 무슨 뜻인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12월 25일인가 1월6일인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아무도 탄생일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미트라스의 탄생일은 12월 25일이고 아이온의 탄생일은 1월 6일인데, 어느 날이 되었든 그것이 미스테리아 신인의 탄생일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논쟁을 했을까?

그 두 날은 아무렇게나 선택된 날이 아니었다. 두 날 모두, 한때는 날이 가장 짧은 동지Winter solstice였다. 동지는 해가 바뀌어 생명을 주는 태양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상징하는 날이었다. 분점세차(分點歲差 : 지구 자전축의 주기적인 세차운동preadssion에 따라 황도상의 춘분점과 추분점이 이동하는 것) 때문에, 동지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동지가 1월 6일에서 12월 25일로 점차 이동했지만, 일부에서는 전통적으로 같은 날을 동지로 삼았다.

오늘날 동지는 12월 22일 무렵이다. 해마다 거행된 미스테리아 신인의 탄생 의식은 동지에 묵은해 죽고 새해가 기적적으로 재생하는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곧 태양을 의미했고, 태양으로 묘사되었는데 예수도 그러했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교부 : AD150-215)는 예수를 '정의의 태양'으로 불렀다. 이런 사실과 잘 어울리도록, 디오니소스의 동정녀 어머니 세멜레는 처녀인 달의 여신 셀레네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예수의 수태고지를 위해 마리아를 찾아온 가브리엘 천사는 달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졌다.

 

세례

예수의 사명은 세례 요한의 세례와 더불어 개시된다. 조지프 캠벨등의 신화학자들은 이 스토리 이면에 놓인 고대의 신화적 의미를 발견했다. 캠벨은 이렇게 썼다.

세례 의식은 고대 수메르의 신전 도시인 에리두에서 유래한 고대 의식이었다. '물의 집의 신'인 에아Ea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에아는 오아네스Oannes라고 불렸다. 오아네스가 그리스어로는 이오아네스Ioannes, 라틴어로는 요하네스Johannes, 헤브라이어로는 요하난Yohanan, 영어로는 존John(우리말로는 요한)이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은 요한John이나 예수Jesus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만 물의 신과 태양의 신이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여러 이야기를 꼼꼼히 살펴본 우리는 그 얘기들이 분명 신화학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완벽하게 서로를 반영한다. 즉, 둘 다 기적적으로 태어난다. 요한은 늙은 여인에게서 태어난다. 예수는 젊은 여인에게서 태어난다. 요한의 어머니는 수정할 수 없는infertile 여성이다. 예수의 어머니는 수정하지 않은unfertilized 여성이다. 요한은 해가 쇠약해지기 시작하는 하지에 태어난다. 예수는 여섯 달 후 해가 다시 강해지기 시작하는 동지에 태어난다.---그래서 요한은 예수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요한은 점성술상의 게자리에서 태어난다. 고대에 게자리는 육화되려고 하는 영혼의 문을 상징한다. 예수는 점성술상의 염소자리에서 태어난다. 고대에 염소자리는 육화에서 벗어나 불멸화하려는 영혼의 문을 상징한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고 예수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12월 25일은 태양이 돌아오는 것을 축하하는 이교도의 축제일이다. 세례 요한의 탄생을 축하하는 6월은 이교도들이 한여름 물의 축제를 연 때이다.

세례는 미스테리아에서 핵심적인 의식이었다. 아득한 옛날 호메로스의 시에도 정화 의식이 구원의 조건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고대인들은 과거의 모든 죄를 씻어 버리기 위해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오시리스의 화신으로 탄생하는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먼저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피라미드 문헌에 나온다.

일부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세례는 단지 상징적으로 성수를 뿌리는 것이었다. 다른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는 세례가 완전히 물에 잠기는 것이었다. 세례를 위한 물탱크가 입문식 홀과 성소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엘레우시스에서의 입문자들은 바다에서 목욕하며 스스로를 깨끗이 했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는 입문식을 치를 때 고해기도를 한 후 정화를 위한 목욕을 했고, 나중에 성수 세례를 받았다.

미트라스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입문자들은 죄를 씻어내기 위하여 되풀이해서 세례를 받았다. 그러한 입문식은 3월과 4월에 치러졌다. 그런데 초기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인들이 카테코우메노스katechoumenos(영어로는 캐터큐민catechumen)라고 불린 새로운 귀의 세례를 받은 것도 바로3-4월이었다.

그리스도교인과 이교도 의식 사이의 유사성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새로운 회원이 입문할 때에는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으면 갱생해서 죄 값을 면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몸을 전부 담그는 세례에는 세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물 속에 완전히 잠기는 것은 매장을 의미하며, 다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한다. 세례에 대한 이러한 우의적 해석은 미스테리아와 완벽하게 서로 통한다.

미스테리아의 세례 의식도 신비한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초기 교회에서, 새로 세례를 받는 자는 흰옷을 입었고 새로운 이름을 받았으며 꿀을 먹었다. 마찬가지로 미트라스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도 영적으로 '재생' 한 입문자들은 두 손에 꿀을 받아서 혀에 댔는데, 그것은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행한 관습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교인 작가들이 그리스도교 세례에 대해 묘사한 내용은 이교도 미스테리아 의식에서의 세례 행위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자는 알몸으로 세례를 받았고, 물 밖으로 나온 후 흰옷을 입고 관을 쓰고 촛불을 든 채 교회당basilica으로 가는 행렬에 끼어 걸어갔다. 그것은 엘레우시스에서의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행렬과 일치한다.

그 행렬에서도 입문자들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 관을 쓴 채 손에는 횃불을 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성소로 걸어갔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와 이교도의 세례 의식이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또다시 악마의 모방 주장에 매달렸다. 그는 사악한 악마가 이교도 의식으로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패러디 하도록 충동질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세례를 통한 정화는, 물로만이 아니라 공기와 불로도 이루어졌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는 자기가 신성에 접근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기 전에 먼저 '모든 원소들을 통과하는 여행'을 해야 했다고 한다. 세르비우스는 이렇게 썼다.

 

모든 정화는 물이나 불이나 공기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어떤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든 이와 같은 세 가지 정화 방법을 쓴다. 황을 태워서 입문자를 소독하거나, 물로 씻거나, 바람으로 환기시킬 수도 있다.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는 후자를 썼다.

 

복음서들 또한 삼중 원소의 세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의 도래를 예언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가 회개하도록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그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을 깨끗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태복음3:11-12).

 

이 문장에서 친근한 용어인 성령holy sprit은 '성스러운 숨holy breath'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분명 공기에 의한 세례를 나타낸다. 요한은 예수가 키질을 할 거라고 말한다. 키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낼 때 쓰는 농기구이다. 엘레우시스에서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공기로 세례를 할 때 키를 사용했다. 도자기 그림 등에 그려진 입문자들을 보면 베일을 쓰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그들의 머리 위에서는 키가 흔들리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키질하는 자'로 알려져 있었다. 입문자들이 영적 재생을 할 때 상징적으로 키질을 당하듯이, 디오니소스는 태어났을 때 요람대신 키 속에서 흔들렸다고 한다.

이교도 미스테리아에 입문한 사람이 공기에 의한 정화를 거처 재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예수는 숨에 의한 재생을 약속한다.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가 예수에게 물었다. "사람이 늙은 나이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breath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breath로 난 것은 영breath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하게 여기지 말라. 바람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breath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한복음 3:5-8).

 

기적

초기 이집트의 그리스도교인인 바실리데스(AD 117년경에 활약환 영지주의 현자)는 예수가 1월 6일에 세례를 받았다고 믿었다. 이날은 수세기 동안 고대 이집트에서 '오시리스의 날'로 축하해 온 날이었다.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가 '물을 거룩하게 한'날로 이날을 기념했다. 그들은 1월 5일 한밤중에 기도를 한 다음 물을 얻기 위해 주전자를 들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물은 신성하며 정화하는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 이전의 수백 년 동안 고대 이집트인들은 정확히 같은 때에 정확히 같은 행위를 해 왔다. 1월 5일 밤은 오시리스의 은총으로 나일 강의 물이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얻는 때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이 물이 모든 악을 물리친다고 믿고서 주전자에 담아 집에 보관했다.

1월 5일 밤은 또 디오니소스가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었던 시간이다. 로마의 작가 플리니우스(AD 23-79)의 말에 따르면, 안드로스 섬에서 포도주가 샘솟아 이레 동안 계속해서 디오니소스 신전으로 흘러 들었다. 그러나 그 포도주를 떠서 성소 밖으로 가져가면 곧바로 물로 바뀌었다. 또, 낙소스의 한 샘에서는 향기로운 포도주가 샘솟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얘기도 있다.

튀이아Thyia라고 불린 그리스 축제 기간에는,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보는 가운데 3개의 빈 대야를 방에 넣어 두었다. 그 방은 굳게 잠겨서 봉인이 되었다. 자기가 붙인 봉인을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다른 봉인을 붙여야 했다. 이튿날 봉인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는데, 그 방에 들어가 보니 3개의 대야에 포도주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스의 작가 파우사니아스(AD 170년경)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과 외국인들 모두 이것이 사실임을 맹세로써 보증했다고 한다.

신화에서 물이 술로 바뀌는 기적이 처음 일어난 것은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의 결혼식 때였다. 가나에서의 결혼식 때 예수도 같은 기적을 일으켰다. AD 4세기에 에피파니우스는 1월 6일에 여전히 같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샘에서 솟아난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디오니소스가 아닌 예수 때문에 일어난 기적으로 보았다. 에피파니우스의 말에 따르면, 그러한 기적은 '예수가 잔칫집 주인에게 물을 길어 오라고 명해서 그 물을 포도주로 바꾼 시간'에 일어났다.

예수의 다른 기적들 역시 이교도 신인과 관계가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신봉한 '약의 아버지'인 아스클레피오스는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 냈다는 신화 속의 인물이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는 신인'이었다.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며 쓴 저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아스클레피오스와 예수의 기적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비교에 대해, 초기 그리스교인들은 '예수가 아스클레피오스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의사였다고 응수했다. 이교도 켈수스와 그리스도교인 오리게네스는 각자 아스클레피오스나 예수의 상대적 장점들을 확신하며 우월성 논쟁을 벌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아스클레피오스에 대한 수많은 비문을 강탈해서 이름만 예수로 고쳐 놓았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예언자들 다수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예수가 떠돌아 다니며 일으킨 기적과 정확히 똑같은 기적을 일으켰다. 피타고라스의 기적은 특히 유명했다. 그는 예수처럼 수많은 병자를 고쳤다. 그가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옮겨 갈 때에, 그는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치기 위해서' 오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피타고라스의 생애>를 쓴 이암블리코스(AD 250-325)는 피타고라스의 무수한 기적 가운데 '사도들이 쉽게 건너갈 수 있도록 강과 바다의 물결을 잔잔케 한' 기적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사도들이 갈릴리 바다(갈릴리는 원래 호수이지만 국역<성서>에는 바다로 표기했다. 영어로 the sea of Galilee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옮긴이)를 건널 때 같은 기적을 일으킨다. 이 기적은 분명 다수 이교도들의 전설적 전기에 기록된 기적들과 일치한다. 이암블리코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러한 종류의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지닌 자로는 아그리젠토의 엠페도클레스, 크레타 섬의 에피메니데스, 북방정토의 아바리스 등이 있었고 그들은 많은 곳에서 같은 기적을 일으켰다.

 

요한복음(21:11)에서 예수는 시몬 베드로에게 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리게 했다. 수많은 고기가 잡혔는데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철학자 포르피리오스(AD 232-303)가 기록한 전설 속의 피타고라스도 이러한 재주를 선보였다. 피타고라스는 잡게 될 물고기의 정확한 수까지 예견해서 알아맞혔다는데, 그것이 몇 마리였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같은 복음서에서 예수는 몇 마리를 잡게 될지 예견하진 않았지만, 그 수가 정확히 153마리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숫자는 특별할 것이 없는데도 복음서 작가가 그저 구체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기록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것이 신중하게 계산된 것이며, 고도의 의미를 갖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피타고라스가 예견한 물고기 수는 분명 정확히 153마리였을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으로 유명한 인물이었고 그는 '153'을 신성한 수로 여겼다. 이 숫자는 아르키메데스가 '물고기의 척도'라고 부른 수학적 비율에 사용된다. 이 비율로 신비한 상징인 '베시카 피시스vesica piscis', 곧 '물고기 기호'를 만든다.---이 비율대로 두원을 교차시켜서 물고기 모양을 만든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물고기 상징은 바로 고대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 물고기 상징이었다. 예수가 기적을 일으켜 잡은 물고기의 숫자로 신비한 물고기 상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기적이 원래 피타고라스의 기적에서 차용한 것이며, 이 기적의 이야기가 기하학적 공식을 암호화한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물고기 기호'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기호는 일부 이교도에게 신성시된 기하학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혼과 물질을 상징하는 2개의 원이 신성한 결혼으로 결합된다. 각 원주가 다른 원의 중심과 만날 때, 서로 겹치는 부분에서 베시카 피시스로 알려진 물고기 모양이 만들어진다. 이 모양의 높이와 길이의 비율은 153 : 265이다 이 비율이 바로 BC 3세기에 아르키메데스가 '물고기의 척도'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은 강력한 수학 도구로서, 3의 제곱근에 가장 가까운 정수의 비율이며, 정삼각형을 지배하는 비율이다.

 

피타고라스의 사도인 엠페도클레스 또한 기적을 일으키는 자였다. 피타고라스나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는 스스로 신인이라고 부르짖었으며, 아크라가스 사람들에게 스스로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불멸의 신'이라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그를 따라다니며, 그를 리본으로 치장하고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다.

예수처럼 그는 미래를 예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수처럼 그는 영적 진리를 가르쳤고, 병자를 치료했다. 그는 '바람을 잠재우는 자'로 알려졌고 역시 예수처럼, 바람과 비를 다스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가르침을 배운 사도들은 죽은 자를 지하세계에서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그는 장담했다. 예수가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려 낸 것처럼, 엠페도클레스는 죽은 지 30일이된 여자를 살려 냈다고 한다.

AD 1세기경의 철학자 아폴로니오스 또한 병자를 고치고, 미래를 예언하고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운 떠돌이 신인이었다. 예수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낸 것처럼, 아폴로니오스는 로마 집정관의 딸을 살려 냈다. 그런데 그는 그 딸을 찾아가지도 않고 살려 냈다고 한다. 예수처럼 아폴로니오스도 악령을 쫓아냈다. 그는 또 예수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五餠二魚)' 로 5천 명을 먹인 것과 비슷한 기적을 일으켰다. 켈수스는 이러한 초자연적인 재주가 수많은 현자들이 행한 '환각'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언자가 고향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 예수와 마찬가지로, 이교도 전설 속의 신성한 인간들은 공통적으로 고향에서 배척을 당했다. 아폴로니오스는 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 '고향에서는 아직까지도 나를 무시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나를 신과 동일시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복음서에서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는 얘기 가운데, 귀신들이 스스로를 군대Legion이라고 말하는 게 나온다. 귀신의 수가 '거의 2천'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이 귀신들은 예수에게 쫓겨나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서 바다에 빠져 몰사한다. 이와 똑같은 주제가 엘레우시스에서의 미스테리아에서도 발견된다. 입문을 하기 전에 정화 의식의 일부로써 약 2천 명의 입문자들이 모두 어린 돼지를 안고 바다에서 목욕을 했다. 이러한 목욕 의식은 귀신이 돼지에게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후 입문자들의 불순의 상징인 이 돼지들을 깊은 구덩이로 몰아넣어 희생시켰다.

'방언으로 말함' 이라는 오순절의 기적도 이교도 신화에 이미 나온 것이다. 예수가 죽은 후 사도들은 청중이 사용하는 온갖 토속어로 말을 하게 되었다(사도행전 2장).

몇 세기 전 트로포니우스와 델로스에서 갈은 현상이 보고되었다. 그곳에서 신전의 여사제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온갖 지방의 토속어여서 해당 지방의 출신들만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최고의 현대 고전학자 가운데 1명인 버키트는 이러한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기적들이 '아무리 견주어 봐도 막상막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가 하나이며,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기적으로 입증된다고 단언한다. 그러한 단언이 켈수스가 듣기엔 헛소리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적과 이적은 사실상 모든 곳에서 모든 시대에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기적을 일으키는 자로 유명했던 수많은 이교도 현자와 신인들을 열거했다. 그러한 이교도 비평가에 대한 대표적인 반론은 다음과 갈다. 즉, 예수의 기적은 신성함의 표시였던 반면, 이교도의 기적은 악마의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켈수스는 분개해서 이렇게 쏘아붙였다.

 

하나님 맙소사! 똑같은 활동을 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신이고 그의 라이벌은 그저 '마법사'일 뿐이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논법인가?

 

신인과 그의 사도들

예수에게는 주변에 12사도가 있었다. 이것은 보통 이스라엘의 12부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12부족이라는 개념 자체는 바빌론의 점성술에서 황도(천구에서 태양이 지나는 길)상의 12궁에 대한 상징적인 언급이다.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幽囚) 때 이것을 받아들였다.

황도는 이교도 세계에서 지극히 중요한 상징이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12궁으로 표현되는 변화의 수레바퀴에서 고요히 자리를 지키는 영적 중심으로 상징된다. 미트라스, 디오니소스, 아이온, 헬리오스 등도 모두 선회하는 황도의 중심으로 묘사된다. 미트라스 미스테리아 입문식을 치르는 동안 신인 둘레에는 12사도가 자리를 잡는다. --- 12사도가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것과 똑같다. 미트라스 사도들은 황도의 12궁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입문자 주위를 돈다. 이때 입문자는 미트라스를 상징한다.

중심원 둘레의 12개 원은 기하학에서 유래한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사도들에게는 그것이 심오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고대세계에서 수학 지식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의 완벽한 구(球)로 상상했다. 하나의 구가 똑같은 차원의 다른 구들에 둘러싸여 있고 모든 구가 서로 맞닿도록 하면, 중앙의 구는 정확히 12개의 구로 둘러싸이게 된다는 사실을 고대인들은 발견했다. 신인과 12사도의 이미지는 기하학의 그러한 가르침을 암호화한 것이다.

복음서에서, 처음에 예수는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 기도할 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는' 모습을 보여 준다(누가복음 9:29). 마찬가지로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바카이>에서, 디오니소스가 처음 사도들에게 나타났을 때는 유랑하는 현자였지만 나중에는 성스럽게 변모한다. 그의 참된 신성을 알아차린 사도들은 이렇게 외친다.

 

그러나 보라! 저 궁전 문 위로 솟으신 이는 누구인가?

더 이상 인간으로 변장하지 않고, 신성의 광채에 휩싸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디오니소스가 아닌가!

 

사도들에게 예수는 구원자였다. 디오니소스도 마찬가지로 '구원하러 오신 이'였다. 사도들은 그에게 외쳤다. "어서 오소서, 그대 구원자여!'' <바카이>에서 그들은 이렇게 환호한다.

 

우리는 구원 받았도다! 오, 바쿠스의 외침이 울려 퍼지는 이 기쁨이여!

우리는 모두 혼자였고 버려져 있었건만, 당신이 오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예수는 일견 파격적인 행동 때문에 공격을 받기도 했다. 누가복음(7:31)에서 예수는 '이 세대의 사람들'을 꾸짖는다. ---사람들은 처음에 세례 요한이 '빵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하더니, 이제 '먹고 마시는 사람의 아들'이 오니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 라고 비난한다고.

디오니소스의 사도들 또한 행위가 파격적이고 귀신 들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들의 '술잔치' 는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사실, 그 술잔치는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벌였던 '사랑의 향연' 에 비하면 그리 성적인 것도 아니었다. 예수처럼 디오니소스도 먹고 마셨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심오한 영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디오니소스는 신성한 도취의 신이었고, 종교 권력자와 속세의 권력자들에게 걸핏하면 능욕당하고 위협당한 '사람들의 신' 이었다.

예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스테리아 종교가 좀더 고행을 강조한다. 그 고행은 세례 요한의 내핍 생활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대수도원장 안토니우스에 의해 시작된 초기 그리스도교의 수도사 전통은 지중해 세계 전역에 퍼저 있었던 금욕적인 피타고라스 공동체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나귀 타기

복음서 이야기에 따르면,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예수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이때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며 그가 지나갈 길에 나뭇가지를 펴서 깔았다. 전통에 따라 이들 무리는 종려나무 잎사귀를 흔들었다고 한다.

종려나무는 미스테리아 신앙에서 상징적인 나무이다. 플라톤은 '디오니소스의 지혜의 종려나무'라는 말을 썼다. 미스테리아 신인인 아티스의 대 향연은 '갈대를 지닌 자의 입장'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런 뒤 '나무를 든 자의 입장'이 이어졌다. 이 상록수 소나무 위에는 신인의 인형을 매달았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종려나무를 든 자들에 둘러싸인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그리고 그의 주요상징이 된 십자가, 곧 나무를 나르는 행위가 이런 신화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기필코 나귀를 타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자기 그림에서, 디오니소스 또한 흔히 나귀 옆에 그려진다. 이 나귀는 그가 수난을 당할 곳으로 데려간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BC 445-385)는 '미스테리아를 실어 나른 나귀'에 대해 썼다.

아테네에서 순례의 무리가 미스테리아를 기념하기 위해 엘레우시스로 가는 신성한 길을 걸을 때, 나귀는 신성한 도구가 든 바구니를 실어 날랐다. ---이 도구는 디오니소스의 우상을 만드는 데 쓰일 것들이었다. 이때 무리들은 큰소리로 디오니소스를 찬미하며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이와 같이 디오니소스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처럼 환호를 받으며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나귀 타기,라는 신화적 주제는 흔히 겸손의 징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이상의 심층 의미를 아울러 지니고 있다. 고대인들에게 나귀는 육욕과 잔혹함과 사악함의 표본이었다. 그래서 나귀는 상징적으로 더 낮은 수준의 '동물적' 자아를 나타냈다. 그것은 미스테리아 입문자가 극복하고 진압해야 하는 것이었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는 <황금 나귀>라는 이야기를 썼다. 그것은 입문식에 대한 우의적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서 루키우스는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나귀로 변해 수많은 모험을 한다. 각 모험은 다 입문 단계를 나타낸다. 그는 마지막 입문식에서 다시 인간으로 변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입문자가 더 낮은 본성을 극복하고 미스테리아 입문식을 거쳐 참된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것을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는 루키우스에게 말한다. 나귀는 모든 짐승 가운데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거라고. 나귀는 오시리스의 살해자인 세트 신이 신성시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풀루타르코스는 고대 이집트의 사육제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 기록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오시리스의 살해에 대한 보복으로 나귀를 벼랑 아래로 밀어서 떨어뜨린다.

세트 신은 입문자의 수준 낮은 자아를 상징한다. 수준 낮은 자아는 영적으로 수준 높은 자유, 곧 오시리스를 살해한다. 수준 낮은 자아는 수준 높은 영적 자아의 재생을 위해 은유적으로 사망해야 한다.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에서도 나귀는 더 낮은 '동물적' 본성을 상징했다. 도자기 유물 가운데 우스꽝스러운 나귀 그림이 그려진 것이 있다. 이 나귀는 디오니소스의 사도들에게 에워 싸인 채 생식기를 발기시키고 춤을 춘다. 포도주 주전자 유물 가운데 나귀들이 교미하는 모습이 그려진 것도 나타난다. 순례자들이 걸음을 멈추고 나귀 꼬리를 잡아당기는 그림도 있다.

사후 지하세계에서의 고난을 나타내는 멋진 그림 가운데, 자신의 나귀가 끊임없이 먹어 치우는 밧줄을 영원히 꼬아야 하는 형벌을 받는 사람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낮은 수준의 자아가 수준 높은 자아의 영적 성취를 끊임없이 먹어 치우려 함을 상징한다. 의기양양하게 나귀를 타고 가는 신인의 모습은 그가 낮은 수준의 '동물적' 본성의 주인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의로운 자와 폭군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죄가 없고 의로운 자이다. 유대인 제사장들의 선동에 따라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 끌려간 예수는 허위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런데 그보다 5세기 전에 씌어진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바카이>에도 똑같은 신화적 주제가 등장한다. 예루살렘의 예수처럼 디오니소스는 새로운 종교를 전파한 자로서 장발에 수염을 기른 과묵한 이방인이다.

복음서에서 유대인 제사장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그의 가르침은 백성을 미혹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바카이>에서, 펜테우스 왕은 디오니소스를 믿지 않은 폭군이다. 그는 '이 땅을 오염시킬 새로운 질병'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디오니소스를 꾸짖으며, 부하들을 보내 죄가 없는 신인을 체포하게 한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를 체포하자마자 돌로 쳐 죽여라

그는 바쿠스의 미스테리아를 테베에 전파한 것을 후회하리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신성모독에 깜짝 놀란 유대인 제사장들처럼, 펜테우스 왕은 디오니소스의 신성한 출생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터뜨린다.

 

그게 어떤 인간이든 간에, 그의 오만불손함은

참람하지 아니한가? 목에 밧줄을 걸겠다는 짓이 아닌가?

 

예수처럼, 디오니소스는 잠자코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그를 체포한 병사가 펜테우스 왕에게 말한다.

 

그를 체포하여 데려왔나이다. 폐하,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그 짐승은 얌전하였고,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나이다.

그저 두 손을 내밀어 결박을 당했고, 낯빛도 바뀌지 않았나이다.

화사한 얼굴로 미소를 띠며 우리에게 말하기를,

'나를 묶어 체포하라. 너희를 전혀 수고롭게 하지 않으리라.

다만 너희를 기다렸도다.' 그러하니 저는 저절로

당황하여 그에게 말했나이다. '선생이시여, 용서하소서,

선생을 체포하고 싶지 않으나, 이것은 왕의 명령입니다.'

 

병사는 디오니소스의 기적을 목격했다면서 펜테우스 왕에게 경고한다. '주인이시여, 이 남자는 수많은 기적을 행하며 이곳에 왔나이다'. 그러나 왕은 디오니소스를 심문한다. 빌라도 앞에 선 예수처럼, 디오니소스는 왕에게 절하지 않는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자 예수가 대답한다(요한복음19:11).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라.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도 펜테우스의 위협에 이렇게 답한다. '정해진 일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박해자들이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누가복음 23:34)고 예수가 말한 것처럼 디오니소스는 펜테우스에게 말한다.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네가 정작 무엇인지도 너는 알지 못한다'.

예수가 십자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 그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 23:28). 자기를 처형한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는 또 말한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때에 사람들은 산들에게, '우리 위에 무너지라'하며 작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누가복음 23:29-30)

 

이와 마찬가지로, 형으로 끌려가는 디오니소스는 신이 복수하리라고 겁을 주며 말한다.

 

그러나 경고하노니, 죽었노라고 너희가 말할 디오니소스는

이 신성모독의 복수를 하기 위해 속히 돌아올 것이다.

 

미스테리아 전통을 지킨 여러 위대한 철학자들 또한 '의로운 자'였다. 그들은 폭군들에게 부당한 죽음을 당했다 소크라테스가 한 예이다. 예수처럼 그는 백성을 미혹케 한다고 고소를 당했다. 아테네 법에 따르면 그러한 '죄'에 대한 벌은 사망이었다---재판관들이 수용할 만큼의 벌금을 내면 사형을 면할 수는 있었다. 유월절에 죄수 1명을 풀어 주는 관습이 있어서 예수를 풀어 주겠다고 제안한 빌라도처럼, 아테네 법정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벌금을 내고 조용히 추방됨으로써 기술적으로 사형을 피하기를 바랐다.

예수와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는 박해자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일부러 죽음을 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모욕적으로 적은 금액인 1미나mina만을 벌금으로 내겠다고 함으로써 재판관들로 하여금 사형을 선고하게 한다.

소크라테스의 추종자들 가운데 일부는 '은 30(냥)' 을 대신 내겠다고 제안했다. 그것은 참되게 자기 원칙에 따르고자 한 소크라테스의 소망에 배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제는 복음서 이야기에도 나타난다. 예수를 배신한 대가로 유다는 '은 30(냥)'을 받았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당시의 처형 방식대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임박한 처형에 대해 묵상하던 예수는 이렇게 기도한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할 거라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할 거라는 예언을 확신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심문을 받을 때 예수가 한 행동은 미스테리아 현자가 취한 행동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예수는 권력자들의 위선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견유학파(犬儒學派 : 안티스테네스가 창설한 그리스 철학의 한 파. 무욕의 자연 생활을 이상으로 함. 퀴닉 학파라고도 함)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기존 권위에 적대적이며, 종교 계율을 거부했고, 왕과 관료들을 조롱'한 것으로 유명했다. 로마 당국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순교한 철학자가 많았는데, 예수처럼 그들 또한 기꺼이 처형당했다.

스토아 학파의 현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썼다. '내 몸이든 재산이든 모두 가져가라. 그러나 내 도덕적 목적을 지배하려고 하지는 말라'. 그는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해서 처형을 받게 된 한 철학자 얘기를 남겼다. '너는 네 할 일을 하라. 나는 내 할 일을 하겠다. 그러면 무슨 불평할 것이 있겠는가'. BC 4세기 무렵에, 플라톤은 '의로운 자'에게 예상되는 운명을 이렇게 기술했다. '의로운 자는 채찍질을 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극단적인 수난을 당한 후, 이윽고는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 복음서에 기록된 '의로운 자' 예수의 수난 또한 그러한 예상과 일치한다.

'부당하게 고소된 의로운 자'는 고대세계에 허다해서, 예수가 유일무이한 수난을 당했다고 주장하려는 그리스도교인들을 켈수스는 통렬하게 비웃었다. 그는 위트와 풍자를 동원해서 이런 제안을 했다. ---그들이 만일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자 했다면, 역시 '영웅적인 죽음'을 당한 수많은 유명 이교도 현자들 가운데 1명을 선택해서 종교의 기초를 세웠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새로운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면, 영웅적인 죽음을 당해서 그것으로 인해 존경 받은 옛 사람 --- 이미 한 신화의 주인공이 된 사람---가운데 1명을 중심으로 해서 당신들의 종교를 세우는 것이 휠씬 더 좋았을 것이다. 헤라클레스나 아스클레피오스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약하다면, 오르페우스도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오르페우스는 선하고 성스럽지만, 가혹한 죽음을 당했다. 그 사람을 다른 종교가 이미 써먹어 버렸다면? 글쎄, 그렇다면 아낙사르코스는 어떨까? 그는 몰매를 맞으면서 정면으로 죽음을 직시한 사람이다. 그는 박해자들에게 말했다. '때려죽여라. 그러나 너희가 때리는 것은 아낙사르코스가 아니다. 아낙사르코스라는 빈 자루일 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사람은 여러 철학자들이 이미 주인으로 모셔 버렸다. 글쎄, 그렇다면 에픽테토스는 어떨까? 그는 주리를 트는 형벌을 받으면서도 빙그레 웃으며, 완전한 평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 '부러뜨려라: 다리가 부러지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러라고 했지.' 당신들의 신도 형벌을 받을 때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빵과 포도주

죽기 전에 예수는 빵과 포도주로 상징적인 최후의 만찬을 베풀었다. <바카이>에서 에우리피데스는 빵과 포도주를 '인간사에서 최고의 두 힘'이라고 일컬었다. 빵은 육체를 보존케 하는 주식이고, 포도주는 정신을 도취게 하는 액체이다. 고대인들은 미스테리아 신인이 인간에게 옥수수와 포도를 재배해서 빵과 포도주를 만드는 기술을 전해주었다고 믿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복음6:35). 최후의 만찬 때 예수는 빵을 떼어 사도들에게 나누어 주며 말한다. '받아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가복음 14:22). 미스터리야 신인 또한 빵, 그리고 빵을 만드는 옥수수와 상징적인 관계가 있었다. 오시리스는 사지가 찢겨 죽었으며, 죽은 아도니스의 뼈는 맷돌에 갈려서 바람에 날려 보냈다고 한다. 그것은 옥수수를 타작해서 밀가루로 만드는 것을 상징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또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한복음 15:1).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서 사도들에게 포도주를 나누어 주며 말한다. '이것은 .....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가복음 14:24). 예수처럼 디오니소스도, 포도나무는 물론이고 포도주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는 '포도주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일부 신화에서 그의 팔다리가 잘려 죽는 것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밟아 으깨는 것을 상징한다.

예수가 나누어 준 빵과 포도주를 같이함으로써 사도들은 상징적으로 예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신다. 그렇게 그들은 그리스도와 교섭한다. 신을 먹음으로써 신과 교섭한다는 아이디어는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서도 발견되는 아주 오래된 의식이다. 그 책에서 죽은 자들은 사후세계에서 신을 먹음으로써 신과 교섭 한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의 '몸' 과 '피' 를 먹고 마시는 영성체 의식을 거행한다. 그런 '신성한 교섭(holy communion: 대문자로 표기된 고유명사일 경우에는 '영성체領聖體'라고 번역된다 : 옮긴이 주)' 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하나가 된다는 의미에서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도 행해졌다. 입문하지 않은 자들은 그러한 의식을 오해해서 야만적인 식인풍습이라고 비난했다. ---그 후 영성체 의식을 행한 초기 그리스도교인들도 그와 똑같은 비난을 받았다.

이교도들도 그리스도교와 똑같은 영성체 의식을 치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나의 피'라고 말하며 예수가 사도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했을 때 예수는 그러한 의식을 사도들에게만 베푼 것인데, '사악한 악마들은 그것을 모방해서 미트라스 의식을 치르게 했다'고 그는 비난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체 의식과 마찬가지로,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도 입문자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기 전에 먼저 신비한 신조를 낭송해 주었다.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미트라스 미스테리아 의식 참여자들은 먼저 오랫동안 준비를 거친 다음 '신성한 교섭'이 허용되었다. 충분한 준비 단계를 거친 입문자에게는 성체인 빵과 포도주 섞은 물, 혹은 십자가 표시가 새겨진 성체를 받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당연히 경악했다. 한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네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고, 나 또한 너와 더불어 하나가 되도록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그러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은 <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것은 미트라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말과 너무나 유사하다.

 

인자(人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한복음 6:53).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요한복음 6:56).

 

미트라스 미스테리아에서 신과의 교섭, 곧 영성체는 더 옛날의 의식에서 발전한 것이다. 옛 의식에서는 환각을 일으키는 하오마Haoma라는 식물의 즙을 탄 물과 빵을 성체로 사용했다. 미트라스 미스테리아에서는 서구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식물인 하오마 대신 포도주를 사용했다.

포도주는 오늘날의 우리보다 고대인들에게 휠씬 더 강력한 도취효과를 냈을 것이다. 좀처럼 술을 마시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디오니소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포도주가 지닌 계시적인 위력에 열광하며, 그것은 '인간의 제 정신이 아닌 신의 광기'라고 썼다.

저명한 고전학자는 이렇게 썼다.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신과 교섭을 해서,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신과 그 힘을 자기 몸 속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체 의식에 상징적으로 예수는 그 의식에 참여하는 자가 마시는 포도주가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에우리피데스는 디오니소스가 포도주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물로서 자기 자신을 잔에 '따른다'.

일부 도자기 그림에는 빵과 포도주가 디오니소스의 우상 앞에 그려져 있다. 그리스도교인이 상징적인 성체 과자로 '구원'을 받듯이 디오니소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도 입문자는 상징적인 성체 과자로 '마카리아makaria', 곧 '축복'을 받았다.

한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고대 그리스 사모트라키 섬의 미스테리아 사제가 '입문자에게 빵을 떼어 나누어 주고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고 아티스의 미스테리아 입문자 또한 영성체 의식을 치르고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탬버린으로 먹고 심벌로 마셨다'. 그러한 신성한 악기로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것 또한 빵과 포도주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가톨릭 교인들은 영성체 의식의 빵(밀떡)과 포도주가 말 그대로 '육체를 가진 예수의 살과 피'라고 믿어 왔다. 일부 미스테리아 신앙을 지닌 자들은 그들의 '영성체'를 말 그대로 믿기도 했던 것 같다. 좀더 계몽된 입문자인 키케로는 '빵과 포도주가 곧 신이라는 것은 다만 상징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어했다. 상징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참지 못한 그는 이렇게 썼다.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자기가 먹는 음식이 실제로 신이라고 믿는단 말인가?'

 

신인의 죽음

예수는 일반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십자가cross'라고 번역한 말은 원래 '형주stake'를 뜻하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돌로 쳐 죽인 사람의 시신을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고 표시로 형주(刑柱)에 매달아 놓는 관습이 있었다. 사도행전(5:30)에서 베드로는 십자가가 아닌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얘기한다. 바울의 편지인 갈라디아서(3:13)에도 '나무에 달린 자'로 기록되어 있다. 교부(敎父) 피르미쿠스 마테르누스는 아티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젊은 신인의 상이 소나무에 묶였다는 얘기를 전해준다. 아도니스는 '나무에 달린 자'로 알려져 있었다.

디오니소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는 신인을 나타내는 가면이 나무 장대에 매달렸다. 형주에 매달려 가시 면류관을 썼다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 또한 덩굴 면류관을 썼다. 로마 병정들에게 조롱을 당할 때 자색 옷, 혹은 홍포를 입었다는 예수처럼 디오니소스도 자색 옷을 입었고, 엘레우시스에서의 입문자들도 자색 띠를 몸에 둘렀다. 죽기 직전의 예수에게는 '쓸개 탄 포도주'를 먹이려 했다(마태복음 27:34). 디오니소스의 미스테리아 의식 참여자들에게는 포도주가 주어졌는데, 디오니소스 역을 한 히에로판테스에게는 쓸개즙(담즙)을 마시게 했다.

예수는 두 강도 옆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도둑 1명은 예수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고, 다른 1명은 지옥에 떨어진다. 이와 유사한 주제가 미스테리아 신화에서도 발견된다. 소박한 미스테리아 그림 하나에는, 미트라스의 양 옆에 횃불을 든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횃불로 하늘을 가리키는 사람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상징하고, 땅을 가리키는 다른 사람은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엘레우시스에서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도 디오니소스 양쪽에 서서 횃불로 각각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두 사람이 나온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여자이다. 미트라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횃불을 든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초기 신화에 나오는 두 형제 카스토르와 폴룩스에서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두 형제는 하루씩 걸러 가며 교대로 한사람이 죽고 다른 사람이 살아난다.

그들은 각각 높은 수준의 자아와 낮은 수준의 자아를 상징한다. 두 자아는 동시에 둘 다 살아 있을 수 없다.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우레(천둥)의 아들' 로 알려져 있었다. --- 마가복음(3:17)에서 예수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 불가해하게도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일부 신화에서는 입문자의 수준 낮은 자아를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의 적이 신인 대신 죽는다. <바카이>에서 펜테우스 왕은 디오니소스를 죽이러 가지만, 자기 자신이 나무에 매달린다. 이와 비슷한 시칠리아 신화에서, 디오니소스의 적인 리쿠르구스 왕이 십자가에 못 박힌다. 어떤 미스테리아 전통에서는 디오니소스가 나무에 매달리지만, 다른 전통에서는 그의 적이 처형된다.

플라톤의 <공화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의로운 자'의 상(像)이 제시되어 있다. 이것은 플라톤이 신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제시한 것일까? 그래서 디오니소스의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이 이것을 받아들인 것일까? 아니면 신인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신화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플라톤이 언급한 것일까?

이교도 철학자가 수세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는 교리를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된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십자가 교리>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십자가는 고대인들에게 신성한 상징이었다. 십자가의 네 갈래는 물리적 세계의 네 원소인 흙, 물, 공기, 불을 상징한다. 다섯번째 원소인 영혼은 이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물질에 속박되어 있다. 따라서 네 갈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상은 영혼이 육체에 속박되어 있는 곤경을 상징한다. 영혼을 육체에 굴레 씌우는 못은 육체적 욕망을 상징한다고 플라톤은 말했다. 두 팔과 두 다리에 박힌 4개의 못은 감각적 욕망의 상징이며, 이 못이 네 원소의 세계에 영혼을 붙잡아 둔다는 것이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가 예수와 정확히 똑같은 죽음을 당한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는 것은 잘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증거로 입증된 사실이다. 교부 아르노비우스는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이 신성한 십자가 주위를 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어떤 도자기 그림을 보면 디오니소스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AD 2-3세기 로마 시대의 한 석관에는 나이 든 사도 1명이 어린 디오니소스에게 커다란 십자가를 갖다 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 십자가를 '아이가 겪게 될 비극적 운명의 통고'로 해석한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부적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인물이 새겨져 있는데 처음 보면 예수로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그것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이다. 이 인물 아래에는 '오르페우스-바키코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오르페우스가 바쿠스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는 최고의 시인이자 하프의 달인인데, 디오니소스의 탄생을 예언한 자이기도 하다. 그는 너무나 존경을 받아서 흔히 신인으로 여겨졌다. 바쿠스는 디오니소스의 사도였는데, 디오니소스와 완전한 동격이 되었다. 따라서 그 부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디오니소스를 나타내며, 입문자가 수준 낮은 본성을 죽이고 신으로 재생하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겉보기에 이상한 고대 그림이 로마 시대의 돌기둥 뒤에 새겨진 게 있는데, 그 연대는 AD 193년과 235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것은 머리가 나귀인 한 인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 아래에는 '알렉스메노스가 자기 신을 숭배하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이교도가 그리스도교를 모독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해석되어 왔는데, 전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디오니소스의 수준 낮은 '동물적' 본성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나타낸 그림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나귀는 동물적 본성을 상징한다.

AD 5세기 이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像)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돌기둥 그림과 오르페우스 부적은 예수보다 수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니 만일 그리스도교에서 그 두 가지를 참조했다면, 최초의 십자가상에 나타난 예수는 곧 오르페우스였던 셈이다! 결코 그럴 리가 없었을 것 같지만 일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에서 신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으로 묘사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을 간단명료하게 시사한다.

 

신성한 희생양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가 세상의 죄를 대속해서 죽었다고 믿는다. 고대 그리스에는 특별한 개인을 '희생양(속죄 염소)'으로 삼는 전통이 있었다. 희생양은 상징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도시에서 쫓겨나거나 처형되었다. 그러한 사람은 파르마코스pharmakos라고 불렸다. 그것은 단지 '마법사'라는 뜻이었다. 그 사람을 처형한 것은 분명 종교적 행위였다. 처형하기 전에, 비용을 갹출해서, 특히 순수한 음식으로 그를 배불리 먹였고 신성한 옷을 입혔고 신성한 식물로 만든 관을 씌웠다. 그리고 신성한 희생을 통해 도시의 죄가 사면되었다고 믿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신성한 파르마코스였다. 예수처럼 그는 세상의 죄를 대속해서 죽었다. 파르마코스는 모욕을 당하고, 매질 당한 후 죽음에 처해졌다. 디오니소스의 대속적 죽음을 같이하기 위해 엘레우시스를 향해 신성한 길을 걸었던 사람들 역시 가면을 쓴 사람들에게 위협과 모욕과 매질을 당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서 그와 유사한 운명을 당할 거라고 예언했다. '그들은 [인자를]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다'(마가복음 10:34). 바울은 이렇게 썼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의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예수는 희생으로 바쳐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묘사된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린 양의 피로 씻김' 으로써 '재생' 한다고 얘기한다.

이러한 은유는 고대 아티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 의식은 동물을 제물로 쓴 희생제였다. 현대 세계에서 우리는 음식으로 쓸 동물이 도살되는 것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아주 원시적인 의식이었을 거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먹기 위해 동물을 죽여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리 혐오스럽지 않을 것이다.

'타우로볼리움Taurobolium', 곧 황소 희생제에서 황소는 밑에 구멍이 뚫린 제단 위에서 도살되고, 밑에 서 있는 입문자는 구멍을 통해 흘러내린 피로 몸을 씻었다. 그러면 입문자는 '재생' 된 것으로 여겨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크리오볼리움Criobollium' 의식을 치렀는데, 희생물로는 양을 썼다. 입문자는 말 그대로 '양의 피로 씻김' 의식을 치렀던 것이다!

미트라스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는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말 그대로보다는 상징적으로 희생제를 치렀다. 실제로 도살을 하는 대신, 황소를 도살하는 미트라스의 성화(聖畵)를 제단 그림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다소 으스스해 보이는 그림이기는 하지만,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가는 사람을 그려 놓은 그리스도교 성화에 비하면 덜 폭력적인 셈이다.

'그대는 영원히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를 구원했도다'라고 적힌 비문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가 아닌 미트라스에게 바쳐진 비문이다. 그런데 수세기 후 그리스도교인들도 그들의 구원자 신인에게 똑같은 말로 고마움을 표시하게 된다. 익명의 고대 이집트 시인은 죄를 대속해서 죽은 후 부활한 구원자 오시리스를 다음과 같이 찬미했는데, 이 찬미의 말은 예수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대를 희생시켰는가? 그대가 그들을 위해 죽었다고 그들은 말하는가?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영원히 살아 있다! 그는 신비한 희생자이기에, 그들보다 더 생기가 넘친다. 그들의 주님이신 그는 영원히 살아있고, 영원히 젊다.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미스테리아 종교도 '원죄' 교리를 갖고 있었다. 플라톤은 죄목을 알 수 없는 고대의 어떤 죄에 대한 형벌로 영혼이 육체 속으로 추방된다고 가르친다. 엠페도클레스는 우리가 신의 세계에서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로 네 원소를 거치며 떠돈다고 말한다. 미스테리아 종교에서는 하나님과의 분열이 곧 원죄라고 가르쳤다. 신인의 대속적 죽음, 혹은 입문자가 희생 동물을 죽이는 것은 입문자의 수준 낮은 '동물적' 본성의 상징적 죽음과 신적 본성의 재생을 뜻한다. 그것은 신과의 합일, 그리고 원죄에 대한 속죄를 뜻한다.

 

부활절

4세기에 익명의 저자가 쓴 글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인들과 미스테리아 신인 아티스 교인들은 두 종교의 신인들이 똑같이 죽어서 부활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두 종교의 교인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티스의 부활을 모방했다고 주장했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아티스의 부활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악마가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티스 미스테리아의 봄철 축제로 메갈렌시아Megalensia라는게 있었다. 그것은 부활절처럼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이 기간에는 수난극을 공연했다. ---예수의 이야기도 중세에 수난극으로 공연했다.

공연 때 아티스의 시체 인형을 신성한 소나무에 매달고, 고 인형을 신성한 꽃으로 치장한 다음 묘지에 매장한다. 그러나 예수와 마찬가지로 사흘째 되는 날 아티스는 다시 살아난다. 밤의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그의 열린 무덤을 비춘다. 그때 무덤 곁에 서 있던 사제는 입문자들의 입술에 성스러운 기름을 발라 주며 이렇게 말한다. '그대도 고통으로부터 구원되리라'. 신화학자 제임스 프레이저경은 이렇게 썼다.

 

그러나 밤이 되면 숭배자들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느닷없이 한 줄기 빛이 어둠을 가르고 빛났다. 무덤은 열려 있었다. 신이 부활한 것이다.사제는 슬피 우는 자들의 입술에 향유를 발라 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너희도 구원되리라고 그들은 신의 부활을 열렬히 찬양했다. 그것은 신도들 또한 무덤에서 썩지 않고 되살아날 거라는 약속이었다. 이튿날인 3월25일, 신의 부활을 축하하는, 환희의 축제가 요란하게 열린다. 이날은 당시의 춘분이었다. 로마에서, 그리고 아마도 다른 모든 곳에서도, 축하 의식은 사육제 형태를 띠었다. 그것은 환희의 축제였다.

 

고대에 널리 퍼진 그리스도교의 한 전통에 따르면, 예수는 3월 2일에 죽었다. 로마에서 공식적으로 아티스의 부활을 축하했던 날과 같은 날이다. 그러나 교부(敎父) 락탄티우스가 보고한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예수는 3월 23일에 죽었고 25일에 부활했다. 아티스의 죽음과 부활의 날도 바로 그날이었다.

봄철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의식인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 또한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그 축제에 대해 현대의 전문가는 이렇게 평했다. '성금요일(예수의 수난일)이나 부활절 날짜가 일치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다'. 그리스와 시칠리아, 남부 이탈리아 등지에서 오늘날 거행되고 있는 부활절 의식은 아도니스의 미스테리아 의식과 현저하게 닮았다.

아도니스 축제 때에는 사방에서 신인의 죽음을 곡하는 소리와 달콤한 향기가 진동했다. 그런 다음 향유를 바른 아도니스상이 관에 담겨 무덤으로 실려 갔다. 그리나 신도들은 신인이 다시 살아난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달랠 수 있었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죽은 자에게 그러하듯 아도니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사흘 후에는 그가 살아난 이야기를 한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시체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100근쯤' 발라서(요한복음 19:39-40) '세마포'로 쌌다(마태복음 27:59).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오시리스의 상징 또한 몰약을 발랐고 세마포로 쌌다. 마찬가지로 아도니스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신인의 시체상은 잘 씻은 다음 향료를 발랐고, 세마포나 모직으로 감쌌다.

예수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다. 플루타르코스의 말에 따르면, 오시리스도 죽은 지 사흘 만에 되살아난다. 고대 이집트의 한 비문에는 입문자 또한 그의 주와 함께 부활할 거라는 약속이 적혀 있다. '참으로 오시리스가 살아 있듯이 그는 살아 있을 것이며, 참으로 오시리스가 죽지 않았듯이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부활한 예수는 하늘로 올라간다. 교부 오리게네스는 오시리스가 '생명을 되찾아 하늘로 올라간' 젊은 신이었다고 썼다. 아도니스의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해마다 그 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애달프게 피리를 불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지만, 사흘 만에 그가 부활해서 숭배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었다. 디오니소스 수난극으로 공연된 일부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무덤에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다.

미트라스의 미스테리아 입문자들도 유사한 부활 장면을 공연했다. 지상에서의 사명을 마친 미트라스는 태양의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승천 후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아 있다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미트라스가 세계의 지배자인 빛의 신으로 즉위했다고 믿었다. 또 예수와 마찬가지로 미트라스는 하늘에서 종말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종말의 날에 그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죽은 자를 깨워서 심판할 것으로 믿은 것이다.

이러한 신화학적 주제들은 미스테리아 현자들의 전설에서도 발견된다. 세네카(BC 4-AD 65)에 따르면, 예수와 마찬가지로 철학자 카누스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 밖으로 다시 나타나서 한 친구를 찾아가 '영적 부활에 관한 얘기' 를 들려주겠다고 예언했다.

헤라클레이데스(BC 4세기)의 말에 따르면, 엠페도클레스의 기적가운데 하나를 축하하는 잔치 후, 위대한 현자 1명이 홀연 천상의 빛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지혜를 찾아 하데스로 내려갔고, 죽은 후 사도들에게 다시 나타나 하늘로 올라갔다. 초기 피타고라스의 미스테리아 입문식에서부터 죽음과 지하세계로의 하강과 재생은 중요한 주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이교도 신인들과 현자들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고려해볼 때, 예수가 유일무이하다는 그리스도교 주장에 켈수스가 분개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분명 신화일 뿐인데 그리스도교인들이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에 놀라며 이렇게 썼다.

 

예수가 죽은 후 다시 살아날 거라고 미리 말했다는 당신들의 믿음은 '사실'을 기초로 한 것인가? 글쎄, 그렇다고 치자. 그가 실제로 부활을 예언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당신들은 어리석은 청중을 미혹시키는 비슷한 얘기를 고안해 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가? 피타고라스의 하인인 자몰릭스는 한 동굴 속에 수년 동안 숨어 산 후, 자기가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스키치아 사람들을 속였다는 밀이 있다. 이탈리아의 피타고라스 자신은 또 어떠했는가? 이집트의 팜프시니투스는 또 어떠했는가? 또 누가 있을까? 그래, 오르페우스는 어떠했는가? 테실리아의 프로테실리우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는 어떠했는가? 그들은 모두 죽은 후 부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얘기는 접어두고, 우리는 육체의 부활이 인간에게 과연 가능한지 질문해 봐야 한다. 당신들은 다른 이야기가 모두 전설일 뿐임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나 또한 인정한다. 그런데 당신들의 부활 이야기, 그 비극의 결말만큼은 믿을 수 있는 사실이고 숭고한 사실이라고 당신들은 계속 주장할 것이다.

 

신의 어머니

성스러운 아들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또한 육체를 지닌 채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며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된다(가톨릭 교리에서 : 편집자주).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의 인간 어머니인 세멜레는 후일 하늘로 올라갔고, 자신의 영광스러운 아들과 더불어 불멸의 존재로 추앙 되었다. 그리스도교에서 마리아는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위대한 어머니 여신과 동일한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사실을 그리스도교의 8월 15일 성모 승천 축제는 고대 이교도의 여신 축제를 몰아내 버렸다.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가 신성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여러 모습의 모델이 되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닮았다. 그래서 가끔 무지한 그리스도교인들은 아기를 안은 이시스를 찬미한다. 중세기에 어떤 프랑스 성당에서 성모 마리아로 숭배된 검은 처녀상들은 정밀 검사 결과 현무암으로 만든 이시스상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한 전문가는 이집트 여신이 그리스도교에 미친 영향을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이시스 여신의 장중한 의식, 면도를 하고 삭발한 사제들, 아침과 저녁의 기도,딸랑거리는 음악 소리, 성수 세례와 성수 뿌리기, 그 엄숙한 행렬, 보석과 같은 어머니 신의 이미지, 이 모든 것들은 가톨릭 신앙의 의식이나 행렬과 닮은 데가 아주 많다. 성모 마리아의 아름다운 별명인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 곧 '바다의 별'은 원래 이시스의 별명이었다. 폭풍우를 만난 선원들은 마리아를 스텔라 마리스로 찬미하는데, 이시스 또한 선원들의 수호 여신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초기 전통에서, 빈 무덤과 부활한 그리스도를 먼저 목격한 것은 예수의 남자 사도들이 아닌 여자 신도들이었다. 마가복음의 원래 결말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만이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 ---이것은 이교도 비평가 켈수스가 인정한 전통이다.

또 다른 초기 전통에 따르면, 세 여자 모두 이름이 마리아이다. ---예수를 따랐던 막달라 마리아,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 마리아. 요한복음(19:25)에는 이들 세 마리아가 십자가 아래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3명의 마리아 외에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도 십자가 아래 서 있어서 모두 4명이기 때문에, 저자의 다음 논의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런데 원래의 <성서>에 구두점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4명이 아니라 3명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없지 않다. 'His Mother and His mother's sister, Mary the wife of Clopas and Mary Magdalene'. 오늘날 권위 있는 그리스어 <성서>에는 이런 식으로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등위접속사 and를 두 번 사용하고 가운데에 쉼표를 한 번 찍었는데, 원래의 <성서>에는 쉼표가 쓰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누이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이므로 4명 아닌 3명의 마리아로 해석하는 게 더 타당할 수도 있다 : 옮긴이 주)

3명의 마리아가 제시된다는 사실은 그것이 분명 고대 신화학적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교도 세계에서 삼중의 여신triple goddess은 1명의 존재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엘레우시스에서 그녀는 데메태르, 페르세포네, 헤카테로 나타난다. 1명인 그녀는 세 가지 운명, 세 가지 사랑, 세 가지 은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수와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는 흔히 3명의 여성 신도들과 관련된다. 디오니소스의 새로운 성소가 세워졌을 때, 마이나스maenas라고 불린 3명의 여사제가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그곳에 가곤 했다. 그들 각자 여자 성가대를 불러 모아서 미스테리아 의식을 돕도록 했다.

디오니소스의 세 여자 사도는 오이노트로피오Oinotropio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신인 축제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고대의 신성한 무덤 가운데 가장 흔히 나타나는 것은 신의 동굴 상징물이다. 그곳에서 세 여자는 신들의 전령인 헤르메스를 따라 빈 동굴로 들어간다. 그것은 3명의 마리아가 천사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의 무덤이었던 빈 동굴로 들어가는 것과 일치한다.

 

영적 재생

예수는 카탈렘나katalemna, 곧 동굴에서 태어나 어머니 마리아 품에 안기고 죽은 후에는 동굴에서 부활하여 세 마리아 앞에 나타난다. 이러한 '순환적' 신화 주제는 미스테리아에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일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에서, 그의 기적적인 탄생과 기적적인 부활은 동일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희생양으로 죽은 그는 곧바로 다시 신성한 아기로 태어난다. 그가 태어났고 그가 죽어서 묻힌 동굴은 자궁과 무덤을 동시에 상징한다.

그리스도교인 작가 미누키우스 펠릭스의 글에 따르면, 오시리스 수난극에서 사제들은 죽은 오시리스를 위해 이시스를 애타게 찾았다. 결국 작은 소년의 출현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는데, 그것은 신인의 재생을 상징한다. 재생한 신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해마다 찾은 것을 잃고, 잃은 것을 찾기를 그치지 않으리라'.

부활의 신화를 이해하는 열쇠는, 미스테리아 신화에서든 예수 이야기에서든 죽음이 곧 재생을 뜻한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팔린게네시스palingenesis, 곧 '재생'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플루타르코스는 말한다.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가 '자발적인 죽음'이라고 부른 것을 행하는데, 그런 행위를 통해 그들은 영적으로 재생했다.

예수가 사도들에게 '재생' 할 기회를 준 것과 마찬가지로 오시리스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두 번째로 태어나게 하는 자'이며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하는 자'였다.

오시리스의 낮은 수준의 자아가 '죽으면' , 미스테리아 입문자 또한 진통을 겪으며 높은 수준의 자아로 태어난다. 진통을 하는 여인들에게 주는 쓸개즙을 디오니소스의 대역인 히에로판테스에게 주었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게 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며 죽음과 탄생을 동일시한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진통을 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한복음 16:19-22).

 

낮은 수준의 자아가 죽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재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에 암호화된 비밀 가르침의 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 이야기 또한 하나의 신화일 수 있을까? 그 신화 또한 동일한 영적 가르침을 암호화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

사탄이 정말 완벽한 악마의 모방 솜씨를 발휘했던 것일까? 수많은 유사성은 다만,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일일 뿐일까? 증거를 다시 정리해 보자.

 

예수는 인류의 구윈자이며 인간이 된 신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버지와 동격인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인간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그의 어머니는 사후에 하늘로 올라가 신적 존재로 추앙되는데,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12월 25일 혹은 1월 6일에 태어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의 탄생은 한 별에 의해 예고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베들레햄에서 태어나는데, 그곳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에게 신성하게 여겨진 작은 숲 속에 감춰져 있는 곳이었다.

예수는 마기의 방문을 받는데, 마기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를 섬긴 사제였다.

마기는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치는데, 그것은 BC 6세기의 이교도가 신을 숭배하는 방법이었다.

예수는 세례를 받는데, 세례는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수세기 동안 행해져 왔던 것이다.

예수에게 물로 세례를 준 성스러운 인간(세례 요한)은 이교도의 물의 신과 이름이 같으며, 이교도들이 물의 축제를 벌인 하지에 태어난다.

예수는 신도들에게 물과 공기와 불의 세례를 주는데, 이교도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도 그랬다.

예수는 장발에 수염을 기른 이방인으로 그려지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결혼식 때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데, 마찬가지로 결혼식 때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

예수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의 음식을 베풀고, 어부를 도와 물고기를 잡게 하고, 사도들을 위해 물을 잔잔케 하는데, 이교도 현자들도 그 모든 기적을 행했다.

미스테리아 현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는 유랑을 하며 기적을 일으키고, 고향에서는 존경 받지 못했다

예수는 파격적인 행동을 한다고 비난을 당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신도들 또한 그렇다

예수는 처음에 사도들에게 신격을 인정 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성스러운 변모를 보여 주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12사도에게 둘러 싸여 있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무리들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동안 나귀를 타고 성으로 입성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이설과 새로운 종교를 퍼뜨린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은 의로운 자인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위선자들의 공격을 받고 폭군 앞에 불려가고 기꺼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거라고 예언하는데, 이교도의 성자들 또한 그랬다

예수는 은 30(냥)에 배신을 당하는데,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도 그런 주제가 발견된다.

예수는 빵과 포도주와 동일시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의 사도들은 상징적인 빵과 포도주를 먹고 예수와 교섭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신도들 역시 그렇다.

예수는 나무 혹은 십자가에 매달리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는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죽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의 시체에 몰약을 바른 후 세마포로 싸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시체 또한 그렇다.

죽은 후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해서 사도들 앞에 나타나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옆에 서고, 다시 지상에 나타나 심판할 종말의 날을 기다리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예수가 죽어서 부황했다는 날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가 죽어서 부활했다는 날과 정확히 일치한다.

예수의 빈 무덤에 3명의 여신도가 찾아오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3명의 여신도가 빈 무덤을 찾는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자신의 수난을 같이하게 함으로써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랬다.

 

우리는 처음에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했다. 즉, 예수의 진짜 전기에 후일 이교도 신화가 덧씌워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동정녀 잉태의 예처럼 분명 신화적으로 보이는 예수 이야기의 여러 국면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런 가능성은 흔히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예수 전기 사이의 유사성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덧씌워졌다는 정도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교도 신화에 이미 나타나 있는 예수 이야기의 모든 요소들이 후일 첨부된 것이라면, '진짜' 예수는 대체 얼마나 남아 있는가? 그러한 이론이 옳다면, 우리가 아는 예수는 하나의 신화이고, 역사적 존재로서의 예수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우리에게 떠오른 다른 가능성은 좀더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것이었다. 예수의 이야기는 사실상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또 다른 버전일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 두 사람이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우리는 복음서에 기록된, 믿기 어려운 얘기들을 신화가 아닌 다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을까?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가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유대인을 배경으로 한 똑같은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떻게 믿어야 할지 곤혹스러운 상태에서 우리는 예수의 영적 가르침에 주의를 돌렸다. 그리고 우리는 신화의 이면에서 예수에 대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4장 완벽한 플라토니즘

 

 

그리스도교인들의 수많은 아이디어는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더 잘---그리고 더 일찍이 ---표현되어 왔다. 그러한 표현들의 이면에는 과거부터 이미 존재해 온 고대의 교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켈수스

 

그리스도교를 비판한 이교도들은 예수 이야기를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의 차용으로 보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또한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이교도 미스테리아 철학을 복제한 것이라고 보았다.

켈수스는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해 경멸하듯 이렇게 말했다.

 

진리에 대한 그들의 체계적 개악과 아주 아름답고 단순한 철학적 원리들에 대한 몰이해에 대해 얘기해 보자---물론 그들은 완전히 서툰 짓을 했다.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교 지성인들은 이교도 철학을 배운 사람들이었고 그 철학이 그들 자신의 교리와 너무나 많이 닮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교부(敎父) 클레멘스는 복음서들을 '완벽한 플라토니즘'으로 간주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헤라클데이토스와 소크라테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그는 공통의 영적 유산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했다. 유스티누스는 그 유사성을 또다시 악마의 모방으로 보았다.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본질적 차이를 바보들에게 숨기기 위해 악마가 모방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악령들이 사악한 가면을 쓰고 그리스도교의 신성한 교리를 휘저어 놓은 것을 발견했을 때, 나로서는 다른 사람이 그들과 합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만 그런 거짓을 날조한 자들을 비웃고, 가면 자체를 비웃고, 대중적인 소신을 비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비웃는 것은 플라톤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달라서가 아니다. 모든 면에서 유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표절을 했으면서도 전적으로 똑같이 하지 못한 것이 가소롭다는 뜻 : 옮긴이 주). 스토아 학파들, 시인들, 역사가들의 교리 또한 그러하다.

 

그리스도교 교리가 플라톤 철학을 차용한 것이라고 이교도들이 워낙 끈질기게 비난했기 때문에 암브로스(AD 340-397)는 반박 논문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유사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플라톤이 모세를 표절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유사성을 해명했다! 유세비우스 주교가 4세기에 세운 가짜 연대기를 기초로 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BC 400년 전후)이 유대인 예언자 예레미야(BC 600년 전후)를 모방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이렇게 해명 했다.

 

플라톤이 이집트 여행을 했던 그 시설에 예언자 예레미야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저명한 주교가 입증하지 많았던가. 그리고 플라톤이 예레미야의 예언 덕분에 우리 문헌을 입수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우리가 그날을 돌이켜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플라톤의 저술을 통해 배운 게 아니라(더없이 어리석은 자들은 그렇게 믿겠지만), 그들 철학자들이 우리 문헌을 통해 좋은 것과 참된 것을 얻어 배워서 말했을 뿐이라는 게 훨씬 더 개연적이다(<신시city of God)제28장) .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이교도들이 이교 예언들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부정하면서, 고대 현자들의 지혜가 모두 그리스도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모든 선생들이 올바르게 말한 모든 것은 원래 우리 그리스도교의 것이다'. 그러한 전통에 따라 성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후일 이렇게 선언했다.

 

철학자라고 불리는 자들 그리고 특히 플라톤주의자라는 자들이 뭐든 우리 신앙과 조화되고 참된 것을 말했다면 우리는 그런 사실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말씀을 불법적으로 소유한 자들이 우리의 것을 도용했다고 주장해야 한다(<신시city of God>제40장).

 

이들 그리스도교인들이 이교도의 비난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그처럼 뒤틀린 표절 주장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의 가르침과 미스테리아의 가르침은 정말 그토록 유사한 것일까? 그것을 살펴보자.

 

도덕적 순결

그리스도교인들은 고도로 도덕 적인 교리를 아주 자랑스러워 했다. 한편 그들은 종종 미스테리아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강변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이교도 역사가이자 입문자인 디오도루스는 이렇게 썼다. '미스테리아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경건하고, 더 올곧고, 모든 면에서 더 나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사바지우스 미스테리아 입문자 1명은 의식이 끝난 후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악을 물리쳤으며 선을 발견했다'. 또 소파트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입문식 덕분에 나는 모든 도덕적 요구에 응할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갖추게 될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생애>를 쓴 이암블리코스는 이교도 행렬을 언급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미스테리아에시 이런 종류의 연출은, 흐뭇하게 장관을 바라보며 동시에 모든 악한 생각을 물리치고, 이러한 의식에 수반되는 섬뜩한 거룩함을 체험함으로써 방탕한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자 계획된 것이다.

 

미스테리아 입문식은 도덕적 정화의 원천이자 죽음의 준비로 여겨졌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렇게 선언했다. '미스테리아 의식에 참여한 모든 자들은 순결하며 고요하고 성스러운 삶으로 인도되었다. 그들은 지복의 세계에서 발하는 빛을 바라보며 죽었다'. 포르피리오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죽음의 순간에 영혼은 미스테리아 속에서 있는 그대로 있어야 한다. 모든 결점, 정욕, 시기, 분노로부터 자유롭게'.

켈수스는 입문식이 '어떤 불결함도 없이 성스러우며, 어떤 사악함도 의식하지 않는 영혼을 지닌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으며 '자신의 순결함을 알지 못하는 자는 접근하지 말라'고 선언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예수는 신도들에게 행동으로만이 아니라 생각까지도 도덕적으로 순결하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친다. 교부 클레멘스는 이렇게 썼다. '성소에 들어가려는 자는 순결해야 한다. 순결purity은 신성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소에 바쳐진 다음과 같은 고대 비문을 되뇐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순결은 오로지 성스러운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교도 현자인 섹스토스(AD 2세기)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알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도 말라'.

켈수스는 또 이렇게 썼다.

낮이나 밤이나 정녕 우리의 정신을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선함이다.

 

공개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할 때든, 침묵 속에서 반성을 할 때든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양심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고, 그리스도교는 이것을 물려받았다. 양심conscienad은 원래 '내면의 앎'이라는 뜻이다. 양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내면의 영적 앎, 곧 높은 수준의 자아가 지닌 그노시스를 따르는 것이라고 이교도 현자들은 말했다.

피타고라스 신도들은 밤마다 그날의 모든 사건을 떠올리며 수준 높은 자아의 견지에서 도덕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입문자 세네카는 도덕적 완벽성을 위한 자신의 부단한 노력을 다음과 같이 평이한 언어로 기술했는데, 이 글은 현대 그리스도교인의 글처럼 보인다.

 

날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탄원한다. 빛이 꺼지고, 내 습관을 아는 아내가 침묵을 지키면, 나는 지난 하루를 돌아보며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을 떠올리고 저울질한다. 나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나는 잘못을 직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그 잘못들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수는 죄를 고백해야 할 필요성을 가르쳤다. 죄의 고백은 지금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필수 요소이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자신의 모든 잘못과 그릇됨을 공개적으로 고백함으로써 스스로를 순결케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엘레우시스에서의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사제는 입문자가 평생 행한 것 가운데 가장 나쁜 짓을 고백하라고 요구했다. 그것은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경건한 행위였다. 포학했던 로마 황제 네로는 입문식을 치를 때 그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입문식을 회피해버렸다. 고대세계의 가장 신성한 관습 앞에서 독재자조차도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체면 손상을 감수했던 것이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썼다. 미스테리아 종교는 '가톨릭보다 앞서서 고해 관습을 확립했다. 참회 체계와 죄 사면 같은 요소도 지녔는데 다만 덜 엄격했을 뿐이다. 사제들은 신도들이 제 입으로 고해하도록 요구하며, 미스테리아 신인의 대변인 구실을 했다'. BC 1500년의 고대 이집트 <사자의 서>에는 사람이 행하기를 기피한 악마들의 '부정적 고해' 가 기록되어 있다.

미스테리아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입문식이 도덕적 신생을 위한 것이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물론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의식은 다른 모든 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위선적으로 남용되기도 했다.

피타고라스의 유대인 사도 필론은 이렇게 불평했다. '선한 사람들이 입문식을 치르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사제나 히에로판테스에게 뇌물을 주기만 하면 강도든 살인자든 음탕한 여자든 입문식을 치를 수가 있다'. 그러나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한 말은 입문식이 남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말은, 입문식을 치른 자가 도덕적으로 개선되었음을 보여 주지 못하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사랑

유대인이 전통적으로 '의로운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예수는 사랑의 하나님 이라는 혁명적인 새 개념을 설파한다. 예수의, 최초이자 핵심적인 명령은 신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개인이 하나님과 사랑하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한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미스테리아의 핵심이기도 했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썼다.

 

미스테리아가 같은 시기의 다른 여러 신앙과 구별되는 현저한 특징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그들이 신과의 개인적 관계를 갈구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신에 대한 신도들의 태도는 두려움이나 무관심의 태도가 아닌 사랑의 태도였다. 다수의 원시적인 종교의 동기는 신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된다. 정당한 수단으로든 속임수로든 신들이 인간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미스테리아의 경우에는 그 동기가 정반대이다. 그 종교는 신을 최고의 친구로 여김으로써 신에게 더 가까이 가려고 한다.

 

형제애라는 그리스도교의 정서 또한 그리스도교가 존재하기 6세기 전에 이미 존재한 미스테리아의 한 특징이었다. 엘레우시스에서의 입문자들은 아델포이adelphoi라고 불렸는데, 그것은 '형제들'이라는 뜻이다. 필라델피안philadelphian은 '형제애'를 실전하는 사람을 가리킨 말이다. 미트라스 신도들 또한 '형제'로 불렸다. 미스테리아 신인 유피테르 돌리케누스를 섬긴 사람들은 '프라트레스 카리시미fratres carissimi'라고 불렸는데, '가장 사랑하는 형제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는 신도들에게 같은 신도들끼리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마태복음(7:12)에서 예수는 이렇게 가르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러나 이 가르침 또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모든 종교적 전통에서 두루 발견되는 해묵은 개념이었다. 이교도철학자 섹스토스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너의 이웃이 너에게 하기를 바라는 대로 너의 이웃에게 행하라'.

그러나 예수는 거기서 좀더 나아간다 그는 우리가 적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자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야' 한다(마태복음 5:39). 아름답고 심오한 이 가르침은 영적 혁명으로 보인다. 낡은 유대 율법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 가르침은 유대인 정서와의 급진적 결별을 선언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고대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입문자에게 잘 알려진 것이었다! <피타고라스의 사도 섹스토스의 말씀>이라는 책에 똑같은 가르침이 나온다. 너희가 적들에게 선행을 베풀 수 있기를 바라노라. 피타고라스 자신 또한 아무리 공격을 당하더라도 맞서 싸우지 말라고 가르쳤다. 에픽테토스도 비슷한 글을 남겼다.

 

이것이 바로 철학자의 길이다. ---나귀처럼 채찍질을 당하는 것, 자기를 치는 자들 사랑하는 것, 모든 인간의 아버지이자 형제가 되는 것.

 

그러나 고대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르침으로는 소크라테스가 말하고 플라톤이 기술한 것을 들 수 있다. 켈수스는 이렇게 썼다.

 

당신들 그리스도교인은 이와 같은 말씀을 알고 있다. '악한 자에게 대적하지 말라. 그가 네 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 이 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 특히 플라톤이 더 잘 말한바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크리토에게 차근차근 심오한 깨달음을 전해 준다. 그 깨달음은 500년 후 복음서들에 나타나는 것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소크라테스가 결론에 이를 무렵의 논법은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 : "그러면 우리는 결코 그릇된 행위를 하지 말아야겠군요?"

크리토 : "네, 결코"

소크라테스 : "그러면 우리는 결코 그릇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 그릇된 행위를 당했어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는 것과 달리, 그릇된 행위로 복수하려고 하지도 말아야겠군요?"

크리토 :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우리는 남에게 해를 끼쳐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크리토 :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군요''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손해를 손해로 갚는 것이 정당한가요, 부당한가요?''

크리토 : "부당하다고 봅니다''

소크라테스 :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그릇된 행위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겠지요"

크리토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러니 우리는 결코 복수를 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남에게 해를 당했다 하더라도 결코 남에게 해를 입히지 말아야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그릇된 행위를 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으며, 복수를 하는 것도 결코 옳지 않습니다. 악한 것을 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남에게 악한 짓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짓으로 복수를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켈수스는 다음과 같이 신랄한 촌평을 했다.

 

예수의 그 말씀은 플라톤이 이미 말한 것이었다. 그리고 플라톤이 말했듯이, 그의 말은 오래 전에 영감을 받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말한 것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한 말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원문의 일부를 삭제하여 위대한 사상을 불구로 만들어 버린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미스테리아의 위대한 현자들은 그들의 보편적인 사랑의 윤리를 더욱 확대해서 동물까지 포함시켰다. 일부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동물 희생제를 치르기는 했지만, 피타고라스 사도들은 채식주의자였고, 엠페도클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가 '어떤 제단도 부정하게 도살한 황소의 피에 물들지 않은 때'였다고 회고했다.

깨달음을 얻은 이교도 현자들은 모든 종교적 전통의 계몽된 스승들과 마찬가지로 의식의 영적 의미를 깨닫기 위해 낡은 행위는 과감히 배제하는 쪽으로 입문자들을 이끌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오르페우스 미스테리아를 이렇게 평했다. '아마도 서구세계 최초로 순결과 비폭력의 드높은 윤리를 부과한 종교'라고.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디오니소스 신도와 피타고라스 사도들은 윤리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최초의 그리스도교인이었다. 성 프란시스st. Francis와 같은 소수의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의 사랑을 동물의 왕국까지 확대시켰다

 

겸손과 가난

예수는 신도들에게 겸손하고 가난해지도록 애쓰라고 가르친다. 복음을 전파하라고 12사도를 내보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면서 전파하며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의 옷이나 신발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태복음 10:7-10).

 

그렇게 행한 사도들은, 영적 가르침을 베풀기 위해 유랑을 한 이교도 견유학파의 철학자들과 구별이 되지 않았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썼다.

 

1세기 로마 제국 시대에 흔히 눈에 띈 모습 가운데 하나는, 누추한 옷을 입고 구걸 행랑을 짊어진 채 가시 지팡이를 든 견유학파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다니며 설교를 했는데, 일상어로 고매한 사상을 전파했다. 예수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그들도 마찬가지로 아무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이곳 저곳을 유랑했다.

 

견유학파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모두 누추한 옷을 입었고, 모두 그들의 종교를 '길Way' 이라고 불렀다. 에픽테토스가 견유학파인물 1명을 묘사한 다음 글은 예수와 그의 사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보낸 전령이다. 그는 선악에 대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한다. ---사람들이 진리를 잘못 알고 있다고, 있지도 않은 곳에서 선악의 진리를 찾고 있다고, 진리가 진정 어디에 있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고. 그러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는 비극의 무대에 올라선 듯이 감동을 고조시키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한다. '오, 인간이여 ,그대는 어디로 실려 가는가? 그대는 무엇인가? 그대 비참한 자여! 장님처럼 그대는 이리지리 헤매는구나 그대는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그대는 있지도 않은 곳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는구나 평화와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누군가 가르쳐 준다 한들, 그대는 믿지 못하는구나'

 

켈수스는 그리스도교의 겸손이 이교도 성자들의 자발적인 겸손을 억지로 모방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분개해서 이렇게 말했다.

 

놀랄 거야 없지만, 그들은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들의 경우에는 이 미덕의 필요성을 따진다. 이 점에서 그들은 또다시 플라톤의 숭고한 사상을 타락시킨다. 그들은 철학자들의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을 왜곡시켜서 예수가 처음 한 말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우리는 예수가 부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들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리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리라(마태복음 19:24). 하지만 우리는 플라톤이 더욱 순수한 형대로 그런 생각을 표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플라톤은 말했다 '유난히 선한 사람이 유난히 부유해지기는 불가능하다' 이 말이 예수의 말보다 더 고무적이지 아니한가?

 

예수의 가르침이 독창적이고 차별적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켈수스가 비판한 것은 정당했다. 예수가 가르친다. '너희의 보물을 하늘에 두어라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할 수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누가복음 12:33). 마찬가지로 켐스토스는 이렇게 권고했다.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아 갈수 없는 것을 소유하라. 예수가 세계의 왕인 것은 그가 만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명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스토아 학파의 격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유일한 참왕은 현자이다'.

예수는 가르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지, 혹 저물때 올지, 밤중에 올지, 닭울때 올지, 새벽에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마가복음 13:35-36).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썼다. '언제든 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말라. 너희가 없을 때 주인이 너희를 부르는 일이 없도록'.

예수는 가르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마가복음 10:15).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썼다. '왕국은 어린이의 것이다.'

예수는 가르친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마가복음 10:18). 4세기 앞서서 플라톤은 하나님God을 '선Good'으로 정의했다. 그러한 정의에 따라,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선을 나타낼 수 있다. 예수와 비슷한 어조로, 피타고라스는 자기가 현자로 일컬어지는 것을 거부하며,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피타고라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 곧 '철학자'라고 자신을 일컫기를 좋아했다. ---철학자philosopher라는 말은 그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천국과 지옥

미스테리아가 고대 이집트에서 고대 그리스로 처음 소개되었을 때, 고대 그리스인에게 사후라는 개념은 새롭고 이단적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구약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복음서들에서는 핵심 개념이다. 복음서의 이 개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고대 그리스의 이 개념과 마찬가지로 신약 복음서의 이 개념은 미스테리아에서 도입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신도들에게 사후 천국의 삶을 위안으로 제공한다. 반면 사악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옥의 고통으로 위협한다. 소포클레스는 이렇게 썼다

 

죽기 마련인 인간으로서 이러한 미스테리아를 간직함으로써 죽음의 집에서 떠나 있는 자는 얼마나 축복 받은 자인가. 그런 자에게는 생명이 부여되지만, 다른 자에게는 온갖 불행이 닥치리라

 

사랑하는 어린 딸 티모세나의 죽음을 겪은 플루타르코스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서 그는 아내에게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의식의 신비한 상징'을 잊지 말라고 일러준다. 아내가 그것만 잊지 않으면 '죽은 후에는 존재하기를 그치며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디오니소스의 계시를 함께 나눈 경험'을 통해, 그와 아내는 '영혼이 파괴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확신하며, 죽음이란 조롱 속의 새가 자유롭게 풀려난 것과 같은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와 마찬가지로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영원 속에서 재생' 한다고. 한 히에로판테스(미스테리아 의식 진행자)의 조사(弔辭)에 의하면, 죽은 자는 이제 알게 된다.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나쁜 것이 아니라 축복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저술가 글라우코스는 이렇게 썼다. '은총의 신들이 우리에게 안겨 준 미스테리아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죽어야 할 인간에게 죽음은 더 이상 악이 아닌 축복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르페우스 미스테리아의 한 사제인 필립은 입문자에게 마련된 하늘의 축복에 대해 열렬하게 설교했다. 어찌나 열렬했던지 이런 질문을 받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빨리 죽어서 그것을 즐기지 않는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미스테리아가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약속한다!' 고 불평했다(<신시> 제7장) 그러나 사실 미스테리아는 입문자에게만 영원한 구원을 약속했다. 그 점은 그리스도교가 신도들에게만 영생을 약속한 것과 같다. 한 찬가에는 이렇게 경고되어 있다.

 

이 땅의 인간들 가운데 그것을 본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나 신성한 입문식을 치르지 않은 자, 자기 몫을 갖지 못한 자, 입문의 행운을 갖지 못한자는 죽어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떨어지리라.

 

고대 세계에서 오르페우스의 미스테리아는 악을 행한 자들에게 닥칠 사후의 고통을 생생히 묘사한 것으로 유명했다. 현대의 고전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르페우스 신앙은 그리스도교에 연옥 개념을 가르쳐 주었다'. 정말이지, 프란츠 쿠몽이라는 학자는 오르페우스는 신앙 서적에서 발견되는 축복 받은 자의 행복과 죄 지은 자의 고통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유대인의 <에스드라서Books of Esdras>에 채택되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경전은 AD 1세기에 씌어졌고, 그 내용은 일부 신약판본의 외경에도 포함되었다. 그리하여 사후의 삶에 대한 이교도의 개념은 암브로스에 의해 발전되었고, 마침내는 가톨릭의 대표적인 개념이 되었다.

타르타로스Tartaros(고대 그리스 신화의 지옥)에서 영혼이 받게 될 형벌에 관한 플라톤의 글을 본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했던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그들은 어떻게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의 지옥의 불 교리를 미리 알 수 있었는지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예컨대 플라톤의 가장 원숙한 중기 대화편인 <파이돈Phaidon>에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엄청난 불길이 이글거리며,.... 불과 진흙이 뒤섞여 들끓는 거대한 호수'. 비 정통 그리스도교 경전인 <베드로 계시록>에서는 지하세계에 마련된 죄인들의 운명을 보여 준다. 그 운명은 '맹렬히 들끓는 진흙으로 채워진 거대한 호수'에 빠지는 것이다.

켈수스가 보기에는 그리스도교가 천국과 지옥 개념을 미스테리아에서 차용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그리스도교인들은 지상에서의 혹독한 노고 후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7개의 하늘이 있다는 고대 체계에 동의하며, 그러한 하늘들을 경유하는 것이 영혼의 길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미트라스 신앙과 관련된 고대 페르시아의 미스테리아에 나타나는 유사한 믿음 체계를 살펴보면, 그들의 체계가 먼 고대의 가르침에 기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미트라스 신앙은 저주 받은 자들에게 주어질 이 땅의 창자 속 공포와, 축복 받은 자들에게 주어질 천상 낙원의 기쁨을 가르쳤다. 일곱 하늘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교에서 처음 유래한 것이 아니었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그런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간 자라(고린도 후서 12:2). 여기서 '한 사람' 은 바울 자신이다.

저주 받은 자에게 주어질 지옥의 고통에 대해 그리스도교인들이 열광하는 것을 지켜보며 켈수스는, 그들이 바쿠스의 미스테리아 입문자들보다 더 미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밤이나 낮이나 불경스럽고 불명예스럽게 하나님에 대해 떠벌린다. 그들은 죄지은 자들을 기다리는 형벌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묘사를 빙자해서 문맹자를 협박한다. 그러한 그들의 짓거리는 바쿠스 미스테리아 의식의 수호자처럼 보인다.

 

훨씬 더 계몽된 미스테리아 현자들은 그러한 공포가 다만 도덕적 행동을 개선시키기 위해 꾸며 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지하세계의 여러 공포를 '(도덕적) 개선을 위한 신화'라고 불렀다. 그리스도교 철학자 오리게네스도 마찬가지로 지옥의 공포가 말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거짓이지만, 어리석은 신자들을 겁주기 위해 널리 선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교도 현자들과 오리게네스는 모두 환생을 믿었다. 천국과 지옥은 또 다른 인간으로의 환생에 수반되는 일시적인 보상과 처벌 상태로 이해되었다. 그들은 삶과 죽음을, 되풀이되는 '순환적' 과정의 일부로 보았다. ---영원한 보상이나 영원한 저주로 이어지는 단 한번의 사건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 지옥이란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연옥적 체험을 하는 곳이었고, 그런 체험을 통해 모든 영혼은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오리게네스를 사후에 이단자라고 비난했다. 오리게네스는 모든 영혼이 계속적인 연옥 체험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로마 교회는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는 영혼도 있으며 독실한 자는 영원한 구원을 즐기게 된다는 것을 믿도록 요구했다. 이것은 사후의 삶에 대한 하나의 교리인데, 켈수스는 이것을 그리스도교만의 교리로 간주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자신들의 신앙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인간들이 어떻게 남들을 자기 종교에 합세하도록 설득할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갖가지 설득 방법을 사용하여, 온갖 끔찍한 자극을 고안해 낸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영원한 처벌과 영원한 보상이라는, 지독히 공격적인 교리를 조작해 냈다. 이 교리는 철학자들(불의한 자의 처벌이나 축복 받은 자의 보상을 부정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일찍이 상상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극단적이다

 

로마 교회는 또 최후의 심판 때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모든 자들이 불길 속에 던져질 것이고, 독실한 자는 육체적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켈수스는 깜짝 놀라서 이렇게 썼다.

 

그들의 신이 불을 사용할 때(요리를 할 때처럼!) 다른 모든 인간은 완전히 불 구이가 되고, 그들만은 그을리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 교인들 또한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종말의 때에는 오래 전에 죽었던 자들도 전에 살았던 때와 똑같은 육체를 지니고 되살아날 거라고 그들은 말한다. 나는 묻고 싶다. 그건 혹시 벌레들의 소망이 아닌가? 썩은 시체가 된 몸뚱이에 연연하는 인간 영혼이라는 건 대체 어떤 종류의 영혼인가? 일부 유대인과, 심지어 일부 그리스도교인들까지도 시체가 되살아난다는 그런 가르침을 거부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건 메스껍고 불가능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내 말은, 대체 그 몸뚱이가 어떤 종류이기에 썩어 비리기 전과 똑같이 원래의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답이 없는 다른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렇게 한마디 하긴 한다. '하나님한테 불가능한 건 없다'고.

 

하지만 이처럼 기묘한 불의 계시와 육체적 재생의 교리조차도 미트라스 신앙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이처럼 별난 미스테리아 전통은 현생의 종말의 날에 하나님이 세계를 절멸시킬 거라고 가르쳤다. 그런 다음, 예수의 '재림'과 마찬가지로 미트라스가 다시 지상에 내려와 죽은 자를 무덤에서 살려 낼 거라고 가르쳤다.

마태복음(25:31-3)에 따르면, 마지막 날에 사람의 아들이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나누고, 전자는 구원되고 후자는 저주를 받을 거라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트라스 신도들은 마지막 날에 인간이 모두 한데 모인 후 선한자와 악한자로 나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후 이윽고 '아름다운 기도'를 하는 자들의 기도에 따라 하나님이 하늘에서 파괴적인 불덩이를 떨어뜨림으로써 모든 사악한 자들을 학살할거라고 그들은 믿었다. 사탄이 그리스도에게 최후의 패배를 당한다는 그리스도교의 계시록과 마찬가지로, 미트라스 신앙에서도 어둠의 악령과 그의 불순한 마귀들이 큰 불길에 휩싸여 멸망하고, 다시 젊어진 우주는 영원토록 끝없는 행복을 누리게 될 거라고 믿었다.

 

새로운 시대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다가올 계시와 새 시대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태복음 24:7-8). (염문 <성서>)에서는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기 위한 진통이니라' 혹은 '이 모든 것은 다만 탄생을 위한 진통의 시작이니라' 등의 의미로 번역되어 있다. 개역 <성서>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탄생'을 강조하지 않고 '재난'을 강조하는 쪽으로 번역되어 있다 : 옮긴이 주)

 

이교도들 또한 천문학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예견했다. 고대인들은 대략 매 2천 년마다 점성술적으로 새로운 '큰달'에 접어든다고 믿었다.(태양이 황도의 12궁 가운데 한 궁에서 다른 궁으로 넘어가는 데 대략 2천 년이 걸린다. 이러한 주기인 2천 년을 고대인들은 큰 한 달a Great Month이라고 했다. 큰 한 해a Great Year는 약 2만 5천 년이다 : 저자주)

그들은 숫양자리라는 큰 달에 살고 있었고, 이것은 BC 2000년경에 시작되었다. 숫양자리(백양궁)의 시대는 수컷 양으로 상징되었고, 디오니소스는 흔히 숫양의 뿔로 묘사되었다. 물고기자리(쌍어궁)의 시대는 BC 145년경에 시작되었다. 2040년경에는 물병자리(보병궁)로 바뀐다(고대까지는 주기가 거의 일정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세차운동 때문에 주기가 일정치 않다 : 옮긴이 주).

물고기자리는 당연히 물고기로 상징된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의 종교를 새로운 물고기자리 시대의 새 종교라고 본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데 가장 흔히 쓰인 기호가 바로 물고기 기호이다---그 기호, 곧 피타고라스 학파의 베시카 피시스는 앞에서 논한 바 있다.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태복음 4:19, 마가복음1:17). 사도들은 '사람 낚는 어부'로 알려져 있었고, 초기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스스로를 '작은 물고기' 라고 불렀다.

물고기를 뜻하는 그리스어 '이크티스ICTHYS'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를 가리키는 암호로 사용했다. 이 말은 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두문자어로 간주되었다. 정통파 그리스도교인의 대변자인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물에서 태어난 우리의 위대한 물고기(ICTHYS)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작은 물고기이다.

 

그런데 이크티스는 수세기 전 시리아의 미스테리아 신인이었던 아도니스의 그리스어 이름이었다!

물고기자리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황도상의 맞은편 궁인 처녀자리(처녀궁)는 서쪽 수평선에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이교도 신화학에서는 물고기자리 시대의 구원자가 처녀자리에서 태어날 것으로 예견했다. BC 1세기의 로마 시인이자 입문자인 베르길리우스는 시빌이라고 알려진 이교도 신탁의 여사제가 한 예언을 상기시키며, 기적적인 탄생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우리는 시빌의 찬가처럼 마지막 시대에 이르렀다. 시간의 여신은 잉태를 했고, 위대한 일련의 시대가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정의의 성처녀가 우리와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오리라. 새로운 시대의 첫 탄생은 이미 높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길을 떠났다. 이 탄생과 더불어 철의 족속은 멸하고, 황금의 인간이 온 세계를 물려받으리라. 아기의 탄생을 웃음으로 맞이하라. 영광스러운 시대가 밝아 오리라. 황소는 사자를 보고도 놀라지 않으리라. 너의 요람은 꽃으로 장식되어 너를 애무하리라. 들어오라, 시간이 임박했으니. 모든 창조물이 다가올 시대를 얼마나 기뻐하는지 보라! 그러니 아기여, 너의 어머니를 미소로 맞이하라.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 예언을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의 도래를 예언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 예언은 널리 퍼진 이교도 믿음을 언급한 것이었다. 새로 도래할 물고기자리의 시대는 인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태어날 아기는 바로 오시리스-디오니소스였다.

고대인들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옛 것의 파괴에 의해 명시된다고 믿었다. 황소자리(금우궁)의 시대를 상징하는 것은 물론 황소인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황소를 도살하고 있는 미트라스를 그린 제단 그림이 사실은 황소자리 시대의 마감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뒤이어 도래한 숫양자리의 시대는 양으로 상징된다. 따라서 이 시대의 마감이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를 살해하는 것으로 명시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이러한 이교도 교리에 따르면, 예수는 최후의 희생양인 동시에 최초의 희생 물고기를 상징하는 셈이다 : 저자주)

페르시아의 미트라스 신도들은 큰 한 달이 하나의 계시로---한번은 홍수로, 한 번은 불로---명시된다고 믿었다. 고대 그리스인들 또한 파괴와 정화의 힘을 동시에 지닌 홍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홍수는 데우칼리온(프로메테우스의 아들로, 아내와 함께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인물 : 옮긴이 주)의 신화에도 언급되어 있다.

같은 식으로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물에 의한 정화(노아의 홍수를 돌아보며, 불에 의한 정화(다가올 심판)를 고대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비전이 고대 이교의 가르침을 또다시 표절한 것이라고 켈수스가 주장한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예컨대 그들은 자신들의 메시아가 구름을 탄 정복자로서 돌아올 거라고 가정한다. 메시아는 공기의 왕자들을 거느리고 벌이는 전투 중 지상에 불을 뿌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제외한 모든 세상 사람이 불에 타서 재가 될 거라고 가정한다. 그건 참 흥미로운 생각인데, 독창적인 데는 전혀 없다. 그러한 생각은 고대 그리스 등지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즉, 주기가 바뀜에 따라, 그리고 어떤 별들이 예기치 않게 결합함으로써 큰불이나 대홍수가 일어난다. 마지막 홍수 후 데우칼리온의 시대에, 우주가 번갈아가며 변천하는 이치에 따라 큰불이 일어난다고 그리스인들은 믿었다. 하나님이 지상에 내려와서 불을 뿌릴 거라는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의 어리석은 생각은 바로 이러한 믿음을 차용한 것이다.

 

유일신

이교 신앙은 전통적으로 다신교로 분류된다. 이교도들이 여러 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교는 일신교로 분류된다. 교인들이 오직 하나인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가혹하게 이교말살 운동을 벌일 때, 그들은 소위 다신교 신앙을 원시적인 우상숭배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 미스테리아 현자들이 주장한 하나님에 대한 숭고한 철학적 이해를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도래하기 500년 전에, 크세노파네스는 이미 이렇게 썼다. '신은 하나이다. 신은 항상 고요하게 쉬시면서 오직 생각으로써 만물을 움직인다' (신이 하나라는 것은 당시 철학자들에게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다. 제논, 멜리소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 피타고라스 또한 크세노파네스와 생각이 같았다: 저자주).

전설적인 고대 이집트 현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고 한다. '그대는 여러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다. 신은 하나이다'. 이교도 현자인 티로스의 막시무스는 그 무렵 그리스도교인들은 유일신 교리가 이교도 교리와 반대된다고 설교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하나의 교리로 온 세상이 하나로 통합된다. 하나의 신이 만물의 왕이며 아버지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순교자 유스티누스조차도 피타고라스가 유일신 교리를 설교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피타고라스의 말을 인용했다.

 

신은 하나이다. 그리고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신 자신은 세계 밖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계 안에 존재한다. 신은 만물의 순환 속에 전적으로 존재하며 모든 세대를 끌어안는 존재이고, 모든 시대를 규정하는 요소이며, 자신의 권능과 소임을 행하는 분이고, 만물의 최초 원리이며, 하늘의 빛이며, 만물의 아버지이며, 우주의 지성이자 활기찬 영혼이며, 모든 궤도의 움직임이다.

 

이런 개념은 피타고라스 시대에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미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인 신은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존재였고, 석상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이집트의 미스테리아에서 오시리스는 그처럼 지고한 존재였고 '세계의 상속자이자 유일한 신'으로 선언되었다. 여러 고대 이집트 비문을 보면 이교도와 그리스도교인의 신에 대한 개념이 사실상 얼마나 유사한지 여실히 나타난다.

 

신은 오직 하나이시며

함께 존재하는 다른 신은 없도다.

신은 만물을 만든 분이시다

신은 처음부터 있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있었도다.

다른 어떤 것도 존재치 않을 때에도 존재했으며

신이 존재하게 된 후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도다.

신은 태초의 아버지이시다.

 

고대 이집트의 신 아문은 '하나 가운데 하나'로 불렸다. 이집트인 학자 월리스 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신은 또 '2인자가 없이without a second' 존재한다고 일컬어진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이 그들의 신은 하나이며 2인자가 없다고 선언했을 때, 그 의미는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그들의 신을 유일한 신으로 선언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그처럼 하나인 신God은 마땅히 부를 이름이 없어서 '신들gods'이라고 불려 온 자연계의 힘이나 존재들의 의인화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이교 신앙 또한 미신적이며 원시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다. 분명 이교 신앙에는 서로 다른 신을 믿는 많은 종파가 있었다. 그러나 버지가 설명한 대로, 소위 '신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는 자연의 일부 국면들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신god' 이라고 번역하는 고대 이집트 낱말은 네테르neter이다. 네테르는 영적 본질, 혹은 원리를 뜻한다.

고대 이집트의 여러 네테르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한 존재Being의 여러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신들gods이란 하나인 지고의 하나님God의 다른 모습이나 다른 국면들이었다(이 번역서에서 '하나님'으로 번역한 말은 모두 'God' 이다 '신god' 과 혼동되지 않도록 불가피하게 '하나님'으로 번역한 곳이 많은데, 이 '하나님God'은 여성성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일관되게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필멸의 육체를 무시하고 오로지 불멸의 영혼을 중시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God은 --- 나아가 이교도 주류 철학의 God까지도--- 여성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땅님[陰, 물성]' 이 배제된 '하늘님[陽,영성]'일 수밖에 없다. : 옮긴이 주).

고대세계에서 개별 신들gods은 흔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신God의 한 국면을 특별히 형언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모든신'을 뜻하는 말인 판테우스pantheus도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라틴어 비문들 가운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를 세라피스나 리베르로 나타낸 것이 있는데, 그 경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인은 곧 '세라피스 판테우스'나 '리베르 판테우스'로 불렸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교도들은 모두 개별 남신이나 여신 숭배를 통해 하나인 신을 숭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의 다른 국면을 선택한 이웃들과도 충돌할 일이 없었다. 켈수스는 이렇게 썼다.

 

지고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든, 혹은 그리스어 이름들로, 혹은 인도의 이름들로, 혹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이름들로 부르든, 그건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대인의 신god이었던 여호와를 제외한 다른 모든 신격의 여러 국면들을 부정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인들은 위와 같은 상식적 이해에서 벗어나 배타성을 갖게 되었다.

이교도들은 그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편협하다고 생각했다. 이교도의 종교적 관용의 정신에서 볼 때 그러한 배타성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티로스의 막시무스는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했다.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신성을 알게 합시다. 그리고 신은 하나라는 것을, 피디아스(BC 5세기의 조각가)의 작품이 그리스인에게 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이집트인들에게는 동물 숭배를, 다른 이들에게 강의 숭배를, 또 다른 이들에게는 불의 숭배를 떠올리게 한다면 나는 그처럼 다른 것에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봅니다. 그들로 하여금 다만 알게 하고, 다만 사랑하게 하고, 기억하게 합시다.

 

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다른 종교를 관용한다고 해서 미신에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동료 이교도들이 맹목적인 미신을 믿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이교도들이 우상숭배를 한다고 그리스도교인들이 비난했을 때, 사실상 그들은 미스테리아 현자들의 말을 되뇐 것에 불과했다. 미스테리아 현자들은 원시적인 믿음을 지닌 이교도들을 수세기 동안 완곡하게 조롱해 왔다. 켈수스는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해 이런 비판을 했다.

 

그들의 윤리적 가르침에는 새로운 것도, 인상적인 것도 없다. 정말이지 다른 가르침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어리석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혐오를 살펴보자. 헤로도토스가 증언한 것처럼 오래 전에 페르시아인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한 장인(대부분 가장 천시된 신분의 사람!)이 만든 우상이 신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얘기이다. 현명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상을 신으로 숭배한 사람은 벽에 대고 말을 거는 사람만큼 어리석다'.

 

아테네 철학자 디아고라스(BC 5세기)는 신들을 조롱한 것으로 유명했다. 디오게네스가 그랬듯이, 그는 석상에게 소원을 비는 이유를 질문 받자 냉소적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거절 당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크세노파네스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묘사한 신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공박했는데, 풍자적으로 이렇게 평했다.

 

사람들은 신들이 태어나자마자 말을 했고 옷을 입었으며, 자신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신이 들창코를 지닌 흑인이라고 말한다. 트라키아인들은 신이 푸른 눈에 빨간 머리칼을 가졌다고 말한다. 암소와 말이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신의 모습을 암소와 말처럼 그릴 것이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는 허구 인물인 모무스를 내세워, 동물의 머리를 가진 기괴한 신들이 나타난 것에 대해 제우스에게 불평한다. 제우스는 '신들의 그런 모습이 꼴사납다'는 것을 자기도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런 신들의 대부분은 상징일 뿐이므로 미스테리아에 입문하지 않은 자는 그런 신들을 비웃지 말아야 한다'고 해명한다. 마찬가지로 켈수스도 이교도 신들의 모습이 입문자들에게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될 뿐이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실명한다. 그런 신들은 '보이지 않는 관념들의 상징이며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수의 이교도 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개념이 원시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여러 국면을 '신들'로 의인화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지고한 하나님을 인간의 용어로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인동형동성설(신과 인간이 모습도 같고 본성도 같다는 이론)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켈수스는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나님이 손과 입과 목소리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은 '하나님께서 가라사대'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손을 들어' 이적을 일으켰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한 하나님은 전혀 하나님이 아니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손도 없고 입도 없고 목소리도 없으며, 우리가 아는 그 어떤 특성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터무니없는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심지어 인간을 위해 창조한 동산을 걷기까지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화를 내며, 질투를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유감스러위하며, 졸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모든 면에서 그것은 하나님이기보다는 인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고한 신에 대한 그들의 배타성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 또한 천사들을 숭배하지 않는가?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은 이교도가 보기에 여러 남신이나 여신과 똑같은 천사들을 숭배할 뿐만 아니라 이교도와 똑같이 '신들'에 대해 얘기했다! 교부(敎父) 클레멘스는 이렇게 썼다. 영적 계몽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신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 미래의 삶을 대비한 가르침'이라고. 계몽된 자들은 신들gods이라고 불린다고 그는 설명했다. 계몽된 자는 '구원자 하나님이 먼저 임명한 다른 신들과 더불어 왕좌에 앉게 될 것으로 정해진 자'이기 때문이다.

이교도 입문자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하나의 신임을 알라'. 같은 식으로 요한복음서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한 바리새(바리사이) 사람들에게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너희 율법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내가 말하노니, 너희는 신들이노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들gods이라 하느니, 이러한 <성서>는 폐하지 못하느니라.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0:34-36)

 

초기 그리스도교 철학자 오리게네스는 니케아 신경(信經)을 논할때 '두 하나님'과 같은 말을 사용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두 번째 하나님'이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물론 삼위일체 교리에는 결정적으로 다신교적 교리가 담겨 있다. 하나님이 '세 인격'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개념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지고의 유일한 하나님의 여러 국면에 대한 이교도 개념과 일치한다.

유대교에는 신성한 삼위일체 개념이 없다. 그 개념은 일찍이 이교 신앙에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은 피타고라스 교리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전체와 모든 것은 수 3으로 이해된다. 끝과 중간과 시작은 삼위일체인 전체의 수를 갖기 때문이다'. 수백년 앞서 존재한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선포한다. '하나인 나는 셋이 된다'. 또 다른 문헌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신은 모두 셋이다. ---아몬, 라, 프타. 그들과 같은 존재는 달리 없다. 아몬이라는 이름 속에는, 그가 라이며, 그의 육체는 프타라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그는 라와 프타와 더불어 아몬으로 현시되며, 셋은 하나로 통합된다.

 

소위 일신교라는 것과 다신교 사이의 행간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배워 온 것과는 달리 둘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구분은 유동적이어서 사실상 구분을 한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로고스

흠정역 <성서>(17세기 초에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지지를 얻어 계획 발행된 영역 <성서>)에 의하면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 1:1-4).

 

이러한 문장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묘한 감동을 느끼면서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교도 철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위 문장의 뜻을 환히 알 수 있다.

위의 '말씀Word'은 그리스어 '로고스Logos'를 번역한 말이다. 로고스 개념은 유대인에게 전혀 낯선 것이었고, 전적으로 이교도 미스테리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BC 6세기에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에 공유된 로고스'를 발견했다(C. H. 칸은 이렇게 평했다. '지혜는 자기에 대한 앎에서 비롯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기에 대한 앎을 찾다가, 자신의 내면에 우주와 맞먹는 로고스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자주)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썼다.

 

나 자신에게가 아닌 로고스에 귀를 기울인 결과, 현명하게 만물이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교도 현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설파했다. '철학자들의 로고스는 하나님이 자신의 로고스를 통해 선언한 것과 같은 평화를 우리에게 약속한다'. 로마인 비트루비우스는 BC 27년경에 이렇게 썼다.

'내가 로고스를 믿는다면 아무도 내가 그르다고 생각지 못하리라'.

클레멘스도 그 점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인들이 신성한 로고스를 약간은 엿보았다고 기꺼이 인정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교도의 전설적인 현자 오르페우스의 선언을 인용했다. '신성한 로고스를 보라. 인생의 좁은 길을 가며 로고스를 바라보라. 세계의 위대한 지배자, 우리의 불멸의 왕인 로고스를'. 그러나 이런 이교도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문헌에 이미 이런 개념이 담겨 있다. 그문서는 그리스도가 오기 2천500년 전쯤에 씌어졌다!

그러한 고대의 로고스 개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대 그리스에서 로고스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데, 우리의 용어인 '말씀'의 뜻으로는 쓰이지 않았다. 교부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로고스의 여러 의미 가운데 '생각중의 생각'이라는 의미로 로고는스라는 말을 사용했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최초의 생각인 셈이다.

전설적인 이교도 현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도 정확히 같은 뜻으로 그 말을 사음했다. 그는 로고스, 곧 생각 중의 생각이 하나님에게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그는 로고스가 하나님의 위대한 마음Mind에 떠오른 첫 생각이며 그 생각으로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다고 보았다.---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 또한 그렇게 보았다.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나님과 로고스 사이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로 의인화한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아들' 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이교도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존재의 다른 국면이라고 가르친다. 그러한 패러독스는 요한의 말에도 나타난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곧 하나님이었다'.

그것은 사실상 고대 이교도의 교리이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또한 로고스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말했고, 그 밖에도 여러 현자들이 그런 말을 해 왔다. 마음과 생각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사실상 하나인데, 서로 분리되면 둘로 나타난다고 헤르메스는 설명한다. BC 6세기에 헤라클레이토스도 같은 말을 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존재이다'.

클레멘스는 에우리피데스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묘하게도 미리 알아맞혔다'고 인정했다.

하나님과 로고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불가사의한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클레멘스는 이렇게 썼다.

 

아들son은 하나님의 의식이다. 아버지는 다만 아들에게 반영된 세계를 본다.

 

로고스는 스스로를 의식하는 하나님이다. 또 로고스는 우주의 한영혼0ne sou1인데, 만물을 통해 의식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스스로를 발견하려고 했다가 '만물에 공유된 로고스'를 발견한 것도 바로 그래서이다. 본질적으로 우리 모두가 공유한 정체성이 바로 로고스라는 것을 그는 발견했던 것이다. 기독교 철학자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몸은 수많은 개체로 이루어졌지만 각기 한 영혼One soul과 결속되어 있듯이, 하나의 무한한 생명체인 우주 또한 한 영혼One Soul ---하나님의 로고스---과 결속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수가 로고스의 화신이라고 요한이 말하듯이, 이교도 입문자인 플루타르코스 또한 오시리스가 '초월적이며 고통을 느끼지 않는 로고스 자체'라고 가르쳤다. 이교도에게 오시리스-디오니소스가 곧 로고스이듯 예수 그리스도와 로고스를 동일시함으로 요한은 예수가 인격화된 우주의 한 영혼One soul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안에 존재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가 공유한 신성한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시대에 실제로 살았던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영원한 철학적 원리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낳았던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낳고 있다'고 오리게네스는 썼던 것이다.

그리스도교인과 이교도의 로고스에 대한 이해에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앞서 말했지만, 이교도 로고스의 화신인 신인의 이야기는 '신화'인 반면 철학적 원리의 화신인 예수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그 차이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도 철학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교도 철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으며, 육체의 의지로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다만 하나님의 의지로 태어났다고.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인은 오직 한 인간만이 말 그대로 육신이 된 로고스였다고 믿는다. 그것이 고대세계의 이교도와 그리스도교인을 나누는 본질적인 차이이다. 이교도들에게는 우리 모두가 공유한 로고스가 단 하나의 인간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리스도교인의 로고스 개념이 이웃 이교도의 개념과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사렛의 한 목수가 실제로 로고스의 화신이며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었다고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러한 주장이 정말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 수세기 동안 논란을 거듭했다

 

미스테리아의 용어

막스 뮐러 교수는 이렇게 힘주어 말한다. ---로고스 곧 '말씀', 모노게네스monogenes 곧 '독생자', 프로토코스protokos 곧 '장자(첫아이)', 히오스 토우 테오우hyios tou theou 곧 '하나님의 아들'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비롯한 종교적 사고의 원형을 차용하는 자'라고.

신약 <성서>를 포함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저술들에는 그러한 이교도 개념이 수없이 많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런 개념은 원래의 그리스어를 빈약한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변질되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사용한 용어는 사실상 미스테리아신도들의 용어와 너무나 유사하다. 비문만 보아서는 죽은 자가 그리스도교인인지 이교도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예컨대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그의 영으로 비밀mysteries을 말함이니라'(고린도전서 14:2)고 썼는데, 이교도들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교의 세례나 영성체 의식도 '미스테리아Mysteries'라고 일컬어졌다. 이 의식을 주관하는 주교는 '미스타고구스Mystagogus'라고 불렸는데, 이 말은 미스테리아의 지도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미사는 '미스타고기아'라고 불렸는데, 이 말은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미스타고기아Mystagogia'는 '미스테리아 전수'라는 뜻이다 : 옮긴이 주). 현대의 고전학자의 말에 따르면 이 말들은 모두 '미스테리아의 용어' 이다.

그리스도교인 철학자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교 의식을 '텔레테telete'라고 불렀다. 이 말은 '입문식'이라는 뜻이다. 이교도 비평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도 초기 그리스도교 의식이 미스테리아 의식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보고, 그것을 '새로운 텔레테' --- '새로운 입문식'이라고 불렀다. 사도 바울은 대게 '성숙한', 또는 '온전한' 그리스도교인으로 불리지만 그러한 수식어에 해당하는 원래의 그리스어를 좀더 정확히 번역하면 '입문한' 그리스도교인이라는 뜻이다.

어떤 교리를 해설할 때 오리게네스와 같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선포했다. '입문자는 내 말의 뜻을 안다!' (조지프캠벨의 저술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도교 의식은 미스테리아 의식으로 제시되었다. '두려움에 떨게 하는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은 이것을 안다'와 같은 구절이 초기의 모든 그리스어 설교에 나타난다 : 저자주) 이교도 철학자 파우사니아스와 플루타르코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등이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비밀을 언급할 때에도 그와 똑같은 말을 사용했다.

교부 클레멘스의 저술은 이교도 미스테리아의 용어에서 직접 차용한 낱말로 가득하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계시를 '신성한 미스테리아', '신성한 비밀', '비밀의 로고스', '로고스의 미스테리아'라고 썼다. 클레멘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한 미스테리아의 교사'였다. ---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나의 히에로판테스', '나는 입문식을 치르는 동안 신성해진다'고 클레멘스는 썼다. 이교도 입문자의 말과 다를 게 없는 말로 그는 열변을 토한다.

 

오, 진실로 성스러운 미스테리아여! 오, 순수한 빛이여! 이글거리는 횃불 속에서 나는 하나님과 천국을 본다. 나는 입문식을 통해 거룩해진다. 주님은 미스테리아를 나타내신다. 주님은 숭배자에게 봉인을 찍으신다. 원컨대 그대들도 입문하라. 그리하면 유일한 참 하나님의 주위를 맴돌며 천사들과 함께 춤을 추리라.

 

그리스도교는 미스테리아 신앙의 조직 체계까지 물려받았다. 현대의 그리스도교 학자는 그 점을 이렇게 인정하고 있다.

 

미스테리아 신앙은 원시 그리스도교의 선구가 된 종교적 연합체를 결성했으며, 조직과 행정 체계 또한 새 종교에게 물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 종교를 개인적 확신의 문제로 만듦으로써 그리스도교를 위해 바람직한 환경을 조성했다. 뿐만 아니라 죄의 대속redemption이 무엇인지 가르쳐서 사람들이 그것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미스테리아의 복음 전도자들이 미리 길을 닦아 놓음으로써, 이제 사람들은 예수가 구원자라는 그리스도교의 선포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미스테리아는 범민족적인 신들을 숭배하도록 했고, 인류의 형제애를 지향했으며, 불멸성에 대한 열망을 자극했다. 신도들에게 신앙의 전파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사람들을 열렬한 전도자로 만드는 선례를 보여 주었다. 그들의 신격을 통합된 신격의 대표자로 삼음으로써, 유일신 신앙을 촉진시켰다.

 

결론

신약 <성서>는 정말 새로운 것이었을까? 전통 유대인들에게는 분명 새로웠고 이단적이었다. 예수의 비유를 통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유대인 교리는 소크라테스의 '적을 사랑하라'는 교리의 도전을 받았다. 천국과 지옥의 성격에 대한 미스테리아의 가르침은 내세에 대한 유대인의 개념을 뒤바꿔 놓았다. 따라서 신약 <성서>는 유대인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 그러나 이교도에게는 새롭지 않았다. 이교도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그런 교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의 가르침이 과거 이교 신앙의 가르침과 똑같았어도 이교도들은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독창적인 진리보다는 항구적인 진리를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굴해 낸 증거 일부를 정리해 보자.

 

예수는 신도들에게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생각까지도 도덕적으로 순결하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쳤는데, 미스테리아 현자들도 그랬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사랑하는 관계를 맺는데, 미스테리아 입문자들도 그랬다.

예수는 신도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미스테리아 현자들도 그랬다

예수는 신도들에게 적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미스테리아 현자들도 그랬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서로를 '형제'처럼 사랑하는데, 미스테리아 입문자들도 그랬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겸손과 자발적인 가난의 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데, 미스테리아 입문자들도 그랬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교에 없는 천국과 지옥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미스테리아의 개념을 직접 도입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불의 계시와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기다리는데, 미스테리아 입문자들도 그랬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물고기 상징은 이교도 점성술의 상징을 도입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유일한 하나님을 믿는데, 미스테리아 현자들도 그랬다.

이교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인들도 '신들godd' 얘기를 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우상숭배를 공격하는데, 미스테리아 현자들도 그랬다.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교도 미스테리아에서도 발견되는 개념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를 로고스의 화신으로 보는데, 그것은 유대교에는 없는 이교도의 개념이다.

신약 <성서>를 포함해서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저술은 미스테리아의 용어를 대거 사용하고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조직은 이교도 미스테리아 입문자들의 조직을 본받은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똑같은 것을 고대 미스테리아의 교리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예수의 행적과 똑같은 이야기를 이교도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두 사람은 명백히 알게 되었다. 약 2천여 년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유일무이하며 혁명적인 계시종교라고 믿어 왔지만 그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인가?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로 결심했다. 로마 교회가 우리에게 물려준 그리스도교의 전통 역사는 전혀 역사적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것들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AD 첫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인들 공동체는 여러 파로 갈라져있었다. 로마 교회가 된 문자주의자들 집단뿐만 아니라 영지주의자들로 알려진 집단도 있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해 급진적으로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문자주의자들은 그것을 너무나 위험한 이단으로 간주 했다.

문자주의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되자, 문자주의자들은 그들 특유의 견해를 강화시키는 한편, '이단'을 잔혹하게 말살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전동 역사는 문자주의자와 영지주의자 간의 파벌적 싸움에서 이긴 자의 입장에서만 기술되었다.

그 역사가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입증됨으로써, 우리는 패배한 자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영지주의는 생존의 싸움에서 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덜 타당하다고는 불 수 없다. 로마 교회가 그토록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던 영지주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전문을 읽으시려면 아래를 클릭한 후 "예수는 신화다"를 검색창에 치시면 됩니다.

 http://cafe.daum.net/bgtopia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