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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녀석아 잘 가라...

남은이 |2003.08.04 16:24
조회 223 |추천 0

금욜날 밤,

학원 수업 끝나구 휴대폰 열어보니까 문자가 와있더라.

너한테서 혹시 전화 안왔었냐구 친구가 문자를 보냈더군.

뭔일인가 싶어서 '그녀석이 나한테 왜 전화를 해'라고 친구한테 문자 보냈었지.

집에 돌아와서 옷 갈아입고 마루에서 엄마랑 잡담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또 문자 보냈지.

너 11일날 뱅기 타고 유학간다고.

혹시나 너한테서 전화 오면 싸랑둥하게 그러지 말고 쌓인거 풀으라고.

 

순간적으로 머리 뒤쪽으로 '팅~'하고 낮은 소리의 무언가가 울리는 것 같았어.

아... 그렇군...

이 생각도 들었고,

공부하러 바다 건너 갈거라더니 결국 가긴 가는군,

그런 생각도 들었고.

 

친구한테 두번째 문자 온거 확인하자 마자 전화를 걸었지.

니가 걔한테 메일 보냈다지.

너 유학간다고 썼다며.

그리고,

만약 나한테 연락하게 되면,

내가 막 화를 낼것 같다고 그런 말도 썼다며.

바보녀석아....

내가 화낼 짓을 그럼 왜 했는데?

니가 잘못한거 알긴 아냐?

그리고,

니가 무엇을, 그리고 왜 잘못했는지도 아냐?

 

아니다..........

꼭 누구 한사람만의 잘못이랄수는 없겠지.

둘다 어리석고 미성숙했고 철부지여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기댈곳을 찾고 위안을 받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그래서,

그래서 너는 늘 니가 필요할때만 나를 찾았던 것일테고.

난 그런 니 모습에 실망하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난 아직도 너에게서 들었던 그 말 한마디가 잊혀지질 않아.

모호하고 불투명한 너와의 관계에 대해 내가 회의를 느껴서,

그래, 모 아니면 도다, 이런 심정으로 너한테 대들듯,

내가 너한테, "너는 왜 나를 만나니?"라고 물었을 때,

넌 끝끝내 대답 안했지.

그래서 나를 저 아래 낭떠러지도 끝없이 밀어버렸지.

 

그리고 또 너 그랬지.

"모든 인간관계는 다 똑같아. 얽매이는거야. 난 얽매이는거 싫어"라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순간적인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내가 다시 다그쳤지.

"그래서, 넌 니가  필요할 때만 나를 찾고, 아닐 때는 멋대로 내팽개쳐두고? 대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너 기억나냐?

잔뜩 흥분한 나에게 니가 낮게 읊조리듯 했던 말.

"니가 원하지 않으면 거부하면 되잖아."

 

너 그날,

아마도 니가 평생동안 먹어야 할 욕 다 들었을꺼다.

시뻘개진 얼굴로 2월 한겨울의 찬바람을 양뺨으로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니이름 석자에 대고 "나쁜 자식" "개자식" 이 말을 염불처럼 끝도없이 되뇌었던 내 심정을,

너는 몰랐을꺼다.

 

묻고 싶은게 있었어.

얽매이고 싶지 않다면서,

헤어진 후에도 왜 그렇게 나를 불편하게 했던건지?

그렇게 끝내놓고 나서,

동문 까페 게시판에다 대고 이상한 소리나 잔뜩 늘어놓고.

왜,

그러면 내가 뭐라도 달라질줄 알았어?

너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나도 니가 원하는대로 해준거잖아.

왜,

내가 그렇게 화 벌컥 내고 돌아서니까,

어, 이건 아닌데,

뭐 그런 생각 들었던거야?

넌 정말, 이.기.적.이.야.

 

그래도.....

너한테 그렇게 무수히 욕지거리를 해대고도 돌아서 혼자 남은 나는 늘 맘이 아팠지.

어느 눈 오던 날에,

창문 밖으로 펑펑 쏟아지던 눈을 바라보며 바보같이 내 신세 한탄하며 소리없이 울어보기도 했고,

괜히,

제발저린 도둑처럼,

그렇게 맘이 늘 무거웠어.

 

까페 게시판에서는, '넌 가해자야, 잊지마' 이런식으로 너한테 무언의 낙인을 찍으려 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철저하게 내 이야기 너한테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니 이야기 듣고싶지도 않았지만,

나한테 주눅들어있다고 생각하는 너보다도,

너를 미워해야만 하는 내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니가 생각이나 했을런지 모르겠다.

 

혼자서 너를 생각하면,

내가 무슨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그냥 서로가 안맞았을 뿐인데, 이제는 모든거 툭 털어버려야지, 과거에 집착할 필요 무에 있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리고,

내가 좀 더 인내심이 있고 현명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지만,

 

막상 어쩌다 오랜만에 실제의 너와 부닥쳤을 때,

너는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했고, 그래서 기분이 상했고, 또 다시 미움이 쌓이고,

그래서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고,

그러면서 너한테 또 실망하고 용서가 안되고,

늘 그랬던거,

이젠 그런 상황에 더이상 지치고 괴로와하고 싶지 않아서,

너하고 마주치는 일조차 두렵고 싫어지더라.

 

친구랑 전화 끝내놓고 나서 자리에 누워 한동안 뒤척거리다가,

미친척하고 휴대폰을 들고선 그 신새벽에 너한테 전화를 해볼까, 생각도 했었지.

나한테 주눅들어있다던 너,

나한테 미안해한다던 너,

그러니까 절대 나한테 먼저 전화하지 않을 너,

그런 너라는 것을 알기에,

내가 먼저 전화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불현듯 나서.

 

하지만,

이내 폴더를 닫아버리고선 이불을 뒤집어썼지.

너한테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나였지만,

그 이전에,

또 다시 너와 불편한 기억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전화를 해서 뭘 어쩌자는건데? 이 생각이 나를 짓눌러서.

 

우린,

늘,

언제나,

서로 떨어진 채로 상대방에 대해 미안해할 때가 제일 아름답지(??) 않았었나... 이 생각 때문에,

얼마 안있어 멀리 떠날 너한테 내가 행여나 끝내 행패(!)를  부리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싶어,

그냥 참았어.

 

니 자존심인지, 아님 자격지심인지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너는 끝내 내게 전화를 하지 않으리란걸 안다.

그리고,

니가 설사 전화를 한다고 해도 나는 순간적으로 움찔 놀랄거라고 생각해.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테니까.

그러면 서로가 당황하고 어색해하고,

너는 전화를 괜히 했다고 속상해하겠지.

그래서 이렇게 여기 이곳에 바보처럼 넋두리를 해본다.

 

철부지 녀석아....

이제 가면 한동안 고생깨나 하겠구나.

가서 고생좀 해보고, 혼자 이겨내는 방법 배우면서,

철들길 바란다.

 

내가 바라는게 있다면,

언젠가의 미래에 행여나 너와 마주칠지도 모를 그 순간에,

나는 그저 평범한 주부의 모습이었음 하는 것인데,

너도 평범한 가장의 모습으로 마주치길 빈다.

 

그곳에서,

먼 땅에서 공부하다가,

서로 공부하느라 힘들 때 곁에서 위로해줄 수 있는 그런 맘씨 고운 사람을 만난다면,

절대로 '얽매인다'는 바보소리 하지 말고 꼭 붙들어두길.

나는 그렇게 못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너의 곁에서 너의 삭막한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었음 좋겠다.

 

우리 둘이 다 아는 귀여운 친구가 내게 했던 말로 끝을 맺으마.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 잘 지내라.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이 니가 생각하는 성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니까,

너한테는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겠구나.

 

모쪼록 니가 원하는 모든것 그곳에서 다 이루길 바란다.

 

 

2003년 8월 4일 월요일 오후에,

너를 좋아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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