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선생님들. 당신들은 한 순간에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어버리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2007년 봄에 간질성 폐질환을 진단 받으시고 그래도 좀 더 긍정적이고도 희망적인 치료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는 큰 기대감으로 아산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아산 병원에서 외래 검사 및 치료(?)를 하시다가 조직 검사 결과, 초기 폐암으로 나왔습니다.
워낙 진단받으신 간질성 폐질환이 있으신데다가 초기 폐암으로 결과가 나왔을 때 김동순 교수님께서는 당연희 수술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저희는 교수님의 뛰어난 경력과 능력을 믿었으며, 온 식구들이 춯의 의심도 없이 수술을 해드리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이 결정을 평생 두고두고 저는 가슴에 한으로 남을 것이리리라고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간혹 기침을 하시고, 많이 걸으시면 숨이 조금 차는 정도의 증상을 가지고 등산을 비롯하여 자전거 타기 등등의 운동을 열심히 하시며 즐겁게 노후를 보내고 계셨던 저희 아버지계서는 그 후 영영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마는 불상사를 이 자식들이 결정짓고 말았음을 2007년 12월의 약 20일간의 입원기간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끼고야 말았습니다.
도저희 저 자신을 비롯하여, 이모든 일이 일어나게끔 만들고야 만 모든 사람들을 용서 할 수가 없습니다.
초기 폐암이라 하더라도 수술않고 그냥 계시게 두었더라면 적어도 1~2년은 행복하게 더 계시다가 많은 것들을 정리하시고 우리 가족들 곁을 떠나실 수 있었을 것을...
봄에는 국내 여행을 하시겠다고 하셨는데...그것 역시 하시고 보내드릴 것을...
미국에 사는 막내딸을 만나서 실컷 말씀하시고 떠나보랠 수도 있었을 것을...
아!!!
의사선생님들께서는 본인들의 부모님을 이렇게 떠나보내지를 않아봐서 저의 이 애절함이 도저희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저는 몇가지 의문을 문의하고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1. 간질성 폐질환을 가지고 계씨는 우리 아버지께 수술을 권하시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떄 환자의 100명중 1~2명에 속하는 일이 저희 아버지께 벌어졌으며, 방법이 없다고 말씀을 하시는 당신들을 이해할 수가 없으며, 이러한 결과가 벌어질 것임을 한번쯤 환자나 가족들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셨다면 과연 환자에게 수술을 권했을 것인지를 여쭤보고 싶으며,
2. 흉부외과로 옮겨져서 12월13일에 수술을 하시고 14일에 병동에 올라오신 저희 아버지께서 15일 오전부터 숨이 차기 시작하셔서 15일 오후에는 심하게 호흡곤란을 말씀하셨음에도 산소를 준다던지 그 어떠한 처치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3, 15일 오전에 호흡곤란이 있으신 환자분을 Chest tube를 뽑는다며 처치실로까지 오시게 해서 병실을 나서자마자 주저앉게 만든 것도 모자라 환자가 왜 주저앉았으며, 왜 힘들어하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나타내지 않으며 끝까지 처치실에서 가슴의 관을 뽑은 것은 정말 환자가 나타내는 증상을 완전히 무시한 처치였음을 저는 믿고 있으며,
4. 그 후에 호흡곤란으로 극도록 불안해하시며 극도의 호흡 곤란을 나타내시는 아버지께 당신들이 겨우 처방을 내린 것은 산소공급을 코에 끼우는 튜브로 하는것이었으며, 엑스레이를 찍는 것이었습니다.
엑스레이는 찍어서 무엇을 하였나요?
워낙 환자는 간질성 폐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폐절제술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럼 매일 찍은 엑스레이에 이상이 없다면 그냥 방치해도 되는 것인지요? 환자분이 나타내는 증상에 대해서는 왜 어떠한 처치를 해주지도 않은 것인지요?
5. 극도의 호흡곤라과 불안함을 나타내실 때 왜 처음부터 코에 끼우는 산소 튜브라 아닌 입과 코전체로 산소를 넣을 수 있는 마스크로 왜 많은 양의 산소를 넣지 않았는지요?
6. 자, 의사선생님들, 17일 하루종일 너무 심한 호흡곤란으로 한 말씀조차 하기 힘들어 하시던 저희 아버지께 당신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병동의 간호사분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환자가 호흡곤란으로 무엇을 먹고 있는지? 먹고 있지 않다면 무엇을 환자에게 투여를 하여야 하는지? 왜 그 부분조차도 챙기지를 않았습니까? 가족들이 간호사에게 환자분이 전혀 드시지를 못하니 영양제라도 좀 투여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으나, 당신들은 무엇ㅇ르 해주었습니까? 부탁한 영양제조차도 병실에서 투여를 하지 않았으니... 70이 넘으신 분이 큰 수술 후 토요일 이후 호흡곤란으로 거의 드시지를 못하시고, 무신 침이 있으실 것이며, 그렇게 극도로 전체적인 컨디션이 떨어지면 당연히 폐간질이 심해질 것임은 누구나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아닐 것인지요?
7. 결국 수술 후 딱 1~2일 조금 말씀하시다가 17일 밤 9~10시경 중환자실로 옮겼으니...
기가 막히고, 지금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중환자실에서의 의사 선생님들의 자세가 또 저희아버지를 정말로 돌아오지 못할 강으로 건너가게 만드는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자세들이었습니다.
8. 저희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내려가신지 1~2시간만에 intubation(인공적으로 호흡하게 하는 기계)을 하시게 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께 그것을 하면서 의사 선생님 당신은, 정신이 아주 맑고 굉장히 똑똑하신 저희 아버지 앞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폐가 성한 구석이 한곳도 없으며, 오늘밤을 넘기기 힘드셔서 intubation을 해야겠다고.."
그랬더니 저희 아버지께서 어떻게 반응을 하시던가요?
가족들에게 유언을 해야하니 가족들을 다 불러달라고 하시지 않으시던가요?
당신은 뭐라고 저희 가족들에게 말씀하셨나요?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 최고의 의사가 근무하는 곳인데 믿어달라고 하지 않으셨는지요?
이런 행동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 최고의 의사가 근무하는 곳의 의사가 할 행동인지요?
설마 이 모든 일들을 모른다며 말씀하실 것인지요?
이게 과연 의사의 신분으로 환자 앞에서 해야 할 말인지요?
어느 누구건 이런 의사의 말을 들으면, 어느 환자가 살고자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어느 환자가 치료에 믿음을 가질 수 있을런지요?
그 후 제가 가슴을 쥐어뜯고 있습니다. 아산 병원엘 간 것 자체에 대해서요.
9. 자 그다음엔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나요?
제일 처음에 김동순 교수님께 입원하셨다가 흉부외과로 옮겨지신 후 본인들이 한 수술은 너무도 잘 됐으며, 수술 자체는 훌륭하게 정리되었으니, 중환자실에서 호흡기 내과로 옮겨졌는데, 저희 아버지 담당이라고 하신 호흡기 내과 임채만 교수님은 딱 한번 만난 후 그 후는 세미나 관계로 ㄱ수님 당신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저희 아버지 사망선고 역시 전혀 생뚱맞은 처음 보는 의사선생님이 하셨으니, 저희 아버지는 누굴 믿고 치료를 한건지요?
처음에 입원한 과 인 김동순 교수님은 본인이 넘겨준 폐간진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폐간질이 심해져서 사경을 헤매고 있음에도 본인에게 넘겨진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떠한 치료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임채만 교수님은 너무도 중요한 세미나 관계로 본인에게 배정된 환자를 레지던트 선생니께 전임하고 보지 않았으며,
저희 가족들은 저희 아버지께서 중환자실로 내려간 후 담당 교수님 그누구에게도 앞으로 저희 아버지께 벌어질 일이 어떤 것이며, 어떠한 상태인지에 대하여 정식으로 설명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늘 레지던트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매달리고 부탁하였습니다.
과연 당신들의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그렇게들 행동을 하였을까요?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중환자실에 눕혀놓고 레지던트에게 환자를 맡기고 세미나를 갈 것이며, 처음에 본인이 입원을 시켰더라도 본인에게 배당된 환자가 아니므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것이며, 끝까지 사망 선고조차도 본인이 하지 않을 것인가요?
저희는 담당 교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치료를 시작한 것입니다.
직속 레지던트의 오더가 본인이 내린 오다라고 말씀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지 않습니까? 아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투여를 하면 정말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요.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며, 그래서 그 적절한 시기와 치료제를 놓치지 않는 담당교수님 당신들이 병원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요?
저희 아버지께서 하다못해 당신 친구의 아버지라고 해도 저희 가족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놓쳤다는 것을 느끼게끔 당신들이 행동을 했을까요?
워낙 이렇게 해야하는 것인지요?
저는 두고두고 당신들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며,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당신들은 전혀 관심이 없겠지요, 저의 잘못된 결정으로 일찍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께 평생 사죄를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며, 그러한 결정을 내린 제 자신을 용서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받는 말로 저희 아버지께 삶의 희망을 싹둑 잘라버린 intubation 한 의사선생님 성함은 김윤석 선생님입니다. 제가 아산병원을 마지막으로 나오며 한 일이 이 선생님 성함을 묻는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12월 12일 입원하시고 13일 수술하셨고, 12월 31일 12시에 사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