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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려다가 충북 음성으로 간 사연

역무원 뒷... |2008.01.12 22:46
조회 686 |추천 0

올해로 21살 되는 건장하진 않은 청년입니다.

 

학교가 대전이고 집은 경기도입니다.

 

학교가 방학을 하는 터라,

 

집에서 뒹굴뒹굴 발광부르스를 추고 있는데

 

친구가 대전오면 먹을거 준다길래

 

마침 심심했는데 잘됐다 하면서 팍- 튀어나가서

 

대전을 마하2의 속도로 달려갔습니다.

 

대충 친구네집에서 나름 심심하고 재미없게 잘놀고서

 

집에 가려고 열차표를 끊었죠.

 

차시간이 아마 9시쯤 되었던걸로 기억됩니다.

 

친구들과 다음생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전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를 타고, 근처에 앉은 커플을 부러워하며 가고 있는데..

 

조치원 다음역부터 뭔가 이상한겁니다.

 

천안역을 넘어서 수원역에 도착할 시간인데도

 

천안역은 커녕 이상하고 외진 곳으로 절 데려가는 겁니다.

 

기다리면 도착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멍때리고 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기차를 잘못 탔을 경우의 수가 생각나서

 

잠시 기차가 어떤 역에 정차되어있는 동안

 

열차 밖에 붙어있는 판 같은걸 보았죠.

 

 

 

 

종착역 강원도.

 

 

 

 

잘못 탔습니다.

 

기차가 떠나는걸 바라보면서

 

이건 무슨 이명박이 원기옥 맞는 상황인가.. 했죠.

 

전 다시 대전쪽으로 가는 열차를 탈 생각으로

 

근처에 서계신 역무원 아저씨께 저의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기차를 잘못타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돌아가고 싶군요."

 

"타고 오신 열차는 토요일에만 다니는 임시열차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역의 막차이기도 하지요."

 

시간을 보니 11시 30분쯤..

 

제가 도착한 곳은 충북에 있는 '음성역'이란 곳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충북이란 곳에 처음 와본 저였습니다.

 

겉으론 냉정한 표정을 잃지 않았지만

 

속으론 유치원생 길잃어버린 듯이 초조해하고 있었습니다.

 

역무원 아저씨는 근처 여관에서 자고 일찍 첫차 타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여관에서 잘만큼 여비가 넉넉하지도 않았고

 

첫차가 올때까지 추위에 떨면서 있을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역무원 아저씨께 이것저것 정보를 받았죠.

 

1. 역에서 오른쪽 도로를 타고가면 충주가 나옴.

 

2. 차타면 조치원까지 30분, 대전까진 1시간.

 

3. 첫차는 7시차.

 

이중에서 저를 움직인 가장 중요한 정보는 바로 두번째 정보였습니다.

 

차타고 대전까지 1시간?..

 

그렇다면 걸어서 가도 되는 거리겠다 싶었죠.

 

전 충북 음성에서 대전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미친거죠.

 

기차타고 온 시간이 얼만데 걸어서 갈 생각을 하다니..

 

여튼 역무원 아저씨께 들었던 길로 그냥 걸었습니다.

 

새벽의 충북은 빛이 없더군요.

 

음성역에서 얼마 걸으니 음성폐수처리장이 나왔습니다.

 

계속 걸었습니다.

 

차도 안다니고 주변엔 논과 밭뿐..

 

그래도 차타면 1시간이라는 것에 희망을 갖고 계속 걸었습니다.

 

1시간째..

 

추위엔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눈도 어둠에 익숙해져서

대충 걸을만 하더군요. 발은 좀 시려웠다만.

 

2시간째..

 

발이 유리가 된 것처럼 아프더군요.

한 걸음 걸을때마다 '다음 걸음을 내딛을때 내 발은 깨진다.'하는 생각으로 걸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안나고 어둡길래, 노래를 불렀습니다.

공중전화 박스를 발견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3시간째..

 

입마저 얼어서 노래 부르기를 중단했습니다.

피부도 얼었는지 춥지도 않았습니다.

손은 이미 제 손이 아니고, 발도 이미 제 발이 아니었습니다.

유일한 낙인 노래를 못부르게 되었다만,

담배가 넉넉히 남아있어서 위안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차에게 손을 흔들어서 SOS 요청을 했지만 절 무시했습니다.

 

시간은 바야흐로 2시 정도 되었습니다.

 

걷다보니 100m 전방에 불빛이 보이더군요.

 

그 불빛을 따라가다보니, 왠 건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사는 집은 아니고.. 마을회관 비슷한 그런.. 건물이랄까나.

 

혹시나 해서 열어봤는데, 다행히 열려있었습니다.

 

그 건물은 노인정으로 쓰이는 곳이었습니다.

 

주방도 있고, 방도 두 개나 있더군요.

 

노인정은 따뜻했습니다.

 

처음엔 몸이나 녹일까.. 했는데, 주방을 보더니 위장이 급위액발산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반찬도 없고 있는 거라곤 밥뿐..

 

밥에 간장을 곁들여 간을 맞추고, 참기름으로 향을 더해서 간장비빔밥을 만들었습니다.

 

노인정 방안에 있던 티비를 보면서 간장비빔밥을 먹고, 식후흡연을 했습니다.

 

전 어릴적부터 유교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일용할 식량과 따뜻하게 제 몸을 녹여준 노인정에게 감사를 표하고

 

설겆이와 대충의 청소를 했습니다.

 

고마운 노인정과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대전을 향한 여정을 떠났습니다.

 

노인정에서 출발한지 1시간정도..됐었나..

 

왠 트럭이 지나가다가 저를 발견하고선 멈춰섰습니다.

 

'기회다! 최대한 불쌍해 보여서 동정심을 일으키는거다.

 만약 여자라면 모성본능 때문에 날 그냥 지나칠 수 없을꺼야.

 혹시나 태어나 지금까지 착한짓이라곤 해본 적없는 인생막장의 아저씨라고 해도

 어차피 인간. 이런 엄동설한에서 부들부들떠는 나의 처지를 얘기하면서

 우리 가족얘기도 꺼내는거다. 날 버리지 못할꺼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최대한 불쌍해 보이기 위해

 

목에 힘을 풀어서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를 연출했습니다.

 

트럭에 타고 있었던건 저와 동갑인 청년이었습니다.

 

"어디가는 길이세요?"

 

"저.. 대전으로 가려면 어느쪽으로 걸어야 하나요?"

 

"어익후. 대전까지 걸어가시려구요? 국토종단 하시나. 

 게다가 이쪽으로 가면 강원도 나오는데. 얼른 타세요."

 

그렇습니다.

 

역무원 아저씨는 친절한 얼굴로 강원도 가는 방향을 제게 알려준 것이지요.

 

4시간동안 강원도쪽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트럭청년의 트럭을 타고서 다시 음성역쪽으로 왔습니다.

 

제가 걸었던 반대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니

 

음성 시내가 있더군요.

 

역무원 아저씨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시내나 가르쳐주지.

 

트럭청년과 담배 한대 피면서

 

트럭에 싣고 있던 고라니 시체를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차로 치었다고 하더군요.

 

보통 그냥 지나치는게 정상이던데..

 

그 청년은 고라니 시체를 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트럭청년은 피시방에서 첫차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첫차타고 가라고 하더군요.

 

고마운 청년이었습니다.

 

트럭청년과도 다음생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습니다.

 

전 트럭청년의 말대로 피시방에서 기다렸다가,

 

결국 첫차타고 다시 대전으로 와버렸습니다.

 

그렇게 저의 충북기행은 끝이 나버렸네요.. 흠..

 

혹시 여기까지 글을 모두 읽으셨다면 감사드립니다.

 

쓰다보니까 청산유수가 되버려서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수고하셨습니다

 

 

 

 

 

 

 

 

 

ps: 그때 트럭 태워준 트럭청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음성역 역무원님은 밤길 조심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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