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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 노래 #4

흑묘 |2003.08.13 01:01
조회 208 |추천 0

# 카니발과 서커스

 

카니발은 원래 프리아인 몇몇 부족들의 식인풍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전사의 죽음때마다 축제를 열고 그 전사의 고기를 한점씩 먹었다. 그러면 그 고기를 먹은 사람은 전사의 능력을 전승받게 되고, 그 전사는 전사의 낙원으로 홀가분한게 떠난다는 것이다. 몇몇 아트리아인들에게 식인행위가 잘못알려지긴 했지만, 그들은 쓸데없이 인간을 먹진 않는다. 어쨌든 인간의 두개골로 만든 그릇에 사람의 뇌수를 퍼먹는 행위가 펀치보울에 펀치를 담아 먹는 행위로 변했다면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카니발의 원래 뜻은 그랬다. 남부의 대도시 칼체스터는 늘 도매상인들때문에 북적거렸다. 특히나 여름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질정도로 성안이 가득차는데, 그것은 순전히 카니발 때문이었다. 칼체스터의 카니발은 어딘지 독특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바레스관령이 형식적으로 통제할뿐 바레스수도 르네시아의 건국제처럼 귀족계층이 집전하는 고풍스럽고 딱딱한 축제가 아닐뿐더러, 시끌벅적하고 그야말로 서민적인 매력이 담뿍 묻어나는 매력적인 축제였다.

 

상인들은 북부의 우기가 시작되면 어차피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운하가 마비되기 때문에 어차피 헐값에 팔려나갈것이 뻔한 물건들을 마구 떨이로 내놓았다. 더군다나 칼체스터의 봄철의 주요 거래품인 보리 수매와 봄에 나오는 각종 곡식들, 그리고 우기가 닥치기 전에 북부의 상인들이 비싼값이라도 울며겨자먹기로 사주는 북부에서 방목한 소나 말따위의 품질좋은 가축을 판 돈들 때문에 상인들은 넉넉한 마음과 지갑으로 오크나무로 만든 술통을 거리에 한가득 쌓아놓고, 즐기게 해주었다. 안그래도 남부의 관문이라 뜨내기가 왔다갔다 하는 칼체스터지만, 이시기가 되면 신분을 도무지 짐작할수도 없는 몇만명이 왔다갔다 하는지 바레스민회로도 종잡을수 없을 정도였다. 거의 상인들의 '반상회'에 다름아닌 바레스민회는 매년 카니발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서, 고심하다가 아예 바레스관령에게 작년보다 두배가량의 금전을 갹출하겠노라고 말할수 밖에 없었다. 물론 생돈이 두배나 깨지는 것은 아까웠지만, 상인들로서도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우기가 끝나면 또 가을철에 있을 밀과 각종 곡식수매에서 각지의 상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수도 있을뿐더러, 칼체스터가 거의 북부의 대농장에서 나오는 곡식만을 거래하는 북부의 상도 '론디니움'도 아니고, 갖가지 물건을 거래하고 팔아치우는 도시라서, 곡식수매상같은 상인들을 빼면 모두 두배이상 아니 거의 일년 매상의 1/5을 여름 카니발과 가을의 수확제에서 뽑는듯 했다. 물론 서쪽 도매상거리 맨앞에 자리잡은 곡식수매상들은 금년에는 유독 툴툴댔지만, 내심 이 즐거운 축제를 기대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뿐만아니라 이 시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이 두배나 즐거울(?) 축제를 기대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후투족은 몇년째 칼체스터를 습격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후투족이 위대한 드래곤의 성지에 발을 디뎠다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후투족의 일파에 골머리를 앓던 라이안왕국의 중장기병이 토벌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혹은 후투족사이에 몹쓸 전염병이 창궐해서, 전사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약탈을 못하게 되었다거나, 후투족이 농사를 짓는다는 괴상한 소문도 들려왔다. 그러나, 뜬구름잡는 소문보다, 가장 확실한 이유는 바레스본국의 관료나부랭이들이 드디어 칼체스터의 '중요함'을 깨닫고, 기병몇백을 포함한 대규모의 병력을 주둔시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칼체스터로서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바레스관령으로서는 자신의 영지에서 빚쟁이 마냥 시간맞춰 약탈해 가는 후투족이 없으니, 밀과 보리를 도매상에 내다팔아 재산을 불릴수 있어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칼체스터를 먹여살린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도매상으로 들어가는 밀이었기에 칼체스터 사람들은 밀의 약탈에 관해서는 별로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봄가을로, 들이닥치는 끔찍한 후투족의 공포로부터는 어느새 점점 무뎌져 갔다.


"베로이. 의자를 하나 사야할거 같은데?."

 

루프는 그녀의 머리색과 비슷한 푸른색의 치마에 어울리는 하얀 에이프런을 벗으면서 싱긋웃고는, 카운터에 팔을 걸치려고 낑낑대는 베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베로이는 머리만지는것이 싫다는듯 마치 까만 비단천과 같은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흔들고는 낑낑대며 손님의 것으로 보이는 카운터 안쪽에 쌓여있던 엉성한 나무로 만든궤짝을 끌어와서 올라앉았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소매가 없는 검은원피스와 나무궤짝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은 베로이의 모습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그거.. 2층손님건데?"

 

루프는 싱긋웃으면서, 햇살이 들이비쳐 반짝반짝 빛이 나는 베로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뭐라 그러면, 속좁은 놈이라고 비꼬아 주면 되니까.그리고, 그아저씨 루프한테 빠진것 같던걸?

계단올라가면서 비실비실.. 남자라면 북부남자가 최고라니까."

 

루프는 피식웃을수 밖에 없었다. 안그래도 어제저녁에 과일상자를 맡기고 2층으로 올라간 과일도매상은 눈이 작고 얼굴이 넙적한 전형적인 깐깐한 남부사람이었다. 그런 루프의 모습을 싱겁다며 핀잔을 주며 카운터에 올려놓는 베로이의 왼손에는 산돼지식당에서 가져온것이 분명한 햄샐러드그릇이, 오른손에는 길고 작은 빵이 들려 있었다. 베로이가 여관일을 도운것이 작년 한겨울이니 벌써 몇달이 지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느새 루프가 장부를 정리하고 손님이 방을 접수하는 카운터는 베로이의 '아침식탁'이 되어 버렸다. 베로이는 이상하게도 아침만큼은 이 미류나무로 만든 카운터에서 먹는다고 고집스럽게 말했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말투로

 

'루프 내가 밥먹으러 가는 만큼 루프가 손해잖아. 어차피 점심은 마렐이 가져오니까 아침은 내가 여기서 먹는게 이익일껄?"

 

루프는 결국 베로이의 고집에 당해낼수 없었다. 베로이가 카운터에서 아침을 먹는다고 해도 별로 귀찮지도 않을 뿐더러 루프는 무엇보다 이 영악한 소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처음에는 아무한테나 반말로 말하는 당돌한 프리아인의 소녀에게 거부감정도가 아니라 혐오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관념이 별난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트리아인들은 프리아인을 썩좋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날때부터 노예로 태어난 저열한 인종이라고 나불대는 귀족양반도 있었고, 마치 동물취급하며 쇠사슬로 검은피부의 사람들을 묶어놓고,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나 북부에서는 어찌보면 프리아인 노예가 가축보다 싸기 때문에 상상할수 없는 취급을 많이 받았다. 도주노예는 쇠꼬챙이에 찔려 죽였고, 노예는 가정을 가지지도 못햇다. 엘프들이 어둠의 일족인 다크엘프나 앙숙으로 유명한 드워프를 경멸하는 것은 차라리 고상해 보일 정도 였다. 게다가 후투족의 꼬마라니.. 봄,가을로 칼체스터를 위협하는 후투족은 공포그자체였다. 이마의 삼각형의 각인만 봐도 두려움에 벌벌떠는 부녀자들도 많았다. 때문에 처음에 루프가 혐오감을 느끼는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체하겠다. 베로이 천천히 먹어, 카니발은 내일부터니까 손님이 들이닥치기 시작하는것은 오늘 점심께 부터야. 물론 2층손님들처럼 일찍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오늘 저녁에 마법으로 만드는 불꽃놀이를 보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아마 점심쯤부터 사람이 들이닥칠걸?'

 

루프는 싱긋 웃으면서, 주전자에서 사기로 만든 작은 사발에 물을 따라 가슴을 두드리는 베로이에게 건넸다.

 

"그래도, 준비하는건 좋은거잖아. 언제 몇명의 손님이 올줄 알고.. 암만해도 기드옆방을 청소해야겠는걸?"

 

베로이는 일을 잘했다. 아니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여관을 몇년째 꾸려오는 루프보다 더 꼼꼼했다. 루프가 잘 적어놓은 숙박부의 헛점을 짚어내서, 몇딜의 돈을 덜받았다는것(대부분은 기드같은 장기숙박객들의)을 지적해 내거나, 침대시트를 전에 일을 도와줬던 '리자'아주머니보다도 더 깨끗하게 갈아놓는다거나.. 아침마다, 각 객실의 물주전자를 가는 사소한 일부터 몇년간 닦지 못한 유리창을 닦는일이나, 마룻바닥을 윤이나게 닦는 일까지. 혹은 루프조차도 정리하려면 힘든, 바레스관령에게 몇달마다 한번씩 제출하는 '숙박현황'정리까지... 베로이는 몇사람 몫을 톡톡히 해냈다. 기드와 거의 비슷하게 싹싹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루프는 그런 베로이를 점점 마음에 들다 못해 친동생처럼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루프의 마음을 움직인것은 베로이의 오묘한 '아름다움'도 한몫을 했다. 어떻게 보면, 어른처럼 보이고 어떻게 보면 소녀의 귀여움을 가진 베로이는 루프와 함께 여관거리의 명물이 되었다. 처음에는 후투족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루프가 베로이를 사람들앞에 나서지 못하게 했지만, 어쩔수 없이 베로이가 일하다 보면, 손님들과 마주치면서 입소문이 퍼져나가더니 이제는 숙박하러 오는 손님뿐만 아니라, 베로이와 루프를 보러 어정대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이 들르기도 했다. 어제 저녁만해도, 푸줏간의 디우프는 루프에게 수작을 걸다가 풍채좋은 마나님에게 귀를 잡혀 끌려 나갔다. 또한 저 서쪽거리 감자도매상에서 일하는 윌리엄- 윌리는 늘 쌀쌀맞게 대하는 베로이에게 말을걸려다가 정강이를 호되게 차이고 쫒겨났다.

 

"베로이 좀있으면 비스쳬아주머니가 올거니까, 청소는 됐고,  조금있다 시장좀 갔다 올래?"

 

베로이는 샐러드 보울에 남은 양념을 빵조각으로 걸레짓하듯 묻힌다음 한입에 털어넣고, 손을 탁탁털고 말했다.

 

"음.. 오늘이 분기 말일이니까, 바레스관령에게 영업허가서 갱신을 받아야 하니까 대서소에 그거 부탁한 다음에, 저번에 잤던 북부손님이 이불을 태워먹어서, 이불 몇채를 산 대금을 동쪽거리 '271호상회'였나? 거기 전해줘야 하고, 더불어 산돼지 식당의 마렐이 부탁한 돼지고기 200인분 그리고, 포도주네통과 위스키2통을 돼지식당에 갖다 달라고, 햇무리집에 말해주면 되는거지? 덭붗여, 야채가게 윌리씨네 30딜값으라고 말해주고.."

 

베로이는 무슨 연극대사라도 읇듯 한번도 더듬지 않고, 죽 말햇다. 루프는 또 빙긋 웃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베로이가 상자에서 내려와  베로이가 금년 봄에 고쳐놓은 문이 또 고장났는지 덜컹대면서 열렸다. 유리가 파르르 떨리면서, 투명한 소리를 냈다. 역광때문에 까만 그림자 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깃털모자를 눌러쓴 사내였다.

 

"저 거시기 방 있는가요?"

 

루프는 풋하고 웃을수 밖에 없었다. 북부사투리중에서도  동쪽 공국바레스쪽의 사투리였다. 난데없이 남부에서 북부의 사투리를 듣다니, 그것도 억양이 좀 이상했다.

 

"와 웃기만 허요? 아따, 그나저나 아가씨 한번 우라질나게 예뻐 번지네잉? 참 거시기 허요?"

 

깃털이 달린 차양이 넓은 모자를 벗어들고, 넉살좋게 부채삼아 부쳐대는 사내는 좀 괴상한 복장이었다. 짧은갈색 머리에 칼자국이 오른뺨부터 왼쪽 눈밑까지 나있었지만, 그리 흉해보이지는 않았다. 마른얼굴에 눈이크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호남형의 북부남자였고, 훤칠한 키에 후드가 달린 비옷비슷한 두꺼운 천으로 만든 갈색 망토를 입고, 안에는 가죽갑옷에까만 남방을 받쳐입었다. 그런가 하면, 허벅지 바깥쪽에는 기사들이나 차는 무거운 판금갑옷의 하의중에 넓적다리를 가리는 판금이 가죽혁대로 허벅지에 묶여 있었고, 가죽으로 보이는 갈색바지를 입고, 장화를 신었다. 그러나 제일 괴상한건 츠바이핸더정도 되는 긴 장검을 가로로 메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검의 길이는 생각도 안하고 들어오다가, 백야의 양옆기둥에 기다란 검이 걸려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오늘 루프가 웃다 미쳐버리는 날이었다. 사내는 대자로 여관거리바닥에 누워버렸다.

 

" 오늘 날씨 한번 좋네 그려, 오늘 같은 날은 연이나 날리면 좋겄구먼?"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사내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손을 머리위땅에 받치고 개구리가 뛰듯 팔짝 뛰어 올랐다. 그러나, 그의 바램과는 달리 마치 거꾸로 엎드려 뻗친 자세로 다시 땅에 떨어졌다. 루프는 깔깔대며 웃고, 베로이는 기드처럼 오른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내는 몇 번이나 땅에 먼지를 일으키며 비슷한 짓을 하더니, 다시 대자로 누웠다.

 

"워따메, 등에리는거.. 연습해봤는디 잘안되네 그려? 그럼 할수 없간디"

 

놀라운 일이었다. 입술이 몇 번 움직거리자, 사내는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로 끌어당기는 듯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사내는 공중에서 먼지를 터는 여유까지 보이며, 자세를 바로잡더니 사뿐히 땅에 발을디뎠다. 그리고는 백야의 열려진 문을 쳐다보고는, 그제서야 뭐에 걸려 넘어졌다는 것을 깨닿고, 검집이 없는 장검을 허리춤에서 낑낑대며 빼내서 어깨에 걸쳤다. 검의 무게가 상당한건지 사내가 힘이없는 건지 휘청대면서, 백야의 현관에 들어섰다.

 

"마법사신가 봐요?"

 

루프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에 마법사가 아니라, 마법검사인디. 나로 말헐거 같으면, 거시기. 그 뭐다냐.. 거시기. 여튼 북부 '로젠하임의 마법검사'라고 허믄 동네에서는 다들 알아주어.."

 

베로이는 아까하는거 봐서는 도저히 못믿어 주겠다는 표정으로 이 괴상한 사내를 아래위로 살폈다. 주장하는 대로 암만 잘봐줘도 그냥 '마법사'라면 몰라도, 검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봐주기 힘들었다.

 

"그 뭐다냐, 여기 불꽃놀이인가? 하는 그거 말이지 그거 헐라고 왔지요. 그놈의 할방구는 나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여. 고냥 고냥 만날 버섯나부랭이 같은거나 파오라고 난리고, 이번에는 남부까지 올러가라고?  흐미 덥은거, 물좀 없소? 북부에서 헌참을 말을 타고 왔더니 남부로 내리오면, 좀 시원할랑가 했더니 여기는 더덥네?"

 

사내는 산돼지 식당 마렐보다 더 괄괄한 수다장이 같았다. 베로이는 '수다장이 마법사'라고 머릿속에 집어넣고는 조용히 물주전자에서 사발에 물을 따라 사내에게 건넸다.

 

"로젠하임 덴(den-둥지 마법사의 학술모임 길드와는 성격이 다르다.)의 마법사신가봐요? 로젠하임에서 온분 같으니. 마법실력도 대단하시겠네요.."

 

루프는 재미있다는 듯 숙박부를 건네며, 장검을 카운터옆에 세워놓고, 루프에게 깃털펜을 받아 잉크를 듬뿍 찍어 사인을 하려는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덴은 무신놈의 덴 그놈의할방구는 덴에 가입하라는거 고렇게 안들어 쳐먹더만, 나만 요렇게 생고생을 하게 만들지.. 요번만 해도, 원래는 거시기 덴에서 파견나가는 건디 결국 이 '리벨하르트'가 오게 만들고 말이지. 고나저나 요노무 꼬맹이는 프리아인 아녀? 아따 쪼그만 놈이 똘망똘망하게 생겼고마이. 노예치고는 일도 잘하는 것같고.."

 

자신의 이름을 리벨하르트라고 밝힌 사내는 베로이의 윤기나는 까만 머릿결을 만졌다가 깃털펜과 잉크를 카운터에 달려있는 서랍에 갈무리하는 베로이에게 호되게 걷어차였다.

 

"아따 콩알만한게 성질 한번 드럽고마, 워메 정강이뼈 바스라지겠네?"

 

베로이에게 구두끝으로 정강이를 맞은 리벨하르트는 정강이를 쥐고 눈물을 흘리며 콩콩 뛰다가 제풀에 넘어졌다. 다시 루프는 소리없이 킥킥댔고, 베로이는 루프가 부탁한대로, 시장으로 성큼성큼 가려고 했다.

 

"요노무 꼬마 괭이 같으니라고, 소갈머리허고는 버릇을 좀 고쳐놔야 쓰겄구먼 노예가 손님한테 그라면 되간디?"

 

리벨하르트는 다시 짧게 입술을 옹알거렸다. 이번에는 베로이가 하늘로 붕 떠올랐다. 베로이는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문옆에 세워놓은 현관의 차양막을 내릴때쓰는 갈고리가 달린 기다란 봉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봉의 끝을 리벨하르트의 목 끝에 겨누고는 낮은 기합을 지르고, 찔렀다.

 

"고렇게는 안되제.. "

 

리벨하르트는 베로이가 뻗은 봉을 솜씨좋게 피하고는 손바닥에 불을 만들었다. 베로이의 표정이 약간 떨리는 듯 싶더니 다시 침착하게 리벨하르트를 겨눴다.

 

"그만해라 베로이."

 

계단을 내려오던 기드는 할버드를 내리쳐 봉을 반으로 잘라버렸다. 봉을 자른 할버드의 도끼는 루프가 반짝반짝 닦아놓은 마룻바닥에 아슬아슬하게 박히지 않고, 떨어졌다.

 

"워메 이건 또 뭐여? 내가 진정 '마라이산의 울부짖음'을 잡고 싸워야 하는가베?"

 

리벨하르트가 카운터에 세워 놓은 그 자신의 모습만큼이나 괴상한 이름의 장검을 집어들때즈음 루프는 손사래를 치며, 리벨하르트를 말렸다. 리벨하르트는 다분히 '과장된'몸짓으로 놔라 어쩌고 하면서 은근히 루프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을 즐기는 듯 했다. 기드는 내심 불편한 눈초리로, 그 하는꼴을 지켜보면서, 말했다.

 

"뭐하는 놈팽이길래 이 야단이지?"

 

기드는 날카로운 눈으로 괴상한 차림의 자칭 마법전사를 쳐다보고는 투덜거렸다. 리벨하르트는 리벨하르트 대로,  조금만 그쪽으로 내리쳤다면 발가락을 동강을 냈을 도끼창과 수염을 매만지는 기드를 번갈아 보면서 말햇다.

 

"으미 뒷골땡기는거, 넌 뭐하는 놈이길래 무식하게 도끼창을 내던지는겨? 함 싸움나봐야 쓰겄네"

 

루프는 아예 카운터 밖까지 뛰어나와서, 말렸다. 리벨하르트는 검을 잡고 한번 휘두르려고 했는데, 어이없이 휘청거리다가 다시 벌렁 주저 앉아버렸다. 그 바람에 그를 말리던 루프까지, 같이 넘어졌다. 그모습을 바라보던 기드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혀를 차며 문가로 걸어갔다.

 

"오늘부터 내일모레 아침까지는 성문의 대기소에서 자야 할것같군요. 밥은 베로이가 가져다 줄테니 걱정마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베로이에게 말씀 하시면 됩니다. 제가 달려 올테니까."

 

기드는 베로이의 머리에 약하게 꿀밤을 먹이고는 성큼성큼 걸어서, 성문으로 향했다.  멍해진 리벨하르트는 뭐라 하려다가 혀를 빼꼼 내밀고 도망치는 베로이를 쳐다봤다. 

"워메 워메! 미치겄네!"


리벨하르트는 한동안 소리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루프가 카운터로 돌아와 웃으면서 다시 숙박부를 건네자, 툴툴털고 일어나서 숙박부에 서명했다. 리벨하르트는 더 난리를피우려고, 했지만, 어차피 지나친 악의는 없었고, 그를 골치아프게 만든 두년놈(?)이 이여관이 있는게 분명하기 때문에 저녁때쯤 골려줄 생각이었다. 또 기드의 할버드를 다루는 솜씨가 만만찮아 보이기 때문에 당장뒤집어 엎는것은 꺼려지고, 무엇보다 루프의 미모에 그 골치아픈 마법서를 볼때와는 비교할수 없을정도로 끌리기 때문에 여관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았다. 루프는 교묘하게 리벨하르트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여관경력 7년의 경험(?)이랄까?

 

"반.. 작센?? 귀족분이신가요?귀족분이라면 관령공관에 가시는 편이.."

 

루프는 사무적인 몸짓으로 카운터 뒤에 있는 서가에 숙박부를 꽂으려다가  리벨하르트의 서명을 보면서, 깜짝놀랐다. 바레스에서 귀족만이 가지는 미들네임 '반'이 쾌활하게 공용어로  숙박부에 서명되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귀족외에는 아예 성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이 '반'이라는 성은 5작이상의 귀족이나 8촌까지  방계혈족만이 가지는 귀한 성씨였다.

 

"워메.. 워나기 그 할방구가 여비를 쬐끔 줘서, 여관밖에는 못잡겄소. 그릇다고, 본국관령이 통치하는 여그까지와서 불꽃놀이좀 뵈주러 왔는디 공용입네 뭐네 하며, 숙소를 제공받기도 그렇고, 어디까지나 할방구의 제자로서 여그온거이니까. 거그다가 나는 거의 족보의 끄트머리에 있는지라, 귀족이라 하기도 뭣허요. "

 

말을 하면서도, 리벨하르트는 제법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루프의 푸른 눈동자를 쳐다봤다. 루프는 익숙하게(?) 리벨하르트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면서 2층으로 안내했다. 리벨하르트는 내심 귀족성인 '반'까지 휘갈겼는데, 루프가 이내 영업미소를 띄우며, 익숙하게 회피하자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찰랑이며 계단을 올라가는 루프를 바라보다가 저 멀리 튼튼한 성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만월이라.. 슬슬.. 껄쩍지근 한 일이 벌어질터인디.. 그노무 영감태기 일부러 보내는지도 모르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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