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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때,아니 그전부터 저의 전부였던 누나와 제 이야기입니다..

땡글이 |2008.01.23 10:27
조회 2,386 |추천 0

군 전역한지 이제 백일이 약간 넘은 24살 휴학생입니다.

아무생각 없이  읽다가 누나 이야기 올리신 분의 글을 보고 가슴이 찡해져

저도 제 이야길 적어보려 합니다.

 

저에게도 누나가 한명 있습니다.

올해 29살이 되었군요. 동생들은 누나한테 이런 생각 잘 안갖는다지만

저희 누나는 정말 예쁩니다. 티비에 나오는 그 어떤 예쁜 연예인한테도

안꿀릴 자신이 있을만큼 예쁩니다.

누나랑 같이 다니면 다들 저보고 오빠라고 그러죠.

지금도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누나는 제 가장 큰 자랑거리였지요.

초,중,고 졸업식날 부모님은 일때문에 못오신 적이 많았지만

누나는 항상 참석했어요. 자기도 학생인데 동생 졸업식 가야된다고,

혹은 아프다고 조퇴맞고 예쁜 꽃을 사들고, 그보다 더 예쁜 얼굴로

찾아오곤 했지요. 부모님 못오셔 동생 주눅들까봐요...

 하지만 전 졸업식때마다 친구들 사이에서 스타가 되었습니다.

정말 너네 누나 맞냐, 몇살이냐, 왜이렇게 이쁘냐, 너랑 완젼 다르다...등등

남자애들, 여자애들 다들 몰려와서 저한테 물어보곤 했습니다.

때문에 어깨는 으쓱해졌구요...

 

거기다 누구앞에서나 당당하고 자기 할 말 할 줄 아는 성격에

집안형편으로 인해 대학을 포기하고 직장생활 할 때도

항상 인정받았습니다. 집안에 일이 있으면, 저는 물론,

부모님도 항상 누나한테 의견을 묻곤 하죠...

(저는 제대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성인이라고 생각을 안한 반면

누나는 고등학교 진학한 순간부터 어른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부모님도 한창 젊으셨던 시절에

부모님의 잦은 별거와 이혼 이야기 등으로 저는 불안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때마다 누나는 일기에,혹은 직접 저에게 이야기 했지요...

무슨일이 있어도 저 하나만큼은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그렇게 저의 유년시절은 흘러가고, 중학교 입학한 이후로는

누나와 말싸움조차 한번 안할 정도로 각별하게 지냈습니다.

저희는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저희집... 정말 가진 건 없지만 행복하게 잘 지냈습니다.

몇 년 후, 누나는 취직을 하여 서울로 올라갔지만

주말이면 항상 집에 내려와 가족과 함께했고,

저는 서울의 중하위권 대학에 진학하였지요.

제가 대학생활을 할때쯤, 부모님도 자리를 완젼히 잡으셔서

넉넉하진 않지만 남부럽지 않게,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1년반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제가 입대하던날, 저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아직도 그렇게 많이 남아있었나 놀라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여린 아버지, 어머니는 집에서 눈물의 이별을 하고

누나와 누나 남자친구(현재의 매형이지요.)랑 같이 306보충대로 떠나던 날,

조수석의 누나와 뒷자석의 저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며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더랍니다.

 

도중에 저를 배웅하려 나온 친구,후배들과 만나 저는 잠시

웃음을 찾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이 퉁퉁 부어버린 누나를 한번 안아주고는

천천히 보충대 건물로 걸어들어갔지요...

 

한번은 군생활 시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실수로 다쳐서 7바늘을 꿰메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린 건 처음이라

얼굴이 다 창백해져 버리더군요...

어느정도 안정을 찾고 누나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한~참 징징대는데 누나가 대뜸, 군대에서 영어공부를 시작하라고 그러더군요.

좀 황당했죠. 동생은 아프다고 하소연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공부하라고 잔소리니.

그런데 이어지는 말에 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요즘 웬만한 녀석들은 다들 해외한번 다녀오는게 대세라 또 동생 꿀릴까

걱정되었나 보더군요. 자기도 지하 셋방살고 있으면서

저 유럽 배낭여행 한번 보내준다고 적금붓고 있대요...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많은데 자꾸 눈물날 거 같아서 쪽팔려 혼났습니다 ^^

 

1년반이 더 지나 저는 건강하게 전역을 하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복학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나는 지난 5월에 결혼을 하였음에도 저희 동네에 살림을 차려

매일매일 얼굴을 볼 수 있었죠. 매형까지 5명 가족 전부가 모여서 밥먹는 걸

아버지께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런게 행복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죠.

 

전역 후 너무나 따고싶던 면허증을 따기 위해 누나랑 같이 학원을 등록하였습니다.

필기시험...남들 말만 믿고 공부 안해서 누나는 72점,저는 70점(!!)

정말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을 넘기고 기능을 20시간 채웠죠.

 

그리고 기능시험날...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네요.

저는 이날도 새벽같이 일어나 학원버스타는 곳에 서 있었습니다.

누나는 오늘도 늦는구나... 하며 전화를 해봤죠.

누나 말이, 거의 다 왔는데 누나 너무 숨이 차다며 힘들답니다.

늦었으니깐 뛰어오느라고 그렇겠지 하고 재촉했습니다.

'누나 학원버스 올때 다됬어 빨리 와.'

몇 분 후 버스는 왔는데 다왔다는 누나가 아직도 안 오는겁니다.

저는 일단 버스에 타서 기사님한테 양해를 구한 후에 다시 전화를 해봤지요...

그런데 누나가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누나 못걷겠어 너 먼저 가...'

이러더군요. 전 너무 놀라서 뛰어나갔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누나가 근처에 앉아있더군요

 

누나 말로는 전에도 몇번 이런 적 있었답니다. 빈혈이 좀 심해서 가끔 이런다고...

저는 한숨 돌리고 '누나때문에 늦었으니깐 누나가 택시비 내. ' 그랬습니다.

물론 장난이었죠. 전 아직 학생이고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전부

어머니 드려서 저 학비한다고 모으던 참이었기에 항상 차비는 누나가 냈거든요.

하지만 이것도 지금에 와서는 마음에 남네요...

 

그날 무사히 둘다 합격을 한 뒤에 어머니 가게에 가서 밥을 먹던 중,

누나 병원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말을 꺼냈지요.

어머니도 요즘 누나가 밥도 잘 못먹고 몸도 약해진 것 같아 병원 한번 가보려던 참이어서

이튿날 누나는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피를 뽑고 진료결과는 몇일 후에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날... 점심때쯤 일어났는데 집에 어머니가 없어서 물어봤죠.

알고보니 누나랑 같이 큰병원에 갔다는 겁니다. 간밤에 누나가 다리가 너무 아퍼서

오늘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고...

이거 정말 무슨 일 있는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저는 애써 아닐꺼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습니다. 저녁이 되고... 밤이되도 어머니랑 누나가 안오더군요.

너무 걱정이 되어서 어머니한테 전화를 예닐곱번은 한 것 같습니다.

 

계속 통화가 안되다가 9~10시쯤이 통화가 되었죠.

입원해야 한다더군요. 너무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무슨일이냐고, 많이 아픈거냐고, 엄마는 결과가 나와봐야 아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뒤... 아버지가 병원에 다녀오셔 저는 계속 물었습니다.

무슨일이냐고... 아버지 역시 결과 나와봐야 안다고 걱정 말고 있으라고 하시는겁니다.

전 계속 물었죠. 저도 이제 다컷으니깐 숨기려고 하지좀 마시라고

대충 뭐인거 같다고는 말해줬을거 아니냐고...

아버지는 한참을 망설이시다가... 그러시더군요

백혈병인거 같다고 했다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습니다.

정말 어린애처럼 제방에 들어가 엉엉 울었습니다.

어딜가나 싸나이라고, 까오하나 지키며 산다고 습관처럼 말하던 제가

정말 바보 찐따 찌질이마냥 그렇게 애처럼 엉엉 울면서

군시절부터 써오던 일기장에 세상을 원망하고 신을 원망했더랬죠...

한두병 술로는 진정이 안되더라구요...

 

그렇게 또 한달 반정도가 지났습니다. 지금 누나는 병원 무균실에서

항암치료를 받는중이고 저는 다른 일자리를 구해

아침부턴 오후까진 성인 피씨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엔 아버지 가게를 보며 살고있습니다.

어머니는 종일 누나 간병을 하고 아버지는 어머니 가게를 보고 계시죠...

매형도 내일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출근을 한다고 하구요...

 

병원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낀 저희 누나는, 그동안 제가 알던

그 자신감 넘치고 매사에 당당하며 똑소리나는 누나가 아니었습니다.

한없이 약하고, 눈물많고, 바보같이 치료 안받고 그냥 살면 안되냐고

약한 소리 하는... 엄마 없이는 잠시도 혼자있지 못하는... 그런 겁많은 누나였던 거죠.

 

복학을 포기한 것도,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지금의 제 생활도

힘들다 생각하진 않습니다. 몇달간 학비하려고 모아놓은 푼돈, 그러나 제겐 큰돈

누나 병원비를 위해 다 줘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저 배낭여행 시켜준다던 그 적금, 어쩔 수 없이 깨야겠다는

매형 이야기를 들었을때, 오히려 그거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진심이었구요.

전역하고 한참 좋을때 이런 일 생겨 어쩌냐는 말을 들었을때도,

이 상황에 내가 아직 전역도 못했으면, 정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으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정말 전역하고 한두달여간의 기간이 꿈만같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머릿속엔 그저 돈,여자친구,진로 생각밖에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여러번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은 정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큰 행복을

아무것도 아닌듯이 받아들이며 살고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지금도, 또 어떤 행복을 제가 모른채 당연하듯 가지고 있는걸까요?

두렵습니다. 차라리 평생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잊고있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그 행복을 잃을지도 모르는 순간이기 때문이지요.

 

서로 끔찍히 생각하긴 했어도 어릴땐 참 많이 다퉜는데....

원빈 나오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누나 사진 밑에 달아놓았던 제 홈피 글귀가 생각나네요.

13살땐 웬수였고 20살때 나의 전부가 되어버린 우리 누나...

 

짧지 않은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리구요,

이 글쓰면서 몇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더랍니다.

혹시 손님들이 보고 다큰녀석이 왜저러나 할까봐

수차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했구요^^

 

아 그리고 추가로, 악플러분들은 이번만 좀 참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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