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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림에 관한 회상

nulpurn |2003.08.29 09:19
조회 157 |추천 0

 

중학교 때다. 4교시가 끝나고 나면 우리들은 끼리끼리 모여앉아 점심을 먹었다.
점심때면 대략 네 종류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하나는 제법 잘 사는 애들끼리 모인 집단이고,
하나는 그 반대고,
하나는 아예 도시락도 못 싸와 밖으로 나가 버리는 애들이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도시락 뚜껑을 들고 수집(?) 하러 다니는 애들이다.
난 물론 두 번째 집단에 속해 있었다. 우리 집단의 공통적인 특징은 우선 도시락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양철로 된 단순 무식한 커다란 도시락통, 직사각형의 투박한 뚜껑을 열면 안에는 보리 사이사이에 쌀이 제법 섞인 밥과 그 위로 계란후라이 하나 얹어져 있고(이것도 그날 엄마의 기분상태에 따라서 결정된다), 다시 그 위로 기름 묻은 숟가락과 젓가락이 대각선으로 교차해 놓여져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가방 안에서 항상 김치 냄새를 포함한 반찬냄새가 가시지 않았다는 것과, 툭하면 교복과 교과서에 김치국물 묻히기 일쑤였다.

또한 우리 집단의 반찬이라고는 조그마한 유리병에 담긴 신김치였으며(1년 내내), 어쩌다 감자 볶음이나, 멸치 볶음, 두부조림이 대부분이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교실은 서로가 서로를 애타게 찾아 헤쳐 모여를 시작했고, 순식간에 교실은 시장판이 되어 버린다. 가장 신이 난 것은 물론 네 번째 집단에 속해 있는 애들이었다.
물론 그 애들도 양심(?)이 있어서 우리 집단엔 민폐를 거의 끼치지 않았고 타깃은 언제나 첫 번째 집단의 아이들이었다. 거의 매일 실랑이를 벌이지만 항상 결과는 똑 같았다. 하여 첫 번째 집단의 아이들은 아예 녀석들에게 빼앗길 걸 예상하고 덤으로 더 반찬을 준비하는 철저함(?)을 보여 주었다.
아주 드물게 첫 번째 집단과 어울려 점심을 같이 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네들의 반찬은-또한 그네들의 도시락통도, 보기에도 참 맛깔스럽고 군침 돌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연히 그네들과 조우(?) 할 때면 난 생전 처음 보는 음식과 먹도 보도 못한 음식에 기가 죽을 수 밖에 없었고, 아주 조심스럽게 하나 둘 그 녀석들의 반찬에 손을 들이 밀었다.
열등감도 들었고 부러움도 들었지만, 입안으로 들어가 씹히는 그 맛의 달콤함에 금방 사라져 버렸다.
녀석들의 밥은 흰 쌀밥이었으며 주된 반찬은 햄 종류(그 유명한 줄줄이 소시지 또한..)와 불고기, 장조림 등등 거의 다가 육식류였다. 우리들의 보리밥과 채소류의 반찬과는 정말 비교가 되었다.
그 중 특히 녀석들의 장조림 맛은 정말 기가막혔다. 정말이지 그 때는 그거 하나만 있으면 평생을 다른 반찬 없이 밥을 먹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 했으니까.
많은 생각도 했다.
왜 저 녀석들과 나는 다른지..
왜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하지 못한지..
왜 우리 엄마는 김치나 감자나 두부가 들어간 종류의 반찬 밖에 만들 수 없는 것인지.. 등등
점심시간만 되면 혹시나 녀석들이 나를 불러주기만을 기대하기도 참 많이 했었다.

어제 모처럼 구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밥을 담고.. 그러다 밑반찬으로 장조림이 올라왔다.
옛날 생각이 났다. 그 진한 색의 간장과 그 안에 담겨진 쇠고기와 메추리 알..
젓가락질 해 하나를 먹어 봤다. 그 옛날의 맛은 없다.
집에서 아내가 애들 밑반찬으로 장조림을 해 놓으면 난 그것엔 손도 안 간다. 그 옛날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장조림이건만..
세월이 흘러 내 입맛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흔하디 흔해져 그 희소성에 따른 내 간절함이 없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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