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목의《척주지》에 보면 상·하사미(上·下士美)를 삼(蔘)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옛날 이 지방에서 삼공(蔘貢)을 주로 하였기에 삼(蔘) 또는 사미라고 한데서 기인한 것이며 그 말이 변해 사미(士美)로 부르고 표기하게 된 것이라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상사미의 고직재 밑에 맑은 샘물이 솟아 나오는 곳이 있기에 샘이(泉)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새미'로 혹은 '사미'로 부르게 되고 한자표기를 하면서 '士美'로 쓰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삼밭골[麻田谷], 창말[倉村], 절골[寺谷], 황철촌[黃鐵村], 부정당[不淨堂 또는 富鼎堂], 둘밭[斗田村] 등 6개 자연촌락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원래 상사미와 하사미를 합쳐서 사미리(士美里)라고 불렀는데 헌종 8년(1842)에 상사미리와 하사미리로 나뉘어 졌다.
ㆍ디디기벌 ― 상사미 부정당 아래쪽 넓은 들을 디디기벌이라 한다. 그 곳은 남북으로 길게 생긴 지형으로 겨울철 바 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창말 쪽에 사는 사람들이 겨울철에 원동이나 부정당 부근으로 올 때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아무리 발걸음을 내딛어도 제자리 걸음으로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므로 디디기 벌이라고 한다.
ㆍ부정당 ― 디디기 벌 윗쪽 도로가에 큰 나무가 몇 그루 있고 그 곳에 성황당이 있는데 부정당이라 한다. 흔히 부정 디이라고 부르는데 그 일대 마을을 부정당이라 부른다. 옛날 태백산으로 천제 지내려 오는 사람들이 이곳에 이르러 부정(不淨)을 털고 제사하고 갔기 때문에 부정당이라 한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정월초에 날을 받아 제사하고 오 월 단오에도 제사를 지낸다.
ㆍ창말 ― 옛날 서창(西倉)이라는 곳집이 있었기에 곳집이 있는 마을이라고 창말(倉村)이라 한다. 서창은 사미창(士 美倉)이라고 불렀는데 하장면과 상장면 일원에서 거둔 세곡(稅穀)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원래 서창(西倉)은 소달면 신기리(新基里:지금의 삼척시 신기면 신기리)에 있었는데 영조 14년(1738)에 하장생면 사미리 창말로 옮겨온 것 이다. 사미창은 구한말까지 있었으나 그 후 폐지되었다.
ㆍ담시밭골 ― 창말의 고무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갈라진 골짜기이다. 골짜기 안쪽에 커다란 돌담이 있고 돌 담 속에서 맑은 물이 흘러 나온다. 그 물은 경수(硬水)라서 보통사람들이 마시면 설사를 한다고 한다. 돌담에서 물 이 나온다고 담시밭골이라 한다.
ㆍ건의령(巾衣嶺;蹇衣嶺) ― 상사미에서 삼척시 도계읍 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 육백산 기슭 마읍(馬泣)의 궁터에 유배와 있을 때 고려의 충신들이 그를 배알하고 돌아 오면서 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불사이군(不事二君)하겠다고 하였기에 그들 이 입던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건 고개라 하여 건의령(巾衣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건의령 아래에는 정승터라고 하여 고려 정승이 살던 터가 있고 건의령 동쪽 산언덕 육백산이 보이는 곳을 향해 아침 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ㆍ도둑바우 ― 디디기 벌 아랫쪽에서 둘밭으로 넘어가는 밤밭재 넘어에 있는 바위이다. 커다란 바위 4개가 사람키 두 배 정도로 솟아 돌려 막아 섰는데, 옛날 도둑놈이 행인의 베를 훔쳐 그 바위 속에 들어가 몇일 동안 밥을 해먹으며 숨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 속에는 불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다. 도둑놈이 숨어 있던 바위라고 도둑바우라 한다.
ㆍ황철촌(黃鐵村) ― 삼밭골 아랫쪽에 있는데 황철나무가 많은 곳이라 부르는 이름이다.
ㆍ삼밭골 ― 사조동 사무소가 있는 골짜기다. 대마를 삼이라 하는데 삼을 많이 심어서 삼밭골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