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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사북읍의 지명 유래

hanolduol |2006.11.10 11:12
조회 55 |추천 0

사북읍은 조선시대에 동상면 관내로, 사음대, 북일, 고토일, 물한리, 발전, 수출 등 7개 동이 있었다. 그러다가 광무 10년(1906년)에 동상면과 동중면을 합해 동면 관내로 바뀌었고,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북, 고한, 적전리 3개리로 구분되었으며 동면 소재지와는 멀리 떨어진 산간 벽촌이었다.

그러나 이 일대는 지하자원의 보고로서 무연탄이 무진장으로 채굴되어 산업인구는 날로 급증하고 산업개발이 급속도로 확대되어 1962년에 동면 사북출장소가 설치되었으나 지역발전에 행정력이 따르지 못하여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로 사북읍이 신설되어 법정리 수 2개리, 행정리 수 15개리로 출발하였다.

 

ㆍ 노음곡 (사북1리 - 일명 노른가리)

옛날에는 황가리(黃家里)라 하였으나 1935년경 노음곡(老陰谷)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노음곡에는 밀양 박씨, 정선 전씨, 평창 이씨 등 3성이 거주하다 밀양 박씨는 약 50년 원주로 이주하였고 정선 전씨도 어디론가 이주하였으며, 지금은 평창 이씨만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사음대'는 조선시대때 방좌수라는 천석지기 부자가 살았는데 이곳에 그의 토지를 관리하기 위해서 마름(音)을 두었다 한다. 그래서 사음대와 노음곡의 글자를 빌어 '사음'이라 하였는데 현재는 '사북'으로 불려지고 있다. 사북은 사음대와 북일이 합해져 사북이라 칭하고 있다.

 

ㆍ 도사곡 (사북4리)

도사곡은 물이 서쪽에서 흘러 동쪽으로 가는 것이 그 특징이며(西出東流 水), 도사들이 도를 닦으러 많이 모여들던 곳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당파싸움으로 밀려난 귀족들의 피난처로서 약 50호 정도의 집단부락을 이루어 옥수수, 조, 감자 등을 심어 먹으며 살았다 한다. 이곳에는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호방 격으로 마을을 이끌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풍기 지방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ㆍ 범바위골

지금의 사음초등학교 신축 사택 옆에 거대한 바위가 자리잡고 있는데, 옆에서 본 형태가 마치 범이 하늘을 향해 우렁차게 포효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바위 주위에 수풀이 우거져 있던 옛날, 이 바위 밑 굴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낳아 길러 산으로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이후 이 골짜기를 범바위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ㆍ 화절령(花折嶺 - 사북6리)

화절령은 옛부터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절경을 이루었으며, 사음8경의 하나로 화절미인(花折美人)이라 칭하였다. 화절령이라 불리게 되 유래는, 봄날 만발한 진달래꽃을 꺾으려고 여인네들이 각처에서 모여들어 진달래꽃을 꺾었다 하여 '꽃을 꺾는 고개'란 한자말의 화절령(花折嶺)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피난민들이 4∼5 가구씩 모여들어 화전(火田)을 일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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