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읍은 조선시대에 동상면에 속했던 고토일, 물한리로, 광무 10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시 동상면, 동중면이 통합되어 동면이 되는 동시에 고토일, 물한리를 합쳐 고한리가 되었다.자연부락으로는 고토일, 물한리, 갈래, 대두문동, 소두문동, 만항, 박심으로 구분되며, 30년전에는 780호 정도가 살고 있던 한적한 산촌이었는데 무진장으로 매장된 석탄이 개발됨에 따라 급진적으로 발전하여 현재 지방행정리 25개리로 주민 2,500여 세대가 살고 있다.
ㆍ 고토일(古土日) 고한 14리
고려 중기 유랑민들이 고한 지역에 와서 토질이 가장 좋은 부락을 선정하여 최초로 정착한 곳이 고토일이다. 윗마을, 아랫마을, 골마을로 구분되어 있으며 토질이 좋은 땅이라 하여 고토일이라 부르게 되었다.
ㆍ 물한리(勿汗里) 고한 25리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서 물한리재를 올라올 때는 땀이 줄줄 흘러 매우 피로하였으나, 물한리로 내려올 때는 울창한 산림과 맑은 시냇물에 오히려 추위를 느끼고 땀이 들어간다 하여 물한리라 부르게 되었다.
ㆍ 만항 (고한1리)
조선시대에 고향인 평안도를 버리고 이곳에 이주해 와 살던 두문동 주민들이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이 지역의 제일 높은 만항에서 물 한 그릇 떠놓고 빌었다하여 '망향'이라 불려졌다. 일제시대에 최초로 광산이 개발되어 일제에 항거하던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여 촌락을 형성해 오다가 해방이 되자 원래의 주민들은 모두 고향으로 떠나고 화전민 몇 가구만 남았다. 그러다가 1960년대초 본격적인 광산개발이 활기를 띔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생활빈곤자들이 몰려들어 살게 됨으로 인해, 말이 잘못 변천되어 지금은 '만항'으로 불리고 있다.
ㆍ 범소부락 (고한13리)
이곳은 1972년 8월 이전에는 논(沓)이었으나 9월 장마로 수몰되어 버려 북부사택에서 몇몇 세대가 이동하여 촌락을 형성하였다.
소수세대지만 평소 근면하고 모범적인 마을이라 하여 '범소'로 불렀으며 그 이후로는 동원탄좌에서 많은 주택을 건축함으로서 '범소주택'으로 개칭되었다.
ㆍ 진밭골 (고한15리)
이곳은 광산 개발 이전에 다른 부락보다 밭이 모두 특이하게 길어 진밭골이라 불렀다한다. 지금은 주택가로 변하여 있다.
ㆍ 등마을 (고한23리)
신 사택 옆의 동네로서 행정구역으로는 고한23리이다. 그 동네는 한번 올라갔던 사람은 또 다시 올라가기는 싫은 곳이라 하여 등마을 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