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주 옛날에는 개단부곡(皆丹部曲)에 속해 있었고 한때는 충청도에 속 한 영월땅이었던 적도 있는 곳이다. 1963년에 영월땅이 되었을 때 강원도의 울진군이 경상북도로 이속되었는데 사람들은 군과 이(里)로 변경되었다. 원래 천평은 '천평(天坪)'이라고 기록하였다. 태백산 꼭대기로 길이 있을 때 천령(天嶺)이라 하였고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은 천산(天山)인 것이며 그 아래에 있는 들은 '하늘들' 즉 '천평'인 것이다.
ㆍ진구비 ― 새길령에서 천평으로 내려가다가 고갯길이 크게 구비져 있는 곳이다. 보통 고갯길은 갈 지(之)자 처럼 구불구불한 것이 많은데 이곳에서도 그 구비가 길기 때문에 진구비라 한다.
ㆍ주점터 ― 옛날 새길령을 오고가던 길손들이 머물다 가는 주점(酒店)이 있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지점에 있었 다. 옛날 주점터의 주점에는 앉은 뱅이 여인이 술을 팔고 있었다. 비록 앉은 뱅이지만 얼굴은 천하일색이었다. 남편 이 있었는지 아니면 없었는지는 몰라도 오고가는 길손을 상대로 술을 팔며 몹시 고생을 하는 처지였고 남다른 한이 많은 여인이었다. 어느날 깊은 밤에 그 앉은 뱅이 여인을 누군가가 업어 갔다. 앉은 뱅이지만 얼굴은 절색이라 그래 도 누군가가 마음을 뒀던 것이리라. 여인이 없는 주점은 폐허가 되고 말아 희미한 집터만 남아 있다.
ㆍ삼샘이골 ― 천평의 송나무터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갈라진 골짜기로 유일사라는 절이 있는 곳이다. 골짜기 안쪽 에 세곳에서 물이 합쳐저 내려오므로 삼샘이골이라 한다. 삼샘이골에는 작은 삼샘이골도 있다.
ㆍ연작골[連作谷] ― 새길령을 내려가 천평으로 올라가다가 왼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짜기 안쪽에 길다란 밭이 있는 데 화전밭이다. 토질이 좋아 거름을 하지 않고도 연작이 가능한 곳이므로 연작(連作)골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 길 윤작(輪作)골이 변해 연작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연작골 다음에 소연작[작은 연작]골도 있다.
ㆍ가마봉 ― 태백산 천제단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천평의 당골 어귀에서 불끈 솟아 있으니 가마봉이라 한다. 멀 리서 바라보면 산봉우리가 가마처럼 보이므로 가마봉이라 한다. 전하는 말에, 옥녀봉의 옥녀가 가마봉의 가마를 타 고 신선봉의 신선에게 시집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ㆍ당골 ― 가마봉 앞에서 태백산 천제단 쪽으로 갈라진 깊은 골짜기이다. 태백산 정상의 천왕당(天王堂, 天皇堂)으로 가는 골짜기라서 당골이라 한다. 당골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많은 데, 큰 당골, 작은 당골, 백일 당골, 소골, 재 피골 등이 있는데 그 전체를 당골이라 한다.
ㆍ소골 ― 천평의 당골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갈라진 골짜기로 옛날 천제 지낼 때 제물로 바치던 소를 씻기고 메어 두던 곳이었다. 그곳엔 쇠당이 있어서 천제 뒤에 관리가 희생물로 바친 소를 끌고와 보관했다가 부(府)에 갖다 바 치는 곳이었다. 허목(許穆)의《미수기언》 퇴우조(退牛條)에 보면, "원근에서 다투어 태백신에게 제사하니 무릇 재 액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태백신사에 소를 바쳐야 된다. 소원하는 바를 빌고는 곧 일어나 뒤를 돌 아다 보지 말고 가야 하는데 만약 돌아다 보면 소가 아까와서 그런다고 하여 신이 흠향치 않는다고 한다.
소가 신사(神祠) 아래에 득시글 거리는데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잡아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 이것을 퇴우라 하는데 관 부에서 들으니 감고라는 벼슬아치를 두어 매일 소를 몰아다가 관에 바친다고 한다"라고 한 대목이 있다. 쇠당은 두 개가 있었는데 소도 당골에 하나가 있어서 삼척부에서 관할하였고 남쪽 천평땅에 또 하나의 쇠당이 있어 안동부(安 東府)에서 관할하여 각기 자기네 부에서 천제 지내려 가는 사람들의 소를 점검하고 거두어 갔다. 바로 이곳 소골 어귀에 쇠당[牛堂]이 있었기에 소골이라 한다.
ㆍ백일당골[白日堂谷] ― 소골 어귀에서 당골 안쪽으로 좀더 올라 가다가 왼쪽에 있는 골짜기로 가마봉 뒤쪽 이 된 다. 골짜기 안쪽에 꾀넓은 밭이 있고 골짜기 안쪽 끝은 곧 바로 천제단이 된다. 옛날 골짜기 안에 백일기도를 드리 는 제당(祭堂)이 있었기에 백일당골이라 한다. 옛날 서벽의 구령국(九靈國 또는 句靈國)의 구리왕(句利王)이 이 골 짜기에서 태백신(太白神)에게 국가의 부흥을 위해 백일 기도를 드리는데 구십구일을 기도하고는 백일이 됐는 줄 알 고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 군사를 일으켰다. 소라리의 소라국(召羅國)을 치고 춘양(春陽)의 소로국(小魯國)을 쳐서 거의 다 이긴 싸움에서 전사하였다고 한다. 백일을 기도해야 하는데 하루를 빼 먹어서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 며 백(百)에서 일(一)을 빼니 백(白)이 되었고 100일은 99日을 뜻하는 것이라 하며 골짜기 이름도 백일당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ㆍ춤시리골 ― 옛날 천평초등학교가 있던 뒷골이다. 골짜기가 깊어 물이 맑고 나무가 많으며 땅심이 좋아 농사가 잘 되는 곳이다. 옛날 골짜기 안의 밭에 삼[麻]을 심으면 얼마나 잘 자라는지 두 발 정도나 자라기에 이 골짜기 삼이 최고로 춤이 좋아 춤이 실하다고 춤시리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는 춘실이란 사람이 살아서 춘실이골인데 그 말이 변해 춤시리골이라 한다.
ㆍ안간지밭골 ― 천평의 갈골 안쪽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진 작은 골짜기이다. 옛날 골짜기 안에 개갈간지[범새끼]가 자주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해서 안 간지골이라 한다. 간지는 강아지 라는 말이고 개갈간지는 범의 새끼라는 말이 다.
ㆍ참빗골 ― 춤시리골과 곰님이골 사이에 있는 작은 골짜기이다. 골짜기 오른쪽과 왼쪽에 가늘고 작은 골짜기가 여럿 있어서 흡사 참빗처럼 생겼기에 참빗골이라 한다. 옥녀봉의 옥녀가 이곳 참빗으로 머리를 빗는다고 한다.
ㆍ고직령(高直嶺) ― 곰님이골로 들어가서 산사나무골 어귀를 지나쳐 좀더 가서 오른쪽으로 갈라진 골짜기를 올라가면 서벽과 애당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높고 곧은 고개라고 고직령이라 한다. 일설에는 고개 북쪽에 사창(社倉)이 있어 고직(庫直)이가 지키고 있어서 고직령이라고도 한다. 김정호(金正浩)의《대동지지》의 삼척 산천조에 보면 고석령(孤石嶺)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고석령은 서쪽 1백 10리에 있는데 길이 좁고 매우 험하다. 안동땅으로 통하는 길인데 춘양 서쪽이 되며 영천[영주] 예불령[예배령]의 북쪽이다"라고 하였다.《영가지》에는 고적현(高適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부터 이 고갯길은 영남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중요한 길이었고 특히 고개 넘어 경상도 땅의 도심리(道深里) 에는 도심역(道深驛)이 있어서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오는 관리들을 묵게 하였고 천제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의 발 길이 끊어지지 않던 고갯길이었다. 곶적령(串積嶺)이라고 기록한 곳도 있다.
ㆍ곰님이재 ― 춘양의 애당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옛날 천제를 지내려 태백산으로 오던 사람들이 넘던 고개로 영남 지방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고개였다.《영가지》에는 웅현(熊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곰은 검에서 온 말로써 신을 의미하니 옛날 태백산으로 천제 행렬이 줄을 이을 때 이 고개를 넘어 왔으니 신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서 곰[검신] 님이[님이]재라고 불렀다. 웅현(熊峴)도 곰재로 검재니 '신령(神嶺)'인 것이다. 일설에는 곰을 고개로 보고 님이를 넘이로 봐서 곰님이는 고개넘이가 된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