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거무내[黑川] 혹은 거무내미골 등으로 불리우던 마을이다. 태백시에서 가장 먼저 석탄이 발견된 곳이다. 먹돌배기 근처에 석탄이 노두(路頭)에 나와있어 비만오면 씻겨서 개천물이 검어지므로 거무내 또는 거무내미골이라 불리웠다.
옛날에는 먹돌배기에서 범틀자리 부근으로 해서 샛볕뜨리로 길이 있었는 데, 비만오면 먹돌배기 위에서 범틀자리 부근까지는 땅이 죽탄이 되어 신발이 모두 검어지곤 하였다. 거무내·검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흑천(黑川)'이라 썼다가 다시 '검천(黔川)'으로 쓰게 되었다. 처음엔 '검(黔)'의 본래 발음인 '검을 검'하여 검천으로 부르다가 일제때부터 '검'의 또다른 발음인 '귀신이름 금'을 취하여 금천(黔川)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금천으로 부르기 보다 검천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한 이름이다. 검천으로 불렀을 때는 '거무내'의 뜻이 담겨 있지만 금천으로 불렀을 때는 '귀신내'의 뜻이 되는 것이다. 검천은 태백시의 남쪽에 위치하여 웃마을[잣나무골], 아랫마을[달밭부근]을 합친 법정동인데 현재는 행정동인 장성3동에 속해 있다.
ㆍ물구지골 ― 거무내미골을 말한다. 물[水] 구지[흐리다, 검다]골로 "물이 검게 흐리다"라는 뜻이다. "날씨가 궂다"하 면 날씨가 흐리다는 말과 같이 '궂다'라는 말은 깨끗지 못하다는 말이다. 물구지골의 '구지'도 궂다[궂이]에서 온 말 이다.
ㆍ먹돌배기 ― 최초로 석탄이 발견된 곳이다. 이곳에 검은 이암(泥岩)이 개천 가에 솟아나와 있기에 먹돌이라 하고 그 바위가 박혀 있는 곳을 먹돌배기라 한다. 이 먹돌배기 윗쪽에서 땅거죽에 석탄이 나와있는 것을 장해룡이란 사 람이 발견하였다. 먹돌배기에는 붉은 이암[赤泥岩]과 푸른 이암, 검은 빛 이암이 있는 데, 이곳의 이암을 뜯어다가 벼루를 만들어 먹을 갈았다고해서 먹돌배기라고도 한다. 먹돌배기 아래에 검천갱(黔川坑)이 있다.
ㆍ청뜨리 ― 금천초등학교 앞 마을 전체를 청뜨리라 한다. 금천초등학교터가 풍수설에 의하면, 초사청와형(草蛇聽蛙 形)이라 하여 뱀이 개구리를 잡아 먹으려고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 개구리에 해당 하는 개구리바위가 청뜨리 가운데 개천 가에 있었는데 도로를 개설하면서 깨어져 버렸다. 뱀이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는 들이란 뜻으로 '청뜨리'라 한다. '청'은 목청을 뜻하고 노래하거나 울 때 청이 좋다고 할 때의 청이다.
ㆍ우벙골 ― 금천초등학교 좌측 골짜기이다. 골짜기 안쪽이 우묵하여 깊게 들어가 있고, 골짜기 가장 뒤쪽에 우묵우 묵 들어간 바위굴이 얕으면서도 여러 곳에 많기에 우벙[우묵, 우멍]골이라 한다. 금천초등학교 옆 우벙골 어귀에 깊 은 석회동굴이 하나 있는 데, 장마때면 그 곳에서 많은 물이 솟아 나온다. 깊이는 알 수 없다. 우벙골을 넘어가면 동점 고수골로 가는 코구무재로 갈 수 있고 장성 설무실골로 갈 수 있다.
ㆍ여시밭골 ― 달밭골을 지나서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어느때 전염병이 돌아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 시체를 여 시밭골 안쪽에 옮겨다 묻었는데 이것을 애총이라 한다. 애총[兒塚]이 많이 있으니 여우가 모여와 애총을 파뒤져 시 체를 파먹으며 산다고 하여 여시밭골이라 한다. 요즘도 비가 올라치면 골짜기 안쪽에서 여우 우는 소리와 가냘픈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무서운 골짜기로 알려져 있다.
ㆍ화산재 ― 잣나무골 앞쪽에 있는 경상북도 평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옛날 평천리 쪽에서 화전을 많이 하였는데 화전을 일구다가 툭하면 불이 번져 산불이 많이 났고 그 산불은 강원도와 경계지점의 산능선인 화산재로 붙어 올라 오곤 했다. 그래서 산불이 나면 금천쪽 사람들이 화산재 산등성이에 올라 방화선(防火線)을 치고 불길을 잡았으며 불길이 거세어지면 맞불을 질러 불을 잡았다. 화전농사 때문에 산불이 많이 나는 산등성이라 해서 이곳 산을 화산 (火山)이라 하고 그 재를 화산재[火山峙]라 하였다. 화산재를 다른 이름으로 화성재라고도 부르는데 성은 산과 같 은 뜻이다.
ㆍ불무실골 ― 잣나무골 어귀에서 왼쪽으로 갈라져 들어간 골짜기이다. 옛날 골짜기 안에서 쇠를 녹였는데 그때 풀무 [불무]를 설치했다고 불무실이라 불렀다. '실'은 골이란 뜻인데 나중에 불무실이 불무실골로 불려지게 되어 골짜기라 는 말이 중복되었다.
ㆍ물춤배기 ― 불무실골과 아방골 사이의 산등성이 부근에 있는 늪지대 이다. 성재등으로 해서 산능선을 따라 올라가 면 산등성이 부근이 편편하고 가운데 늪이 있다. 옛날 금천골의 정씨네가 이곳에서 산맥이를 하던 곳이다. 이곳은 상당히 영험이 있는 곳으로 부정이 타면, 물 속에서 서너치 되는 거머리가 기어 나오고 제수(祭需)가 바람에 날아 가는 등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잣나무골 사람들이 그 물을 달아 먹는다. 물이 충충하게 고여 있어 주변의 땅이 물초[전체가 물에 젖음]가 되어있기에 물초배기, 물촘배기, 물춤배기로 부르게 되었다.
ㆍ잣나무골 ― 200여년 전 금천골의 정씨네가 골짜기 입구에 잣나무를 심어서 잣나무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잣 나무는 200여년 자란 거목으로 지금도 골짜기 어귀에 남아 있다. 사막바우 ― 솔등갱이 윗쪽에 있다. 높이 2m, 가로 3m, 세로 2m 정도되는 직사각형의 바위이다. 바위 위에 둘 레 60㎝, 깊이 30㎝ 정도의 웅덩이가 있고 그 속에 항상 물이 괴어 있다. 옛날 금천 사람들이 몸에 사마귀가 나면 이곳에 와서 바위 위에 고인 물을 사마귀에 찍어 바르면 사마귀가 없어지곤 하였다. 그래서 사마귀 바위라 불렀는 데 그 말이 변해 사막바우라 하게 되었다.
ㆍ쇠돌이 ― 여시밭골과 잣나무골 사이의 넓은 산등을 말한다. 옛날 불무실골 안쪽 점터에서 쇠를 녹일 때 이곳에서 쇳돌을 캐내어 운반하여 점[쇠를 녹임]을 하였다. 쇳돌이 많은 곳이기에 쇠돌이[쇳돌이]라 부르고 또 쇠드리라 부 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쇳들[鐵坪]에서 온 말이다. 요즘 잣나무골 사람들이 이곳의 넓은 고원에 소를 방목하고 있어 서 소드리, 소들이[牛坪]가 아닌가 의심하던 차에 어떤 사람이 이곳에 와우형국(蝸牛形局)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서 쇠드리[鐵坪]가 쇠들이[牛坪]로 오인되기도 한다.
ㆍ아방골 ― 잣나무골로 들어가서 물골을 지나서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이곳에 성불암(成佛庵)이라는 절이 있었고 스님들이 참선하는 아자방(亞字房)이 있었다. 아자방을 아방(亞房)이라고도 부르는데 아방이 있는 골짜기라서 붙은 이름이다.
ㆍ뼝개골 ― 잣나무골 안쪽에 있는 깊은 골짜기 이다. 뼝개골은 큰 뼝개골과 작은 뼝개골이 있는데 왼쪽이 큰 뼝개골 이고 오른쪽이 작은 뼝개골이다. 뼝개란 말은 물미[물매]가 급한 벼랑에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말하는데 뼝개라고 도 한다. 뼝개골에는 수백척이나 되는 폭포가 있고 아름드리 나무와 기화요초가 많은 곳이다.
ㆍ마고할미 우물 ― 작은 문수봉 위에 가면 넓적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가운데가 우묵하여 항상 물이 고여 있어 마고 할미 우물이라 한다. 그 바위에는 물이 고여 있는 우물 앞에 우먹한 홈이 두 개 있고 우물 옆에 두 개의 우먹한 홈 이 있다. 옛날 마고할미가 그 우물 물을 마시기 위해 무릎을 꿇고 손을 짚고 엎드려서 물을 마셨는데 그때 구부려 짚은 손과 무릎 자국이 바로 우물 옆에 있는 구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