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인간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기껏 울분을 토해내며 쓴 글이
순식간에 날아가다니. 젠장. 마음 좀 풀어보려고 쓴 글이 더 울컥하게 한다. 그래서
다시, 토해내야겠다. 아주, 긴 이야기가 될 테지만...
=
또, 시작이다.
오늘이 개강인데, 수강신청도 마쳤는데, 등록금이 없다. 지난 2006년 1학기때, 미등록으로
이미 한번 제적당한 경험이 있는 나. 죽도록 일해, 빚 갚으며 틈틈히 모은 돈으로 입학금을
다시 내고 2학기 때 재입학을 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동안, 이대로 포기해 버릴까, 학교가
문제가 아닌데, 돈이나 벌까, 어떡해야 하나, 수백번, 수만번도 더 고민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내 전공을 너무 사랑해서, 정말 너무 간절해서, 도저히, 도저히 놓을 수가 없더라.
그래서 돌아왔다. 하지만, 또, 끈을 놓아야 하나....두렵다.
학자금 대출이 탈락됐다. 이유는, 이자 연체가 3개월 이상 되어 상습연체로 신용도가 하락했
다는 것. 돈이 없어서, 정말 돈이 없어서 낼 수가 없었는데...그래도 어렵게 모아서 그렇게라도
냈는데...안 낸 것도 아니고 연체해서 안된다니....지금까지 받은 대출만 3~4번은 되는 것
같은데, 이것 아까워서라도 나, 절대 포기 못하겠다. 젠장. 공부하고 싶다는 데, 배우고 싶다는
데, 인재 육성이 나라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커서 국가를 발전
시키는 거 아니냐고?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어. 시민이니까, 국민이니까, 사람이니까.....
그 이유만으로라도 적어도 숨은 쉬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 나이 스물 다섯.
11살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엄마, 나, 동생은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되어 임대
아파트에 살았다. 아마, 그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의 유년은 그래도....
기억할 만한 그리움이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서민층(?)으로 복귀했고, 그나마 살림은 좀 나아졌지만,
알고보니, 그 남자, 알콜 중독자더라. 그걸 알면서도 그 집에서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짐 떠맡기듯
우리에게 모든 걸 넘겼다. 결혼 전에 그렇게 축복해주던 이들이, 결혼하니 등돌리더라. 세상, 참
무섭다. 평소에는 그렇게 다정하고 매너있고 능력있고 그렇게 보이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개로
변하더다. 때리고 엎고 뒤집고 부수고....오죽하면 경찰과 구급차 요원들도 나중에는 별 말없이
알아서들 뒷처리까지 해주더라. 용인 정신병원. 그렇게 가까운 곳인 줄 몰랐다. 나와는 상관
없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결국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그가
또다시 입원해있던 어느 날, 엄마는 병원에서 빼주는 조건으로 이혼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정신병원은 보호자 동의 없이는 절대로 퇴원 못한다더라. 무서운 곳...)
그렇게 우리는 악몽을 벗어나는가 싶었다. 사실 난 고등학교 때 방황을 좀 했다. 이유는 가정사가
컷던 게 사실이다. 집을 나가고, 학교도 무단 결석에.....결국 엄마 생일날 당신 손으로 딸의
자퇴서를 내고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난 두 달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함께 지내던 친구들과
문제가 있었던 까닭도 부인하지는 않겠다.(친구. 쉬운 이름이 아니더라. 돌아서면 끝. 나를 나쁜
길로 이끄는 이는 결코 친구가 아니다. 나는 그때, 그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엄마께 더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서,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동안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고등학교에 복학하는데 드는 비용(등록금 포함, 선생들이
돈을 바라더라.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줬다. 치사해서.)을 전부 내 손으로 마련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아주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성적도 어느정도 상위권이었고 수시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도 합격했다. 입학금은 엄마 회사 가불로 해결했고, 그 외에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정말, 재수가 없는 사람은 일평생 없는 것일까?
불행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2006년 봄은 나에게는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엄마는 회사에서 이혼사실로 인한 불이익을 겪었고, 갈수록 심해지는 경기 침체로 일조차도
수월치 않았다. (건강식품 판매...솔직히 나같아도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든데, 그런 거 안 사먹을
거다. 그게 이해가 되니까 더 힘든 거다.) 한살 아래 동생도 대학에 들어갔고, 등록금은 엄청나고..
게다가 난 그즈음 사기를 당해, 내 이름으로 대출된 600이 넘는 돈때문에 빚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절대 비밀. 아직까지도...
그 사기꾼 놈은 신고해서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고작 벌금형으로 끝나더라. 난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아직도 그 빚을 갚고 있다. 매달 이자만 30여 만원....열흘이라도 늦으면 대출회사에서
하루종일 전화오고 난리난다. 집으로 찾아오겠다고까지 하니....두 군데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해결하기 위해 또 여기저기서 끌어쓰고, 끌어쓰고....어느새 빚은 천 만원이 훌쩍 넘어있다.
하긴, 이런 상황에 등록금 투정이라니. 훗. 그런 상황에서 나는 학자금 대출에 탈락됐고, 결국..
제적당했다. 죽기 살기로 노력해 입학금에 등록금 마련해 재입학 했건만, 난 또 제적당할 상황...
도대체가 공부하나 하겠다는데, 무슨 장애가 이렇게 많은 건지....
난 정말 평생을 이렇게 살게끔 타고난 팔자일까?
이런 일이 현실이라 믿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이렇게 불행한 사람들,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내동생, 지금 국립 병원 정신과에 입원해있다. 왜? 사람을 패고 다녀서. 그게
정신 병인 줄, 엄마도, 나도 예전엔 몰랐다. 그저 온순하게만 자라온 아이...비록 나랑 한 살
차이지만, 그래도 막내라는 이유로, 아버지 없는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자란 불쌍한 아이라는
이유로 나와 엄마는 그 아이의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맞벌이
하는 부모님 때문에 밥하고 설겆이 하던 나와는 달리, 동생은 20살이 넘을 동안, 밥하는 법도,
세탁기 돌리는 법도, 은행 업무 보는 법도 몰랐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거, 라면이랑 계란 후라이.
만화를 하고 싶다는 아이가 공고 건축과를 다니더니 다시 건축이 하고 싶다고 했다가, 재수를
하여 성적 맞춰 불교과에 가더니 불상 파는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라고
했다. 그애와 난 친구같은 남매였으므로 상담도 많이 해줬는데....첫 학기를 마친 방학 때부터
길가는 사람들을 때리더라. 처음에는 시비를 걸었다느니 어쨌다느니 이유라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자기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보며 저 사람이 지금 자기 무시했다며 때리더라. 심지어는
다리 다쳐 간 병원 의사 선생님이 고개 숙여 치료하고 있는데, 그 선생님 발로 차고 싶다더라.
허, 뭐 이런 개같은 병이 다 있나 했다. 하도 사람들 때리고 다녀서 엄마랑 나는 병원이고
경찰서고 쫓아다니며 사과하고 돈물어주고 하기에 바빴다. 생전 가 본 적 없던 경찰서를, 그
해에만 사기꾼 잡아넣느라, 동생 사고친 거 수습하느라 수십번을 더 왔다갔다 거렸다.
동생은 개인병원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병명을 모르겠단다. 대학병원에서 억지로 지어낸
게, 정신 분열증. 게다가 조울증도 있어서 심심하면 자살시도도 하더라. 나중에는 아파트 옥상
올라가는 게 그냥 하루 일과더라. 언젠가 하루는 내 방에서 가방끈 매고 자살시도하다가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실패한 적이 있는데, 내가 집에 없던 떄라 그 장면은 못봤지만, 그 애 목을
보니, 정말 죽음의 흔적이 명확하더라. 난 그 후로 몇 달간 방문에 매달린 동생의 환영때문에
내 방에서 잠도 제대로 못잤다.(내 방에서 목을 맨 이유는 방문 위에 목매달기 좋은 못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뒤로는 빼버렸지만.)
그리고 내가, 맞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집까지 돌아다니던 엄마는 어떤 스님의
철학관을 소개받았고, 나와 동생이 함께 가게 되었다. 정말 별 일 아니었다. 차 안에서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고(동생은 죽고 싶다, 때리고 싶다, 난 그러지 말아라, 그 사람들 인생도 있다.)
조수석에 있던 내 머리칼을 뒷자석에 있던 동생이 쥐어뜯었고 놀라 돌아보는 내게 주먹이
날아왔다. 어렸을 적 엄마한테 매맞은 적 외에는 생전 누구에게 맞아본 적 없는 내가, 친구같던
동생에게 맞다니. 엄마는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낼 뻔했고, 차에서 내린 동생은 잠긴 차문을
두드리며 나에게 욕을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 때 엄마가 말리지 않았으면 목졸라 죽이려고
했단다. 그 뒤로 난 바로 짐을 싸서 집을 나왔고 엄마는 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그 날 밤, 쓸어내기만 해도 한 웅큼씩 잡히던 머리카락과 퉁퉁붓고 멍들고 터진 얼굴을 보며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난 그 후로 약 1년 간을 일주일에 한 두차례씩 동생의 악몽을 꾸었고
(맞는 꿈, 쫒기는 꿈, 칼로 위협당하는 꿈, 심지어는 성폭행까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만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동생의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근데, 더 웃긴 건, 동생은
나를 때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단다. 신발.
결국 동생은 정신 장애가 인정되어 차상위계층이 되었고, 우린 다시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었다.
스물 다섯에 생활보호대상자라니....곧 오십이 다돼시는 엄마. 30대 중반, 젊은 나이에 혼자
되셔서 갖은 고생 다하셨는데...이젠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당당히 대학 졸업해서 돈벌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는 걸 보는 게 엄마 꿈인데....엄만 아직도 내가 학교를 제적당했다는
사실을 모르신다. 아신다면 아마.............
이제 4학년. 1년만 있으면 되는데....1년만.....게다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공부하는
전공 두개가 모두 예술분야 전문직종이어서, 이걸 포기하고 내가 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능력보다, 아마 이루지 못한 꿈에 때한 열망때문에 곧 시들어버릴 것 같다. 이왕이면....
이만큼의 아픔을 투자했는데, 내가 원하고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 하며 그렇게 살고 싶은데...
엄마는 내가 빨리 졸업하길 바라시고, 빨리 돈벌어오라 하시는데, 나도 그 마음 알지만, 맨날
돈돈돈 하는 엄마에게 짜증만 내고....나쁜 딸이다, 엄청.
지금의 조건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장학금을 알아보았다. 외부 장학재단까지도.....이미 다른
학생들에게 수여가 돼서 줄 수가 없단다. 미안하단다...왜, 내가 그런말을 들어야 하지? 왜,
당신들이 미안한가요? 돈 없는 건 내 죄인데.....내 팔자가 이런 걸...............................
그리 긴 삶을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뭐가 이렇게 아프고 힘이 든 지
모르겠다. 지금 사는 월셋집도 방세를 계속 미뤄서 엄마와 나는 곧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먹고 살기 위해, 우릴 위해 엄마가 여기저기서 빌린 돈이 몇 천이고, 사기와 학자금 대출로
인한 내 빚이 몇 천이고, 정신병자 동생에, 학교는 한 번 제적당했다가 재입학 한 걸로 모자라,
또다시 제적당하게 생겼다.
너무 하고 싶어 시작한 복수전공 교수님들께서는 웬만하면 포기하라는 듯 자꾸 나를 재촉
하시고, 원래 하던 공부는 이런 저런 이유로 손 놓은 지 오래다.
스물 다섯. 너무 예쁜 나이인데, 너무 좋을 나이인데, 내 인생은 왜 이리 고달프기만 한 지...
만약 먼 훗날, 누군가 나에게 20대를 다시 선물한다면 난 거절할 것이다. 너무 끔찍해서
다신, 돌아오고 싶지 않은 날들. 나의 소원은, 정말 간절한 바람은 단 하나, "행복하게 해
주세요..." 이것뿐인데...부자까진 아니더라도 당장 먹고 살 걱정없는 정도의 생활,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사랑하는 사람,
친구들과 함께 하고픈 평범한 일상, 소박한 꿈, 단지 그것뿐인데.....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