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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와 철분제

얼음마녀 |2003.09.04 21:25
조회 5,849 |추천 0

생리예정일이 되기 전부터 왠지 몸이 좀 이상하더군요.

직감적으로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예정일 하루 지나서 임신진단시약으로 테스트해보니까 양성.

 

기분이 무지 좋았지만, 시부모님이 아기를 많이 기다리신 터라,

혹시 아니면 실망하실까봐, 병원에 다녀온다음에 말씀드리려고 남편에게만 살짝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확실해지기전까진 얘기하지 말랬는데, 그날 저녁에 바로 발설했답니다..ㅜㅜ

 

다음날, 일요일.. 우리 남편 임부복 사야 한다고 흥분하는거 간신히 진정시켜놓고

월요일날 출근했습죠.

어머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시아버님이 오늘 철분제 사오신다고 하셨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보니, 제 책상위에 철분제 6개월치가 놓여져 있더군요.

아, 전 시집살이 하는 며늘입니다.

아버님이 사오셨다는걸 모르는바 아니나, 모르는척하고 거실에서 TV보시는 시아버님께

이거 아버님이 사오신거에요?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답니다.

 

저희 아버님, 잘 챙겨먹고, 몸관리 잘해라,, 이런 생색(?)도 없이

그냥 "어, 그래.. 흠흠" 하십니다.

 

엄니 말씀으론 종로 5가까지 나가서 사오셨다는데

노인네가 허겁지겁 거기까지 가셔서 약사에게 꼬치꼬치 캐묻고, 이것저것 재고

분명히 또 깍아달라고 하셨을텐데.. 그 모습을 생각하니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저희 시아버지는 뭐랄까, 아기자기한 감정 표현이 서투신 편입니다.

우리 나라 환갑무렵의 남자들이 다 그렇겠지만,

굉장히 서툴고 투박한 방법으로 본인의 애정을 표현하신답니다.

 

이를테면, 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 하고 먹는걸로 고문을 한다던가,

딴엔 걱정이 되서 하신 잔소리인데, 우선 큰소리가 나간다던가..

 

제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동안 집에 있었던 때가 있었드랬죠.

어머님은 아직 일하시고, 아버님은 정년퇴직 하셔서 같이 집에 있었는데,

엄니 친구분들은 경악을 하셨다는군요. 며느리 불편해서 어떻하냐고..

허나, 아버님과 저는 거의 바퀴벌레처럼, 서로 상대방의 눈에 안띄게 그럭저럭 잘 지냈답니다.

외출할때도 서로 방문닫고 있으면 말않고 슬쩍 나감서, 그래도 핑계는

아버님은 제게 "자는 줄 알았지..^^;;",

저는 아버님께"주무시는 줄 알고 말씀 안드리고 나갔어요..^^;;" 하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그렇게 서로를 "쌩" 하면서 말이죠..

 

가끔 남편하고 말다툼이라도 한 다음날이면 밥맛도 없고 기분 매우 울적하죠.

그럼 아버님 "나 신문사러 잠깐 나간다..." 슬쩍 나가십니다.

그리고 오실때 빵 사갖고 오십니다. ^00^

 

요즘 애들 좋아하는거가 뭐냐고 물어보고 사오셨다면서

제가 끼니거를까봐 걱정되서인지, 당신 보는 앞에서 다 먹고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어서 먹어." 하고 저 곁눈질 하면서 아버님은 신문보십니다.

 

그럼 저는 남편과 다툰 속상함, 서러움 때문이 아닌

그렇게 무뚝뚝하게 챙겨주시는 아버님이 너무  고마워서

그야말로 눈물젖은 빵을 먹곤 했죠.

 

지금도, 나중에 시부모님 돌아가시면 정말 많이 울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글 쓰는 데도 이유없이 눈시울이 뜨듯하네요.

 

만일 아버님을 직장에서 만났음, 별로 영 별로,, 라고 생각했을텐데.

완고하시고, 고집세시고, 융통성 없으시고..

뭐 그런 나이많은 상사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가족이니까 다른 방면으로 이해를 하게 되네요.

 

에효.. 당직 마칠시간 거의 다 되었답니다. ^^;;

그럼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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