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톡톡을 즐겨보는 32살의 중국에서 파견원 생활을 하고있는 한청년입니다.
저는 11년만에 찿은 저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장문이 될것같은데 부디 천천히 읽어보시고 좋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보면 상처가 될수도 있으니 악플은 삼가해주세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별다른 직장없이 동네에서 양아치 짓거리를 하고 다니던 남자였습니다.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저는 20살이 되던해 친구의 소개로 마산의 한단란주점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요. 첨에는 쉽게 돈도 벌이고 쉽게쓰고 그래서 재미가 잇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러운꼴도 많이보고 일이 점점 짜증이나기 시작햇죠. 그러던때 같은 술집에 일하고 있는 동생의 소개로 2여자를 소개받게 되었지요. 약속장소로 나갔는데 내앞에 앉아있던 한여자 제 마음을 송두리째 뺐어갔습니다. 옆에있던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헤어지게 되었죠. 그녀는 저에게 이야기를 나누는동안 제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무슨수를 써서라도 꼭 그녀를 내여자로 만들겠다고.. 제성격이 맘에 든다고 먼저 좋다고 따라다니고 그러는 스타일이 전혀아니였는데 그녀에게는 예외였습니다. 완전 그녀에게 미쳐버린거죠. 저도 모르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같이 일하는 동생을 통해 그녀를 또보게 되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친구녀석이 한명있었는데 그날이 그친구 생일이였습니다. 초대를 받고 그녀와 친구가 우리가 생활하는 숙소에 오게되었습니다. 그녀는 동생한테 이야기를 들어서 제가 자기에게 맘이 있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제친구와 동생과 그녀와 그녀친구 이렇게 다섯명 간단히 생일 파티를하면서 약간의 술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던중 술안주가 떨어져 안주를 사러가야 되는데 혼자가긴 아쉬워서 그녀에가 같이가자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지요. 왜냐면 그녀는 저에게 전혀 맘이없었기때문에 그런데도 제가 자꾸 같이 가자고 하니 옆에 친구가 그녀에 등을 밀며 혼자가면 심심하니까 그냥 같아 갔다오라고 하여 그녀는 억지로 일어섰지요. 때는 9월달 쌀쌀한 날씨였죠. 그때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때라 그녀를 뒤에 태우고 안주를 사러 출발했죠. 거기가 어디냐면 마산중리 그녀를 뒤에 태우고 저는 곰곰히 생각했지요. 오늘 이여자를 내여자로 만들겠다고 그래서 저는 편의점대신 마산전문대쪽으로 그냥 달렸죠. 그러고 마산전문대 후문에서 다시 오토바이를 돌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속력으로... 마산중리 사시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마산전문대에서 내려오는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급커브가 많거든요.. 그렇게 달리면서 저는 그녀에게 외쳤죠. 오빠랑 사귀자고 그녀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비명소리만 내지르고 대답이없엇죠. 그래서 저는 또 외쳤죠 니가 오빠랑 안사귀면 그냥 이렇게 내달리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그냥 같이 확 죽어버리자고... 비로소 그녀는 무서움에 훌쩍 거리면서 알았으니까 사귈테니까 제발좀 세우라고 저는 날아갈듯 기분이 좋았죠.. 그때가 9월26일 내가 지금도 잊지못하는 날이 된거죠. 그렇게 숙소로 다시 들어가 저는 그냥 기분이 좋아서 혼자서 웃고만 있었죠.. 반면 그녀는 겁에질려 멍한 표정.... 말안해도 아시겠죠..ㅋㅋ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저는 매일 가게 출근하고 일상생활로 돌아왔는데 그녀는 행동에 변함이 없었죠.. 분명 사귀자고 했는데 아무런 행동에 변함이 없는거였죠.. 그래서 저는 또한번 결심했죠.. 확실히 해야겟다고 그래서 저다니는 가게 사장님께 자초지정을 말하고 그녀를 꼭내여자로 만들고 싶다고 가게 며칠 출근안할수도있다고 허락을 받고 난후 그녀의 집으로 향했죠. 그녀는 그때당시 친구와 본집에서 나와 자취를 하고 있었죠. 그녀 집을 가게 동생과 같이 찿아가 무작정 문울 열고 그녀는 절보고 멍함 눈으로 보았죠.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이랑 그녀방에 들어갓죠.. 참 싸가지 없고 무대뽀죠... 그렇게 방에 들어가서 저녁이 될때까지 버텼죠. 그녀에 눈빛 저 미친것들 안가고 뭐하나하는 그런 눈빛.. 저는 아예 그집에서 자고 갈생각이였죠. 그래서 보니까 그추운 겨울날 내가 잘려고 하니 이불이 부족한겁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한테 돈을주며 야! 이불 사와. 동생은 냅다가서 이불을 사왔습니다. 그래서 전 그이불을 덥고 잠이 들었습니다. 담날 저는 동생을 보내고 그렇게 그녀집에서 며칠을 버텼죠.. 그러니까 그녀친구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녀친구가 한날 짐을 싸서 나가버리는겁니다.. 그렇게해서 그녀와 난 단둘이 동거란걸 시작했죠. 그럼에도 그녀는 저를 좋아하는 맘이 별로 없었습니다. 전 그녀가 무척 사랑스럽고 한방에서 자더라도 그녀가 맘을 열기전까지는 그녀 몸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맘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그녀 몸에 손도 대지않고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 제모습에 그녀가 끌렸는지 조금씩 행동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전 그녀없인 못살고 그년 저없이 못살고 그런 사이가 됐습니다. 그렇게 우린 아무것도 없이 동거를 시작했는데 어린 나이에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습니까? 원래 그녀는 평범한 일자리 옷가게나 그런 일을 하는 그녀였는데 어느날 오빠 혼자 고생하면서 돈벌이는거 보기 싫다며 나도 오빠 가게 술집에서 일한번 해본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때 제가 참 어리고 미친생각을 했죠.. 몇번 안된다고 하다가 결국 허락하고 말았죠.. 이일은 아직까지 생각하면 눈물이 날 만큼이나 그녀에게 죄스러운 부분입니다.. 그렇게 그녀가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벌인돈을 우린 그냥 어린 나이에 저축이라는 개념없이 둘이서 막쓰고 다녔죠.. 그땐 둘이 방에서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도 좋았습니다. 여름에 에어콘도 없이 방에 있으면 제가 그녀 몸을 수건으로 닦아서 부채질 해주고 겨울이 되면 항상 꼭안아주고 우린 누구도 부럽지 않은 그런 사랑을 했죠. 그리고 그녀와 난 너무도 행복 했고요.. 그년 저와 항상 외식을 할때면 제입에 먼저 퍼넣어주고 그녀는 항상 밥을 늦게 먹엇습니다. 그녀가 먼저 절먹여주고 배불러서 담배를 필때쯤이면 그녀는 내가 기다린다는 생각에 밥을 허겁지겁 먹었죠. 전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제서야 알앗죠..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임신이라는걸 하게 되었죠. 저희는 어ㅉ해야 할지를 몰라 수술을 하기로 하고 병원을 향했죠. 그녀가 병원 앞에 다가오자 무섭다며 도망을 가는것이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병원을 들어가 수술을 받게되고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수술실에서 나오는 그녀 모습을보며 저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그녀에게 미안하다며 누구한테 한번도 꽃선물을 한전이 없었는데 그녀에게 꽃선물을했습니다. 전 어리다는 핑계로 그녀에게 너무 나쁜짓을 많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내모든걸 다바치며 더잘대해줄꺼라며 맹세했죠.. 그년 저에게 너무나 특별한 여잡니다. 그년 저뿐만아니라 저의 가족들 할머니에게도 너무나 잘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꼭 결혼하라고 전 당연히 그렇게 될줄알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라는 동거 끝에 저는 나라이 부름 영장이 나오게 된것입니다. 그년 가지말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녀에겐 제가 보호자였는데 저도 안갈수만 있다면 가기 싫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입대하는날 제 친동생과 그녀와 같이 의정부 훈련소까지 같이 향했습니다. 가는 동안 그녀는 울지 않을려고 애썼고 나또한 그랬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녀를 등뒤로하고 입대를 하였습니다. 훈련소 생활 아무리 힘들고 고달퍼도 그녀만 생각하면 힘이나고 아무것도 아니였습니다. 4주간에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하는날 가족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전 퇴소식이 끝난 후 가족보단 그녀를 먼저 찿았습니다. 저기 멀리서 아버지.어머니와 같이있는 그녀가 저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엿습니다. 달려가 보고싶었다며 안아주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있는터라 섭섭히 생각할까봐 그러지 못햇습니다. 그년 너무나 아름답고 화사한 웃음으로 날반겨주며 제가 쓰고 잇는 철모를 탁하고 치며 웃어주었습니다. 그년 언제나 이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잠깐의 만남이 끝나고 난 힘찬 발걸음으로 다시 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저한텐 꿈만 같은 시간이였지요. 전 훈련소에 며칠대기하다가 논산에 있는 전경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지요. 거기서도 나름대로 훈련이 시작했지요. 육군 훈련이 아닌 진압 훈련을 받았는데 실전 훈련이라 훈련소에서 받는것과는 차원이 틀린 엄청 힘든 훈련이였는데 그래도 저는 그녀를 생각하면 버틸수있었지요. 아침마다 점호를 취할때 묵념 시간이 오면 전 눈을 지긋히 감고 가족의 건강보단 그녀의 건강과 안부를 위해 기도를 했죠. 그년 저한테 사랑이 뭔 행복이 뭔지를 가르켜준 그런 존재니까요. 전 항상 그녀가 최고였고 먼저였죠. 새벽에 근무 설때면 저기 밖에서 기차달리는 소리만 들어도 그녀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죠.. 너무 보고싶어서... 간절함.애절함이 뭔지 그녀때문에 느꼈고 알게되었죠.자대 배치 받은지 8~90일 되던해 그녀가 친구와 면회를 왔었죠. 전 그전날부터 그녀를 본다는 생각에 잠못이루고 설쳤죠. 면화오는 아침이 밝았을때 전 계속 초조하고 기분이 들떠 있었어요. 그녀가 부대입구에서 택시에서 내리는걸 봤죠. 달려가 미친듯이 안아주고 싶엇지만 제가 신병이라 그러지 못햇어요. 그녀와 그녀친구 면회실에서 마주 앉았죠. 근데 저는 그때 군기가 바짝든터라 그녀에게 애정 표현을 못했으며 그녀또한 오빠 왜그러냐며 물었죠. 맘은 이게 아닌데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싶은데 결국은 그녀친구가 밖에서 망을 봐주겠다며 뽀보 좀하라고 하라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애정 표현을 했지요. 너무나 보고 싶었다고.... 그렇게 짧게 면회 시간을 마치며 그녀가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가지말라고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다는게 너무나 맘이 아팠습니다.. 그녈 보내고 힘든 군생활이 또 시작했습니다. 전 힘든 훈련을 받다가 군대에서만 걸린다는 봉화직염에 왼쪽 무릎에 감염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죠. 이소식을 접한 그녀는 대전까지 저의 병문안을 왔죠. 그녀가 병원 문을 연순간 너무 기뻤습니다. 그녈 또 볼수가 있었으니까요. 전 그녀만 보면 행복합니다. 더 바랄것도 없고요.. 그렇게 그녀는 다시 마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녀가 가고 난자리 너무나 그녀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에 말도 안하고 아픈다리를 이끌고 마산으로 향했습니다.탈영이죠.. 대전에서 마산까지 그때 당시 4시간 정도 걸렸지요.. 마산에서 드디어 그녀를 만났죠. 그년 마산이 아닌 창원으로 이사를 한 상황이였죠. 그녀가 살고 있는 집엘 들어갓는데 그추운 겨울날 보일러 기름도 없이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년 내가 걱정할까봐 힘든 내색안하고 나또한 그걸 알기에 그녀에게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병원으로 복귀하는날 아침 전 주머니에 있는 돈 기억이 확실히는 안나는데 모두 털어서 10만원 돈을 그녀에게 주고 전 복귀했습니다.. 부대에서는 난리가 났죠.. 하지만 다행히 상부에게까지 보고가 안되어서 조용히 넘어갈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실대로 이야길햇죠. 여자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너무 걱정되서 그랬다고 그러니까 부대에서 일주일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고 별다른 징계없이 그냥 넘아갔습니다. 그녈 만나고 와서 내내 맘에 걸렸습니다. 그녀가 걱정되서 그렇게 군생활을 그녀 생각에 버티다 생활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연락이 안되는 것이였습니다.. 전 밥맛도 없고 상병 휴가만 기다렸습니다. 그녈 찿을라고... 휴가 나가는날 전 집이아닌 그녀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녈 찿을수 없었고 그녀 친구를 만나서 물어보았지만 그년 그냥 그녀가 오빠 술 그만 먹게하고 집에 바래다주라는 전달만 하는것이였습니다. 전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는데.. 전 그녈 결국 찿지 못하고 부대로 다시 복귀하였습니다. 그때부터가 저에게는 제일로 힘든 군생활이였지요.. 남들은 상병 달면 다들 군생활 편하다고 하지만 전 그녀 때문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힘든 군생황을 마감하고 제대하는날 저한텐 별의미도 없고 기쁜날도 아니였습니다.. 제대하고 나서 그녈 찿을려고 노력도 많이했고 그녀와 내가 다녔던 추억에 장소에가서 그녈 생각하면서 소리없이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집에서 왜 헤어졌냐고 물어보면 제가 그냥 군생활하기도 힘들고 해서 그냥 내가 헤어지자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저보고 나쁜놈이라고 어디서 그런 착한 여자 만나겠냐며 넌 진짜 나쁜놈이라면서 저한테 뭐라하는겁니다. 전 제가 욕얻어 먹는건 괜찮지만 내가 사랑한 그녀가 우리 가족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욕먹는거 원치않습니다. 전 그렇게 끝까지 물론 어디있는지 모르지만 볼수없지만 그녈 이런식이라도 보호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녈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내머리속엔 온통 그녈 보고싶다는 생각밖에... 전 그렇게 그녈 찿아 다녔지만 그년 너무 꽁꽁 숨어있었습니다. 전 하루라도 그녈 잊어본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저희 집은 부산인데 어떻게 무슨일로 인해서 마산을 가게되면 전항상 그녀와 나의 추억이있는 장소로 가보곤합니다. 친구들은 물어보죠 여기 왜오냐고 그러면 저는 아무말이 없죠 옛날 생각하느라 그녀의 향기가 그녀의 품이 너무 그립고 그녀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남몰래 흘렸는지 모릅니다.. 집에선 가끔씩 그녀 하고 다시 만나보라고 할때마다 그게 10년이 지나도 집에서 그런말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또한번 가슴이 찢어지죠. 남의 속도 모르고.. 그렇게 그녀를 못본지 10년이 흘러 제가 싸이라는걸 알게되어 그녀를 찿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찿앗을까 그녈 찿았습니다. 저는 순간 숨이 멎는줄 알았습니다. 드디어 사진으로 그녀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년 여전히 이뻤고 아름다웠습니다. 누가 뭐래도 제눈에는 말입니다.. 사진을 본 후 방명록에 조심스레 글을 남겨 놓았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습니다. 얼마나 찿았던 저의 첫사랑인데.. 얼마만에 본 나의 그년데... 며칠 후 드디어 답장이 온것입니다. 전화 번호와 같이... 전 이게 꿈인가 생신가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죠.. 수화기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틀림없었습니다. 그녀 목소리 지연아 오빠야 오빠 큰소리로 외치고 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녀에게는 다른 남자가 잇었습니다. 저도 그때 다른 여자가 잇었구요 물론 그여자 땜에 싸이라는걸 알게 되었구요.. 하지만 전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다 그녀 때문에 내가 사랑한 여자는 단 한사람이였으나까요.. 그리고 사랑이라는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그러는 말이 아니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저한텐 어렵지 않게 사랑한다고 내가 말을할수있는 사람은 그녀뿐이거든요... 나의 첫사랑..
그렇게 그녀와 톻화를 하면서 어느날 그녀가 우는거예요.. 자기가 그땐 너무 어렸다면서 그러면서 저한테 미안하다고 저는 그랬죠 그런말 하지마라. 그냥 이렇게 널 찿고 니목소리 들을수 있는것만으로도 니한테 고맙고 기쁘다고... 항상 통화하면서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그렇게 몇번의 통화를하고 저는 직장일때문에 중국으로 파견을 오게 됐죠. 여기 와서 족슴 생활하면서 그녀가 남자 친구와 헤어진걸 알게됐죠. 저역시 이곳 중국 오고나서 비슷한 시점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구요. 이것도 하느님의 장난일까요..
그래서 저는 이곳 중국에서 그녀와 통화하면서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죠. 저한테 연락을 안한 이유가 항상 같이 있을때 저한테 의지하고 따랐는데 제가 없으니까 그리움이 원망으로 바뀐거죠. 그녀는 다르게 이야기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이드네요.. 제가 없는 동안 그녀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어요. 그녀에게 들었죠.. 너무 맘이 아팠고 제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내가 사랑하는 여잘 지키지 못해서... 그렇게 중국에서 그녀와의 통화 횟수가 많아지면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였죠. 그래서 우리는 설날 제가 한국가면 만나기로 약속했죠. 놀러도 다니고 같이 시장도 보고. 생각만해도 즐거운일을 우린 만나서 하기로 했죠.. 그날이 오기만을 매일 기다리고 아참 그녀가 담배피는거 안좋다며 끊으라고 해서 16년을 피오오던 담배도 지금은 안피고 그녀가 담배안핀다니까 금연에 도움이 되는 약을 사서 중국까지 버내줬어요.. 첨에는 그녀가 저한테 팬티와 양말 그리고 화장품.그녀가 지니고 다니던 만원권 지폐 이렇게 보내 줬는데 전 냄새만 맡았죠. 그녀의 향기를 느껴볼려고 너무나 믿기지 않고 현실이 아닌거 같았습니다. 그녀 손으로 직접 싼 소포를 받앗다는게... 설날 아침 그녀를 본다는 생각에 가벼운 맘으로 비행기에 올랐죠.물론 머리엔 온통 가족이 아닌 그녀 볼 생각으로 가득했죠.. 한국 집에 도착해서 명절을 보내고 그녀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 향했죠. 오피스텔 앞에서 전 그녀에게 전화를 했죠. 그녀한테 말도 않고 온거죠. 그녀는 전화를 안받았어요. 그래서 그길로 한국 회사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저녁시점 다시 전화를 하니까 그녀가 아픈듯한 목소리로 오빠 내가 오는 좀 아파서 전화오는지 몰랐다며 어디냐고 물어보길래 오피스텔 갔다가 연락이 안되서 회사로 왔다고 솔직히 이야기 했더니 오늘 어디서 자냐고 물어보는거예요. 전 회사 근처 여관에서 잘려고 했거든요 그렇게 이야기 했더니 왜 거기서 자냐며 오피스텔로 들어가라고 비밀번호가 내생일이니까 들어가서 자라고 그년 몸이 안좋아서 본집에 있는데 부모님이 걱정되서 아픈데 집에서 자고 가라며 못나가게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녀가 오빠 내가 내일 꼭 무슨수를써서라도 오피스텔갈꺼니까 들어가서 자라는것이였습니다. 알았다며 전 오피스텔로 달렸죠. 회사에서 거리가 약1시간30분 .... 그녀의 집 문앞에서 비밀번호를 눌리고 11년만에 그녀의 소지품 그녀의 향기를 맡는순간 나도 모르게 방안에서 무릎꿇고 울었죠. 그녀는 몰라요 제가 집에서 운지는...
그렇게 샤워를하고 그녀가 잠이들었을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았죠. 밤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낼이면 그녀를 본다는 생각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날이 밝았죠. 오후쯤 누가 문을따고 들어오는 것이였습니다. 전 침대에 누워있다가 일어나야될지 말아야될지 망설였습니다. 그녀가 들어오는데 말입니다. 전일어나서 보았습니다. 분명 그녀였습니다. 내가 사랑했고 그렇게 애타게 찿았던 그녀가 분명히 맞습니다. 전 심장이 두근거렸죠.. 그녀가 절보더니 씩~ 웃으면서 저한테 달려와 안기였습니다. 11년만에 다시 품어보는 그녀의 품이였습니다. 볼에 뽀뽀도 해주었습니다. 전 그녀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전 11년 사이 많이 변해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변한게 없었습니다. 전 그녈 품에 안고 놓기 싫었습니다. 내가 간절히 원했고 이제는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년 자기 아픈몸도 잊은채 배고프냐며 밥먹자고 먼저 챙겨주었습니다. 전 그렇게 그녀와 10흘 가까이 있으면서 최대한 잘할려고 노력했고 놀러도 갈려고 했지만 그녀의 몸이 많이 약해져 잇었습니다. 그년 저때문에 낙태 수술을받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몸이 많이 약해져있었습니다. 그녀에게 그말을 듣고 너무 그녀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녀와 같이 저희 집에가서 인사도 드리고 저보다 우리 가족 전부 그녈 더챙기고 좋아하더라구요.. 전 그녀와 있으면서 없던 식욕도 생기고 11년전이후로 최고 행복한 날을 보냈습니다. 그년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년 11년전과 똑같이 절 먼저 챙겨주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하는 생각도 했구요.. 행복도 잠시 시간이 흘러 다시 중국으로 복귀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마지막날 그녀 모습이 너무나 걱정이 됩니다. 마지막날 몸이 많이 아팠거든요.. 아픈 그녀를 뒤로한채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실으며 결심했죠 경제적으로 행복하게는 못해주나 심적으로는 그녈 행복하게 해주겠다고요... 그렇게 전다시 중국 회사에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되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너무 보고싶어요.. 그녀가 중국에 놀러한번 온다고 약속을 받았지만 너무 보고싶어요.. 그리고 이상하게 한국 갔다와서 그녀의 행동이 좀변한거 같아요.. 혼자만에 생각일수도 있지만... 그녀를 만나기전에는 길게는 4시간 짧게는 1시간씩 통화하고 잠들곤했는데 지금은 그녀가 내가 묻는말에만 대답하고.... 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몸이 많이 약하니까 피곤해서 그럴꺼라고 전 그녈 위해서면 뭐든지 다할수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할수 없는 그어떤것도.. 그녀가 저한테 마지막 여자이기를 전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달말이나 다음달 초쯤에 그녀가 온답니다. 벌써 기다려지고 보고싶습니다..
톡톡 즐겨보시는분들 제사랑 지킬수 있게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이런 장문 첨이기 때문에 오타도 많을겁니다. 이해해주세요..
이런 장문을 읽으실분이 얼마나 될런지....
그녀에게 한마디만하고 이만 글을 줄일께요...
지연아 내가 다시 태어나도 너 찿아다닐꺼다. 아직 널보면 심장이 두근거려...
지연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