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쓴이의 작은 딸 입니다.
결혼은 보통 여자들 보다는 좀 일찍 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톡을 보는데 내용이 저희집내용이더라구요..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직접 썼다는군요.
참 대단하지요.. 이 연세에....
리플을 하나씩 읽어 보니, 따님, 아드님하는 호칭에 대한 의아함이
있으신것 같으신데.. 사실 저희 어머니께서 집에서도 절 부르실때
"울 작은따님~" 이라고 부르실때가 많으십니다.
우리 엄마지만 참 다정하신분입니다..
이제 갓 인터넷에 갓 입문하신 엄마가, 악플에 상처 받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고 선도해 오시면서 사신분이라
아무래도 어린애들의 성매매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시나 봅니다.
물론 저도 성매매에는 절대적 반대지만..
그리고.. 캄보디아.. 생각보다 못사는 나라만은 아닙니다.
쉽게 번돈이 쉽게 나간다고.. 그렇게 쉽게 번돈은 주로 유흥비, 마약구매,
장신구류, 옷가지 구입에 주로 쓰입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더라구요. (여긴 마약을 하더라도 경찰에게 돈만 어느정도 주면
모두 눈을 감아 줍니다. 공권부폐가 심각한 수준이지요)
어쨌든간에 전 이렇게 용기있게 글 쓰신 엄마를 응원하고 싶구요
마지막으로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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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선 전 따님 둘 시집 보내고 아드님 장가보내려고 고심하는
평범한 주부 입니다.
지금은 작은 딸이 내외가 선교 활동 차 함께 캄보디아 시엠립이는 곳으로 오게 되어서
여기서 잡일을 돕고 있습니다.
3년 전 2005년 6월에 신랑과는 사별하고, 지금은 큰애 손주 보는 재미와 (지금은 전화상으로만…)
작은애 일 돕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원래는 중학교 영어선생님으로 있다가, 부군과의 사별과 함께 퇴직하고
젊었을 때 못해본 여행을 다니다, (역시 남편이 없으니까 모든 것이 쓸쓸하더군요)
작은애 서방이 캄보디아 시엠립에 선교활동을 가게 되어, 그래도 선생 노릇 하며 배운 영어가
아쉽고, 마땅히 할 일도 없었기에, 2년전 작은애 내외를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막내 아드님은 직장이 있어서 올 수 없었고. 어릴 때부터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잘 해온 터라 별 걱정 하지 않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는 있지만 학교에서 수업 자료 준비하며 갈고 닦은 타자 실력을 뽐내며
이 글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사실 분당 200타도 겨우 넘깁니다만… )
사실 네이트 톡톡 이라는 것은 캄보디아에 와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료 교사님들과 네이트온 으로 담소를 나누다 보니
네이트온 프로그램아래 톡 이라는 제목이 수시로 갱신 더라구요
그래서 특별히 할 일이 없어 하나씩 읽다 보니
늦은 나이에 재미가 붙어버렸네요
일단 여기까지가 제 소개 였습니다..
제목에 좀 파격적이라고 생각 될 지도 모르겠지만,
꼭 언급을 하고 싶어서 느린 타자실력으로 한자씩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약 2년전, 2006년 5월에 캄보디아 시엠립 공항에 내렸을 때, 그 형용하기 힘든
꿉꿉한 냄새와 밤 중임 에도 불구 하고 턱 막힐 듯 한 뜨거운 공기가
캄보디아 입국을 맞이 하였었습니다.
정말 처음에는 여기서 어떻게 살지 하고 고민 또 고민하고, 그냥 비행기에서
내리지 말고 다시 타고 돌아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적응되어 버틸 만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막막 했었습니다.
그렇게 시엠립 공항에 도착하여, 먼저 오신분 들의 관심 어린 보살핌으로
현지 사정을 배우고 적응해 나갔습니다.
사실 제가 적응했다기보다 적응력 좋은 작은 딸애의 사랑 어린(!) 잔소리에
많은 지도를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시엠립에 도착한지 3개월 정도는 건물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워낙 킬링필드 사건이 머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터라 바깥은 정말 무법천지
인줄만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흰머리가 늘어갈수록 겁이 늘어, 외출이 더더욱 힘들어
지더군요
지금이야 집에서 허드렛일 도와 주는 현지인 아가씨들과 기사님들 덕분에
혼자 나가도 할 일은 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해 졌습니다.
그 찬란한 크메르 문명의 유적 앙코르와트 유적군도 처음에는 참
멋있다라고 느꼈지만, 계속 보니 역시나 저도 사람인지라 사실 질려 버렸습니다.
요즘은 야간 시간대에 조명을 켜고, 손님입장을 시킨다고 하니 꼭 가보고 싶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침침해진 시력과 아픈 무릎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더랍니다.
역시나 지금은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루하지만 가장 편한 듯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즐겨 사용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인터넷 만으로는 너무 무료하여, 교사생활을 할 때 동료 선생님들과 즐겨가던
노래방이 생각이 났습니다. 주위에 물어보니 한국 노래방이 있다고 그럽디다
그래서 올커니 하고 딸애 내외에 졸라서 노래방에 가게 되었습니다.
설래는 마음으로 1년 반만에 찾아간 노래방에서 너무나도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어
이렇게 용기내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그 장면 즉슨 노래방이라고 간판이 붙은 곳에 들어 같건만
정말 보기 민망할 정도의 노출된 의상을 입은 아가씨 한 무리가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딸애만 2명을 시집 보낸 아줌마인데 딱 보면 아가씨들 나이가 짐작이 가지요
거기다 학생들과 마주하며 30년 가까이를 보냈는 걸요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18세 미만으로 보이는 골격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베트남 아가씨라고 합니다. 대부분 밀입국자라 국적이 없지요
손님을 접대하고 단돈 30$에 2차를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관리하는 사람이
가지게 되고..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동남아 매춘관광인가하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애써 못본 척 하고 방에 들어가서는 애써 모른척하며 노래를 불렀지만
너무 충격에 휩싸여, 노래가 나오지 않아, 작은 서방에게 말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나오는 중에 어디서 관광버스가 한대가 와서 약 20분정도의
남성분이 내리더군요.. 그리고 뒷일은 상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방에 누워 한참을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문득 모든 이런 노래방이 얼마나 있나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을 보기 위해 작은 딸애와 여러 번 갔었습니다.
시엠립에는 제가 확인 한 곳만 4군대가 있더군요.
한번은 딸애, 손주 뻘 되는 아가씨들을 옆에 대리고 관광버스에 타더니
홀연히 사라 지더군요. 순간 얼굴이 화끈해지고,
차마 성인으로써 보기도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여행사는 여행사 이름이 붙어 있는 관광버스로 아주 당당히 들어 오더군요
(차마 공개하기는 힘들군요)
그리고 문제점은 이런 곳들이 현지 정보지에 버젓히 그리고 당당히 기제되어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정말 울컥 해져 늙은 노기가 발동하더군요
정보지에 따르면 프놈펜에는 훨씬 많은 업소가 있는 것 같고, 사정도 여기와
별반 다르지 안다고 생각됩니다.
세계 문화유적 앙코르와트에서 이런 한국인의 추태가,
한국인인 저로서는 차마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엠립에 pub street라는 외국인 거리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캄보디아 운송수단 중
오토바이 뒤에 수래와 같은 것을 연결하여 움직이는 ‘툭툭’이라는 것이 많이 대기 해
있는데 한국남자만 보면 어설픈 영어로 “쏙산”이라는 좋은 곳에 가겠느냐고 호객을 하는
장면을 심심히 않게 봅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청소하는 아가씨에게 물어봤더니,
시엠립에서 가장 유명한 홍등가라고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지배인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
이었습니다. 역시 또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동남아 매춘 관광인가 하고 한번도 되세 기게 되었습니다.
앙코르와트 여행을 준비하시는 여러분, 앙코르와트에서 사업을 하시는 여러분들..
부디 당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세계인이 모이는 유명관광 명소는 모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 되는 곳입니다. 제발 똑바른 모습의 한국을 보여 줍시다.
지금까지 두서 없는 인터넷 늦깎이의 허술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작은 딸애에게 디지털 카메라 사용법을 배워서 사진을 동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