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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종업원을 사랑하는 남자의 10개월-2

우울증에 ... |2003.09.16 14:05
조회 2,017 |추천 0

글을 남겨주신분들 모두들 감사드립니다. 그냥 몇가지 오해를 약간은 풀고싶다는 생각에 몇가지 말을 할까합니다.

 

그녀의 외모를 운운한것은 물론 외모를 좋아한것도 사실이지마 내가 그녀는 좋아한 이유는 노래를 잘해서 좋아하기 시작했다.(가령 내가 그녀는 마음씨가 비단결같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했다면 상대방을 유추해내기 쉽지 않기에 방송에서 비추어지는 인물을 말했을뿐이다.)

 

한가지더 그녀는 고아지만 양부모님밑에서 자랐다. 지금도 따라 나와서 살고있을뿐이다.

마지막으로 난 군대에 다녀왔다.

나를 비롯한 유흥업소종사자들을 않좋게 보시는 분들은 그 분들 생각이기에 내가 뭐라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제 글을 그냥 이런사람도 있구나 하시면서 읽어주셨으면 한다..

 

그렇게 일주일정도 지났을까. 그녀는 다시 친구의 그녀와 술을 사들고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일주일 동안 난 사는게 사는게 아니였구 가슴이 표현할수없을정도 아팠지만 그녀는 아니였던거 같다.

 

그래서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녀는 앉으며 말을 꺼낸다.

 

"저봐라.저봐라. 저 사람은 저레 바보처럼 또 웃는다니까."

 

맞다. 난 바보다. 그녀에게만은

 

날 아는 사람들은 내가 이러는지 모른다. 같이 살고 있는 친구빼고는

 

난 서울에 오면 우리 친구들 두목이다. 어렸을적 골목대장이었고 학교다닐때는 그리 큰 문제를 일으키지않았지만 그래도 누구에게 맞고 다니지않는 약간은 강한아이였다.

 

그런 내가 그녀에게만은 돌쇠로 변한다.

 

그녀말이 기차바퀴가 세모라면 세모로 믿고 해달라는건 무엇이든 해준다.


후리지아라는 꽃은 원래 2월 아님 3월에 피는 꽃이라 12월에 그 꽃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번은 후리지아라는 꽃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사러갔지만 그녀는 그 꽃이 시들
어 말라비틀어질때까지 만나주지 않은적도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도 좋아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만남은 다시금 이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조금씩이지만 그녀도 나를 조금씩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게 한통의 전화도 하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하면 너무나 방갑에 받으면서도 그녀가 먼저 전화를 하지는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난 울리지도 않는 전화기를 자주 열어보곤 한다.

 

혹시 전화가 오진 않았나. 수신이탈지역이 아닌지 안테나의 갯수를 확인하기도 하고.

 

생활의 패턴이 무너졌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새벽에 일어나 술을 먹고 출근하니 업무가 제대로 될리 만무하고 본사에서의 업무질타는 모두 감수

했다.. 그때부터 그녀들이 출근하고 친구와 난 다시 회사에 나와서 야근을 했다. 이게 아니라는건 친구
도 나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만남을 약간은 자제했다. 되돌아올 파장이 걱정되기도 했기에 아직은 출장기간이 남아있기에.

야근을 하면 출장이 끝나기전까지는 업무를 되돌릴수있다는 판단에.

 

주말에만 만나면서 행복이 다시 찾아오는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거같다.

 

두번째 혼란스러움을 겪은건 친구의 그녀 나와는 친구


친구가 나보고 그녀를 좋아하지 말라는 말을한다. 친구니까 이런말 해준다고....


그녀는 날 남자로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힘들지만 그러는것이 좋을거 같다고 말한다.

 

그녀와 같이 살고있고 의자메를 맺은 사람의 말. 난 절대적으로 신뢰할수밖에 없는 청천벽력같은 말.

그날은 소리내어 친구의 어깨를 빌려 원없이 울었다.


그래. 여기까지이구나. 그렇게 생각할려고 했지만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상한건 그때부터 그녀가 가끔 전화해서 안부를 묻곤했다.

 

금새 끊어질거같은 인연은 중환자실에서 10년을 사는 환자처럼 그렇게 이어졌다.

 

원래 그날은 서울에 갈려고 마음을 먹고있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많이 상할거 같애서 서울행기차를 예약해놓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이 주말인지라 친구들도 만나러.


올해 2월 14일 발렌타인 그녀는 그녀가 손수만들었다고 하며 초코렛을 주었다.


난 그 초코렛을 먹을수가 없었다.

 

체질적으로 단음식을 먹지않지만 이게 어찌 그러한 논리이겠는가.

 

방에 있는 초코렛을 보면 난 세상을 다가진듯 행복했다.

 

출장기간동안 난 밥을 거의 안 먹은적도 있었다.주변사람들 말을 다시 인용하면 내가 숱가락으로 밥 먹
는걸 거의 못봤다고 말을한다. 지금도 밥을 먹을때면 많이 혼난다. 남자가 밥을 그렇게 먹는다고.

 

아마도 정말 2주동안 밥을 5번정도 먹었던적이 있었다.

 

특별히 어디 아퍼서 그런것도 아니였고 집안의 우환도 없었지만 난 밥을 안 먹었다.

 

밥안먹어도 배불렀다.

 

그런 나를 보면 그녀는 달래도 보고 빨리 밥 먹으라고 화도내지만 난 이상하리만치 밥을 안 먹었다.

 

어느덧 서울로 돌아가야 할때가 다가온다.

 

미칠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심정을 알았는지 그녀와 연락이 않된다. 핸드폰에서 매일 같은여자가 대신 말을 한다.


이용이 정지되었다고.

 

어느새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친구와 난 몇번 않좋은 생각을 했다.

 

우리도 그냥 평범한 여자  만났어도 지금우리가 이랬을까.

 

인생 뭐 있냐..원래 인생이 다 그래. 

 

나도 동감하고 싶었고 나도 동감했다.

 

그래야 서울로 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질거 같았다.

 

부산에서 꽉채운 8개월간의 출장을 마무리하기 이틀전

 

이렇게 서울에 가면 추억조차도 없어질거 같았기에 한번만이라도 만나기위해 그녀의 집앞에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은날.

 

부산과 대구의 지사장님을 비롯해 회사직원들이 그래도 고생했다고 놀러가잖다.

 

어찌하오리까. 죄송하지만 거짓말을 했다. 부산에 사는 다른친구가 죽었다고

 

그래서 죽지않은 친구를 팔아가며 검은색양복에 얼굴은 최대한 핼쓱해보이면서 그자리에 나가서 얼굴만을 보이고서 다시 그녀의 집앞에서 동이 틀무렵까지  기다렸지만 만날수없었다.

 

그렇게 끝났다. 부산에서의 추억은


이제 제자리로 돌아온것인가. 그렇다면 남은것는 무엇이고 잃은것은 무엇인가.

 

위에서도 말하지 않았나. 우리의 인연은 질기다고.

 

본사로 출근한지 일주일이 지나지않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받은 전화.

 

내 귀를 통해 들려오는목소리는 조금전까지 신나게 놀다가 헤어진사람처럼 너무나 밝은 목소리.

 

그녀 핸드폰을 샀다고하며 앞으로 자주 전화할게라는 말을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친구에게 너도 전화왔었어 했더니 친구도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고 있었다.

 

그시점 친구와 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중간에 업무를 소흘히 한것도 있지만 마무리는 좋게 하자며 친구와 난 열심히 일했다.

 

때문에 본사에 복귀했을때는 꾸중보다는 수고했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하지만 경기침체는 우리회사를 빗겨가질않았고 같은시기에 간부급인사의 구속도 이어졌다.


여기서 회사애기를 잠시 할까한다.


그때 회사의 특징은 대부분 부서는 사업부의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부서안에 몇개의 팀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내가 팀장이 빨리 된것이 회사안에서도 약간의 파장을 일으킨것도 사실이다.


한때 컴퓨터공학도였지만  현재는 휴학상태로 회사에 다니고있는 신분이다.

 

직원들은 두갈레로 나누어졌다. 그냥 멋있게 사표를 내고 나가는 사람. 아님 끝까지 버티겠다고 하는 사람.


그때 마침 대구와 부산의 직원들이 대구에 회사를 차린다며 친구와 나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했다.


몇일을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하고 고민끝에 결정했다.


본사에 복귀한지 한달만에 대구로 다시 떠났다.

 

그때가 올해 5월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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