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돌아온 스파키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얼마전부터 피곤도 거의 느끼지 않았고 자꾸만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는 자신을 느끼기 때문이다.
총알에 심장을 관통당하고도 살아난 자신과 자꾸만 강해져가는 자신의 힘이 이제 조금 있으면 자신의 의지마저 빼앗아 갈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창으로 비치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자신의 지나온 일들을 떠올리며 조금이라도 잠이 오기를 기대하는 동안 호파스와 노엘박사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구~ 이런 변변치 못한 놈 같으니라구...... 뭘 그리 낑낑대~"
"죄, 죄송합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쩔쩔매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곧 호파스가 문을 열며 무어라 했지만 스파키는 눈을 감고 무시했다.
"에잉~ 버르장머리 없는 놈....... 자, 이거나 마셔라."
호파스가 문을 닫은 후 보니 문 앞에 검은 색 병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꼬냑이었다.
그리 고급술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맛을 보던 독한 술이다.
스파키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술명 바로 앞에 털썩 주저앉아 술병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진한 알콜 내음과 특유의 향이 그의 마음을 조금은 즐겁게 해주었다.
이제 그의 머리속에선 오래전 떠나보낸 부하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날이 밝을때까지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다음날, 호파스가 노크도 없이 여자들이 있는 방문을 여는 바람에 여자들이 지르는 소리에 캔이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꺄아~"
"어이쿠~ 소리는 왜 질러! 아버지 같은 사람한테~"
"나가요!"
캔이 바람같이 뛰어가서 보니 아리아는 침대 위에서 이불을 두른채 멍 하니 있어고 쟌느는 옷을 입다 말고 가슴을 가린채 웅크리고 있었다.
캔이 뒤에 서서 노려보는 것을 느꼈는지 호파스가 뒤통수를 긁으며 머쩍게 손에 든 것을 놓으며 비실 웃었다.
"헤헤..... 먼 길을 가야 하니까..... 옷을 주려고 말야......끼욧!"
스파키가 어느새 다가와 호파스의 엉덩이에 손가락을 대고 있었다.
"히익!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호파스의 거대한 비행선에 올라탔다.
스파키 일행이 준비를 하고 호텔의 옥상에 도착했을 때, 리코와 그의 부하들 몇 명이 호파스의 비행선을 미리 대기시키고 있었다.
아리아와 쟌느와 캔은 호파스가 새로 준비 해 준 옷을 입고 허리와 어깨에 부착된 작은 장치를 만지작 거렸다.
무슨 작동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호파스는 절대 그걸 떼어서는 안된다고만 할 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군대를 데려간다는 말은 없었잖습니까?"
스파키의 물음에 호파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말야. 그리고, 이거."
"뭡니까?"
호파스는 스파키에게 손바닥만한 크기의 네모난 것을 건넸다.
"그건 컴퓨터야. 자네도 작전에 그런거 많이 써봤을 테니까 잘 알테지?"
"지금 이런게 필요합니까?"
"거기엔 지구상에 남은 23개의 핵무기의 위치가 입력되어 있지. 그리고 비행선의 컴퓨터에 접속하면 자동으로 가까운 것부터 찾아가도록 되어 있으니까 그리 알어."
"..........."
스파키는 이걸 왜 자신에게 주는지 묻고 싶었지만 호파스의 표정에서 이상한 예감을 느끼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파스는 티는 내지 않고 있지만 초조해 하고 있다는 것이 역력했다.
"뭐라고?"
미노리카는 리코가 출발했다는 보고를 받은 후 자신의 집무실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밤이 될때까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달려온 부관의 보고를 받고는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카스부관. 다시 말해보시오."
"예...... 미코대령만 돌아왔습니다. 나머지는 전멸입니다."
"그는 지금 어디있나?"
"병원에 있습니다. 하지만....."
"앞장서라."
미노리카는 소형 비행선에서 내리자마자 병원 입구로 서둘러서 뛰어갔다.
미코프스키.....
오래전 그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아무도 몰래 아메리카시티로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오겠다는 마지막 연락을 받았는데 돌아온 소식은 그렇지 못했다.
입구에 선 경비병이 경례를 했지만 그녀는 무시한체 서둘러서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카스부관은 그녀를 앞질러 미코대령이 있는 병실을 안내했다.
병실 안으로 들어선 미노리카는 입을 따악 벌리고 말았다.
실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미코대령은 산소호흡기를 입에 댄 채 한 쪽 팔과 한 쪽 다리를 잃은 모습으로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강한 정신력으로 의식을 잃지 않으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손을 들어 말리며 다가갔다.
"그대로 있어요. 대령."
"크........ 큭윽......"
"상황보고는 나중에 들어도 되니까........"
그녀는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몸을 돌려 병원을 나오며 부관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건가?"
"그만 겨우 돌아왔습니다. 비행선의 자동항법에 의해 겨우......"
"나머지는?"
"비행선까지는 무사히 복귀한 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부관의 말에 미노리카가 우뚝 서며 묻자 부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행선 안에 부대원의 시체들이 전부 있었습니다. 비행선 안으로 전투용 크리쳐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멀쩡한 시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미코대령이 겨우 그걸 처리했지만....."
"이런 일이......"
"그보다. 각하."
"뭔가?"
"곧 놈들이 보복을 해올지 모릅니다. 준비를...."
"당한건 우리들인데 무슨!"
이렇게 말은 했지만 미노리카는 불안했다.
이번 작전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이다.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조사를 하고 확증을 잡은 후에 1년 전부터 미리 침투시켜 놓은 특공대가 작전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전멸해 버린 것이다.
피해도 피해지만 아메리카시티에서 가만히 있을리 없다는 부관의 말에 그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집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군 수뇌부들을 불렀다.
그녀의 거처가 있는 건물의 지하 30미터 지점에 7명으로 구성된 군부회의가 열렸다.
러시아시티는 6개의 거대한 군대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고 그 6개의 부대를 리코사령관이 통솔하고 있었다.
그 부대들의 대장들도 핵전쟁 당시 미노리카와 함께 지하기지에 숨었던 오래된 자들이었다.
미노리카가 침울한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우리가 오랫동안 진행해 왔던 일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녀의 말에 전부 술렁거렸지만 군대장 한명이 입을 열자 다시 조용해졌다.
"곧 보복이 있을겁니다."
"네. 그럴겁니다. 그자의 성격상......"
"실패했을때의 대비책은 없습니까?"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미노리카는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실패했을 때는 그들 전원이 자살하거나 우리쪽 사람이 아닌 것으로 위장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문제는 없군요."
다른 군대장의 말에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부대원들이 비행선에 무사히 복귀한 상태에서 당했습니다."
"그럼......"
다시 모두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워지며 각자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생존자는 미코대령 한 사람 뿐입니다. 그가 깨어나면 상황을 알 수 있겠지만 비행선 안에 부대원들의 시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를 무사히 빼돌리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군요."
"확실합니까?"
"현재까지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요."
"그럼 보복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그사람을 우리가 데려갔다고 확신할지도 모릅니다. 만들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다시 데려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그때 유일한 여자 군대장이 조용히 손을 들더니 모두 주목하자 조용히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생존자가 있다고 하셨지요.... 그를 배신자로 만들면 됩니다."
다른 군대장들이 전부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가장 놀라는 것은 미노리카였다.
"5군단 대장. 그게 무슨 말인가요?"
"유일한 생존자를 배신자로 만들면 문제는 간단해 집니다. 그가 자신의 소대원을 이끌고 오래전 저희 측을 벗어나 사라진 것으로 꾸미고 그런 상태로 돌아온 것에 대해 조사중인 것으로 발표를 하면 일단 저쪽에서도 섣불리 보복을 위한 행동은 하지 않을겁니다. 그런 다음 우리쪽에서 먼저 아메리카시티로 사람을 보내 그쪽의 제의를 받고 우릴 배신한 것은 아닌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물어보는 거죠."
그녀의 말에 다른 군단장들은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미노리카에게는 전혀 반가운 대안이 아니었다.
미코대령은 리코사령관의 친동생이며 이 도시를 일군 오랜 동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최선일까요? 더군다나 그는 사령관의......"
"놈들이 보복을 한다면 도시 외곽의 농장 몇 개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겁니다. 우선 적은 희생으로 큰 문제발생을 막고 차후에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나도 찬성이오."
"그 방법이 좋겠습니다."
다른 군대장들도 전부 그녀의 말에 동조하는 눈치였고 미노리카 자신도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오랜세월 함께 한 동료를 그런식으로 희생시킨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도자다.
"좋습니다. 리코사령관에겐 제가 알아서 말하도록 하죠. 그럼 우선 군 전체에 그렇게 발표를 하도록 하고 저쪽에서 무슨 반응이 오면 5군단 단장인 레니아 당신이 직접 외교관으로서 수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로 합시다."
군대장들이 전부 돌아간 후에도 그녀는 한참을 자리에 앉아 일어서지 않았다.
그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문명이 퇴보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까지 이런 치사한 정치수단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자신은 이 힘들게 이룩한 작은 국가의 지도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속까지 세기는 중이었다.
그 시간.
아메리카시티의 외곽에서는 도시의 지도자가 직접 이끄는 대부대가 어두운 숲속을 대낮같이 밝히며 대대적이 수색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멍청한 자식들! 오늘 그를 찾지 못하면 전부 후계자를 지목해야 할꺼다."
"곧 찾을겁니다."
"그 말을 믿겠다."
헤밍스는 자신의 전용 비행선에서 장교들을 세워놓고 불안과 초조함으로 얼룩진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조급함을 실었다.
"겨우 크리쳐 한마리만 놈들을 발견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 놈들이 그를 빼돌리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보나?"
"면목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찾아야 한다. 만일 그를 찾지 못한다면 너희들 뿐만 아니라 나조차 무사하지 못한다. 이 도시도 끝이다. 알았나?"
"네!"
헤밍스는 자신의 호위부대까지 수색작업에 투입시키고는 작은 비행선을 이용해 아메리카시티로 돌아갔다.
버닝타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레이져 방어막을 발생시키는 거대한 기둥이 곳곳에 세워진 아메리카시티는 러시아시티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그 중앙으로 날아간 작은 비행선은 곧 높은 빌딩 위에 내려섰고 부관을 밀치며 신경질적으로 승강기에 들어간 그는 부관이 타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리고는 지하로 내려갔다.
걸음을 서둘러 좁은 복도를 지난 그는 곧 작은 문 앞에서 문 손잡이에 달린 지문 인식기를 통과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누군가가 그를 기다렸다는 듯 쇼파에서 벌떡 일어서며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나요?"
조금 이상한 발음과 억양을 내뱉는 그녀의 심정이 편치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헤밍스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곧 돌아올거요."
그때 저쪽에서 문을 열며 그녀를 닮은 작은 꼬마가 눈을 비비며 나오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자 그녀가 얼른 다가가 안으며 헤밍스를 향해 전체가 검은 빛을 띤 눈을 가늘게 뜨며 으르릉거리듯 내뱉었다.
"우리 아이가 내일 잠에서 깼을 때, 아빠가 없다면 당신의 계획은 전부 사라질 겁니다. 명심하세요."
"아, 알겠소."
여자가 아이를 안고 아이의 방으로 들어간 후, 헤밍스는 그곳을 나오며 다시 빠른 걸음으로 승강기에 오르며 벽을 세게 쳤다.
"미노리카! 후회하게 해주겠다."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책상 위의 붉은 단추를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에 어딘가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하십시오."
"이대론 가만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보복이다. 우선은 간단하게."
"그놈들을 데려가겠습니다."
"좋다. 가라."
목소리의 주인공이 사라지자 옆의 문이 열리며 은발의 아름다운 여인이 속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은 채 조용히 다가와 헤밍스의 어깨 위에 부드럽게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번 일은 달라."
"제가 잠시 잊게 해드릴께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조용히 그의 앞으로 가더니 무릎을 꿇고는 그의 허리띠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헤밍스는 그런 쾌락조차 귀찮을만큼 사태의 심각함에 심장을 태우고 있었다.
"저리가!"
그의 억센 손에 밀쳐진 그녀는 다시 조용히 일어서더니 들어온 문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전부 필요없는 인물들 뿐이군. 휴~"
다음날 러시아시티의 모든 군대엔 오래전 탈영한 배신자가 비행선의 컴퓨터 오동작으로 인해 돌아왔는데 전부 죽은 상태로 왔으며 탈영자들의 주도자만 겨우 생존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그 생존자를 상대로 아메리카시티와 무슨 관계가 있었는지 조사중이라는 얘기도 금방 퍼져나갔다.
파스대위는 2군단에 소속된 외곽 수비부대의 소대장이었다.
외곽을 수비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가끔 농장 근처에 나타나는 돌연변이 괴물을 처리하는 것이 고작이고 어쩌다가 도시 안으로 들어오려는 무역상들을 검문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오늘도 그는 부하가 챙겨오는 아침을 먹고 합성된 것이지만 진한 향의 커피를 느긋하게 즐기며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의 부대원들이 거의 전멸에 가까운 날벼락을 맞게 되리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어젯밤 시내에서 대장을 따라 들어갔던 창녀굴에서 본 금발의 풍만한 몸매를 눈 앞에서 아른하게 떠올리며 사타구나를 문지르느데 갑자기 부하 하나가 뛰어들어왔다.
"사, 상사님. 어서 나와보십시오."
"뭔데 그래?"
"총 사령관님의 동생인 미코대령 있잖습니까?"
"그래서?"
"그 미코대령이 아메리카의 첩자였답니다."
"무슨 헛소리야?"
파스상사는 헐떡거리는 부하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아직 신참일 때, 미코대령의 부대에서 직접 명령을 받으며 지낸 적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에 대한 존경심을 품고 있는 그에게 부하가 던지는 말은 완전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파스상사는 서둘러 옷을 입고 뛰어나가다가 눈 앞에 들어온 군 현환판에 붙은 커다란 종이를 보고는 입을 쩌억 벌렸다.
그 종이엔 미코대령의 사진과 함께 그가 저질렀다는 죄목이 다양하게 적혀 있었고 그 밑엔 그를 따랐던 부하들의 사진들이 조그맣게 나열되어 있었다.
"이런 일이......."
"아무도 믿을 수 없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그는 대장의 목소리에 얼른 자세를 세우며 경례를 붙였다.
"아, 대장님."
"여기서 시간 허비하지 말고 오늘부터 경계를 강화하라."
"외곽수비를 말입니까?"
"지시가 내려왔다. 그리고 오늘 이쪽으로 증원이 오니까 우리가 맡은 구역의 농장들에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도록."
"네. 대장님."
파스상사는 바로 작전실로 뛰어갔고 대장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 믿기 힘들군...... 미코대령...... 이건 정말 이해하기 힘들군."
이 수비부대의 대장은 미코대령을 오랫동안 따른 적이 있었다.
그는 믿기 힘들었다. 아니,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파스상사가 작전실로 들어가자 벌써 소대장들이 모여 있었다.
"일찍 모였군."
파스상사가 나타나자 다들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어제 대장님 따라서 거기 갔다며? 어때? 좋았어?"
"이래서야 원~ 오늘 근무나 제대로 하겠어? 저봐. 다리 후들거리잖아."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놀리는 농담을 한마디씩 하며 대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비상용 싸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잉~ 삐잉~ 삐잉~"
"뭐야?"
다들 우르르 나와서 각자 자신의 부대월들이 집합되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파스상사는 자신의 부대가 이제 막 정찰을 나갈 차례였기 때문에 부대원들을 도시 입구 바로 앞에 배치해 두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바로 그곳으로 뛰었다.
하지만 그가 도시 밖으로 나와 부대원들을 찾았을 때는 이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흑먼지를 일으키며 수십마리의 크리쳐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파스상사의 부대원들은 전부 저투대형을 갖추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갑자기 나타난 적들을 향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헬멧의 무전기를 통해 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군. 전투대형으로! 놈들이 농장까지 가지 못하도록 저지하라. 6소대는 농장의 인부들을 보호하라."
6소대는 파스상사의 부대다.
파스상사는 대장이 자신과 같은 소대장들에게 명령한 것처럼 헬멧의 무전기를 통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소대 전원 농장으로 향한다. 농장의 사람들을 대피시킨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소대원들은 빠른 동작으로 농장을 향해 뛰어갔고 입구에선 다른 부대원들이 완전무장을 갖춘 채 다가오는 크리쳐들을 상대하기 위해 몰려나왔다.
순식간에 솔져들이 공격대형을 갖추고 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발포명령을 기다리는데 그들의 바로 앞에서 갑자기 흙더미가 솟아올랐다.
놀란 솔져들이 총을 들이대며 긴장하는 순간 솟은 흙더미에서 굵은 손톱들이 튀어나와 솔져들의 목을 뚫었다.
눈 앞에서 갑자기 땅을 뚫고 올라온 크리쳐들은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당황한 솔져들을 향해 거칠고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십마리의 괴물들에 의해 선발대가 순식간에 당하자 도시 입구에서 니오던 솔져들은 아예 명령없이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멀리서 달려오던 놈들은 자신들의 선발대가 성공적으로 작전을 전개하자 방향을 틀어 농장쪽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도시 입구의 양쪽에 세워진 감시탑에서도 아래쪽을 향해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하자 괴물들도 어느정도 움직임에 제약을 받긴 했지만 그리 큰 타격을 주진 못했다.
놈들은 총알에 관통당하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고 집중적으로 총알세례를 받은 몇 놈만이 쓰러졌을 뿐 아군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놈들이 휘두르는 손과 발에 군인들의 사지가 찢겨나가며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렸고 계속되는 총소리와 괴물들이 내지르는 괴성이 사방을 메웠다.
어떤 놈들은 땅속으로 몸을 숨겼다가 솔져들의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내며 공격하고는 총알을 피해 다시 땅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어느 용감한 병사 하나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로 기어가 괴물이 숨어든 구멍으로 수류탄을 던지자 커다란 폭음과 함께 괴물의 살덩어리가 위로 솟구쳤지만 놈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으며 계속 달려들었다.
입구에서 더욱 많은 병사들이 총을 쏴대며 몰려나왔지만 그에 맞춰 놈들의 수도 늘어났다.
파스상사는 달려오던 놈들이 자신들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부대를 둘로 나누었다.
자신이 이끄는 대원들은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고 나머지는 농장의 민간인들을 입구쪽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입구 바로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투를 보고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다가온 괴물들이 총알에 상처를 입어가며 군인들의 사지를 찢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다가온 괴물은 엄청난 총알세례에 허리가 뜯어졌으면서도 필사적으로 기어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바로 옆의 부하가 당하자 파스상사는 순간적으로 공포에 사로잡히며 괴물들을 향해 미친듯이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들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계속 덤벼들었다.
도시 입구에서는 이미 거의 대부분의 솔져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시체로 변해있었고 자신의 부대원들도 거의 쓰러져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파스상사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젠장. 여기서 죽는군."
그는 총의 탄환이 떨어지자 탄창을 교체하는 대신 가슴에 달린 네모난 휴대용 네이팜탄을 꺼내들었다.
네개의 폭탄을 전부 손에 든 그가 그 중 하나의 핀을 이빨로 뽑으며 괴물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려는 순간 괴물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폭음이 일어나며 몇마리의 괴물이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빌어먹을 자식들! 좀 일찍 와야지."
이렇게 내뱉은 파스상사는 계획을 바꾸며 손에 든 폭탄들을 놈들을 향해 던졌다.
폭탄은 땅에 닿기 바로 직전에 폭발하며 엄청난 화염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도시 입구에서 온 몸에 강화장갑을 두른 중화기 보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걸어다니는 전차나 다름없는 자들이다.
다른 사람보다 강한 체격을 가진 솔져들을 뽑아 50킬로가 넘는 갑옷과 그에 버금가는 무게의 중화기를 장착시킨 오로지 적을 전멸시키는 작전에나 나오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무기의 특성 상 산개해서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아군에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대장이 그들을 움직인 것이다.
정식명칭은 기갑솔져였지만 다들 깡통이라 불렀다.
그들이 도시 안에서부터 발포를 하며 입구를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는 증거다.
파스상사는 몸을 옆으로 굴리며 땅에 떨어진 총을 집어들고는 재빠르게 탄창을 교체하며 기갑솔져의 사이에서 괴물들을 향해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아직 살아남은 솔져들도 처참한 시체로 변한 동료들을 보며 괴성과 총성을 함께 뿌려댔다.
그들의 총은 별 소용이 없었지만 기갑솔져들이 내뿜는 커다란 포탄 덩어리들과 화염방사기는 확실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수십마리에 해당하던 괴물들이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고 겨우 가까이 온 놈도 두꺼운 장갑을 뚫지 못한채 벌집이 되어버렸다.
처음 놈들을 발견하고 솔져들이 나왔다가 거의 전멸되는데 거린 만큼의 시간이 흐르자 놈들이 전부 쓰러졌다.
기갑솔져들은 아직 숨이 붙은 놈들의 머리를 향해 화염방사기를 쏴대며 확인사살을 했고 상황이 종료되자 사방은 조각난 시체와 놈들의 검게 그을린 시체들로 가득했다.
파스상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제까지 다양한 괴물들의 공격을 받았었지만 이런식의 공격은 받은 적이 없었다.
예전처럼 그저 놈들을 전부 처치해 버리고 민간인과 농장의 안전을 지켰다는 보고를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땅속에서 놈들이 튀어나오면서 전혀 예상밖의 일이 전개되고 말았다.
"살아남은 대원은 대답하라."
파스상사가 헬멧의 단추를 누르며 불렀지만 수십명의 대원 중 대답한 사람은 겨우 두 명 뿐이었다.
"이럴수가......."
그때 대장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말했다.
"지금 바로 사태를 수습하고 놈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땅굴을 모두 찾아서 없애라."
"............"
"상사!"
"네, 네. 알겠습니다."
자신의 부하들로부터 아무런 뇌파도 들어오지 않자 스켈은 조용히 부하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조종적에 앉은 사내가 대답했고 그들이 탄 작은 비행선이 조용히 하늘로 올랐다.
그는 이번에 새로 제작한 전투용 크리쳐들을 끌고 어제 밤 이곳에 도착해서는 놈들의 뇌를 조종하며 준비를 하고 아침을 기다렸다.
그리고 확실한 성과를 가지고 돌아가는 중이다.
농장에서 일하는 민간인 100여명과 솔져 70여명을 30마리의 실험용 크리쳐들로 몰살한 것이다.
크리쳐들도 전멸했지만 어차피 그것들은 실험을 위해 희생될 계획이었으므로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다.
더군다나 실험중인 그것들의 성능도 파악했으니 그들이 싸우는 장면을 담은 데이터를 가져가면 연구실의 로첸박사가 좋아할 것이다.
그는 헤밍스의 명령을 확실히 이행하고 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