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매미'다음엔***
태풍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으나
건강한 내가 미안하고
아무탈없는 내가 죄스러워
일하는것 조차 눈치를 보고 심기를 살펴야 한다.
해안가를 낀 작은 마을
허름한 스레트지붕의 맘씨 좋은 전라도 아주머니는
터전을 잃은체 망연자실이고
백발의 소녀같은 수줍음을 잃지 않은 노부인의 발걸음이
흐릿한 어둠속에서 흔들거린다.
피난보따리만큼 무거운 홑이불을 들고
오래 살았기 때문이야!
오래 살았기 때문이야!
절규같은 넋두리를 되뇌이며 그림자같은 몸뚱이로 잠잘곳을 찾고 있다.
순결의 눈동자 잊지 않는 횟집부부는 간곳없고
관절염에 하염없이 절뚝거려야 하는 할머니는
해일이 다 쓸고간 홀에서 누군가 잊지 않는 손길에 들려온
김밥도시락에 목이 메여 혀는 밥알을 세고
더러워서 경비일은 못 하겠다며
바닷가 작은 집에 정비소를 차려 아들네와 사는 홀아비는
절망을 넘어 오기만 남았다.
나 살기도 힘든 세상! 남의 일은 걱정하는게 아니란다.
천재(天災)는 있지만 인재(人災)는 없었다는 얘기는
거대한 공룡'미국'의 후일담일뿐,
야적장의 원목들은 이곳 바닷가 마을까지와서 난타전을 벌였으니,
깔끔떨며 손 끝 물기조차 튕겨내던 키 작은 그녀는
반쯤은 해일에 적선하고
반쯤만 남은 진흙투성이에서 천막치고 피곤한 몸 뉘어 쉬어야 하나
파도만 봐도 전율하는 가쁜 숨길에
전기조차 누전으로 타다 남은 심장마저 다 태운다며
그믐가까운 적막에 오지 않는 한전직원만 기다리며
불기도 없이 잠을 청하는데,
웃기게도,
체 해일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하수로변 야산에는
'며느리 밑씻게'만 무성하더라만
큰 마음먹고 산 머리띠를 잃어 버리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다녀 온 길 되짚어 자동차 바퀴에
산산조각난 잔해를 발견하고도 헛헛한 심정에 종일토록
울적했는데,
수십년 동고동락한 터전을 잃은 그 심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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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후한 전라도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없는 나대지위에 다시 주춧돌을 앉힐 것이며
소녀의 미소를 잃지 않는 노부인은
그때가 있었노라며 다시 미소지을 수 있을 것이며
유난스레 빛이 나는 구릿빛 얼굴의
바닷가 홀아비는 다시 사랑을 꿈꿀 것이다.
어둠속에 이곳까지 김밥이라도 나를 수 있는 인정이 있고
우짜든지 수고한다며 쉬엄쉬엄 다니라는 인정을 잃지 않는 한,
세상으로 불끈 쥔 주먹
세월이 펴게 하리라,
글/이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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