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청 고약한 노친네를 모시고 있습니다. 얼마나 괴퍅한지 어지간한 승질부림에도 잘 웃어 넘기는 '나'이지만 가끔 인내의 한계를 맛볼 때가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이 노친네, 입에 달고 사는 좌우명이 '결혼보다 이혼을 잘해야 한다.' 입니다. 어지간히 나이 먹은 나로써도 이해가 안되는 설레발이었죠. 어차피 헤어질 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악감정을 품기 마련인데 뭔 화사한 이별?
그러나 요즘 난 이 방을 들여다 보면 볼수록 그 노인의 오랜 인생철학이 정말 진국임을 깨닫습니다. 남녀가 만나는 일, 둘 사이의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그것을 운명으로 느끼고, 그리고 결혼이란 서로의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과정에 이르기까진 정말 찰라지간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러나 같이 하는 동안 식어가는 사랑의 감정은 어느새 그동안 둘의 눈과 귀와 입과, 코를 막고 있던, 심지어 육감까지 깨어나게 하는 자극제로 돌변하니 이 얼마나 잔인한 현실인지. 기어이 시작된 감정의 골은 사랑할 땐 싸울꺼리조차 되지 않은 사소한 일조차 날을 세우게 하여 더욱 깊게 패이게 합니다. 어떤 글을 보면, 남편이 뀌어대는 방구소리와 냄새를 듣고 맡으면 살인충동까지 일어난다고 하던데, 요즘 젊은 애들 글에선 그 꼬랑내조차 사랑스럽다고 하니 얼마나 인간이 간사스러운지요.
그리하여 그 모든 감정은 얽힌 실타래 형상으로 변해 도저히 풀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에는 단절이란, 이혼이란 극약처방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니 어느 누군들 봄날 벗꽃처럼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이별을 고할까.
그 영감의 진실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 언제 어디서 그렇게 악담하며 만난 이와 조우할 지 모르고 언제 그 원수에게 손 내밀 날이 올지 모르니 굳이 서로 돌아서서 가는 길에 그동안 나쁜 감정 다 솎아내며 침 뱉지 말고, 그냥 손이나 흔들어 주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옛사랑의 흔적을 기억하여 훗날 다시 만났을 때 웃자는 취지였습니다.
비단 이것만이 아닙니다. 너와 나의 오늘 이별은 어찌보면 미성숙했던 두 인격이 떨어져 서로 보며 반성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이를 통해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 훗날을 기약할 수 있으니 오늘의 헤어짐에 너무 절망하지 말고, 또한 같이 있어 느낄 고통은 이미 알고 있으니, 이젠 헤어짐의 고통을 배워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일깨워 주란 깊은 속뜻이 있더군요.
하여 내가 그 노인을 공경하느냐, 아직은 아닙니다. ㅡ,.ㅡ;;
이별, 이혼이 완전한 단절을 의미해선 아니됩니다. 이별, 이혼이 그토록 사랑했던 두 연인을 불구대천의 관계로 돌변시키라는 강박이나 윽박지름은 더더욱 아닙니다. 성격이 맞지 않던, 폭력적이던, 바람을 피웠건, 헤어짐에 와서 서로를 미워한다는 건 그만큼 실망도 컸고 그 실망만큼 구멍나 버린 내 마음의 허망함이 볼러오는 분노라고 하겠네요. 이것은 분명 ㅜ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랑이 가진 또다른 얼굴이겠지요? 애증이라고 하던데.. 아마도 나를 앞서간 많은 선수들은 사랑의 두 얼굴은 보기엔 다르나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겠지요.
해서 난 이혼을 마음 속으로, 혹은 진행하거나, 이미 해버린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이별은 끝이 아닙니다. 이별은 새로운 시작이죠. 오랫동안 너와 날 아프게 했던 딱지와 피고름들을 떼내고 새살을 돋게 하는 과정입니다. 우리 그 상처가 다 낫는 날, 다시 만나 처음처럼 사랑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린 지금은 너무나 크게 분노하지만 싸워선 아니되고, 그냥 좋게 웃으며 서로 건강하라고 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상처 비록 크나 그대 역시 그만큼 아팠을 것이므로 우린 피차 빚진게 없다고 생각해 두죠. 난 강하지만 당신은 아직은 나보다 강하지 못해. 그래서 늘 그대에게 죄를 지으면서도 나 없는 그대가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해 봤어. 그러니 내가 가진 것, 그리 많지 않아도 그대가 좀더 많이 가져갔으면 해.
누가 먼저 저 이야기를 꺼낸들 어떻습니까?
다툼에 있어선 한걸음 물러서고, 사랑함에 있어선 한발 다가서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조차 실천하기 어려운 마당에 너무 무리한 주문일까요?
오늘 한 상가에 다녀왔습니다. 여섯분이 이승을 등지셨는데 아흔을 넘기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제외하고선 나머진 예순고개를 넘지 못한 남정네들이더군요. 그들에겐 아직은 이고 지고 가야할 짐이 많은데 벌써 가면 남은 처와 애들은 어쩌누. 내일이 아님에도 마음 한켠 울컥하는 감정은 숨길 수 없습니다.
10년 동안 알고 지낸 형님이 있습니다. 모임엔 늘 형수님을 데리고 나오셨죠. 친형수처럼 살갑게, 농담하고 지내던 그런 사이였습니다. 지난 달, 그 형수께서 운명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가슴 아리한 느낌을 가지고 상가를 들어선 순간, 우린 얼어붙고 말았죠. 거기엔 우리가 생전 보지 못한 여자의 영정이 놓여 있었고 정작 죽었다던 그 형순 그들 가족이 보이지 않는 한켠에 잠깐 얼굴을 비추고 이내 사라졌습니다. 이 코메디 같은 비극 앞에서 우린 웃지도 울지도 못했지요.
백년을 같이 하자 약속하나 우린 같이 갈 수 없습니다.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는 한. 남은 자로써 회한에 분명히 잠겨 있을 나를 생각한다면 오늘 당신을 조금 더 사랑해 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夏淚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