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몇 개만 호올로 외로운 입동(立冬)
나는 공주 갑사에서 가는 가을을 만나고 온 적이 있다.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붙들고 싶었지만 자연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갑사 매표소 근처에선 한 부부와 아이가 감을 따는 정겨운 모습이 보인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시인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이즈음의 정경을 이야기 한다. 바로 겨울이 다가왔다는 자연의 손짓이다.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바야흐로 겨울로 들어선다. 입동은 천지만물이 양에서 음으로 변하는 시기이다. 이제 길고 고통스러운 겨울의 시작인 셈이다.
입동은 24절기의 열아홉 번째이며, 양력 11월 7~8일 경이고,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든다. 해의 황도가 225도일 때인데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옛사람들은 입동기간을 3후로 나누어, 초후(初候)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는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말후(末候)엔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때인데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기 위해 배추를 묶어주며,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입동 전후에 가장 큰 일은 역시 김장이다. 겨울준비로는 이보다 큰일은 없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종가 김장은 몇 백 포기씩 담는 것이 예사여서 친척이나 이웃이 함께한 더불어 사는 모습의 전형이었다. 우물가나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 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그 해 겨울은 추울 것으로 점을 친다.
경남 여러 섬에서는 입동에 갈까마귀가 날아온다 하고, 밀양 지방에서는 갈까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목화가 잘 될 것이라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지독하게 분다고 점을 쳤다.
또 이 시기에는 추수를 무사히 끝내게 해준데 대한 고마움의 고사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외양간 등에 고사 지낸 뒤, 소에게도 주면서 수확의 고마움과 집안이 무사한데 대한 감사를 드린다. 또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으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기도 한다.
또한 조선시대의 향약(鄕約: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규약)을 보면 봄가을로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섣달그믐날밤에 나이가 드신 노인들에게는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가 보편화돼 있었다. 논밭 한 뙈기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 년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기꺼이 금품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의 입동은 가끔 대학시험과 겹치기도 한다. 입시한파라 하여 그렇지 않아도 매년 이맘때만 되면 전국이 온통 얼어붙는데 사회도 꽁꽁 얼어붙으면 서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남은 어떻게 되든지 나만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차가운 마음을 갖게 되어 온 세상에 냉기로 가득 차버렸다.
차가움이 가득 찬 세상은 모두를 적으로 만들 뿐이다. 제발 우리 조상들의 까치밥을 남기는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