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대 입니다!!!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 강사로 일하고 있는 26세의 여자 에토 하루(衛藤はる).
시부야의 중견 서점에서 점장을 맡고 있는 34세의 남자 하야세 리이치로(早勢理一郎).
두 사람은 1년 3개월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2년 전에 이혼했지만 아직도 계속 친구로 만나고 있다. 어느날 사소한 말다툼을 계기로 두 주인공은 서로의 결혼 상대를 찾아주기로 하는데, 아직도 서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보니 삼각, 사각 관계는 점점 꼬여만 가고 예전보다 더더욱 상대에 대한 마음은 깊어지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날,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두 사람의 지지부진한 관계는 마침내 리이치로가 동창회에서 재회한 중학교 때의 첫사랑과 결혼하게 되면서 일단락 지어지게 되고, 그 결혼식의 목사(우리나라로 치면 주례?) 역을 하루가 맡게 되는데... 그녀는 결혼식 당일에야 비로소 리이치로와 이혼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던 어떤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2004년 6월에 자살한 일본의 유명한 "드라마 작가" 노자와 히사시(野沢尚)의 실질적인 소설 데뷔작이다. 1996년 제 4회 시마세이(島淸) 연애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소설이 나온지 반년 후, 그는 "사선의 맬리스"라는 미스테리 소설로 유명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잠자는 숲" "얼음의 세계" 등의 미스테리 드라마로 유명한 극작가가 이렇게 발랄하고 코믹한 연애물을 썼다는 게 이채롭지만, 극작가의 소설이라면 대화가 중심이 되고 문체가 허술할 거라는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뜨리는 괜찮은 연애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인물의 성격이 입체적이고 내용도 흥미진진해서 단숨에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처음에는 코믹하게 전개되지만 후반부에는 살짝 눈물이 맺히는 감동 노선이라는 것도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다고 본다.
sbs 드라마 "연애시대" 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드라마나 영화로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영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나와 리이치로의 아들 신노스케의 두번째 제삿날이었어. 제삿날이자 생일. 신노스케는 큰 소리로 울어보지도 못하고 내 자궁에서 끄집어내진 아이였어. 말하자면 사산(死産)이었지.
비석 앞에 서 있던 리이치로는 뭐라고 말을 걸고 있었던 걸까. 캐러멜과 빨간 사과를 바치고는 「살아 있다면 두 살이구나……」
가을 하늘에 한숨을 실어 보내듯 그렇게 말했어. 아무래도 리이치로는 제삿날이 될 때마다 죽은 아이의 나이를 헤아릴 모양이야. 왜냐면 첫번째 제삿날에도 「살아 있다면 한살이구나」라고 말했었거든. 하지만 말이지, 눈꼬리에 뭔가 반짝이는 걸 봤다고 해서 죽은 자식 때문에 눈물 흘리는 거라고 해석할 만큼 난 어리숙하지 않아. (p. 11)
「전부터 물어보려고 했는데, 너, 결혼반지 어쨌어?」
「어쨌냐니?」
「어떻게 처리했느냐는 얘기야」
「서랍 속에 계속 넣어두다 보면, 사라져 버려」
「거짓말. 어차피 공원 연못에 내던져 버렸지? 내 이름을 원한에 사무치게 소리치면서 힘껏 집어던졌지? 눈에 빤히 다 보여」
「진짜로 없어졌다구. 가르쳐 줄까. 도무지 버려지지가 않아서 곤란한 물건이 있으면, 서랍 속에 넣어두면 어느새 사라져 버려」
「호오……」
좋은 걸 배웠다, 나도 써먹어 봐야지, 라는 표정의 리이치로였다. (p. 16)
「이혼한 부부가 결혼기념일에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게 위화감 느껴지지 않아, 당신?」
「안 느껴지는데?」
「느껴 보라구. 나는 말야, 디저트 멜론이 나왔을 때 '이런 식으로 우리들이 만나면 안되는 건데, 부도덕한 일인데' 라고 곰곰이 생각했다구」
「어차피 생각할 거면 디저트 나왔을 때가 아니라 레스토랑에 오기 전에 생각했어야지」
「하지만 맛있는걸. 여기 스테이크」
「결혼기념일에 만나는 게 이상하면, 이혼기념일에 만날까?」
그 날은 밸런타인데이다. 「더 이상하잖아. 뭣보다도, 내가 어째서 당신하고 중요한 밸런타인데이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거야. 웃기지 마셔」(p. 17~18)
이혼으로 타격을 입는 건 보통 여자 쪽이잖아, 세상의 상식으로는? 남자는 뭐, 일류 기업의 샐러리맨이 이혼 때문에 경력에 오점이 생기는 경우를 제외하면 다들 남자의 훈장쯤으로 여기곤 하지. 영웅호색이란 말도 있을 정도고.
물론 헤어진 직후에 2백만을 한꺼번에 내주는 편이 제일 폼났겠지만, 그만한 돈이 나한테는 없었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위자료 줄께」라고 말을 꺼냈을 때 「괜찮아. 됐어. 그런 돈 받을 이유가 없어」라고 녀석이 거절해 주길 기대했거든. 어리석었어. 명목이야 어쨌든, 2백만이나 되는 돈을 사양할 여자가 아니었다구. 하루는.
「어머 그래? 그럼 줘」라고 말하더라구.
「계좌 이체로 해줘, 직접 건네받으면 정부(情婦)라도 되는 줄 알 테니」 라더라구.
너, 어쩜 그렇게 생돈을 넙죽 받아먹을 수 있냐, 라고 설교하고 싶었어. 하지만 말을 먼저 꺼낸 건 내 쪽이었고. 한번 꺼낸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잖아, 남자의 오기가 있지.
「그럼, 미안한데, 다달이 할부로 해도 될까?」 라고 결국에는 한심한 대화로 전락하고 말았어.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그녀석하고는 매달 두세 번씩 만나고 있고, 데이트에 돈 쓰는 셈 치면 매년 20만 정도 지출하고 있었던가. 그녀석하고 만날 때 먹고 마시는 건 더치페이고. 쫀쫀하군, 나도.
헉, 내가 방금 「데이트」라고 말했나?
알고 있어. 알고 있다구. 헤어진 마누라와 만나는 걸 「데이트」라 부르는 게 나도 석연치 않다고. 하지만 달리 뭐라 표현할 말이 없잖아. 있으면 가르쳐 줘, 다른 말을. (p. 22~23)
그녀석은 매일 아침 출근 시간 15분 전에는 반드시 직장에 도착해 있어. 나는 차창에서 「대단해」라고 중얼거리며 그날의 시작을 상쾌한 기분으로 맞이할 수 있는 거지. 자전거가 보이지 않을 때는 시부야 서점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석의 맨션에 전화를 걸어. 그러면 생각했던 대로 감기에 걸려 앓아 누워 있곤 해.
레몬 두개로 즙을 짜서 만든 핫 레몬을 마시면 곧 회복해, 그녀석은.
「냉장고에 없으면, 낮에 쉬는 시간에 내가 사가지고 갈까?」
그 녀석은 「됐어」라고 반드시 거절하곤 하지. 이혼하고 나서 지금까지 나는 그녀석의 맨션에 발을 들여놓은 일이 없어. 그게 우리들의 철칙이지. 약간 쓸쓸하긴 하네. (p.32)
「그때 나가토미(永富)씨가 말리는 걸 뿌리치고 식장에서 도망쳐 결혼을 중지했더라면…… 어쩌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농담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말했어.
그게 인생의 결과론이라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어. 결혼 직전에 파혼하는 쪽이 1년 3개월 후에 헤어지는 쪽보다 상처를 덜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중략)
「하루씨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아주 미묘하지만 절실한 느낌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나는 제대로 생각도 안하고 반사적으로 대답했어.
「좋아요. 언제든 만나게 해 드리죠」
어째서 그런 경솔한 짓을 저지른 걸까. 이혼이 내 인생에도 그녀석의 인생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p. 36)
「하루, 결혼은?」
「했어……한번」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게 제일 손쉽고 빠르다는 걸 최근 들어서야 배웠다. ‘한번 결혼을 했다’ 는 대답에는 ‘한번 하긴 했지만 실패했다’ 는 의미가 멋지게 포함되어 있는 셈이지. 일본어는 참 편리하기도 하지.
「그렇다면 이혼녀네? 나도, 나도! 와아 왠지 기쁜데?」
서로의 상처를 위로해줄 동지가 늘었다는 기쁨이려나. (p. 49)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A양……으로 해 둘께요」
입을 양쪽 끝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으로 목소리를 변조했다. 그 정도 꾸며낸 목소리로 과연 속일 수 있으려나.
「방금 전에 상담하신 분이 A양, B양이었으니, C양으로 해도 되겠습니까?」
「네」(중략)
「같은 상대라면 두 번째 사랑 같은 건 필요없어요, C양」
허를 찔렸다. 무슨 뜻이지. 빨리 그다음 얘기를 듣고 싶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목소리가 엉겁결에 평상시의 나로 돌아와 버려서, 황급히 다시 말했다. 「네? 무슨 뜻인가요, 그게?」
「그를 위해 어머니가 돼 보십시오. 자애에 넘치는 어머니가 돼 주는 겁니다」
어머니……?
그건, 당신의 품속에서 숨을 거둔 어머니 같은 사람 말인가요, 아버지? 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럼 다음 분」
거기서 전화가 끊겼다. (p.99~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