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아~ 무거워...뭐야?~"
어둠은 음침한 목소리로 말한다.
"가만히 있어.."
거친 숨소리에 묻어나는 술냄새가 역했다.
그 어둠은 선영의 몸을 더듬었다.
"누구야~? 비켜 비켜라구..소리 지를거야"
"이년이.. 가만히 안 있어?"
짝~ 하는 소리가 나면서 눈앞에서 갑자기 번쩍하고 불이 일고
귓속에서 윙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빰이 얼얼하고 아프다는 느낌을 넘어서자 머리로 피가 꺼꾸로 솟는 듯한 분노가
끓어 올랐다.
선영은 있는 힘껏 확 밀치고 일어났다.
"아니 아..아저씨..."
희미하게 들어오는 창문의 불빛에
반쯤 비치는 얼굴은 선영이의 새아버지였다.
"어떻게...어떻게 이럴수가..."
선영은 충격으로 말을 잇을수 없었다.
"흐흐 그래..어쩔건데..소리 지를거냐? 소리 지르고 싶으면 질러..
이집에는 너랑 나밖에 없어..."
그는 너죽거리는 웃음을 띄면서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선영은 옆에 손에 잡히는대로 던지면서
"나가..내방에서 나가란말이야.."
새아버지는 옆으로 피하면서 선영의 두팔을 잡고 확 침대로 밀어버리고
쓰러진 선영의 위에서 두팔을 잡고 귓속말로
"니년모녀만 아는 비밀을 나도 알고 있다면
그러면 니 에미년을 걱정할 마음이 생길까?.... "
순간 세상에 모든것이 갑자기 정지하는듯 했다.
엄마...우리 엄마..불쌍한 우리 엄마...
선영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아득한 절벽에서 끝없이 밑으로 떨어지는듯 했다.
"그래야지...금방 끝나..큭큭"
그어둠은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하지만 선영은 마치 마네킹처럼 멍한 눈동자로 흔들리는 천장만 보았다.
다시 시간이 꺼꾸로 돌아가서 그 시절로 가는것이 아닐까?
그 악몽같은 나날들이 다시 시작하는것인가?
그날에 눈이 왔다..함박눈이...
"니에미년 어디있어? 이년이 어디에서 어떤놈이랑 붙은거야?
어디있어? 니에미년...찾아와"
그날도 어김없이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들어와서 잠이 들깬
선영에게 발길질을 해대면서 욕지거리를 해댔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3학년인 선영의 갸날픈 몸뚱이에 쏟아지는 발길질과 주먹질에
선영이가 할수 있는것은 없었다.
단지 눈물만 흘릴뿐...
어린선영은 맞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죽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희미해지는 가운데도 나가야한다는 여기에서 나가야한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자신을 일깨웠다.
선영은 뛰어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방문으로 밖으로 뛰어가는 그 짧은거리가 마치 천년을 뛰어가야 닿을것처럼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뒤에서 뭐라고 소리치면서 선영의 아버지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얇은 옷을 뚫고 들어오는 겨울바람은 예리하게 피부를 절미는듯했다.
맨발인 선영의 발감각은 이미 없어졌다.
뛰어가는 선영의 뒤로 작은발자욱이 무심한 흰눈위로 찍혔다.
그러나 멀리가지 못하고 선영은 붙잡히고 말았다.
"이년이...어디서..도망을 가..내가 오늘 네년 버릇을 고쳐주지.."
숨을 헐떡이면서 말하고 선영아버지는 주먹으로 어린 선영의 얼굴 쳤다.
선영은 몸은 공중에 붕~ 떴다가 한쪽 구석에 나뒹굴렀다.
그래도 분이 안풀리는지 기절한 선영의 몸뚱이를 욕지거리를 하면서
걷어차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이새끼가 뭐하는거야?..애한테 뭐하는거야?"
소리를 지르면서 선영아버지를 밀쳐내면서 선영을 감쌌다.
"선영아..괜찮니..선영아 눈떠봐..괜찮아?"
"엄마..엄마.."
선영은 엄마품에 안겨서 엉엉울었다.
"괜찮아..이제는 괜찮아 엄마가 있으니깐.."
"이년이~ 어디서 어떤 새끼랑 붙다가 오는거야?"
"붙긴 누구랑 붙어?..생활비가 없어서 친척집에 손벌리고 왔다.
이제는 염치고 뭐고 무릎꿇고 애걸해서 구해왔으니깐
이걸로 술을 쳐먹던지 뭐하던지 마음대로 하고
이제는 그만 헤어지자..이혼하자구.
이렇게는 더이상은 나도 못산다.못살아."
"이년이~ 그동안 어떤 놈팽이새끼라도 숨겨둔거야? 이혼..웃기지마 내가 니 좋으라고
이혼을 해줄것 같냐?" 하면서 선영엄마를 패기 시작했다.
선영엄마는 웅크리고 한참 맞고 있다가 확 선영아버지를 밀었다.
그런데
어어~ 하면서 뒤로 넘어진 선영아버지는
계단밑으로 굴렀다.
놀라서 황급히 계단밑으로 내려간 선영엄마는 선영아버지를 흔들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자 숨소리를 확인해보았지만 숨소리가 들리지 않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당황해서 어찌할바를 몰랐다.
선영아버지의 뒷머리에서 흘러나온 붉은피가 주위를 붉게 물들여가고 있었다.
선영엄마는 곧 정신을 추스리고 선영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마치 정신나간 사람처럼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을 나서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야..지금 도망가면 평생 도망가야돼..어짜피 본 사람도 없는데..'
선영엄마는 선영에게 굳은 표정으로
"너 오늘일은 아무한테 애기하면 안돼..알았지..절대 말하면 안되는거야.
아무일도 없었던거야..아무일도...알았지.."
선영은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그래 선영아..아프지? 내가 약 발라줄께"
선영엄마는 약을 가지고 와서 약을 발라주면서 흐느껴운다.
"엄마..울지마..절대 아무한테도 말안할께..말안할께..울지마.."
"선영아~"
모녀는 부둥켜 울었다.
사실 선영의 아버지는 예전에는 이와같은 모습이 아니였다.
가정적이고 회사에서는 존경받는 오너였는데..
같이 동업파트너였던 10년지기 친구가 도박에 미쳐서 회사공금을 갖고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모든것을 잃게되었다.
선영아버지는 그 이후로 술에 빠지더니 급기야는 의처증까지 보이더니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경찰에서 사람이 나와서 몇가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절차였다.
공식적으로 실족으로 인한 뇌진탕과 동사가 원인으로 해서 종결지었다.
하긴 만취상태에서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지는 사건이
그당시에는 종종 일어나서 신문에서도 다루어지곤 해서
다행히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이후로 선영의 엄마는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돈벌기에만 매달렸다.
마치 미친사람처럼...
낮에는 시장에서 좌판을 열고 밤에는 조각보 만드는 부업을 했다.
꾸벅꾸벅 졸다가 바늘에 찔려서 화들짝 놀라 깨어서 다시 바느질을 했다.
그당시 엄마가 등을 바닥에 붙이고 자는 모습을 선영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항상 쭈그린 자세에서 잠깐잠깐 고양이잠을 자고 일어나서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아침밥이랑 선영이 도시락을 싸놓고 다시 물건을 떼어오기 위해
새벽시장으로 향했다.
그런 엄마지만 선영이가 남들에게 주눅이 들지 않게 항상 좋은 옷 입히고
참고서나 책사는데 아낌없이 돈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신김치조각에 밥을 먹어도 선영의 도시락에는
항상 깔끔하고 맛깔난 반찬으로 채워졌다. 선영이가
"엄마도 김치만 먹지 말고.. 맛있는 반찬이랑 먹어..."
"아니야..아까 만들면서 많이 먹었어.
그리고 엄만 김치가 좋아.
엄마는 우리 선영이가 잘먹고 공부도 잘하고 예쁘게 크기만 하면 돼.
그러고 보니 우리 선영이도 다컸네.이제는 중학생이라고 엄마를 다 챙기네. "
"엄마"
선영은 엄마품으로 안겼다.
엄마한테서는 비릿한 생선냄새가 났다.
하지만 세상 무엇보다 포근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선영은 학창시절내내 한번도 1등자리를 놓쳐 본적이 없었다.
그당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기말고사도 끝나서 다른때보다 일찍끝나서 선영은 엄마가 일하는
시장으로 갔다.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좌판에는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선영은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학생 이것은 얼마야?"
"네에? 아..그것은 2000원이구요..오늘 갈치가 막 들어왔는데
물이 좋은데요...저녁 갈치조림으로 드시면 딱 좋은데요.."
"그럴까? 얼만데?"
"4500원인데요..."
"비싸다."
"중국산이 아니라 국산이라서 그래요..그리고 이정도 크기에 4500원이면
바다에 나가서 직접잡지 않는 이상 힘들어요."
"그래? 그걸로 줘..다듬어서.."
"네에.."
선영은 갈치를 다듬어서 건네고 돈을 받았다.
"학생 그럼 수고해."
"네에..안녕히 가세요..또 오세요."
그때 선영엄마가 돌아왔다.
"내가 엄마 없을때 팔았다..여기 사천오백원 있..."
엄마는 짝~ 하고 선영의 빰을 때렸다..
"엄..엄마.."
지폐가 공중으로 날아가고 동전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또르르 굴러다녔다.
선영은 여태껏 그렇게 무서운 엄마의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내가 언제 너보고 좌판에서 생선팔라고 했냐?
내옆에서 생선 팔자고 학교보냈냐?
생선비린내 묻히는것은 나하나면 충분하다..
다시 한번 이런짓하면 다시는 너 안본다.알았지?"
선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빰으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괜찮냐? 미안하다. 아프지?"
여태껏 한번도 선영을 때려본적이 없는 엄마 자신도 많이 놀란듯 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엄마 잘못했어..다시는 안그럴께."
"그래..먼저 들어가라..엄마도 오늘은 일찍 갈께"
"응..갈께.엄마...엄마.."
"왜?"
"아니야.."
"뭔데?"
"엄마 알지 내가 사랑한다는걸."
"그래 엄마도 선영이 많이 많이 사랑한다."
선영은 눈물이 그렁그렁한채로 입으로는 웃자 엄마가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선영은 집으로 가면서 뒤돌아서 엄마쪽으로 보고 또 봤다.
그후로 선영엄마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상가쪽에 작은 점포하나를 분양 받아서
옷장사를 시작했는데 부지런하고 남들보다 뛰어난 감각과
장사수완은 금방 작은 점포를 그 규모를 2배로 늘렸다.
이때부터 순풍에 돛을 단것처럼 모든것이 잘 풀렸다.
몇년 안돼서 점포만 6군데 이상으로 늘었다.
한창 장사가 잘되고 있는데 선영엄마는 그 6군데 점포를 팔아버렸다.
주위에서는 미친짓이라고 말렸지만 그돈으로 강남쪽에 골프백화점을 차렸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밀수로 들어오는 골프채를 은밀히
사모아서 재력이 있거나 명망있는 VIP고객층 대상으로 판매를 했는데 이것이 시대흐름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선영엄마에게는
엄청난 부를 가져다 주었다.
그때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는 선영 새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상처한지 얼마 안되고 해서 힘들어 하는것 같아서 위로를 해주고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같이하다보니깐 동병상련이라고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다.
급기야는 국회의원에 필요한 선거자금까지 주면서 출마를 권유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선거활동까지 도와주면서 드디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선영엄마와 결혼하게 되었다.
훗날 알게되었지만 전처가 죽은 이유가 남편의 잦은 외도로
속앓이하다가 그것이 홧병으로 되었다고 한다.
"역시 영계가 노계보다는 낫군..하하하..
간만에 몸을 풀어서인지 개운하군...
우리 앞으로 종종 이렇게 오붓한 시간을 갖자구...하하하"
선영의 새아버지는 그 흉칙한 몸을 선영에게서 떼면서
웃으면서 방을 나갔다.
선영은 두주먹을 쥐자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대충 옷을 입고 선영은 황급히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