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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자동차

또이 |2006.11.12 02:42
조회 520 |추천 0

최초의 자동차회사

프랑스 변호사이자 사업가였던 에드워드 사라쟁의 미망인인 루이스 사라쟁 부인은 고트리브 다임러에게서 다임러의 엔진을 얹은 자동차를 파리 및 벨기에에서 만들어서 팔 수 있도록 제조판매권을 취득하고, 신형차 한 대를 선물로 받아 600km나 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 파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남편의 친구이자 사업가였던 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와 합작하여 1889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인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社를 설립 하고, 에밀과 재혼 하였다.

1903년경 1,5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며 연간 1,000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계최대의 회사로 성장 했으나,  2차대전후 경영 악화로 프랑스 시트로엥에 흡수 되었다

 

▣1900년

1903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맞아 ‘포드 A형 리무진’을 미국 공관을 통해 들여온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였다.

1911년 일본인 에가와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버스가 탄생했다. 사용된 차는 포드의 8인승 무개차였다. 마산-진주, 진주-삼천간을 왕복하였던 이 버스의 요금은 당시 쌀 한 가마니 값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다.


1913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회사가 생겨났는데 ‘포드 T형’승용차 2대를 서울에서 시간제로 임대하는 방식이었다.


1914년에 이태리 공사관에 근무하던 윤권이라는 사람은 공관 자동차로 운전을 배워 의친왕 이강공의 오버랜드를 몰게됨으로서 우리나라 최초 의 운전기사가 탄생했다

 

▣1920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지방을 중심으로 승합버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대략 15~20명 정도를 태울 수 있었다. 길이 험한 이북과는 달리 남쪽에서는 버스회사의 경쟁이 매우 심했는데 그 중 가장 승객이 많았던 곳은 전주-군산, 군산-이리간 노선이었다.

1928년 지금의 서울시청격인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에서 시민의 편의를 위해 20인승 버스 10대를 일본에서 들여와 서울시내에 투입 함으로서 처음으로 정기 노선 버스가 처음으로 등장 했다.

▣1930년

1931년 구스모도라는 일본인이 당시 가장 큰 포드 대리점을 인수한 뒤, 자동차 차체 제작공장과 정비공장을 세웠다. 그 후 일본에 있는 포드 공장으로부터 부품만을 들여와 20인승 및 30인승의 대형버스를 국내 최초로 제작, 판매하기 시작했다.

▣ 1950년

1950년대 전후에 폐차로 있던 트럭, 짚차, 쓰리쿼터와 같은 군수용품과 미군으로부터 받은 차량을 운수업자나 정비업자들이 버스나 트럭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재생자동차산업이 번창했다. 당시 부산에서 1955년 설립된 신진공업의 경우 합승버스 25인승차를 2천여대나 만들어 팔아 큰 호황을 누렸다.

1952년 10월 기아산업(지금의 기아자동차로 1944년 설립된 경성정공의 사명을 개칭)이 설립되었다.


최초의 국산차


1955년 최무성씨가 미군으로부터 얻게된 지프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과 드럼통등을 펴서 만든 승용차 『시발』을 내놓았다.

이 첫 국산차는 50%이상이 국산화된 자동차로 되어 긍지가 대단했으나, 한 대 만드는데 4개월이나 걸렸다.

그 후 1962년 새나라 자동차가 나왔다.

 

▣ 1960년

 

1962년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은 최초의 경3륜 화물차인 K-360을 생산하였다.
1962년 12월 하동환자동차공업(지금의 쌍용자동차)이 설립되었다.
1964년 8월 20일 자동차 공업 종합육성계획이 발표되었다.
1965년 7월 아시아자동차가 설립되었다.
1967년 12월 현대자동차가 설립되었다

 

▣1970년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

1975년 12월 현대자동차에서는 국내 최초로 설계, 생산 전과정을 국내 기술만으로 이루어낸 첫 고유 모델 "포니"를 개발 했고, 1984년 국내에서 생산된 단일 차종으로는 최초로 50만대 생산을 돌파하였다.

1976년 미국 G.M과 신진 자동차의 합작으로 G.M.K가 설립되었고, 후에 새한자동차로 회사명이 변경되었다. 새한자동차는 1983년 대우자동차로 통합되었다.


▣1980년


1985년 5월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만대를 처음으로 돌파하였다.

1987년 1월 자동차 전면에 이중 안전접합유리 사용이 의무화 되었고, 기아 자동차가 승용차 생산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1989년 7월 1일, 85년 예고대로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가 해제되어 자동차 업계는 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되었다.

 

▣1990년

1992년 10월 10일 자동차 보유대수 500만대를 돌파하였다.
1995년 5월 제1회 서울모터쇼가 일주일간 개최되었다.(5/4~5/10)
1997년 7월 전국 자동차 등록대수가 최초로 1,000만대를 돌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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