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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스포츠 스모

피글렛 |2006.11.12 09:30
조회 130 |추천 0
스모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

일본 고유의 격투기인 스모는 알몸에 마와시라 불리는 샅바를 두른 두 장사가 도효라고 하는 경기장안에서 이렂ㅇ한 경기 규칙에 의해 힘과 기술을 써서 상대방을 쓰러뜨리거나 도효바깥으로 밀어내어 승패를 가르는 경기다.

원래 스모는 신전에서 거행하는 의례의 한 가지이기도 했으며 궁중에서도 장사들을 불러 스모대회를 개최하여 감상의 대상으로 삼았다.

스모를 보고 있노라면 경기의 승패 결과도 흥미롭지만 그 진행과정이나 경기장의 장식 또한 매우 흥미롭지만, 진행과정이나 경기장의 장식 또한 매우 흥미롭다.
샅바만 두른 두 장사가 나와 상대방을 쓰러뜨려 승패를 가른다는 기본적인 양식은 우리의 씨름과 다를 바 없지만 스모의 형식에는 일본의 문화적 전통이 반영되어 있으며 스모를 진행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마치 종교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wqjf제된 표현으로 나타난다.

스모의 출발점은 민간에서 행해지던 자연 발생적인 단순한 힘겨루기 놀이였으나 신화나 궁중의례와 관련되면서 그 내용에 상징적인 요소가 첨가되기도 하고 흥행적인 면으로는 조직화되고 세련되어 왔다..

스모의 기원---발전

흥미롭게도 일본의 스모에 관한 가장 오래된 사실은 한국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642년에 일본 천황이 백제에서 온 사신을 환대하기 위해 병사들 가운데서 장사를 뽑아 궁궐안에서 스모를 공연하게 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나타난다.
그 후 스모는 정기적인 궁중의례의 하나로 오랫동안 행해졌다.
중앙 집권 강화를 위해 신하를 불러놓고 여러 가지형식으로 여는 잔치인 세치에를 계속했다.
세치에의 한가지인 스모세치에가 440년간이나 지속되었던 일은 스모의 역사와 성격과 방향을 결정지었다.
나라시대인 734년 7월 칠석에 열렸던 잔치 자리가 스모세치에의 효시이다.
이는 전국의 리키시 즉 힘장사들을 모아서 궁중에서 여는 일종의 커다란 이벤트였다.
오늘날의 직업적인 리키시가 아닌 각 지방에서 뽑혀 올라온 힘장사들로 대대는 농민 또는 노동자들이었다.
40여명의 리키시들은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경기를 했다.
이런 스모세치에를 개최한 의도는 율령제도를 시행하던 중앙 정부의 권력을 과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이 차츰 쇠미해지자 1174년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중세에 권력이 조정으로부터 무사들의 손으로 넘어가자 스모는 무사들의 wjsowd을 위한 연습이나 일상의 신체단련등 이른바 실전용의 무술로써 의미가 강조되었다.
가마쿠라 막부 설립 후 1189년 쇼군 요리모토가 스모대회를 개최 친히 관람하며 즐겼고, 그후에도 자주 열었다.
전국시대가 되자 각 영주들도 스모를 장려하여 무사들의 필수 무술로서 유행하게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1570년부터1581년 사이에 아츠지성에서 스모를 열어 관람했으며 이때 참가한 리키시만해도 1500여명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스모가 장려되면서 직업적으로 스모를 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실전용이 아니라 오락을 겸한 스포츠로서의 의미가 강조되자 대중오락으로 변신하게 되자 생겨난 것이 간진즈모이다. 간진이란 원래 불교어로 신사나 절의 건립이나수리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여는 행사를 말한다.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전란이 사라지자 떠돌이 무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직업적은 스모집단이 생겨나는데 이들은 오사카. 교토. 에도 등지에 간진즈모라는 간판을 내걸고 활동한다.
1645년 교토에서 관처의 허가를 받고 행해졌던 간진즈모가 최초이다.
간진즈모는 종교행사로 출발했지만 차츰 목적을 벗어나서리키시 자신들의 생계유지 수단으로써 사업성을 띈 흥행물로 바뀌어 간다.
이런 성격은 오늘날에도 잘 전승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매년 여섯차례씩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본대회인 오즈모의 양식은 간진즈모의 양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가 멸망하고 메이지 유신에 의한 새로운 정치제도는 리키시들에게도 큰 타격을 주어 한 동안 단발령이 내려졌으나 스모 애호가 정치인들에 의해 다시 전통적인 리키시들의 상투를 틀고 경기에 임할수 있었다.
스모가 다시 인기회복의 기미를 보인 것은 1889년 천황이 친히 스모를 관람하던 때부터이다.
1909년에 스모 전용 경기장인 국기관이 도쿄 시내의 료코쿠에 건설 바야흐로 대중성을 띄게 되었다.
1925년 무렵부터 스모는 매스미디어의 발달에 힘입어 전국민의 관심을 불러모으게 되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르러 스모의 인기는 지금도 대단하다.

스모에 나타는 상징적 요소 의미 및 용어 설명

혼바쇼-
일년에 여섯 차례씩 열리는 큰 스모대회를 통해 일본 스모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매번 15일간의 일정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서 전국에 중계 방송되며 신문 잡지에서도 현장의 모습을 소개
하쓰바쇼--1월에 도쿄에서 개최
하루바쇼--3월 오사카
나쓰바쇼--5월 도쿄
나고야바쇼--7월 나고야
아키바쇼--9월 도쿄
규슈바쇼--11월 후쿠오카에서 개최되는 정규대회 일정속에 리키시들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반즈케
혼바쇼가 끝날때즘이면 심판위원들은 리키시들의 시합성적에 따라서 랭킹을 새로 정하게 되는데 이때 랭킹 일람표를 반즈케라 한다. 성적이 좋은 리키시를 위쪽에 큰 글씨로 쓰고 순서에 따라서 차츰 작은 글씨로 써나간다.

리키시들의 승진 순서
조노쿠치--조니단--산단메--마쿠시타--주료--마에가시라--고무스비--세키와케--오제키--요코즈나
고무스비.세키와케.오제키를 우두머리가 되는 세가지 역할이라는 뜻에서 산야쿠리키시라 한다
요코즈나는 혼바쇼에서 여러번 우승리키시 가운데서 심의 위원회가 선발한다.

일정
혼바쇼 15일 동안에 대진 일정표(도리쿠미)를 발표 매일 매일 하루 종일 진행한다.
하급 리키시들의 스모가 아침에 시작되면 등급 순서대로 진행하게 된다.
한 대회에서 치를 각 시합의 대진표는 미리 짜는 게 아니라 그나르이 시합 결과를 보고 다음날의 도리쿠미를 짠다. 이것은 리키시들의 컨디션과 결과에 따라 대전 상대를 정하게 함으로써 관중들의 흥미를 고조시킨다.
일정중에서 중량급 리키시들의 마지막 15판의 시합에 집중된다. 이시합은 마쿠우치의 도리쿠미라 해서 중요하게 여긴다.
이때 먼저 요코즈나가 입장하여 시합이 정정당당하고 무사하게 진행되기를 빈다는 의미를 지닌 동작을 한다. 그리고 난 후에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힘과 기를 겨루게 된다.

리키시의 의례적인 행위
도효(씨름판)에 오른 두 리키시는 한쪽 발을 들어올렸다가 힘껏 내리는 동작을 한다. 몸의 긴장을 풀고 정신을 집중시키기 위한 동작이다. 물통의 물을 국자로 퍼서 몸을 깨끗하게 한다는 듯으로 물로 입을 헹구고 종이로 입가의 물기를 가볍게 닦아낸다.
이긴 리키시는 같은 편의 다음 리키시에게 종이를 주고 물을 떠주며 승리의 운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도효 한가운데에 있는 소금을 한 움큼 집었다가 허공에 흩뿌린다. 이는 도효의 부정을 씻어 낸다는 의미이다. 보기에도 시원한 감을 주기 때문에 리키시들은 소금을 더욱 더 멋잇게 뿌리기 위해 연습도 한다.
이어서 드디어 겨루기 위한 태세로 들어간다(다치아이).
몸을 낮추러 웅크리고 주먹을 바닥에 대고 있다가 힘차게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 격돌하게 된다.
하지만 격돌전에 상대방의 기를 꺽기 위해 바로 격돌하지 않고 김빼기 작전에 들어간다. 하지만 리키시의 등급에 따라 횟수와 시간에 제한을 둔다.
승부는 몸의 일부분이 먼저 땅에 닿게 하거나 도효 밖으로 밀어내는 쪽이 이긴다.
이때 심판은 군배(부채모양의 지시봉)로 이긴 리키시족을 가리키면서 어떤수를 써서 이겼는가를 힘차고 확실하게 선언한다.
이긴 리키시에게는 심판이 즉시 군배에 상금을 얹어서 전달해준다. 이긴 리키시는 오른손을 펴서 좌우 중앙으로 흔든다음에 상금을 집어든다. 이는 이기게 해준 신에게 감사하다는 의미이다.

기타내용
교지--리키시 바로 옆에서 시합을 진행시키며 승패를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복장은 가마쿠라 시대의 예복으로 정해져 있으며 교지의 가문과 서열에 다라 복장의 장식과 색깔이 다르다. 최고의 계급을 다테교지라고 하며 비로소 칼을 차고 도효에 오를수 있다. 교지를 담당할수 있는 사람은 대대로 기무라 가문이나 시키모리 가문 출신에 한한다.

요비다시--정해진 순서에 따라 리키시의 이름을 부르는 일, 경기중에 도효를 정리하는 일, 소금을 준비하는 일 등을 준비하는 진행역을 맡은 사람..또 스폰서의 이름이 적힌 현상막을 들고 올라가서 한바퀴 도는 일도 한다,
내용출처 : 일본 전통 문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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