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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생각 없는 유럽여행기

feel |2003.10.12 22:55
조회 7,297 |추천 0

2002년 여름, 입사 후 처음으로 길게 휴가를 제출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은 식상하고, 남들 길게 쉬기 때문에 덩달아 휴가일자 잡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휴가계획을 잡으려고 하니 뭐 하나 제대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운전이 서툴어서 멀리 가기도 그렇고, 집에서 굴러다니는 것도 하루를 못 넘길 것 같고, 그래서 기껏 만들어 둔 여권에 도장 한 번 찍어 볼 요량으로 해외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의도는 참 단순했다.

처음에는 러시아어를 잘 하는 친구가 있어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타고 붉은 광장에 서 보려고 시도했지만 내 가이드의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생각을 접었다. 그런데, 우연인가. 동창 중 한 명이 영국에 가자고 하는 제의를 한다. 게다가 그 친구는 유치원 때 영국에서 살았었고, 현재 토익이 만점이다. 쉽게 말하면 가이드를 공짜로 얻은 셈.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네 곳의 회사를 다니는 친구 4명이 영국 여행을 모의하게 된다.

그런데 얼마나 먹고 사는게 바쁘다고 서로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획된 날짜 1주일 전에도 '정말 우리 가는거냐?', '항공권 예약은?' 이런 질문들이 오가고 있었다. 결국 한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항공료를 지불 한 후 출발 이틀전에 당일 몇 시에 인천공항에서 만나자는 짧고 허탈한 여행 확정의 답변을 듣게 되었다.

출발 당일 오전 인천공항에 모였을 때, 우리는 간만의 휴가라서 그런지 미소가 살짝 번졌다. 우선 환전을 해야 할 것 같아 인터넷에서 뽑은 수수료 할인 쿠폰을 들고 은행에 가서 거금 100만원 정도 환전했는데, 영국이 아직도 파운드만 쓰고 있고 또 내가 그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어쨌든 오후 1시 KAL에 몸을 실은 후 반나절 넘게 자다깨다 반복했고,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영국 소개책을 띄엄띄엄 보면서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볼까, 그 때부터 고민했다. 어쨌든 기내식 두 끼 먹다보니 구름 밑으로 미니어처 세트 같은 건물이 늘어선 울긋불긋한 섬이 보였다. 오, 영국.

영국과의 시차는 9시간, summer time이 있으니 8시간 차이가 있어 히드루 공항에 도착한 현지는 오후 3-4시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어떻게 공항을 탈출할지부터 막막했다. 지나가는 버스도 낯설고, 누린내 나는 외국사람도 낮설어 우선 담배 한 대 태우고 머리를 맞대고 무엇부터 해야 할 지부터 고민했다. 근데 좀 목이 칼칼해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콜라 하나 빼먹으려고 하니 1파운드였다. 1파운드. 콜라 하나가 2,000원이라고 생각하니 이 나라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역시 길을 모를 때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면 되었다. 결국 지하철이 나왔는데, 처음 몇 분간은 어떻게 탑승해야 할 지 몰라 헤메었지만, 조금 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 했나 싶었고, 실제로 환승 등에서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해 런던 내 주요지역 이동은 지하철을 이동했다.

우선 숙소를 해결해야 했기에, 인터넷에서 예약해 둔 민박집을 찾아 교외인 New Molden으로 이동했다. 영국도 지하철과 국철로 구분되는 것 같은데, 주택들은 보통 2-3층으로 아담하고 각각 특색있었다. 도착한 New Molden은 한인이 비교적 많았다. 우선 짐을 풀고 요기를 할 생각으로 bar에 들어가서 fish & chips와 라거 맥주를 곁들였는데, 책에 씌여진 대로 영국은 steak와 이것이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한 것과 달리 솔직히 좀 싱거웠다. 음식이 발달된 나라는 아닌 듯 싶었는데, 어쨌든 창 밖으로 스며드는 노을을 보면서 마시는 맥주는 소문대로 맛있었다. 그런데 시차 생각을 하지 않고 그날 12시까지 돌아다니다가 숙소에서 그만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영국에 평생 있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짧은 기간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지하철 안에서라도 뛰어다니고 싶었다. 오늘부터는 무계획의 행진이라고 생각하니 신경이 좀 쓰였지만 그래도 네 명이 길거리 활보하고 다니니 별로 겁나진 않았다. 우선 지하철로 Westminster에서 내려 템즈 강을 따라 사원 및 국회의사당을 보고 Mall을 따라 버킹험 궁전, 넬슨 개선문 등 세계사 교과서에서 보던 장소들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비둘기들도 쫓아 보고, 차이나타운에 가서 북경오리도 먹어보고, 역시 믿는 건 튼튼한 무쇠 다리 하나였다.

버킹험 궁전에서 트라팔가 광장

하지만 아까부터 계속 빨간 이층버스가 눈에 거슬렸다. 책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아니 타 볼 수가 없지 않은가. 파란 상의의 차장 할아버지에게 요금을 내니 목에 걸린 종이 박스를 뱅뱅 돌려 승차권을 발급해 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1 Day Travel card라는 중요한 말을 듣게 된다. 5파운드면 하루 종일 버스와 지하철을 마음대로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판다고 하니 꼭 사기로 마음을 먹고 1파운드 버스요금으로 마음껏 시내 구경을 했다.
런던 시내 건물은 하나같이 오래된 작은 성 같아 보였다. 길거리 벤치도 몇 년도에 설치되었다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를 붙잡아 두고 있는 도시 같았다. 생각보다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한편 런던은 도로가 좁고 차가 많은 것 같은데 교통체증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도시 계획이 잘 된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처럼 길 막히면 모든 것을 포기할 일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하니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다니다 보니 우리는 안내책에 나오는 시내 주요 관광지점은 대략 눈도장 찍었다고 판단했다. 순간, '영국에 1주일이나 있어야 하나? 물가도 비싼데...'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친구들의 반응도 같았다.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고민을 거듭하다가 우리는 '도버 해협을 건너자'라는 대책 없는 결론을 내렸다.
물어 물어 도착한 Euroline 사무실에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이냐에 따른 토론을 벌였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심지어 러시아 가자는 말도 튀어 나왔다. (사실 우리는 러시아어가 전공이었는데, 러시아어를 말해야 할 때는 상당히 과묵해야 하는 실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결국 내일 프랑스행 티켓을 확보하고 런던 시내에서 밤을 보내기로 해 숙소를 구하려 다녔는데, 그제서야 한국에서 판매하는 가이드책의 신뢰수준이 100%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틀린 부분도 있고, 일본책을 베낄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그 다음부터는 'i'로 표시된 안내센터에서 제공하는 책자를 이용했다. 읽을 줄만 알면 그것만큼 정확하고 편리한 것도 사실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영국여행이 지금 성수기라는 것을 무시한 죄로 여러군데 숙소에서 퇴짜를 맞다가 결국 Museum Inn이라는 곳에 정착했다. 22파운드라는 값이 마음에 들어 요금을 지불했는데, 설마설마했다가 역시 싼 게 비지떡이라는 혹독한 교훈을 얻게 된다.
그 모텔은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촬영 장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삐그덕 거리는 눅눅한 침대 2개, 어디서 줏은 듯한 옷장, 잘 잠기지도 않는 녹슨 세면대... 피곤에 찌들은 얼굴로 서로 쳐다보니 '허허'하고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쉬기조차 부담스러워 서서히 영국의 여름저녁해가 넘어가려 할 때 우리는 Tower briedge, London briedge, Hide Park까지 다녀 왔고, 복귀 후 맥주 한 두 캔에 역시 2일차도 곯아 떨어졌다.

영국에서의 마지막 인연이라 생각하고 덤벼든 곳은 대영박물관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생각했는데 들어선 순간 입이 벌어졌다. 첫날 민박집 아주머니 말대로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만 1주일 이상을 머물만 했다. 그런데 어쩌랴. 시간이 얼마 없으니 아픈 다리 무시하고 다시 뛰다시피 걸어다녔다.
중,고등학교 때 역사 공부 열심히 해서 이럴 때 뿌듯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대영박물관은 이 나라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할 만하다고 느끼게 해 준 정말 부러운 곳이었다.
저녁 버스를 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지하철 노선을 주욱 훝어보니 낯익은 단어가 들어온다. 윔블던, 그리니치 등. 그 중 Greenwich를 골라 시간의 중심에 서 보기로 했다. 도착 후 점심을 먹고 잔디를 발견하고 잠깐 쉴 생각으로 누웠는데 몇 십년은 살았을만한 나무들이 엄청난 그늘을 제공해 주었다. 결국 잠들고 말았다는 뜻이다.

영국 잔디/공원문화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우선 연중 고른 기후가 있으니 별도의 관리를 안 해도 잔디는 고르게 자랄 듯 싶었다. 여의도 공원보다 넓은 공원도 흔했다. Hide Park에서는 그냥 정문에서 후문으로 빠져나갈 생각으로 걸었다가 뼈저린 다리의 고통을 경험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가족, 연인끼리 나와서 한가로이 햇볕을 쬐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이들의 여유였다. 누워서 살살 부는 바람을 느끼며 잠들 때 나는 인생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많이 고민했다.
매일매일 성공과 가족의 안정된 삶, 경쟁에서의 우위를 위해 너무 맹목적으로만 치닫지는 않는지, 숨쉴 틈 없는 긴장과 촉박함에 지나치게 길들여 있지는 않은지.
물론 문화차이가 있으니 이들의 여건과 사생활 및 그들의 고민이 비교대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대다수의 영국인이 이러한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면 어쨌든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쉬러 온 휴가에 거꾸로 몸이 망가졌지만 이런 생각을 시도한 것만으로 휴가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 당시에는 지치고 목말라 그런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영국의 이미지는 교과서에서 배우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신사의 나라'만은 아니었다. 얼굴 하얀 백인만 있을 줄 알았더니 인도, 이슬람 계열까지 각종 인종이 섞여 있었고, 그에 따라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 성향도 있는 것 같았다. 물가는 한국인의 상식을 초월한 편이어서 껌 하나 살 때도 가슴이 덜컹덜컹 거렸다. 듣던대로 멀쩡한 젊은 거지도 많았고, 긍정적인 부분을 보면 도시와 자연이 잘 보존된 나라였다.

제대로 영국을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겠지만 어쨌든 내가 본 짧은 이 나라는 해가 넘어가면서 서서히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근데 Euroline이 프랑스로 방향을 잡고 도버해협에 도착할 즈음 국경에서 출국심사를 하는데, 왠 여자 공무원이 버스에 올라 여권 한 번 보더니 'thank you'하고 사라져 버릴 때 이게 출국심사의 전부라고 생각하니 허탈했다. 유럽공동체. 날 믿으니 널 믿겠다는 국가간의 단적인 약속. 북한에 이런 식으로 한 번 넘어갔다 왔으면 좋겠다.

버스는 도버해협에서 엄청나게 큰 배에 올라탄 후 바다를 지나 자연스럽게 프랑스 땅을 밟았다. 해가 서서히 치솟고 어둠을 물리칠 무렵 드넓은 초원에 드문드문 집이 보이고 짚더미가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찜통 같은 버스 안에서 정신 없이 자고 있었기 때문에 띄엄띄엄 기억이 나지만 참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아, 프랑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생각치도 않게 프랑스로 도착한 것이었다.

오전 6시경 역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그 역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로만 씌여있었던 것이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영어 구경하기 힘드니 기분이 좀 묘했다.
우선 만만한게 지하철이니 타려는 순간,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유로 단 1센트도 없고 오로지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려진 화폐들 뿐이었던 것이다. 애초 한국에서는 프랑스는 생각도 안 했기에 환전은 당연히 파운드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호텔에서 바꿔 주겠지 하고 생각하고, 인근 호텔에서 우리의 토익 만점 친구가 유창하게 물어본 결과, 입에 침을 가득 괴고 뭐라 쑹얼쑹얼 하기만 하는 것이다. 'Can you speak English?' 이 말은 또 어떻게 알아 들었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댄다. 옆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가이드가 거의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초반부터 자포자기할 무렵 무심코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안내책 들고가서 몸짓발짓을 해대니 영어를 그나마 아주 조금 할 줄 알기에 가장 가까운 은행과 샹젤리에가 어딘지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2시간 만에 조그만 희망이 다시 찾아 온 것이다. 근데 은행 열리기만을 기다리자니 너무 한심해 우선 처음 도착했던 역으로 다시 갔더니, 이런. 한 구석에 환전소가 멀쩡히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우릴 바보로 만든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면 'exchange money'라는 말은 전혀 몰랐던가.

영국에서도 숙소 때문에 고생해서 프랑스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심정으로 우선 민박부터 찾았다. '로뎀민박'이라는 곳으로 결정이 되어 지하철로 이동한 후 힘들게 찾아갔는데, 여긴 영국 '트레인스포팅 촬영장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배낭여행 하는 학생들이 머물렀다 가는 곳인가 본데 햇빛도 없는 지하 골방 구석에 찢어져서 그냥 쪼그려 자야 하는 곳이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프랑스는 영국에서의 자신감과는 정반대의 나라였다. 가방 들고 다니기도 힘이 들어 오늘만, 정말 오늘만 이런 곳에서 잔다는 생각으로 돈을 지불한 후 지하철을 타고 시내라고 판단되는 지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보니 왠 강 주변에 영국보다 더 아름다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게 센강인가 보다'하고 다리 옆의 표지판을 보니 대략 뽕네프라는 발음이 이루어졌다. 기쁘다는 말 밖에.

프랑스에서의 여행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유명사가 너무 어려우니 지하철은 좀 부담스럽고 영국에서 탈까 말까 갈등했던 Tour Bus에 올라탔다. 요금은 생각보다 비쌌지만 파리 시내 관광지를 이틀간 마음대로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말에 숙소로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다시 기분이 상쾌해졌다. 노틀담, 콩코드 광장, 개선문, 에펠탑 등 파리를 여행한 사람이면 누구나 거쳐가는 센강 주변을 마음껏 눈에 담아두었다. 에펠탑은 그냥 지나치기 미안해 우선 내린 후 줄을 섰는데, 오늘 중에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잔디에서 휴식을 취했다. 에펠탑.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쳐다보니 어떻게 만들었을까 너무 궁금해서 잔디만 보면 누워버리는 친구들이 뻗어서 자는 동안 안 되는 실력이지만 그림을 그려 보았다. 여긴 예술의 도시니까.

휴식이 길다 싶을 무렵 다시 Tour Bus에 올라 탔다. 출발전 좀 씁슬한 구경을 했는데 그건 바로 경찰이었다. 피부가 검붉은 것으로 봐서 프랑스인은 아닌 것 같은 외국인이 조그만 바구니에 생수를 들고 다니면서 관광객에게 물을 파는데 그것을 발견한 경찰 두 명이 그것을 압수하고 바구니를 칼로 찢고 물을 죄다 버리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법을 어긴 것은 잘못이지만 저런 식으로 하루 생계를 찢어버릴 필요까진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좀 우울했다.

해가 질 무렵 개선문과 상젤리에 거리는 걸어다닐만 했다. 내가 파리에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니까. 물론 10차선 정도의 도로 양 옆으로 노천까페와 패션몰들이 프랑스라는 것을 말해 주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좀 규모큰 압구정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파리의 까페는 한 번 가봐야 하니 어둑해 질 무렵 맥주 한 잔에 무난하다 싶은 고기 요리를 시키고 분위기 잡아 보았다. 하지만 시꺼멓게 변한 면도 안 한 동양인 총각 네 명이 잔을 부딪히고 꿀꺽꿀꺽 마시는 모습은 그리 볼 만 하진 않았나 보다. 웨이터는 왠만하면 나갈 것을 원하는 눈빛이었다. 숙소로 돌아갈 때는 눅눅하고 쾌쾌한 침대가 생각나서 다시 술 한 잔 더 하고 싶었다.

희망의 아침은 역시 다시 밝아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 일찍 짐을 챙겨 '다신 이 민박집 안 안 온다'는 결심을 한 후 또 다시 파리 시내로 뛰쳐 나갔다. 어제 못 본 곳들. 특히 루블 박물관은 반드시 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내가 아직 한참 젊다는 것은 맞는 말 같았다.
여러 곳을 보다가 귀국할 날이 며칠 밖에 남지 않았고 항공권엔 영국 히드루 공항으로 찍혀 있기 때문에 KAL 파리지점을 우선 찾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일이었다. 벤치에 앉아 담배 물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런던처럼 파리도 루블박물관 정도만 보면 왠만한 곳을 다 찍고 다닌 셈이어서 또다시, '다른 나라로 또 이동?'하는 발칙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의견이 서서히 쪼개지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항공사 직원인 친구 하나는 우리보다 하루 일찍 귀국해야 하니(시차 때문에) 독일 정도를 희망했고, 다른 친구는 네덜란드, 또 다른 친구는 '프랑스 좋잖아'하고 체류를 희망. 난 가능하면 단 하루에 수십개 나라를 돌아다니고 싶었다. 결국 그 찜통 같던 Euroline을 다시 타기로, 항공권은 독일에서 돌리기로 결정했다.

루블박물관에 도착했다. 영국에서는 시간이 없어 전부 못 보았지만 이 곳만큼은 사수하겠다고 착각했다. 왜냐. 루블이 훨씬 더 큰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광장을 둘러싼 'ㄷ'자 모양의 건물 전부가 박물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물관은 총 3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시간 뒤에 만나기로 했는데 나름대로 뛰어다니면서 훝어만 본다고 한 것도 결국 극히 일부분 밖에 보지 못했다. 길까지 잃어버릴 정도로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보람은 있었던지 '모나리자'와 '비너스'는 결국 알현했다.

프랑스에서 하나만 꼽으라면 루블박물관을 서슴치 않고 선택한다. 가 본 사람만이 그 웅장함을 알 것이다. 교과서에 조그맣게 실린 작품들이 실제크기는 몇 미터씩이나 되고 박물관에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나같은 문외한도 예술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고 부러울 때가 생긴다. 파리는 정말 예술이 왜 위대한지를 간단히 보여주는 도시였다. 밖으로 나와 뽕네프 다리 밑에서 영화 한 편 떠올리고 센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보고 몽마르뜨 언덕까지 가 본 후 마무리한 파리는 내 머릿속에 현상되길 기다리는 필름처럼 새겨져 있다. 파리는 누구나 추천해 주고 싶은 도시임이 분명하다. 영어가 잘 안 먹혀 들어가는 것 빼면.

불편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가지만 더 추가하면, 영국, 프랑스, 뒤에 나올 독일도 마찬가지이지만 도대체 물 마시기가 힘들다. 프랑스가 물이 귀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도대체 물 파는 곳이 드물다. 게다가 까페, 음식점 등에서도 물은 공짜로 주는 곳이 흔치 않다. 우리나라처럼 '아줌마, 여기 얼음물 한 잔 주세요'하는 말은 유럽에선 돈 주고 얘기해야 한다. 10미터씩만 걸어도 구멍가게 쉽게 발견되는 우리나라가 보고 싶었다.

목마른 것이야 좀 견디면 되지만 화장실은 정말 고통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신호가 급하게 올 때 지하철로 가거나 근처에 보이는 상가 2,3층만 올라가도 만사 오케이인데 이 나라들은 공공장소에도 화장실이 드물다. 더 재미있는 것은 100%에 가깝게 유료라는 것. 그것도 지정된 단위의 동전을 집어넣어야 한다. 유럽사람들은 합리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입석과 좌석요금이 동일하다. 재미있지 않은가?
쉽게 말하면 배앓이 하는 지폐 밖에 없는 여행객이 고통을 느낄 때 엉기적 거리면서 화장실을 간신히 찾아도 교환소가 없거나 동전교환기가 없고 심지어 고장났을 경우, 갑자기 그 나라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비단 본인의 일만은 아닐 것 같아 언급했다.

어쨌든 오늘 해가 지고, 한 번 더 Euroline안에서 버티면 독일로 건너 갈 계획은 유지되는 것이다.

Euroline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항상 밤부터 새벽까지 이동했기 때문에 경치 구경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 국가인 독일에서 조그만 사고가 발생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려야 하는데 정신 없이 자다 보니 만하임이란 곳으로 지나친 것이다.
이번에는 독일어에 적응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독일어였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가이드 비슷한 행세를 하게 되었다. 제2외국어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독일어 하면 기억남는 것이 우선 '사랑해'와 'Der, Des, Dem, Den, Die, Der...'하는 정관사 외우기일 것이다. 내 수준도 거기에 머물러 있었지만 독일어는 읽기는 쉽다는 장점 때문에 우선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 놓고 가이드북 마지막에 있는 기본 회화를 읽어 댔다. 그랬더니 이 독일인이 반응하는 것이다. 소박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대답이 영어인 것을 알고 나서 허탈해졌다. 독일인은 생각보다 영어를 잘한다.

만하임은 작은 도시였기에 길을 물어 역으로 이동한 후 프랑크푸르트행 열차를 탔다. 속도는 빠른 편이었고 깔끔하고 쾌적했다. 얼핏 중,고등학교 때 독일이 철강, 석탄, 기차 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배운 것 같았다. 확실히 철도 인프라는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히틀러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프랑크푸르트역은 상당이 낯익은 이름이다. 독일어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지역이기에. 독일하면 맥주와 소시지가 유명할텐데, 때마침 역내 한 가게가 소시지를 구운 후 빵에 끼워 2유로에 팔고 있었다. 출출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맥주와 같이 서서 먹었는데 입맛에 잘 맞았다. 배고플 때 이런 것이 있으면 마냥 흐뭇해 지니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은 듯 하다.

역 앞에 나가 보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물 가게가 있어 우선 근처에 있는 건물 5층에 있는 민박을 소개 받았는데, 가보니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다. 독일 건물이 그렇듯 크진 않지만 깨끗한 침대에 미끌미끌한 바닥, 머리털 하나 없는 욕실, 저렴한 가격 등 영국, 프랑스에서의 슬픔이 한 순간에 물러 갔다. 너무 반가워 샤워 후 한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였는데, 고향에 온 것 같았다. 사람이 환경에 이렇게 민감하다는 것을 예전에 몰랐다.

컨디션을 회복한 후 이제 항공권을 돌리기 위해 KAL 지점을 찾았는데, 가이드책에 나온 지점이 이전했다는 선물가게 아저씨의 조언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독일에선 라인강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결의가 불타 올랐다.
그러나,
성수기여서 남은 좌석이 없다는 날벼락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눈 앞이 깜깜하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모레는요?' 월차 하루 더 내는 것을 감안한 최후의 보루에 대한 답변 역시, '없는데요.'였다.

그럼 다시 영국으로?

싫었다. 그러면 인근 국가인 스위스로 건너가 비행기 잔여 좌석을 기대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데,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하루 먼저 가야 한다는 친구의 표정은 이미 그늘이었다.
진지하게 상의한 결론은 역시 영국 히드루 공항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우측으로 계속 이동을 했는데, 한 번에 다시 원위치 해야되는 고무줄 같은 상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역 옆에 Euroline 사무실이 있기에 물어보니 'no'였다. 그동안 불편하지만 싼 맛에 잘 이용했던 Euroline마저 중요한 순간에 배신한 것이다. 결국 기차인가? 하고 역 안에 들어가 이리저리 알아보니 저녁에 유로스타로 갈아타는 좌석이 있는데 무려 300유로라는 것이다. 300유로면 1주일 경비로 챙겨온 돈의 30%이다. 우습게도 남은 돈도 그 정도였다. 경비 아끼기 위해 맛있는 것도 꿀꺽 참으며 샌드위치 등으로 연명했는데 결국 이렇게 허탈하게 날아갔다. 운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리 없었다. 우선 기차 예약한 후 독일과 이렇게 이별하는 것이 서러워 괴테 하우스란 곳에 한 번 가 보았는데, 별로 기분이 나지 않아 대충 보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으로 깨끗한 숙소를 잡았는데 자 보지도 못하고 나갈 생각을 하니 억울해서, '내일 아침 못 먹게 될 것 같은데 지금 주시면 안 되나요?'했더니 사발면과 김치, 찬밥을 내어 준다. 그렇게 그리웠던 라면을 이렇게 먹게 될 줄이야.

저녁이 되고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오토바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앞 골목에서 소리가 나길래 쳐다보니 왠 흑인들이 골목에서 나타났다. 가이드북이 갑자기 생각났다. '밤에 역 주변을 배회하지 말 것. 스킨헤드나 나치 숭배자들 출현...' 낮에 본 스킨헤드가 기억났다. 그 때는 우리끼리 스킨헤드가 우리 잡아가서 개 목걸이 걸고 질질 끌고 다니는 것 아니냐고 농담하면서 낄낄 웃었는데, 어둑어둑해지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역 안에 미리 들어가 대기하다가 결국 밤기차에 몸을 싣고 우선 프랑스까지 달렸다. 기차안에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안내책자에 있는 몽마르뜨 언덕 위 Sacre-Coeur라는 성당을 그렸다. 거의 다 완성하니 프랑스에 도착했고 여기서 유로스타를 타게 되었다. 가이드북을 보니 '유로스타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고 갈 것'으로 되어 있었다. 씁슬했지만 또 이렇게 유로스타까지 타게 된 것에 대해 위안을 삼았다. 빠르기는 정말 빨랐다. 갈 때 배로 유유히 건너던 도버해협을 지하로 10여분만에 관통했으니 말이다.

다시는 올 일 없다고 생각한 런던이 아침이 또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여기는 또 파운드만 쓰니 환전을 해야 하는데 주머니 털어보니 지폐 한 장과 큰 동전 한 개. 나머지 잔돈은 환전 안 될 테니 어쩔 수 없이 기념품이 되었다. 환전도 여러번 거치니 큰 돈들이 작은 돈으로 바뀌었다.
이것으로 지하철 한 번 타고 만만한 공원으로 이동하니 아찔아찔하게 공항까지 갈 교통비만 남았다. 점심이고 뭐고 잔디에 누워 선글라스를 끼고 잠들기를 주문했지만 잠은 이미 달아났다. 일주일간의 역마살이 필름처럼 흘러가고 그 속도에 맞추어 꼬르륵 소리가 진동했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맥도널드에 들어갔다. 그래도 가장 싸다고 판단되는 곳은 전세계 독점 패스트푸드 점이었다. 정말 세계 어딜가도 햄버거 맛이 똑같았다. 프랑스도 그랬다. 이제 돈이 한 푼도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이래 봐도 한국에서는 나를 믿고 카드 회사들이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지 않았던가. 숨겨두었던 카드를 꺼내고 자판기 앞에 서서 딸랑 지하철 표 한 장을 카드로 긁었다. 엄연히 세계화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히드루 공항에 다시 도착했는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도대체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았다. 공항에서 초라한 몰골로 다시 KAL에 몸을 실었다. 갈 때는 8시간 이득을 본 셈이었지만 올 때는 반대였다. 현지에서 토요일 출발한 비행기는 시간이 흐르는 경계선을 넘어 일요일 오후인 한국에 도착했다.

또 가기 전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일주일 뒤 우리나라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장마에 젖어들고 있었다.

휴가 어디다녀 왔냐고 물어보면 '유럽 핵심 3개국'이라고 대답한다. 계획이라는 단어 없이 무작정 다녀온 영국, 프랑스, 독일. 남들도 흔히 다녀오는 곳일 수도 있겠지만 불안한 마음에서 출발한 이후 막막할 때 마다 길을 열어준 것은 적극성과 자신감이었다. 자유로운 언어 구사도 이것만큼 빛을 발휘하진 못할 것이다.

영국의 역사와 전통을 순례하고, 프랑스의 예술혼을 느끼며, 독일의 정숙함을 철저하게 준비된 계획으로 알 수도 있었겠지만, 짧은 시간에 하나라도 더 봐야한다는 집착과 막히면 뚫어버린다는 자신감. 일단 가 본다라는 단순한 의지만으로도 해외여행은 해 볼 만 한 것 같다.
자칫 단순하고 안정되고 편안할 뻔 한 여행이 마음껏 흐트러진 것에 대해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고맙게 생각한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 없이 다녀오고 싶다. 별 걱정이 안 되는 걸 보니 두 달 치 월급을 바친 보람이 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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