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와 셀린이 다시 만났다. 9년 만의 일이다. 9년 전에는 해가 떠오를 때까지 같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해지기 전까지의 짧은 만남이다. 9년 전에 둘의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지금 둘은 서른두 살이 됐다. 예전에 부다페스트발 파리행 기차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의 만남 역시 가벼운 우연처럼 보인다. 제시는 뉴욕에서 성공한 작가가 됐다. 9년 전 셀린과의 만남을 소재로 쓴 책 ‘디스 타임’ 덕이다. 책의 홍보를 위해 제시는 유럽투어를 갖게 되고 파리의 한 서점에서 마련된 사인회에 셀린이 마치 지나가다가 들른 것처럼 그를 만나러 온다.
하지만 둘의 마음이 과연 그렇게 가벼운 것이었을까. 그렇게 가장한 것일 뿐인 게 아닐까. 예전에 서로의 성도 모른 채 헤어진 둘은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서로를 찾아 끝없이 헤매왔다. 제시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기까지 갖게 되는 수다스럽고 경쾌하면서도 (영화의 러닝타임처럼 딱 1시간20분밖에 주어지지 않는) 속도감 있는 만남은 역설적으로, 둘이 마치 한순간의 찬란한 햇빛처럼 과거에 경험했던 사랑의 원형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그간 얼마나 애태웠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