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양래(陽來). 본관은 동래(東萊). 1725년(영조 1) 정시문과에 급제, 27년 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홍문관응교에 올랐다. 29년 사헌부지평으로서 조정의 기강확립을 위해 군왕의 자세와 수양 등에 관하여 상소하였다. 32년 전라도암행어사로 나가 지방행정을 살폈으며, 33년 사헌부지평에 재기용되어 인재선발에 신중을 기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뒤 전라도경차관(全羅道敬差官)·전라도관찰사 등 외직을 거치면서 조세감면, 구제양곡 확대 등 백성의 고충을 더는 데 힘썼다. 53년 호조참판·대사간 등을 지내고 이듬해 정경(正卿)의 반열에 올랐다. 이어 형조판서·호조판서·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혜민서제조(惠民署提調) 등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관원들의 기강확립과 민심을 존중하는 올바른 행정처리, 안민(安民)을 위하여 수령선발에 신중을 기할 것 등을 상소함으로써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청렴강직한 모범관리로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