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중순에 접어들자 날씨는 더욱 차가워지기 시작합니다.
지난 가을 길옆에 길게 늘어서서 하얀색 연분홍색 그리고 붉은 색의 옷으로 치장을 하고 오
가는 길손을 반겨주던 코스모스는 이제 까만 씨앗까지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고 앙상한 가지
만 남아 초겨울의 쓸쓸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을 앞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감나무는 모든 잎을 떨어뜨린 채 빠~알간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서 초겨울의 깊은 잠에 빠졌는지 조용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바라본 마을 앞 건너편 논둑에 지난 가을의 아름다움을 안내하고 서 있던 억새
의 하얀 수염은 모두 뜯겨나간 채 누렇게 변한 앙상한 뼈대만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겨울인가? 아직은 11월인데!” 하는 아쉬움을 오토바이에 싣고서 오늘도 이 마을
저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저의 발길은 분주하기만 합니다. 전남 보성군 노동면 대련리
한재마을의 입구에 들어서면서 “저쪽 할머니 댁에 등기 우편물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
자 할머니 댁으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할머니 계세요?” 하고서 할머니를 부르자 “엉! 아저
씨가 오랜만에 보이네! 우리 집이 뭐시 와으까?” 하시며 저를 반기십니다.
“할머니 박창균 씨라고 아세요?”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우리 아들이 박창균이여 그
란디 뭐시 왔간디 박창균이를 찾어싸?” 하십니다. “노동면사무소에서 아드님에게 등기편지
를 보냈는데요! 여기다 도장 한번 찍어주세요!”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그란디 나랑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닌디 내가 도장을 찍어 줘부러도 괜찮하까?” 하십니다. “아니 할머니
박창균 씨가 할머니 아드님이라면서요!”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거시기 창균이가 여가 안 살고 저그 서울서 살고 있는디 편지가 이리 온께 하는 말이여!”
하십니다. “할머니 그러면 아드님이 여기는 안 오시나요?” 하였더니 “오기는 오제 으째 안
오간디 늘 왔다갔다 하제! 그란디 내가 편지 받었다고 누가 나 잡어가 불문 으짜껏이여?”
하시며 빙긋이 웃으시는 할머니에게 “제가 할머니는 절대로 못 잡아가게 할 테니까요 그런
것은 걱정 마시고 이 편지를 받아놓으셨다가 나중에 아드님 오시면 드리세요!” 하였더니 할
머니께서는 “안 그래도 우리 아들이 낼모레 또 오껏이여!” 하시며 도장을 내어놓으십니다.
도장을 내어놓으신 할머니께 다시 도장을 돌려드리고 저는 다시 다음 마을로 향합니다. 그
래서 도착한 마을은 대련리 적련 마을입니다. 그리고 적련 마을의 우편물의 배달이 거의 끝
내고 마지막 백형남 씨 댁으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백선옥 씨 등기 편지 왔어요!
빨리 나오세요!” 하였더니 “엉 뭣이 왔다고? 우리 선옥이 한테 등기 편지가 왔어?”하시며
할아버지께서 나오시더니 아랫방을 향하여 “선옥아! 선옥아~아!” 하시며 손녀를 부르십니
다.
그러자 “예! 할아버지!” 하고 대답을 하는 소리가 들리자 “선옥이 너한테 등기 편지가 왔단
다! 빨리 좀 나와 보거라!” 하시자 급히 방문 여는 소리와 함께 한달음에 저의 곁으로 달려
옵니다. “선옥 씨 회사에서 등기우편물이 왔는데 아마 좋은 소식인가 봐요?” 하는 저의 말
에 아가씨는 빙그레 웃으며 무엇인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저에게 우편물을 받아갑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할아버지께서 “아가! 그것이 무엇이냐? 이리 좀 줘봐라!” 하십니다.
그러자 아가씨는 할아버지에게 방금 저에게 받았던 등기 우편물을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
드립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우편물을 찬찬히 살피시더니 “요전에 네가 이력서를 제출했
다던 그 회사에서 보내온 등기 편지인가 보구나! 어서 가서 편지를 뜯어보아라!” 하시며 할
아버지께서 편지를 되돌려 주십니다. 그러자 “예! 할아버지!” 하며 공손히 두 손으로 우편
물을 되돌려 받더니 아가씨는 얼른 아가씨의 방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달려가는 손녀의
뒷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할아버지께서는 바라보고 계십니다.
저는 다시 백형남 씨 댁을 나와서 다음 마을인 장자 마을로 향하면서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버릇없는 젊은이 또는 잘못 길들여진 젊은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가끔씩 듣곤 합니다.
그러나 방금 같이 아무런 내색 없이 할아버지께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손녀가 있는 한은
아직 까지는 버릇없는 젊은이는 결코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