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일 촛불 집회 후기
maphysian
|2008.06.02 16:23
조회 141 |추천 0
자전거를 끌고 길을 나섰다. 프로젝트도 끝이 나고 여행이라도 훌쩍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무렵 촛불 집회는 어떻게 되었지라는 생각에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도 참석하자고 즉석에서 결정해 버렸다. 지하철로 갈아탄 후 시청에서 내려 후배를 만났다. 한참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저기로 방향을 잡는 시위대 때문인지 경찰은 우왕좌왕하는 듯이 보였다. 시청에서 출발하여 이순신 동상에 이르렀다. 미 대사관을 겹겹이 에워싼 경찰과 경찰차량을 보며 '참, 고생한다.'라는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거긴 참 중요한 곳인가 보다. 대한 민국 어디보다도 저리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라는 생각이 들무렵 우리는 어느새 광화문 정면에서 왼쪽으로 돌며 청와대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거리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부부터 쌍둥이와 야구점퍼를 입으신 아버지, 등산행 복장을 하신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나오신 노부부도 눈에 띄었다. 구호를 외치는 여고생들과 간만에 본 대학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고려대에서도 나왔지만 10명 남짓해 보였다. 하는 짓들이 귀여울 정도로 어린 학생들로부터 청년,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다양한 인적 구성원들에 놀랐고, 평화적인 분위기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가던 참가자들이 경복궁역을 끼고 청와대로 올라가는 길에서 멈춰섰다. 10여분이 흘렀지만 더 이상 올라가지 않기에 앞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다들 까치발을 들고 서 있지만 선뜻 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나서지 못하는 눈치들이다. 아저씨들이 한마디씩 하고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이 아이들을 어깨로 올리기 시작한다. 나도 후배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져 참을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 물을 뒤집어쓴 사람들과 마주쳤다. 부러진 안경을 손에 쥐고 젖은 생쥐 마냥 오들오들 떠는 모습의 어린 여학생은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쉽게 짐작케했다. 정면에 막아선 경찰차앞에서 왼쪽 인도위 가로수 뒤편에 자릴 잡았다. '비폭력'을 외치는 일단의 학생들과 완전히 차단되어 틈새없이 빼곡히 메운 전경들의 방패가 보였다. '여기서 진출이 막혔구나. 여기까진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경복궁 담장에 자리 잡은 기자들의 카메라 셧터가 연신 눌려졌고 경찰 쪽에서도 채증이라는 명목하에 전경 몇 명이 올라가 사진을 찍고 캠코더를 돌리고 있었다. 집회 참석자들의 손에 빼곡히 들려진 고시철회 피켓 종이와 쉴새없이 터지는 카메라들이 여기가 무슨 콘서트 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전도였다. 재밌었다. 솔직히 말해서... 대학 초년병 때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나갔던 시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틀렸다. 폭력도 없었고 즐겁게 들리는 구호 소리에 나도 어느새 동참하고 있었다. 그 뒤 경찰 쪽의 몇 번의 경고 방송이 나왔고 월드컵 때 처럼 태극기가 머리위로 지나갔다. 전경 버스를 잡고 흔드는 모습이 몇차례 연출되는가 싶더니 불끌 때나 나오는 소화용 호스가 크레인에 달려 올라왔다. 설마, 저걸로 쏠려나? 라는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물이 쏟아져 나왔다. 오른쪽에 전경 차량을 흔드는 쪽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을 향애 직접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주자. 까짓거 맞는것 쯤이야~.'이런 생각이 철없음을 온몸으로 맞고 나니 금새 깨달았다. 순간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수압에 나무 뒷편으로 몸을 숨기고 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핏 보니 후배도 청자켓으로 쏟아지는 물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엄청 젖겠다.'는 생각이 들무렵 물의 방향은 도로쪽의 태극기를 들고 있는 쪽으로 향했다. 수압을 못 견디고 사람들이 태극기를 받쳐든 쪽으로 모여들었고 '열혈' 이라고 쓰인 깃발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물에 젖어 축처졌던 깃발은 물의 수압 때문에 다시 펄력였고 사람들은 버티라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 무슨 . . .도대체 물을 쏠 정도로, 그것도 사람들에게 직접 쏠 정도로 이들이 폭도란 말인가? 손에 촛불 들고 물에 가릴것 없이 빈손 쥔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리 쏘아 대는지... 우리 앞쪽에서 물을 맞던 여자 두명은 얼굴을 감싸고 서로 껴앉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의 물쏘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연호하기 시작했다. 잘 견뎌내었다는 서로에 대한 환호인거 같았다. 우리 앞쪽의 검은옷을 입은 사람은 기자 같아 보였다. 젊은 여성과 서로를 알아보고 '선배' 이러더니 어떻게 한 곳에 두 팀이 나왔냐고 얘기를 하던 중 물벼락이 떨어졌다. '내일 나올 뉴스서 보니 이번 시위의 배후가 밝혀졌다는거 같아' 이렇게들 얘기하는거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쪽으로 물세례가 떨어지니 이 사람도 손에 카메라를 쥔 여성분도 정신을 못 차리는거 같았다. 만일 이 분이 보수 언론사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면 이렇게 물을 맞고서도 그런 말이 나올까란 의문이 든다. 앞에서 오들오들 떠는 여자 두 분을 뒤로 보내고 우리도 옷을 짜기 시작했다 . 날벼락이었다. '무지막지 하구만.' 이라는 말과 함께 욕지기가 절로 새어 나온다. '그래, 함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오늘 밤은 왠지 길어질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