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9. 7(토)
05:30경 일어나 씻고 식사를 마친 후 딸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파트를 나와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가방을 싣고 바로 우리 아파트 앞의 정류장에 내렸다. 아내를 보내고 차를 기다리는데 공항버스가 잇달아 무정차 통과하여 이거 늦게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을 하는 차에 10분이 못되어 버스가 왔다. 나 홀로 승차했다. 뚝뚝한 운전사의 말투에 대꾸할까 말까 하는 사이 몇 정류장을 거치면서 몇 사람이 더 타더니 반포에서 ㅇㅎ이 승차한다.
집합 10분 전 쯤 인천공항 대한항공 사무소 앞에 내려 두리번거리니 일행들이 맞아준다. 총무의 안내에 따라 여권과 항공권을 받고 확인하고, 출입국 신고서를 영어로 작성하느라 애를 쓴 다음 각자 가방을 부친다. 11:15 출발이니 출국 수속을 마친 후 10:45까지 탑승구 입구에 모이란다. 아까 필름을 샀을 때 여점원에게 필름을 끼워 달랬더니 작동이 안 된다. 삼성전자 매장을 찾아가니 예상외로 간단히 해결해 주었다. 그 원인은 필름을 너무 많이 뽑아 끼웠기 때문이란다. 공항 면세점을 ㄱㅈ의 지적대로 아이 쇼핑 아니 윈도우 쇼핑하며 시간을 보냈다. 난 운동화인데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구두다. 동종의 업에 종사해도 사람마다 이런 생각 차이...
비행기에 들어가 좌석을 보니 가운데 좌석 그룹의 오른 쪽 끝자리다. 내 왼쪽에 ㅅㅇ이 앉아 있었다. 남자에게 양쪽으로 포위 당한 그녀를 위해 좌석을 맞바꾸었다. 조금 늦게 11:30경 KAL기로 출발한다. 북태평양과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장 14시간의 장도다. 개별적으로 보험까지 들어 두기는 했지만 잠시 기도를 드린다. 가족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정면 스크린에 붉은 항로가 나오고 영화가 나오고 체조가 나오고 하더니, 식사가 나오고 음료수가 나온다. 가급적 자지 말라는데 잠깐씩 눈도 붙이고 화장실 간다며 통로를 걷기도 한다. 그러던 차에 옆의 ㅅㅇ이 여승무원에게서 화장품을 사는 걸 보고 조언을 들어가며 고심 끝에 나도 여러 개 샀다. 물론 선물 걱정을 일찍 덜기 위해서다.
얼마가 지났을까? 화장실 옆의 창문 가리개를 살짝 들어올리니 바다 같은 호수가 밑에 있는 게 아닌가? 그 곁의 아줌마에 의하면, 그 위를 아주 한참을 날아 왔다는 것이다. 5대호의 하나일 것이다. 숲, 호수 사이에 도시가 자주 점점 뚜렷이 보이더니 움직이는 차량도 식별된다. 스크린의 붉은 항로는 우리가 Washington에 접근함을 알려 준다. 시계 바늘을 한 시간 뒤로 돌린다. 우리는 9월7일 낮에 출발, 14시간을 지났는데도 9월7일 낮에 도착...
드디어 바퀴가 땅에 닿는 진동을 느끼더니 멈춘다. 안전 착륙! 요즈음 비행기 사고가 오죽 많은가? Dulles Washington International Airport. 입국 수속을 위해 길게 늘어서며 예상 질문에 답변할 준비를 했다. 9?11이 가까워 출입국 관리가 더 엄격해졌다고 하지 않는가? 여행 목적을 묻길래 training이라고 했더니 스탬프를 꽝 찍는다.
한참을 기다려 가방을 찾은 후 밖에 나가니 눈부신 햇살 속에 하얀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흑인 운전사가 운전하는 육중한 버스에 얼핏 동남아 계열로 보이는 육중한 가이드가 자신을 소개한다. ㄱㅅ! 그가 앞으로 10박 11일 동안 우리와 동식, 동숙, 동락할 가이드다. 가이드에 따라 여행의 질은 천차만별 아니던가? 그는 자기도 한국에 있을 때는 몸매가 괜찮았는데 미국에서 여기 식으로 먹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자기 몸매 해명부터 시작한 후, Washington의 유래, 지형, 현황을 설명했다.
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는 건국 후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나 대도시 뉴욕이 바다에 면해 있어 전쟁 때 피해가 컸으므로, 프랑스인 기술자의 설계로 내륙에 계획도시로 건설했다. 위치는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의 경계인 포토막강의 양안에 다이아몬드 형태로 구획했다. 미?영 전쟁 때 대통령 관저 등 피해가 크긴 했으나 그 후 외침 등의 피해 없이 지금껏 수도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흑인 인구의 급증으로 시장도 흑인이 되고, 밤에는 시내에 백인은 대통령만 남는 다는 재담이 나올 정도로 담세 능력 있는 백인은 인접 Maryland와 Virginia로 가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시 재정이 매우 어렵다. 그러나 정보 통신 등 첨단 산업 관련 회사들이 버지니아에 몰려들어 이 지역의 집 값이 미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치솟고 있다. 한국인들도 모여들어 포토막 강 서쪽에 있는 Virginia주의 아난데일, 폴스처치, 메릴랜드주를 중심으로 한인 타운이 형성되었는데 약 10만이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Virginia의 한인 타운에 있는 한식 식당으로 향하는데 길가에 숲이 우거져 있고 사이사이에 살짝 숨어 있는 사무실 건물은 꼭대기에 회사 이름을 달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미국식 목조 주택이 나무 사이로 늘어서 있는데 다 상당한 고가란다. 집집마다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다.
그런데 흑인 남녀 학생들이 알림판과 손을 흔들며 주유소에서 호객 행위를 한다. 우리 식으로 아르바이트하나보다 했더니 봉사활동 자금 확보를 위한 아르바이트란다. 그러면 지나가는 운전사들이 주유를 함으로써 협조를 한다고. 한참 가다보니 이번엔 한글, 영어 알림종이를 흔드는 한국계 아이들이 보인다. 봉사활동은 이 곳에서 중요한 교육과정의 하나란다. 우리의 봉사활동과 그 교육은 어떤가...
가는 길에 보니 차들이 대낮인데도 다수가 전조등을 켜고 있다. 마침 서울에서도 버스 먼저 시범적으로 전조등 켜기를 하고 있는 게 생각난다. 선진국에서는 전조등 켜기로 교통사고가 30%나 줄었다고 한다. 한식당 이름은 한성옥, 넓은 주차장이 달려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서 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모두들 맥주로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축배들 들었다.
16세기 후반 영국(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국가 발전을 TAKE-OFF한 영명한 군주로 여자가 왕이 되어야 나라가 잘된다는 말이 나돌게 한 장본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절대군주 헨리 8세로 바로 자기 어머니 ‘천일의 앤’, 앤 볼린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다른 여러 여자를 사랑하고 죽이는 짓을 반복했다. 어렸을 때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그녀는 눈치가 비상히 빨랐고 특히 남자를 불신했다.
국왕이 된 그녀는 당시 의회 중심의 영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의회를 존중하면서도 교묘한 방법으로 의회를 조종했다. 그 무기 중에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강철 같은 그녀도 여자인 이상 남자가 필요했다. 차례로 여러 애인이 있었는데, 그 애인마저 상당한 역랑과 판단력을 지닌 인물을 골랐는데다 여왕의 애인 관리가 철저하여 스캔들은 없었다. 적당한 애인이 나타날 때마다 처녀 여왕의 후계를 걱정한 의회는 여왕에게 결혼 권고안을 의결하였으나 그 때마다 여왕은 ‘짐은 영국과 결혼했다’라는 답신을 보냈다. 동시대의 스코틀랜드의 매리 여왕이 애인 문제로 정치를 어지럽히고 끝내 축출된 것과 너무 비교된다.
눈치 밥 많이 먹으면 출세한다 <필자 예언>
엘리자베스 여왕의 한 애인이 Walter Rauleigh다. 이 두 남녀가 젊었을 때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우리 노래식으로 하자면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운명이야!’라고 그 두 남녀는 주장하겠지만... 어느 날 여왕은 수행원들을 이끌고 런던 뒷골목의 서민생활을 시찰하였다. 이 때 맞은 편에서 Rauleigh와 유쾌한 친구 일당이 오고 있었는데 멈춰 허리를 굽혀 여왕 일행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도 여왕 일행이 다가오지 않았다. Rauleigh가 머리를 들어보니 땅에 끌리는 옷으로 성장한 여왕 앞에 젖은 땅이 있어 여왕이 진퇴양난 당황하고 있었다. 두뇌 순발력이 좋은 Rauleigh가 튀어나가 자기의 망토를 젖은 땅 위에 깔았다. 그리고 한쪽 무릅을 꿇고 경의를 표한 후 여왕 폐하가 망토를 밟고 지나가시도록 했다. 이 젊은 두 남녀의 눈은 이렇게 마주쳤고 불꽃이 튀었다.
Walter Rauleigh는 여왕의 총애로 승승장구하였고 마침내 아메리카에 첫 영국 식민지를 개척하는 어렵고 중요한 임무를 명 받고 아직 지도조차 제대로 없는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에 상륙했다. 그 개척한 이 북미 최초의 식민지, 이 땅을 사랑과 충성의 대상인 처녀 여왕에게 바친다 하여 처녀의 땅 Virginia라고 명명하였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번호판의 상단에 주의 이름, 가운데에 번호, 하단에 주의 별칭을 기재하는데 Virginia 주는 자랑스럽게?the Old State?라고 쓰고 있다. Virginia는 Massachusetts와 함께 미국 건국의 엔진 같은 역할을 했다. 조지 워싱턴도 Virginia 출신이다.
다른 많은 나라의 경우, 애인들은 왕의 총애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해서 축출 대상이 되는 등 정치를 어지럽히기 일쑤인데, 영국 지도층은 상공업 발전과 식민지 진출 등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 잘되는 나라는 왕의 애인도 다르다. 후에 Walter Rauleigh는 담배를 최초로 유럽에 보급한 인물로 꼽힌다. 세계보건기구(W.H.O.)나 일산의 국립암센터에서 가장 미워할 것 같다.
한식당 한성옥에서 점심 후 Potomac강을 건너 시차로 무거워진 몸을 재촉하며 정부 청사 건물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Smithsonian 여러 박물관에 갔다. 먼저 자연사 박물관에 입장하는데 보안검색이 철저하다. 공룡뼈, 보석, 인디언 등 여러 풍속관들 둘러보느라 한참이 걸렸는데 한국 전통문화 전시물은 몇 가지 있을 뿐이다. 옆의 항공우주관에 들러 천정에 매달린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초음속 전투기를 보고 우주선 캡슐에 들어가 보았다. 여기 전시물은 대부분 모형이 아니라 사용한 실물이어서 의미가 있으며 가장 많은 관람객이 입장하는데 일본인들은 여길 꼭 들른다고 한다. 왜?
이어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노라니 청설모가 노니는데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청설모가 수입품(?)임을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수입한 거야? 백악관에 가니 앞의 광장에 한 할머니가 30년째 반핵, 반전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영자 구호, 기사가 다닥다닥 붙은 게시판을 옆에 두고 있다. 그 중에는 주한 미군 철수를 언급한 것도 있다. 몇 걸음 옆에는 기타 등 악기를 가진 세 사람이 역시 선전문을 내걸고 있는데 이들은 몇 년되지 않았다고 한다.
Jefferson 기념관에 닿으니 넓은 호수 너머로 워싱턴 기념탑이 평평한 대지로부터 우뚝 솟아 있다. 네모뿔 형태의 첨탑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에서 연유하는데 전쟁에서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탑은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기념시설에 호수를 만드는 것은 달밤의 무영탑 전설 어린 석가탑이나 달밤에 요염하다는 타지마할 묘당이나 다 같은 것 같다. 여기서는 Reflecting Pond라 한다. 제퍼슨 기념관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후에 3대 대통령이 된 제퍼슨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원형의 건물 정면에 로마식 둥근 기둥의 열주가 장엄하게 늘어 서 있고 안에는 코트 차림의 제퍼슨의 입상이 신상처럼 서 있고 그 주위 벽면에는 그의 연설문들이 새겨져 있다.
어두워져 한인 타운의 한식당 비원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가까운 Double Tree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카드 키를 받고 방문을 여는데 다소 애를 먹은 다음, 들어가 무거운 몸을 뉘었다. 겨우 씻고 누웠는데 방짝이 된 ㄱㄷ이 곧장 코를 곤다. 나의 몸은 천근만근인데 잠이 오지 않는다.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한 시 넘어 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