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대동강의 고구려 수군 군영에는 전함을 수리하고 병기를 정비하는 군사들의 움직임이 점점 바빠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장비를 운반하는 병사들이 보였고 배 앞부분에는 충격용 무쇠 뿔이 장착되고 있었다. 대성왕(大成王) 고건무(高建武)의 심복 장수인 고승(高勝)과 문걸(文傑)이 장졸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서둘러라. 달포까지는 군선이 바다에 뜰 수 있어야 한다."
"쇠뿔을 잘 장착해야 한다. 그래야 적선과 부딪힐 때 제 역할을 할 수가 있어. 쇠뿔 뒤에는 나무 받침을 단단히 해야 해! 반드시 박달나무를 써야 한다."
고건무는 대사자(大使者) 고소심(高少心)의 아들인 소형(小兄) 고웅백(高雄栢)과 함께 군영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대성왕(大成王) 전하(殿下), 어지간히 수군의 전함들도 준비가 되어 가는 듯하옵니다."
"그런 것 같네."
"요하의 소식을 전해 들었사옵니다. 실로 믿기 어려운 대전과를 올렸다고 들었습니다만..."
고건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승전(勝戰)은 오직 을지문덕(乙支文德) 그 자가 세운 전략대로 진행되었다고 하네. 태왕(太王) 폐하(陛下)께서 을지문덕을 크게 신뢰하신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어."
"참으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 을지문덕이란 자는 참으로 특이하면서도 놀라운 능력을 지닌 것 같았사옵니다. 수나라를 상대로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더니, 결국 승리를 실현해 보이지 않았사옵니까?"
"그러나 이번 승전은 초전(初戰)에 기선을 잡은 것에 불과해. 앞으로 더 어려운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게야. 그런데 자네 부친은 을지문덕에 대해 매우 못마땅한 입장이더만 자네는 그 자를 크게 칭찬하고 있군."
고웅백은 쑥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그 을지문덕이란 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전공(戰功)을 세웠으니 능히 칭찬해줄 일은 칭찬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허나, 승전보에도 불구하고 자네 부친인 대사자는 여전히 이 전쟁을 불안해 한다지?"
"제 아버님만 그러겠습니까? 모든 욕살들이 다 이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그러나 어차피 시작된 전쟁이니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 하겠지. 나는 요하에서 전해진 승전 소식으로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네."
"그렇지만 수군이 문제입니다. 을지문덕 대장군이 전하께 적어도 7월까지는 저들을 장산군도 앞바다에서 묶어두라고 했다지요? 그 다음에 무얼 어떻게 할 것인지 의아스럽습니다."
고건무는 잠시 하늘을 올려보다가 말을 이었다.
"을지문덕은 7월 이후에는 신풍(神風)이 불어 저들의 배를 어지럽힐 것이라 말했네. 과연 그런 게 있을 수 있는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는 그 을지문덕이란 자가 말한 내용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자가 말한 신풍(神風)이란 것도 한번 믿어 보는 수밖에요."
"아무튼 나는 욕살들과 더불어 한번 요하를 다녀와야겠네. 기왕에 전 욕살들이 참전하기로 되어 있는 전장이니 폐하께 승전을 감축드릴겸 군사들의 사기도 북돋아주어야 하지 않겠나?"
이곳은 요하의 고구려 군영... 대성왕(大成王) 고건무(高建武)와 소형(小兄) 고웅백(高雄栢), 절노부욕살(絶奴部褥薩) 사비유(史備流), 소노부욕살(消奴部褥薩) 설요(薛曜) 등이 행궁(行宮)으로 들어와 영양태왕(嬰陽太王)을 배알하고 있었다.
"모두 잘 왔어. 추운 날씨도 풀려가고 이제 강가에는 벌써 아지랑이가 피고 있어. 이럴 때 바람 한번 쐬는 것도 나쁜 건 아니야."
영양태왕의 여유로운 농담에 제신(諸臣)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폐하께서 수군(隨軍) 8만을 몰살시킨 승전(勝戰)을 거두신 것을 감축드리옵니다. 일찍이 알려드린 바와 같이 욕살들이 나라와 폐하를 위해 군대를 일으켰사옵니다."
고건무는 욕살들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태왕도 알아 달라는 듯이 말했다. 영양태왕은 귀족들에게 일일이 미소를 던졌다.
"모두 고맙네."
"오골성(烏骨城)에 본진을 두고 신성(新城), 현도성(玄菟城), 개모성(蓋牟城)에서 비사성(卑沙城)에 이르기까지 군세를 대폭 확대하여 적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나는 사실 도성(都城)을 떠나오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어."
영양태왕의 입에서 나온 죽음이라는 단어에 고건무는 갑자기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태왕은 잠시 쓸쓸한 표정으로 고건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 하나가 죽음으로써 황실과 국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자는 생각을 했지. 그러면서도 요하에 이를 때까지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네. 행여나 아우가 내 뒤를 따라오지 않을까 말이야. 그리고 요하에 당도했을때, 나는 잠시 절망했었어. 고구려의 태왕이 불과 1만명 남짓한 병력을 이끌고 적의 대군과 마주하는데도 뒤에는 아무도 없구나. 고구려의 귀족들은 모두 태왕을 버리는구나. 아우가 나를 버리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었어."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늦게라도 이렇게 달려왔사옵니다. 용서해 주시오소서."
"물론이야. 결국 내 믿음은 현실이 되었어. 결국 아우는 와 주었어. 모든 욕살들이 다 일으켜 세웠어. 역시 우리는 한 핏줄이라는 것이 확인됐어. 그렇지 않은가?"
말갈족장 아소친(牙素親)이 정겨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오늘 고구려의 두분 황실 어른의 우애를 뵈오니 참으로 마음이 든든하옵니다. 고구려의 황실과 귀족들의 결속은 우리 말갈족의 장래와 결부되어 있사옵니다. 어떤 전투이든 명령만 내려주시면 말갈족은 언제든 달려가겠사옵니다."
강이식(姜以式)도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이보다 아름다운 정경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들은 오늘 두분을 뵈면서 치미는 감회를 차마 감당해내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삼군대장군(三軍大將軍)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오나, 폐하. 도성은 한 국가의 심장입니다. 주인이 계실 자리에 아니 계신다면 백성들이 불안해 할 것입니다. 이제 욕살들이 일어섰으니 도성으로 환궁하시기를 청하옵니다."
영양태왕이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을지문덕의 말을 받았다.
"환궁이라니...? 도성을 떠나와서 이제 막 첫 전투를 치르었어. 다음은 더 큰 전쟁이 기다리고 있어."
"하오나 폐하, 소신도 이제 곧 바다로 나가봐야 되옵니다. 그렇게 되면 도성이 오랫동안 비게 되옵니다. 환궁하시오소서."
고건무가 을지문덕의 건의를 두둔하자 강이식도 말했다.
"듣고 보니 대성왕 전하의 말씀이 옳은 듯 하옵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서토(西土)의 오랑캐들에게 위엄을 보이셨사옵니다. 요하 전선은 소장들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이제 제자리가 잡혔사옵니다. 폐하께서 환궁을 하셔야 소장들도 나름대로 전공(戰功)을 세워 자랑거리를 만들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 사람들아... 그럼 나 때문에 전공을 못 세웠다는 얘긴가 뭔가?"
영양태왕의 애교 섞인 불만에 장수들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뭐 그대들이 정히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 수밖에... 하기사 군주가 도성을 오래 비워둘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아쉽구먼. 이 요하 전투를 내 주관하에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는 영양태왕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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