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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범죄자, 맨슨 패밀리의 리더 찰스 맨슨

RubyGuy |2006.11.14 11:17
조회 994 |추천 3




유년시절

찰스 마일즈 매독스는 1934년 11월 12일 오하이오 신시네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후에 자신의 성을 아버지 윌리엄 맨슨을 따라서 맨슨으로 바꾸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 캐슬린은 그를 다른 가정에 맡기기 위해 노력했으나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카톨릭계 수도원에 맡겼으나 도망쳐 나와 범죄를 저지르다 결국 소년원에 수용된다. 그가 소년원에서 나와 어머니에게로 돌아갔을때는 어느 곳에서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
그 후 맨슨은 거리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삶을 위해 절도, 강간, 사기 등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살인'을 하기 전까지의 반이상의 삶을 연방교도소에서 보내게 된다(17년간).

 

청년기

그는 비틀즈를 흠모하여 교도소에서 기타를 배우면서 상당한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 이외의 교도소 생활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그는 다른 재소자의 성적 노리개가 되었으며 그 또한 양성애자가 되어 다른 재소자들을 성적으로 공격했다.

교도소에서 나온 맨슨은 17살이나 나이가 많은 Rosalie Jean Willis와 결혼했다. 결혼 이후에 또 다시 차를 훔쳐서 결국 교도소로 다시 돌아갔는데 이때 Willis는 임신한 상태였다. Willis는 후에 아들을 낳고 트럭 운전사와 함께 도시를 벗어난다(이때 태어난 아들은 1993년 38세의 나이로 자살).

1967년 감옥에서 나온 찰스 맨슨은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는데 그는 그곳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를 만나게 된다. 당시 히피 문화가 퍼져있던 사회에서 목적없는 히피들에게 찰스 맨슨은 구심점이 되었다.


맨슨 패밀리

그렇게해서 훗날 미국 전역을 경악으로 몰고 간 "패밀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당시의 히피 문화는 전쟁, 환경문제, 인종갈등 등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 무리들이 많았다. 여기에 맨슨은 사랑과 선 등에 대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늘여놓으며 자신보다 젊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그는 머리와 수염을 길러서 마치 예수와 같이 보이도록 했다.

(맨슨 패밀리)

 

그렇게 이루어진 맨슨 패밀리는 당시 상용화되어 있던 LSD를 복용하며 난잡한 성관계를 맺었는데 교주나 다름없었던 맨슨이었기에 그의 추종자들은 그와의 성교를 원했다고 한다(맨슨은 양성애자였다).

맨슨 패밀리는 그 후 여러 곳을 전전하며 생활을 했는데 거처를 제공받는 댓가로 패밀리 내의 여성들을 섹스 상대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찰스 맨슨은 자신의 패밀리를 유지하고 또한 비틀즈와 같은 뮤지션이 되기 위해 음반도 내보고는 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살인

맨슨 패밀리의 첫번째 희생자는 Gary Hinman으로 마약을 판매하며 돈을 벌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에게로 찾아간 맨슨 패밀리는 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귀를 자르고 살해했다.(1969년 8월 6일)

그리고 이틀 후인 8월 8일, 맨슨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살인 명령을 내린다. 맨슨의 명령을 받은 그의 추종자, 찰리 텍스 왓슨, 수잔 앳킨스, 패트리샤 크렌빈켈 그리고 린다 카사비앙은 비버리 힐즈의 한 저택으로 침입했다.
당시 그 집에는 헐리우드의 유명 스타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2003년 아카데미 감독상 '피아니스트'의 감독)가 살고 있었는데 맨슨 패밀리 4인조가 들이닥쳤을 때는 폴란스키 감독은 영화 촬영 때문에 집에 없고 샤론 테이트와 그녀가 초대한 제이 세브링과 아비게일 폴거, Wojciech Frykowski가 와 있었다(그들은 그곳에서 환각제에 취해있었다고 한다).


(제이 세브링, 로만 폴란스키, 샤론 테이트)


습격 당시 그곳에서 일을 하던 18세의 스티븐 패런트가 그들을 발견하고 도망치다 총에 맞고 죽었다. 집으로 난입한 4인은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샤론 테이트는 당시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뱃속의 애기를 위해서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수잔 앳킨스는 이렇게 외치며 16번의 칼로 찔러 그녀를 죽인다.

"개x, 난 네년을 동정하지 않는다. 넌 죽어서 더 쓸모 있을테니까"

제이 세브링은 총에 한번 맞고, 칼에 일곱번 찔려서 죽었으며 아비게일 폴거는 스물 여덟번의 칼질을 당했고 Wojciech Frykowski 두번의 총에 맞고 머리를 13번 칼에 찔렸으며 온몸에 51차례의 칼에 찔린디 뒷뜰에 버려졌다.
또한 제이 세브링과 샤론 테이트는 목에 줄을 매어 천장에 매달았다고 한다.


(잔혹한 살인 현장에서 넋을 잃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

 

그런데 그들은 살해하고 돈을 뺏고 자신들의 아지트로 돌아올 때까지 자신들이 죽인 인물들이 얼마나 유명한 인물들인지 몰랐다고 한다. 아지트에 와서야 그들은 TV를 보면서 누구를 죽였는지 알게되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유명인들을 죽임으로 더 주목받게 된 것을 기뻐했다고 알려져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으며 오히려 떠들썩한 세상을 보며 더더욱 즐거워했다. 맨슨은 혼란스러운 이 시기야 말로 자신이 나설때라고 생각하고 마약에 취한 패밀리들과 함께 LA의 고급 주택가로 향한다.
그리하여 1969년 8월 9일, 샤론 테이트 일행이 살해된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또 다시 살인을 하는데 그들의 또다른 희생양은 레노와 로즈마리 레비앵커 부부였다.
레노 레비앵커는 온몸에 칼과 포크에 찔려 엉망이 되었고, 부인은 41곳이나 찔려 사망한다.

경찰들은 이 두가지 사건이 동일범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상당히 오랫동안 헤매게 되는데 결국 그들이 잡힌 것도 맨슨이 산림청 불도저에 방화를 했다가 그 일로 교도소에 수감 중 다른 수감자들에게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일을 떠벌리다 들통난 것이다.



그후 길고 긴 재판 과정 속에서 보인 그들의 행동은 반성하는 모습이 없었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이 떠들어댔다. 그 과정 속에서 찰스 맨슨의 지지자들도 나타났는데 재판이 열리는 법원 앞에는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몰려와 연일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찰스 맨슨은 자신의 죄를 덱스 왓슨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그의 죄가 더더욱 속속들이 드러났고 변호사를 바꿔가며 재판을 미뤄가며 10년을 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사형판결이 내려졌으나 사형판결 11개월 후 캘리포니아에서 사형 제도가 폐지되면서 아직도 그는 살아있다.

더구나 2007년 가석방 될 예정이라고 한다.

추천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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