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네이트 싸이트 접을 할때마다..
몇번 들러서 글을 읽곤 했었는데 제가 이렇게 글을 적게 될지 몰랐네요..
제가 이상한건지.. 다른분들도 저와 같이 공감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나이 29세인.. 지금 현재 켈리포니아 살고 있는 한 여성입니다.
저는 어린나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아주 즐겁고 평화로운 생활을 했죠..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아주 많았고
어딜가도 친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성격이 워낙 남자 같아서 학교 스포츠에도 적극적 이 었고 주로 친구들과
배구나 비치발리볼 뭐 이딴 것들로 시간을 보내면 순진한 청소년기를 보냈죠..
아버지는 주재원이셨고 프로젝트가 끝난이후로 한국으로 귀국을 해야 하는
때가 다가왓습니다. 그때가 1996년도 였습니다. 아마 그때쯤 IMF가 터졌을때
였을 겁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시고 사업을 하실려고 하시다가 일이 잘 안되서
아버지는 우울증에 걸리셨고.. 어머님 조차 직장에 나가야 하셔서 아버지를
잘 돌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빠는 군대에 입대해 있었고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대학교를
진학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 왔을때는 더이상 제가 기억하고 있던 한국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습니다.
한국을 출국하기 전에는 그때는 잘모르겠지만 부유하게 자랐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초등학교때 부터 기사 아져씨가 학교를 등교시켜줬으니..
암턴 아버지는 우울증을 계속 앓으시다가 결국 쓰러지신지 3일만에 세상을
떠나졋습니다. 그때 제 나이 19살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를 한다는 관계로 영어 강사 영어 관련쪽 일은 다 했습니다.
정말 고된 시간이었죠.. 19살부터 집안 가장이 되어.. 어머님 의 일을 도와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24살때 어머님이 사색이 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 오셧습니다.
"머리가 아파서 병원가봤는데 엄마 암 말기 환자래.." 그말을 하는순간 저는
다시한번 무너졌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신지 4년만에 생긴일이었습니다.
어머님의 병명은 X성 의료원에서 세미나를 할정도로 희귀암이었습니다.
병원비.. 수술비.. 약값.. MRI. CT... 다 보험이 거의불가능한 치료였습니다.
저는 내 인생이 왜이럴까.. 왜 남들은 그 꽃다운 나이에 치장할때 난 그렇게 못하나..
이런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푸념을 늘려봤자.. 달라지는건 없다는걸 알앗습니다.
그때부터 제 자신과의 전쟁이 시작되엇습니다. 잠 3시간자면서 매일 코피가 터지도록
일을 하고 엄마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새벽 강의 낮에는 출장강의 저녁에는 전화영어 그리고 기사편집..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보통사람들이 상상할수 없는 돈을 24세 나이때
전 벌고 있엇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매달 말에 남는건 20만원입니다.
제 생활비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핸드폰비 교통비엿습니다.
겨울에 전기/가스가 끊혀서 파카를 집고 양말을 3겹을 신었던 생각이 납니다.
편의접가서 유리병에 뜨거운을 담아와 그걸 안고 잣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이 3년을 앓으시다가.. 이 세상과 작별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힘든과정을 왜 혼자 하게 되었냐구요?
우리집안 아빠쪽 집안들이 솔직히 서울대 아래로 단한명도 없습니다.
그 뜻은 지들이 세상에서 제일 잴난 인간들이기에..
도울생각도 또 도움을 받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고 원래는 눈물이 많고 친구들 좋아 하고
하늘보는 걸 즐기던 그런아이였는데
27살이 되는 해.. 내 자진이 너무나 찌들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도 비울겸 .. 호주로 떠낫습니다..
호주로 가서 일도 하고 좋은 경치도 보고.. 버려야 할 많은 것들을
버리고 왔습니다.
한국으로 귀국 몰라보게 달라진 나의 안색!!!
1년을 한국에서 지내면서 돈을 모아.. 다시 미국으로 입국 햇습니다.
지금 미국에선 이렇게 상처가 많고 아픔 투성이 인 저를 감싸 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1.5세 이고 미국에서 젤루 큰 신문사에서 사진작가 또는 Multimedia 감독을 합니다.
아주 앞이 짱짱한 사람이죠.. 근데 이사람이 저에게 결혼을 하자 합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사람하는 사람이 떠나가도..
두렵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2명을 저 세상으로 보낸뒤.. 저는
조금씩 세상에 문을 닫았었습니다. 남들에게 상처 받기 싫어
제가 아닌 다른모습으로 사람을 대하고.. 상처받기 싫어서 인지..
제가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 상처는 제가 육제적인 상처가 아닌..
맘을 열지 않음으로써 절 정말 아끼는 모든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엇습니다.
이 사람.. 저에게 손을 내밀엇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사랑이 다가오는게 너무나 두렵습니다.
언젠가는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오빠에게 계속 상처를 주고 잇습니다.
오빠는 믿어도 되는데.. 남자는 다 똑같다.. 또 는 사람은 다 똑같아.. 라고
내 자신 스스로가 나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육제적인 상처는 치료가 되지만 정신적인 상처는 저에겐
너무나 크게 다가오기 때문에 사랑두 두려운것입니다.
전 지금 가진게 없습니다. 전 지금남은건 독기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 그리고 깡
그리고 당당함입니다. 가진게 없어도 당당합니다.
우리둘이는 결혼이야기 다 나왔지만
전 오빠 부모님을 만날 자신이 없습니다.
한국부모님들은 다들 부모님이 돌아 가셨거나 하면
일단 마이너스가 된다는걸 알기에.. 그냥 만나기 싫습니다.
저희부모님은 사람들에게 욕한번 할줄 모르는 그런 분들이셧습니다.
남들 퍼주는거 좋아 하고 사람들 집에 델꾸 와서 밥 먹이는거 좋아 하시고
꼭 싸서 보내시는 울엄마.. 주말에는 어김없이 가족여행을 떠났으며
아빠는 절 너무나 사랑해셔서 다 큰 절 맨날 업어 주시고
제가 피아노는 칠때 옆에 와서 노래를 부르시던 그런분 이셧습니다.
오빠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 보모님이 세상에 살아계시지 않은 우리 부모님 혹시라도
절 보시고 잘못키웠네 뭐내 하면 전 오빠랑도 헤어질거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열심히 살려고 하는것도 잇습니다.
우리 좋은 부모님 욕안들이게 할려구요..
주변사람들이 그럽니다.. "야 빨리 결혼해.."
"상견례는 했어?" "부모님은 어때? 너 좋아 하셔? "
오빠의 지금 위치가 너무나 높아서 한국 부모님들은
비슷한 레벨의 여자를 찾을려고 하실텐데..
학교는 졸업했고 이런 통과!
직업은.. 다른분야지만 2주전 진급했고.. 저는 FOX방송사에서 일을 합니다.
부모님이 안게시고 시집갈돈두.. 식장에서 제 손을 잡아주실 부모님이 지금
안계시니다는거.. 그리고 이제 우리집에는 돈이 남지 않았다는거..
오빠는 이야기 합니다.
" 울엄마 아빠가 나에게 소개 해준 어떤 여자들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여자들보다 니가 더 멋있게 살아.. 내 전여친들 다 의사에 변호사였어"
그래도 니가 난 더 멋있어..." 이렇게 힘을 줍니다.
"내가 니 입장이었으면 엄마 아빠 돌보면서 학교 다니고 일하는거 거의불가능하다고 봐..
근데 넌 해냈고 지금 힘든건.. 니가 지금 상처가 많은건.. 진정한 사랑이 널
아직 못잡아줘서 그래.. 이제 편하게 나랑 같이 가자.." (번역한것임.. ) 오빠는 한국말을 잘못해요
둘이서는 영어만 하죠.. 읽지도 쓰지도 못해요 한국인인데ㅡㅡ;
오빠 부모님을 만나기가 두렵습니다.
그 부모님이 절 반대 하신다면 전 조용히 그냥 떠나고 싶습니다.
저로 인해 부모와자식 관계가 복잡해 진다면 전 그냥
조용히 사라질거 같습니다.
제가 힘든 과정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건.
언젠간 제가 이룰 행복한 날들이 기다릴거라도 믿엇습니다.
우울증으로 자살충동까지 느꼈을때
이런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죽음 혹시 나 죽고 나서 좋은 일들.. 또 나의 목표에 가까워지면 어떻게 되는거야?
아까웠습니다. 그리고 그남달.. 벌떡일어나.. 일자리를 구하고
사회생활을 또 시작하고.. 정신력하느는 짱인거 같습니다.
전 꿈이 아주 많습니다.
전 미국에서 토크쇼의 호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것도 평민들과 가까워 지고 싶습니다. 힘든사람들과가까워지고 싶습니다.
그 힘든 사람들이 힘든과정을 이겨나간 이야기.. 그리고 성공한 이야기...
어제 사실 오빠가 저에게 이런질문을 햇습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튀는 아이로 예전부터 crazy psycho unusual unique
이런말만 들어 왓습니다. 아무나랑 이야기 잘하고 아무나랑 잘어울리고
사람을 너무 좋아 했기 때문에 상처가 큰게 아닐까 합니다.
오빠왈 " 아주 오랜시간동안 넌 너무나 힘들었어.. 고생도 고통도 넌 이겨냈쟈나..
그렇지만 넌 나쁜길을 선택하지 않았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어..이제 좀 쉬어..
너 보면 고삐에 묶인 야생마 같어.. 언제든지 그 고삐를 풀면 넌
미친듯이 달려갈거 같어.. 널 묶고 있는 그 모든것들은 너에게 자리하고 있는
인생의 나쁜 부정적인 에너지야.. 그런것들이 널 힘들게 하는거야..
이젠 그런 에너지 너에게 줄사람 없어.. 넌 이제 니가 하고 싶은데로 니가 먹고 싶은거
입고 싶은거 하고 싶은거 박사학위까지.. 니가 하고 싶은데로 해... 남들 눈치 보지마
니 인생은 니꺼야.. 널 욕을 하던 널 손까락질 하던 니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살아
니가 생각해서 옳은 일이다 생각되는건 옳은거야.. 다른 사람들이 널 판단하게 만들지마
넌 멋진여자야.. 내가 매일 너한테 배워.. 고마워.. 그리고 할말 있는데.............."
하더니 이야기 하나를 덧붙히더군요...
오빠가 예전에 플로리다로 출장을 갔었습니다. 절만나기도 전에요..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할머니와대화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 할머니가 넌 어떤여자를 좋아 하느냐... 라고 물어 봤을때 오빠는
똑똑하고 키도 컸음 좋겠고.. 뭐 기타 등등 이야기 했더니 할머니가 웃었다고
하더군요.. 그 할머니왈 미래의 니 아이에 좋은 엄마가 될사람을 구해라....
소름이 돋더군요.. 모든 여자는 치장을 합니다. 모든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을 받기 원합니다.
하지만 모든 여자들이 다 좋은 엄마가 될수 없습니다.
좋은 엄마가 된다는건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솔음이 돋앗습니다.
오빠가 저에게 던진 마지막 말..
"미래에 생길 우리아이들이 엄마가 되어 줄래?" 눈물이 나왓습니다.
사실 오빠만나기 전에 5년동안 사귀던 남친이 있엇습니다.
그 남친과 좋은 추억도 많았지만 상처도 너무 많이 받아서
전 일에 만족하면서 살거라고.. 아이는 입양해서 살거라고
했던 저에게.. 이렇게 달콤한 이슬비가 내렷습니다.
오빠는 부모님을 빨리 만나자 합니다..
한국부모님.. 두렵습니다..
제가 당당해도 부모님이라는 큰 지지대가 사라진후 자신감이 많이 사라졋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러분들의 좋은 답변 기다리겟습니다.
날씨가 많이 더운데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
행복하세요.. 그리고
효도 하세요.. 하고 싶어도 더이상 못하게 될날은 언젠간 오니까요..
후회라는 단어.. 정말 되돌릴수 없는 단어 입니다.
뒤늦은 후회 하시는거 보다 .. 오늘 집에 들어 가실때 과일이라도 하나 사서
가보세요..
항상 행복하세요...
한타지는게 너무 어려워요 미국에는 오타 이해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