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이 글은 영어로 된 것을 본인이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는 까먹었습니다.
<이방인> The Stranger
알베르트 까뮈 Albert Camus (1913-1960)
<이방인>의 주인공은 알지에에 살고 있는 청년, 메르소이다. 그의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는 양로원에 살고 있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가지 않는다. 그는 말단 직원이지만 승진에 관심이 없다. 사실 그는 빠리로 가는 것이 싫어서 승진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 혼자 살고 있다. 까페에 몇몇 아는 사람들이 있고 주말에는 애인을 만난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죽자 그는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러나 슬퍼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초상을 치룬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양로원에서 어머니와 가까웠던 페레즈라는 사람은 진심으로 애도한다. 장례식이 끝나자 메르소는 알지에로 돌아가 주말을 여자 친구 마리아와 함께 보낸다.
메르소와 같은 건물에 레이몬드 신테스라는 뚜쟁이인 듯한 청년이 살고 있다. 레이몬드가 친하려고 접근했을 때, 메르소는 거부하지 않는다. 레이몬드는 메르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는 그의 여자 친구와 싸웠다.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그녀에게 매춘을 시키려한 것이 분명하다. 레이몬드는 그녀를 혼내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메르소가 그녀를 유인하는 편지를 보내야 한다. 메르소는 이렇게 말하며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레이몬드를 만족시켜주고 싶었다."
다음 주말, 레이몬드의 아파트에서 심한 다툼이 벌어진다. 레이몬드는 그의 아랍인 여자 친구를 때린다. 경찰이 와서 레이몬드를 심문할 때, 메르소는 그의 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증언한다. 한편, 소녀의 오빠는 보복할 기회를 찾기 위해 레이몬드를 미행하고 있다. 1주일쯤 뒤 레이몬드는 메르소와 마리아를 해변 휴양지로 초대한다. 그의 친구가 거기에 방가로를 가지고 있다. 두 명의 아랍인이 그들을 따라오고 있다. 레이몬드는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 기회를 잡아 그가 먼저 공격한다. 격투 끝에 아랍인들이 달아난다. 레이몬드는 칼에 찔려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날 늦게 그들은 그 두 명의 아랍인들을 다시 만난다. 레이몬드는 권총으로 그들을 사살하려고 한다. 메르소는 이에 반대하고 권총을 달라고 한다. 레이몬드는 순순히 총을 내준다. 아랍인들은 재빨리 달아난다.
잠시 후, 메르소는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혼자서 해변을 걷는다. 그때 한 명의 아랍인을 세 번째로 만난다. 날씨는 몹시 뜨겁고 해변에 태양은 눈이 부시다. 메르소는 더위를 피하려고 한다. 그는 일사병에 걸리기 직전이다. 그는 아랍인을 향해 걸어간다. 그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늘을 찾아가는 것이다. 아랍인이 칼을 꺼낸다. 그때 칼에 반사한 햇빛이 메르소의 눈을 멀게 한다. 갑자기 그의 신경이 분렬된다. 그는 주머니에 있는 권총을 꺼내 한번 발사한다. 잠시 후, 특별한 이유 없이 쓰러진 사람에게 네 번 더 총을 쏜다.
메르소는 체포되고 변호사가 선임된다. 그는 냉담하다. 후회하는 기색이 없다. 자신의 운명에 무관심하다. 변호인과 판사가 모두 놀랜다. 판사는 기독교인답게 회개하라고 호소한다. 변호인은 그에게 되도록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배심원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심문에서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슬퍼하지 않았던 사실이 매우 불리한 증거가 된다. 판결은 유죄이며 길로틴 처형이 언도된다.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 형무소 목사가 와서 교회의 위안을 받으라고 제의한다. 신앙이 없는 메르소는 회개하거나 위안 받기를 거부한다. 목사가 조르는 바람에 그는 결국 자신의 생명과 행위를 변호하는 소리를 지른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명은 의미가 없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유죄이거나 무죄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든, 누구를 죽이든, 어떤 차이가 있는가? 소리를 지르고 나자 후련하다. 그는 잠이 든다. 잠에서 깨자 밤이다. 그는 드디어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낀다.
작가와 작품에 관해
알베르트 까뮈는 1913년 11월 7일,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아에서 태어났다. 1914년 그의 아버지는 1차 대전 마르네 전투에서 죽었다. 알베르트, 그의 어머니, 그의 동생은 외조모와 몸이 마비된 아저씨와 함께 작은 집에서 살았다. 집안이 무척 가난했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알지에 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폐결핵으로 학교를 중퇴했다. 까뮈가 젊었을 때 경험한 가난과 질병은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학을 중퇴한 후, 까뮈는 정치적 저널리즘의 세계에 들어갔다. 반식민주의 신문을 위해 일하면서, 그는 알제리아의 빈곤에 관해 많은 글을 썼다. 1935년에서 1938년까지 까뮈는 레끄페 극장을 운영했다. 근로자들을 연극에 끌어들이는 조직이었다. 2차 대전 중 까뮈는 파리로 가서 반독일 저항 운동을 주도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는 중요한 지하 신문 <전투>의 편집자가 되기도 했다.
전시(戰時) 파리에 있는 동안 까뮈는 그의 부조리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 철학의 주요 내용은 인생에는 합리적이거나 구제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을 경험한 많은 다른 지식인들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히틀러 나치 정권의 공포와 전쟁의 대량 살육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존재에 어떤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까뮈의 말을 빌리면, 존재는 부조리일 뿐인 것 같았다.
까뮈의 첫 번째 소설 <이방인>은 까뮈의 세계관을 절묘하게 그려놓았다. 1942년에 출판된 그 소설은 메르소라는 정서적으로 냉담하고 도덕을 무시하는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특별한 이유 없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죽인다. 그의 범죄로 메르소는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는 세상의 점잔은 무관심을 받아들일 때, 마음의 평화를 얻고, 그를 처형하는 사회와 타협한다.
까뮈의 부조리 철학은 도덕적 질서에는 합리적이거나 자연스런 토대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까뮈는 도덕적 무관심으로 세상에 접근하지 않았고, 인생에 보다 높은 의미가 없다고 해서 반드시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믿었다. 반대로 까뮈는 변함없는 인도주의자였다. 그는 냉정하고 무관심한 우주 속에서 인간의 품위에 신념을 가졌다.
<이방인>이 출판된 같은 해인 1942년에 까뮈는 부조리에 관해 유명한 철학적 수필 <시지프스 신화>를 발표했다. 이 두 작품으로 까뮈는 중요한 문학적 인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후 그는 그의 철학을 더욱 발전시키는 많은 소설, 희곡, 수필을 발표했다. 가장 주목할만한 소설 중에는 1947년에 출판한 <페스트>와 1956년에 출판한 <추락>이 있다. <시지프스 신화>와 함께, <반항자>는 가장 잘 알려진 철학적 수필이다. 프랑스와 세계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그는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3년 뒤, 그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2차 대전 후, 팽배한 지적 그리고 도덕적 방황 속에서 까뮈는 정의와 인간의 품위를 옹호했다. 그는 요절했지만,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며, 깊고 통찰력 있는 철학자로 여겨진다.
<이방인>에 관한 해설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이 <이방인>의 핵심 문제이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시급한 문제이다. 과거에는 종교가 인간에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밝혀주고 그것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기독교가 허약해졌다. 데카르트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상 체계가 세상은 이해할 수 있으며 합리적이라는 것을 과시하려고 애썼다. 까뮤에게는 이런 사상 체계마저 소용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안내판이나 목표점이 없이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죽었고, 따라서 도덕적이든 지적이든 모든 절대적인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까뮤가 이야기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방인>이라는 책이 출판되자마자 화제를 모은 것이다.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은 세상 자체라기 보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그렇다는 것이다. 부조리하다는 느낌은 기대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질서와 일관성 같은 것--과 실제로 얻는 것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멸감은, 구약성서 전도서에도 나오는 것으로서, 인생에 대한 어떤 공통된 태도나 판단으로 나타내려고 한다. 모든 것이 모순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서로 관련이 없다. 세상은 생소하고 부조리한 것 같다. 모든 철학 체계가 의심스럽다. 행위의 절대적 기준이 되었던 법과 윤리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규칙이 특정한 상황에 맞지 않는다. 모든 순간은 정지되고 나름대로의 법칙을 만들어낸다. 한 가지 부인할 수 없고 확실한 사실은 순간적인 경험이다. 결국, 모든 인생은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이루어진다. 성인이나 죄인이나, 상식이나 몰상식이나 같은 것이 된다. 세상을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이 선택할 길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이다. 광신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거나, 주어진 상황을 냉정하게 의식하면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인식에서 커다란 해방감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없다면, 모든 순간이 마찬가지라면, 모든 인간이 결국 죽는다면, 인간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생관은 철학적 해설로 잘 표현되지 않는다. 부조리는 합리적인 질서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조리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소설이나 희곡에서는 잘 표현된다. 메르소는 이런 감정이 골수에 박힌 사람이다. 순간 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기억도 거의 없고 기대감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거의 없고, 다른 사람들의 요구도 되도록 피한다. 그의 최대의 미덕은 절대적으로 정직하다는 것이다.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도 그에게 없는 이념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체하지 않는다.
메르소는 분명히 범죄자가 아니다. 그는 악을 범할 수 없다. 레이몬드와는 달리 남을 해치려는 욕망이 없다. 그의 동료들은 대개 그를 좋아한다. 마리아는 그를 사랑하기까지 한다. 그는 대체적으로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준다.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도덕적이지도 않고 부도덕하지도 않다. 그는 어떤 일에나 개입하지 않을 뿐이다. 그만큼 순진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가 사람을 죽였을까? 햇빛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재판정 사람들은 웃는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이유와 다를 바가 없다. 살인은 자동적이었고,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고, 엉뚱한 것이고, 특별한 동기가 없는 것이었다.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한 짓을 저지른 메르소는 절대적인 것을 신봉하는 세계의 힘에게 끌려간다. 그 세계에는 효자가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범죄인과 다른 사람의 구별이 있다. 죄에 따라 벌을 주는 법률이 있다. 메르소는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그는 정당방위였다는 것을 내세워 방면될 수도 있었다. 판결은 법정이 메르소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불행히도 법정은 메르소와 같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누구나 그가 보통 사람들처럼 반응할 거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메르소의 주장이 옳다. 그가 벌을 받는 것은 아랍인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메르소는 사회적 판단과 타협을 시도한다. 그는 자유를 잃고 따라서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는다. 결국 그를 냉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목사의 독촉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통찰들을 분명하게 표현해보라는 것이다. 그의 외침은 독립선언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되었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끝)